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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31화 (31/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31화

31. 종결

학관 학생들은 하나같이 충격에 휩싸인 채 귀가했다. 모두 서둘러 집에 가려 하고 있었다.

김순식이 개경에 곧 올 거라는 특급 소식을 집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나 역시 그런 학생들 사이에 껴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허겁지겁 배수현이 달려왔다.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연우 너는 그럼 김순식이 아니 명주도독이 올 줄 알고 김장명을 후하게 대접한 거야?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니?”

배수현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김순식이 개경에 온다는 것은 고려에 확실히 귀부하겠다는 의미라서 배수현도 이제는 그 이름 대신 명주 도독이란 관직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미래 지식 덕에 알았지.’

사실 고려 태조 왕건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사료가 많지 않았다. 물론 아주 없는 수준도 아니었다.

얇은 책 한 권 정도가 왕건에 대해 남아 있는 사료였다. 당연히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이 시대를 연구과제로 삼은 만큼 나는 이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이즈음에 김순식이 개경에 온다는 사실도 그 덕에 외우고 있었다.

“아주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혹시 또 모른다는 촉이랄지 예감이 들었어. 뭐랄까? 설명하기 어려운데 나한테 그런 게 있어.”

나는 배수현에게는 그런 식으로 둘러댔다.

“그래, 연우 네가 촉이 좋긴 하지. 신례 때도 그렇고 최승우 때도 그렇고. 지금 개경에 온다는 것은 우리 폐하를 전적으로 믿고 항복을 한다는 건데. 대체 명주 도독이 왜 그러는 걸까? 연우 네 생각은 어때?”

배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그것도 물었다.

“나도 그건 잘 모르겠어.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김장명에게 손을 써둔 거지 명주 도독의 속은 누가 알겠어?”

이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미래에서 역사서를 보고 온 나도 김순식의 의도는 알기 힘들지. 김순식의 심리와 관련된 사료가 없으니. 물론 상상력을 발휘하면 추론은 가능하지만 증거가 없어.’

그냥 역사서에는 이때 김순식이 왕건을 만나러 왔다고만 적혀 있었다.

지금은 왕건이 공산 전투 이후 연전연패해서 정말 힘들 때였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게 고려군이 패하고 다른 호족들이 견훤에게 붙었다는 소식뿐이었다.

‘그런데 이 힘들 때 굳이 김순식이 왕건에게 힘을 실어주러 오다니. 참 신기해. 왕건이 강성할 때 오는 것도 아니고. 끝까지 궁예를 편들었던 것도 그렇고 김순식 자체가 역베팅을 좋아하나?’

내가 공산전투 이후 김순식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이점이 신기해서였다.

어쨌든 이때 강력한 호족인 김순식이 개경에 와서 왕건을 알현한 사건이 고려에 힘이 되어줬다.

왕건의 위신도 세워주고 김순식의 지원이 어느 정도 실질적인 도움도 됐다.

“참 폐하께서는 운이 좋으셔. 명주 도독이 스스로 달려오다니. 어쨌든 연우야. 정말 잘 됐다. 너랑 오지수 공주님이 김장명을 위해 많이 은혜를 베풀었는데. 진짜 바로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정윤 전하께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야.”

배수현은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럴 수도.”

나는 그런 배수현을 보며 살짝 어깨를 으쓱하며 그런 대답을 했다.

* * *

이날 나는 상산저의 정원을 거닐며 산책을 했다.

‘나주원에서 1주일 지내다가 여기로 오니 참 정겹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인 하나가 달려와서 말했다.

“영공 각하께서 조정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바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

나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임희의 서재를 향해 하인과 함께 달려갔다. 서재에 앉아 있던 임희는 나를 보자마자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폐하께 혼사를 미루기 위한 핑계를 대느라 너를 내 슬하에 몇 년 더 두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너는 정말 슬하에 두고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겠구나. 아니 나주원에 가 있던 그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을 벌인 것이냐?”

