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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94화 (99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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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두 사람이야 무능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DL 그룹과 혈연관계예요. DL 그룹에서 안다면 탐욕을 버리지 못할 겁니다. 아니, 그들이 집착을 떨치지 못하도록 일을 벌여야죠.”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모습이 딱 음모를 꾸미기 전의 악당 두목 같아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타박하지는 않았다.

실상 DL 그룹이 최민혁 실장에게 한 짓은 그보다 더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걸까?’

한편으로 호기심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하는 말은 단순히 DL 그룹만을 칭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물론 최동영 상무도 포함되고.

‘하면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과녁에 들어간다는 이야기 같은데…….’

* * *

최민수는 최근 최영란 본부장의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최영란 본부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자신은 남자, 최영란 본부장은 여자가 아닌가.

하지만 KM 그룹에서 보여준 최영란 본부장의 모습은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자괴감마저 느꼈다.

최동영 상무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때문에 그가 최용욱 회장 저택을 찾았을 때 슬쩍 위로해 주었다.

“작은아버지, 괜찮으세요?”

최동영 상무는 쓰게 웃고 말았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

“이번에 영란 누나가 너무한 것 같아요.”

“그러게 말이다. 요즘 컸다고 나도 우습게 아는 것 같아.”

깊은 자괴감.

사실 최민혁 실장이 나섰다면 그건 무시할 수도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이나 최용욱 회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최영란 본부장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그녀는 최동영 상무와 입장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천양지차였다.

상대는 심지어 여자임을 고려하면 말이다.

최민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과거 그 일 때문인가요?”

“그렇겠지. 우리가 일반인을 사귈 수는 없잖아. 솔직히 난 큰형이 그렇게 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해. 다만 사망한 것이 문제인데, 그건 사고였어. 그리고 우리 최씨 집안에서 혜택을 받은 이상 그만한 것을 내놓아야 하니까. 결혼은 그 문제지.”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혹시 할아버지는 뭐라고 하세요?”

최동영 상무는 힐끗 최용욱 회장 저택 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최용욱 회장의 마음이 완전히 바뀐 것에 탄식하고 말았다.

최영란 본부장이 나선 덕분에 최용욱 회장도 아주 물러서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영란 본부장은 분명한 자기 실적을 내놓았다.

그런데 자신은 아니었다.

KM 건설 구조조정이라고 해봐야 최민혁 실장이 판을 짜 놓은 그대로 한 것뿐이었다.

중간에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KM 건설이 무리하게 한 계약도 중간에 다 취소했고 말이다.

그건 최민혁 실장이 충고해 준 계약을 위주로 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장승일 실장이 그 일을 주도했다.

최동영 상무는 그저 장승일 실장이 깔아놓은 판 그대로 움직였다.

더 큰 문제는 KM 건설 실적이다.

이 일 역시 KM 산업이 떠먹여 주다시피 해서 한 일이었다.

매출 규모 자체는 컸지만, 결국은 KM 산업의 매출 신장세에 따른 성과물이다.

최동영 상무 자신이 주도적으로 한 일은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은 그런 점을 걱정했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서 좀 그렇구나. 하지만 최 본부장 지적이 전혀 틀리지 않아. 설사 이동통신 사업을 하더라도 KM 건설에서 해서는 곤란해. 차라리 최 본부장이 그 일을 맡는 것이 맞다. 너는 KM 건설에 집중해.]

황당한 건 최용욱 회장의 태도 변화였다.

그런데 이 말이 크게 틀린 게 아니었다.

그 역시 뒤늦게야 최동영 상무의 업무 능력을 의심했다. 정확히는 이동통신 서비스 투기판에서 과연 최동영 상무가 제 몫을 할지 의심했다.

더욱이 이 말도 길지가 않았다.

그냥 불러 딱 이 말만 하고는 서재를 나가 버렸다.

최민수는 이미 사용인을 통해서 정보를 얻은 터라 더 최동영 상무의 편을 들었다.

“저는 누가 뭐래도 작은아버지 편입니다.”

“…고맙다.”

“정말입니다. 이제까지 묵묵히 자기 일만 하셨잖아요. 이번엔 거기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 것뿐이니까.”

“…….”

최동영 상무는 겉으로는 고마워하면서도 딱히 최민수 말을 믿지는 않았다.

그저 말뿐이다.

결국 지금 감방에 가 있는 최훈열 전무를 떠올렸다.

‘차라리 훈열 형이 있었다면…….’

최훈열 전무라면 자신의 편이 될 수도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과는 많이 다르니까.

그는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최용욱 회장 저택을 나섰다.

최민수는 최동영 상무의 뒷모습을 보면서 탄식하고 말았다.

‘할아버지를 믿을 수가 없어.’

* * *

최민수는 최동영 상무의 모습을 보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껄끄럽기는 하지만 김기범에게 다시 연락했다.

그런데 김기범 역시 상황이 좋지 않기는 최민수보다 더 심했다.

김기범은 감방에 다녀온 이후로 DL 그룹에서 완전히 배제되다시피 했다.

이건 아주 안 좋은 신호였다.

유산 증여 후보에서도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대학 졸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였다.

두 사람 입장이 이제는 비슷했다.

그들은 결국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룹 경영권 후계자가 되지는 못해도 최소한 뭔가 얻어먹기 위해서는 결과를 보여야 했다.

둘은 결국 고민을 거듭했다.

IMF 고위 관료가 최용욱 회장 저택을 방문한 것에 대한 정보를 팠다.

김기범은 이 정보가 KM 그룹에도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최민수를 부추겼다.

“장승일 실장 말입니까?”

“그쪽에서는 이 일을 심각하게 다룰 거야.”

“글쎄요.”

