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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이들이 만약 일정 정보를 얻는다면 굳이 최동영 상무가 아니라도 다른 한국 대기업을 자극할 수도 있었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지.’
오성 전자, LC 전자, HY 전자와 손을 잡아둔 것은 이런 일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문제가 있을까요? 최동영 상무가 스마트폰 관련 아이템에 대해서 아는 것도 아니니까요.”
“글쎄요. 그건 모르죠. 지금까지 순둥이 코스프레를 하던 우리 셋째 큰아버지 아닙니까. 갑작스러운 행보를 보인 만큼 뭔가 있겠죠.”
“…알겠습니다. 최동영 상무 쪽도 한 번 더 자세히 파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최민혁은 혀를 찼다. 그는 설마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동영 상무를 이용해서 잽을 날릴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잽이 아니었다.
‘기조연설, CES를 막기 위한 대응책일 수 있어. 실상 할아버지를 부추긴 것도 문제야.’
최용욱 회장의 욕망이 지금은 자신의 압력 때문에 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옆에서 계속 유혹한다면 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이동통신 사업에 손을 대지 않은 이유는 IMF 때문도 있지만, 독과점 문제 때문이다. 자신이 만약 이동통신 사업에 손을 댄다면 반발할 한국 내의 세력은 차고도 넘쳤다.
그들 모두를 적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이동통신 사업은 더하지. 그건 나라고 해도 다르지 않으니까. 최동영 상무가 이런 기회를 노리는 것은 당연했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 이걸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 * *
최동영 상무도 KM 그룹 승계 구도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그 역시 후계 쟁탈전에서 물러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과 최훈열 전무가 손을 잡은 이상 그 틈을 파고들지 못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나타난 이후에 상황이 변해갔다.
최민혁 때문에 최문경 부회장이 자신에게서 시선을 뗀 것이었다.
최동영 상무는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숨을 죽인 채 침묵했다. 그저 두 사람의 대립을 지켜만 봤다.
그는 당시 조카 최민혁이 오히려 잘 싸우기를 내심 빌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 이후 상황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호구처럼 조카 최민혁에게 당하기만 했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이제는 조카 최민혁이 승계 구도에서 가장 선두를 달렸다.
황당한 일이었다.
최동영 상무는 결국 이전처럼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두 사람이 서로 공격을 주고받다가 같이 무너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상황이 달랐다.
오히려 조카 민혁이 더 앞서 나갔다.
조카 민혁은 늘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내놓으면서 더 간격을 벌렸다.
입이 절로 벌어질 만한 놀라운 일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조카 최민혁은 무려 에플 지분 12%를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그 과정에서 15조가 넘는 시세 차익을 올렸다는 소리가 파다했다.
소문이니, 좀 과장된 금액일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최저로 잡아도 10조가 넘는 천문학적 시세 차익을 남겼다는 말이 된다.
지분 10조와 현금 10조는 엄밀히 말해서 전혀 다른 것이다.
이 자금은 최민혁 실장의 진짜 자산이니까.
“…….”
그는 한동안 패닉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히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대로 데니스 샐로먼 이사란 인물이 나타나서 그를 부추겼다.
그가 그렇게 기다리던 기회 말이다.
최동영 상무는 마치 세뇌를 당한 사람처럼 처신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를 이용한다면, 새로운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건 최용욱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아버지의 욕망을 잘 안다. 조카 최민혁의 압력에 눌려서 접어야 했던 그 야심 말이다.
반도체와 통신.
반도체는 이미 KM 산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통신이었다.
그는 최용욱 회장이 아직도 TRS 사업을 접은 것을 후회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전부 최용욱 회장 저택의 사용인을 통해서 확인한 일이었다.
최용욱 회장이 혼자 푸념할 때 늘 하는 이야기가 이 TRS 사업이었다.
지금은 1년 전과는 달리 KM 그룹 내에 잉여 현금이 넘쳐난다.
아니, 그룹 내에 자금이 없어도 상관이 없었다.
조카 최민혁이 10조가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고 있었다.
그는 이런 환경을 잘 이용해서 최용욱 회장에게 미끼를 던진 것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그걸 덥석 물었고 말이다.
“…분위기는 어때?”
자신의 최측근인 조철호 수석 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회장님 주변에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 우리 회장님이 민혁이 그 녀석을 만났다고 하던데?”
“회장님이 KM 전자의 연구실을 돌아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장승일 실장도 내막을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민혁 그놈이 여전히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건가?”
“네. 특히 핵심 기술이 뭔지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칩을 개발한다고 했지, 정확히 무슨 칩을 개발하는지는 말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걸 아버지가 듣기만 해?”
“설명해 줬다고 합니다. 다만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 주였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최민혁 실장의 미래 행보를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아버지야 기술을 몰라서 그렇다고 해도 장승일 실장은 좀 다를 텐데?”
“장승일 실장 역시 상황을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전략 기획실이라면 전문적인 기술을 알 수가 있었다.
다만 이들도 익히 알려진 기술만을 안다는 거다.
최민혁 실장이 언급한 기술은 이런 범주와는 많이 달랐다.
대다수가 미래 기술과 관련이 있으니까.
“흠.”
최동영 상무는 잠깐 고민했다. 이번 일은 데릭 모건 이사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었다. 1차적으로 그가 원인 제공을 했지만 2차적으로는 자기 욕망 때문이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준비한 차세대 먹거리가 정말 궁금했다.