임희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명주 도독이 이번에 온다는 소식에 폐하께서 크게 기뻐하시지요?”

“기뻐하시다마다. 근 몇 달 만에 들으신 기쁜 소식이니. 물론 연우 네가 최승우를 꺾은 일도 있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승리였고. 명주 도독이 폐하의 덕을 따르며 입조한다니 참 큰 도움이 되지. 나도 기뻐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우 너와 오지수 공주님이 명주 도독의 아들과 각별한 사이니 중요하다는 말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다른 중신들이 다 나한테 그에 관해 묻는데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난감했다.”

임희가 이미 땀을 닦아낸 이마를 계속 매만지며 말했다. 오늘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혹시 몰라서 아버님께 말씀을 안 드렸어요. 일이 잘못되면 그냥 저 혼자 김장명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하려고요. 그리고 명주 도독이 왔으니 혼사를 피하기 위한 저와 아버님의 노력도 이젠 빛을 볼 거예요. 더 고생을 안 해도 될 거 같네요.”

나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희 역시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너와 오지수 공주 마마가 곤궁한 김장명을 도왔다는 것을 명주 도독이 알게 되면 너와 나주원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지금 정통성이 있는 정윤 전하께 명주의 강대한 세력이 보태진다면 차기 왕위 계승은 걱정이 없다. 여태 가만히 있던 유긍달과 황보제공도 더는 못 참을 것이다.”

이때 김순식의 세력은 유긍달, 황보제공을 능가했다.

‘유긍달이나 황보제공은 충주, 황주 같은 큰 도시 하나만을 장악하고 있지만 김순식은 그 정도가 아니다. 강릉을 중심으로 태백산맥 동쪽의 10여 개 군현을 통솔하고 있으니. 변경이라 거리가 먼 게 흠이나 힘 자체는 막강해. 괜히 왕건이 두려워한 게 아니지.’

내가 마음속으로 그런 계산을 하며 확신을 가지고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이제는 우리 상산의 수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유긍달과 황보제공도 깨닫게 될 거예요. 앞으로는 오히려 상산과 정윤 전하가 연결되는 것을 막으려고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그들과 담판을 지으면 우리 상산은 이 권력투쟁에서 빠질 수 있죠. 정윤 전하께는 명주를 연결시켜 드렸으니 우리가 혼사를 거부하고 빠지는 것도 원망하지도 않으실 거고요.”

‘이게 미래 지식의 힘이다. 흐흐흐. 내게 2년의 시간만 있으면 혼사를 피하는 것쯤이야.’

내가 속으로 그렇게 자부하는데 곁에서 임희도 손뼉을 치며 말했다.

“연우, 네 말이 맞다. 정말 깔끔한 계책이구나.”

“그렇죠?”

임희가 맞장구를 치는 것을 보고 나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고려 정치판에서 오래 활약한 임희마저 이러면 내 계책은 통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폐하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그것 하나만이 변수구나.”

경험 많은 임희는 그점을 지적했다.

“뭐 폐하께서도 세력이 미약한 정윤 전하를 명주가 돕는다면 기뻐하시겠죠.”

나는 쾌활하게 말했다.

‘나주원이 그리 힘들게 지내고 있는데 왕건이 외면할 리가. 명주가 오지수와 연결돼서 나주원을 도와주면 정윤의 지위도 확고해지고. 고려 초의 그 혼란도 사라질 텐데.’

그런데 임희만은 신중한 표정이었다.

“폐하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 * *

다음 날 학관에 가니 교실 안이 난리도 아니었다. 온 학생이 김장명을 둘러싼 채 뭐라 말을 걸고 있었다.

‘집에 가서 김장명한테 잘해주라고 당부라도 했나 보군. 하긴 내가 부모라도 그러라고 시키겠다.’

이미 개경에 오는 김순식을 환영하기 위한 열병식 준비가 구정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왕건은 큰마음을 먹고 입조하는 김순식을 위해 대규모 행사를 열어줄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군사들과 관리들이 구정에서 행사 연습을 하고 있어서 학관 학생들이 구정에서 해야 하는 격구 수업은 모두 취소되었다.