“아니, 생각을 해봐. IMF와 최용욱 회장의 만남에는 뭔가 있어. 장승일 실장은 분명히 이와 관련해서 조사 중일 거야. 우리 쪽에서 그 점을 걸고넘어지면, 뭔가 나올 게 분명해!”

최민수도 장승일 실장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김기범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시도를 해보자. 최동영 상무를 봐. 눈치만 보다가는 정말 아무것도 못 얻어.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해.”

“그건 그렇죠.”

“장승일 실장이 보이는 반응을 보고, 그때 가서 행동해도 되잖아. 이 틈을 파고 들어갈수록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야!”

최민수도 최동영 상무의 모습을 떠올리자 다시 마음을 굳혔다.

이대로 최민혁에게 계속 당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 * *

결국 최민수는 스스로 총대를 멨는데, 그 때문에 KM 그룹 기획 조정실까지 들락거렸다.

다행히 최민수가 KM 통신 지분을 증여받은 덕분에 장승일 실장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장승일 실장 역시 굳이 최민수를 타박하지 않았다.

“다만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의도는 잘 알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IMF 고위 관료가 회장님 댁을 방문한 것은 민혁이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 제 말은 왜 그런 일에 관심을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최민수를 어떻게 해서라도 설득하려고 했다.

IMF 일은 최민수가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었다.

하지만 최민수의 생각은 좀 달랐다.

“정 안 되면 언론의 도움을 받으면 되죠.”

“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세요?”

“왜 안 돼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전 정말 그룹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최민수는 김기범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은 터라 이전처럼 소심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민혁이가 능력이 있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우둔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날카로운 태도였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걱정하는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겁니다. 엄밀히 말해서 IMF도 최민혁 실장님의 눈치를 보니까.”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에플 지분 매각 대금 말이죠. 그 금액이 무려 10조가 넘는다고 하니까. 뭐,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금이면 IMF도 무시 못 합니다.”

“아니, 그래서 더 신경 써야 하지 않나요? 민혁이가 만약 실수하면 IMF 한파가 우리 그룹에도 영향을 주잖아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세요?”

“하.”

장승일 실장은 그 모습에 혀를 찼다. 그는 최민수가 가끔 눈치를 보는 김기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김기수는 슬쩍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님을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은 좋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최민수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에플 지분 매각 말입니다. 그게 과연 좋은 일이었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내놓은 최근 기사였다.

[KM 그룹에서 TRS 사업을 인수한 HY 전자는 지오텍사와의 합작 법인에 500억 규모의 추가 투자를 통해서 실험국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다!]

HY 전자는 TRS 사업에 뛰어들어서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단순히 실험국 개설이 아니라 실제로 서울에 있는 몇몇 호텔과 MOU 계약까지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편의에 대한 인터뷰 역시 포함했다.

요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한 CDMA 사업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 예상한 CDMA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였다.

장승일 실장은 혀를 찼다. 그 역시 기획 조정실에 최근 올라온 비관적인 보고서를 봤다. 그 자리에서 잔소리를 좀 했고 말이다.

그런데 최민수가 그런 점까지 걸고넘어질 줄은 몰랐다.

‘최동영 상무 때문일까?’

조용한 최동영 상무가 설치니, 최민수 역시 조용히 있지 않았다. 최민수는 어떻게 해서라도 주목을 받으려고 했다.

“사업은 길게 봐야 합니다. CDMA 사업은 이제 막 시작 단계입니다. 최근 사용자 숫자가 300% 가까이 늘어난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이에 비해서 TRS 사업은 근본적으로 많은 한계가 있어서 시장 파이 자체가 크지 않습니다. 시작은 호평일지 모르지만, 시장 한계 때문에 주춤할 겁니다. 대기업이 굳이 TRS 사업 쪽에 투자를 자제하는 이유입니다.”

“HY 전자가 대기업입니다만?”

“HY 전자는 다른 대기업과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이동 통신 사업 경쟁에서 LC 전자와 오성 전자에 밀리는 처지니까요. 그들로서는 다른 대안이 필요합니다.”

“하면 우리 입장도 HY 전자와 다를 바가 있습니까?”

“아뇨. 우리는 다른 대기업과는 많이 다릅니다. 아마 최민혁 실장님의 성공 때문에 우리 KM 그룹이 다른 10대 대기업과 이름을 나란히 한다고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최민혁 실장님 계열사를 뺀 KM 그룹은 작년보다는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국 대기업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냉랭한 장승일 실장.

그는 KM 그룹을 결코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최민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솔직히 기분이 안 좋네요. 영란 누나만 따로 대우받는 것 같아서요.”

장승일 실장도 귀를 쫑긋한 김기범의 모습에 단호하게 말했다.

“최영란 본부장은 경우가 좀 다릅니다. 스스로 AD 설계를 설립하고, 그 기반을 KM 산업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바탕으로 신사업을 꾸준히 늘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민혁이가 한 일이잖아요?”

“그것도 실적입니다. 더욱이 AD 설계는 최영란 본부장님이 설립자입니다. 그분이 핵심 인력을 스카우트하셨고요.”

“하지만…….”

“최동영 상무님의 경우는 이와는 다릅니다. KM 건설 인프라를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사람은 최민혁 실장님이었습니다.”

“…….”

최민수는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장승일 실장이 자신의 질문을 하나씩 다 깨버렸다. 정말 더 할 말이 없었다.

장승일 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바꾸어서 묻겠습니다. 최민수 도련님은 왜 최영란 본부장님처럼 하지 못한 겁니까? 최민수 도련님이 만약 최민혁 실장님 도움을 얻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점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기업 경영은 결국 실적이 증명하니까.”

“…하.”

최민수는 장승일 실장의 차가운 평가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장승일 실장의 말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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