“…에플의 기조연설이나 CES 전시회는 그저 미끼에 불과해. 그 일을 가지고 숨기려는 것이 있어. 그건 틀림없이 통신과 관련된 아이템이 맞아. 만약 우리가 먼저 그 정보를 안다면, KM 센서처럼 새 계열사를 설립할 수도 있어. 조 수석 자네에게는 새로운 기회나 마찬가지야. 그걸 잡는 것은 자네 능력이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시작은 오성 전자로 하지.”
“…오성 전자의 권태성 기획실장에게 전화해서 약속을 잡아.”
“…알겠습니다.”
* * *
권태성 기획실장은 오성 애니 아파트 프로젝트 때문에 오성 전자 일을 소홀하게 처리했다. 오성 물산과의 협업이 더 중요했다. 이 건은 향후 오성 전자의 미래 캐시카우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중에 오성 아파트와 가장 관련이 깊은 이동통신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신세계 통신이 디지털 이동전화 시험 서비스를 시작한 덕분에 CDMA 단말기에 슬쩍 숟가락을 올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은 CDMA 서비스 자체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다.
더욱이 아직 한국 이동통신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스템을 혼합하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CDMA 시스템 자체를 이미 ETRI가 다른 대기업과 협업해서 개발한 상황이다.
전자 교환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기술은 다시 퀄컴과 서로 협업해서 이미 안정화를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CDMA가 전선에서는 유리했다.
다만 아직 논란의 여지가 존재했다.
CDMA 시범 서비스 이후에 사용자 숫자가 예측한 것과는 달리 폭발하지 않았다.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임권수 부장은 이 점을 우려했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ETRI를 비롯한 다른 업체와 손을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용과 안정성 때문이었다.
퀄컴에서는 이미 안정화된 CDMA 단말기를 개발했다고 했다. 다만 그들이 공급하는 것은 CDMA 단말기 칩이었다.
거기에 CDMA 관련 원천기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
이건 오성 전자 처지에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자신들 역시 CDMA 단말기 칩을 개발할 수 있어야 했다.
“아는데, 뼈아프네.”
“솔직히 이런 부분은 최민혁 실장처럼 처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생각은 그래?”
임권수 부장은 이제 반쯤 포기한 얼굴이었다.
“솔직히 안 되는 것을 하려는 것보다 더 스트레스받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할 수 있는 해야만 합니다.”
“알아. 그런데 잘 안 되네.”
“실장님.”
“걱정 마. 그래. 중요한 것은 효율이니까. 굳이 이 일을 우리가 무리수를 둬서 할 필요는 없지.”
비용 때문에 혼자 할 수는 없었다.
최민혁 실장의 경우와는 좀 달랐다.
아니, 최민혁 실장 역시 잘 보면, 핵심만을 챙길 따름이었다.
나머지 자잘한 일은 다른 쪽에 다 넘기고.
권태성 실장도 이제는 최민혁 실장 수법을 잘 알아도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LH 전자 쪽에서는 뭐래?”
“오케 사인을 보내왔습니다. 거기에 HY 전자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쯧.”
그도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수를 둬서 일을 진행할 단계가 아니었다. 사실 최민혁 실장 일도 있고 말이다.
“손해는 우리가 보고, 결국 이익이 나면 최민혁 실장이 훌훌 마시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 혹시 대안은 없어?”
임권수 부장은 슬쩍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황광수 차장 역시 아예 대답하지 않았다.
둘 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최민혁 실장 수법은 전형적인 미국 대기업의 수탈 방식이기 때문이다.
당하고 나서야 안 일이다.
뒤늦게 최민혁 실장의 성과를 조사하면서 나오는 거라고는 감탄뿐이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탄식하고 말았다.
“역시 부담스럽나? 참, 최민혁 실장은 요즘 어때? 아직도 에플 지분을 팔아치우고 있어?”
황광수 차장이 냉큼 끼어들었다.
“아직 1% 정도 남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하면 초반에 판 8%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4% 차익은 좀 떨어지겠어?”
“그 8% 물량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정산한 금액이 얼마인지는 파악했어?”
“…모르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최민혁 실장이 의도적으로 정산을 뒤로 미루는 것 같습니다. 아예 주식 대금을 늦게 받는 방식도 있고, 쓸데없는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왜 그래? 설마 주변 압박 때문에 그래?”
“IMF를 비롯해 말들이 많지 않습니까. 당장 미국 SEC도 난리고, 거기에 요즘 한국 정치권도 심상치 않습니다.”
“하긴 그 탐욕스러운 집단이 돈맛을 봤으니.”
권태성 기획실장은 혀를 찼다. 그는 내심 정치권에서 최민혁 실장을 한 번 건드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한국 정치권이 탐욕스럽다고 해도 이미 국세청, 재정 경제원이 최민혁 실장에게 처절하게 당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 그래도 국제 수지 적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재정 경제원이 최민혁 실장을 건드리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통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기획실 평사원이 한 사람의 연락을 알려 왔기 때문이었다.
“최동영 상무? 설마 KM 건설의 그 최동영 상무? 최용욱 회장의 셋째인?”
“…네.”
작년이었다면 무시할 만한 인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랐다.
이젠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는 운전기사도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
최동영 상무는 최씨 일가의 황태자였다.
“…내 사무실로 올려보내게.”
* * *
최동영 상무는 오성 전자의 기획실장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힐끗 권태성 실장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권태성 실장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스트레스에 절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