‘김순식에게 감동도 주고 또 왕건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지. 수많은 관리들과 군사들 앞에서 김순식이 왕건에게 신하로서 예를 표하면 고려가 아직 힘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는 거고.’

나는 여러 계산을 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나는 근 몇 달간 정윤과의 혼사 이야기가 나오며 그걸 피하려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싸움도 이젠 끝이다.’

나로서는 속이 다 후련했다. 그때 곁에서 시무룩한 소리가 들려왔다.

“장명이랑 겨우 친해졌는데 어느새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네요. 쳇.”

오지수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며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김장명이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을 뚫고 나와 오지수 쪽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고 오지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암 그래야지.’

그 광경만 봐도 김장명과 오지수 사이의 마음이 훤히 보여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쪽으로 온 김장명은 오지수와 잡담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김장명은 내쪽을 보더니 말했다.

“빌린 장학금은 예상보다 일찍 갚게 됐어.”

“천천히 갚아도 돼.”

나는 빙긋 웃으면서 대답하는데 김장명이 잠깐 망설이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연우 너는 설마 우리 아버님이 이번에 입조하시는 것을 알았던 거니?”

“그럴 리가 있니? 명주는 반드시 대관령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잖아. 그런데 그쪽에는 이미 군사들이 막고 있고. 왕복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내가 명주의 소식을 어찌 알겠어?”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태연한 얼굴로 김장명에게 말했다.

“그래 맞아. 연우 네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 이번에 아버님이 입조하기로 한 것도 며칠 전 혼자 방 안에 계시다가 결단을 내리신 거래. 하하하. 내가 괜히 엉뚱한 생각을 했네.”

김장명은 그러더니 활짝 웃으면서 오지수와 노닥거리기 시작했다.

탁탁탁.

그리고 여느 때처럼 피곤한 표정의 최언위가 목탁을 두드리며 학생들을 진압하며 교실에 들어섰다.

학생들은 후다닥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다만 열병식 행사 연습 때문에 격구 수업이 취소되는 바람에 교실에서 하는 수업만 몇 시진씩 이어지니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공부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취업준비를 했던 대학원생인 나도 오늘은 좀 힘드네.’

중간에 잠깐잠깐 쉬고 계속 어려운 한문책을 읽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오늘 최언위가 가르치는 문무유조가 상당히 어려운 글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언위는 흔들림 없이 수업을 마치고 말했다.

“다른 글은 건성으로 넘어가도 지금 삼한 땅의 사람이라면 이 문무유조만은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모두 집에 가서 세 번씩 베껴오십시오. 하인들에게 시킬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학생 여러분의 서체를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아아아.”

학생들은 평소와 달리 숙제까지 내주는 최언위를 보며 탄식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뻐근한 목을 돌리며 일어났다.

‘집에 가자마자 좀 쉬어야지. 근 몇 달 너무 고생을 했어.’

따지고 보면 내가 상산을 떠나 이 개경에 온 지 겨우 3달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겪었던 일이 너무 파란만장했다.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쉴 생각으로 가득한 나를 누군가가 불렀다.

“연우 아가씨!”

다름 아닌 최언위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스승님.”

그 부름에 나는 최언위를 향해 인사를 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연우 아가씨는 오늘 한림원에 저와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어쨌든 직원이 되셨는데 한림원에서 일을 보셔야죠.”

최언위가 멀쩡한 얼굴로 그런 말을 했다.

“며칠 전에 특별한 일은 없을 거고 그저 명예직일 거라고 하셨는데……”

내가 좀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대답했다.

“내가 그랬나요?”

최언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그야 새로 직원을 뽑았는데 일이 많을 거라 겁을 줄 필요는 없어서 그랬겠지요. 아니 설마 그 많은 녹봉을 주고 직원더러 놀라고 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자! 바로 옆에 한림원이 있으니 따라오십시오.”

최언위는 그리 말하며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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