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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74화 (97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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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치 보지 말고 계속 말해봐. 아버지 괜찮죠?”

최용욱 회장은 최문경 부회장을 째려봤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도 차마 감정을 토로하지는 못했다. 장남이기 때문이다. 미우나 고우나 자기 아들이었다.

비록 지금까지는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였다고 해도 그랬다.

최동영 상무 역시 셋째였고 말이다.

“…휴, 그래.”

최용욱 회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손자 민혁을 높이 평가하지만, 아들 두 명을 이전처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하물며 건설적인 의견을 내놓은 입장에서 말이다.

과거 샐로먼 브러더스의 행보는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또 하기 나름이다.

시기와 환경에 따라서 달라질 테니까.

지금도 샐로먼 브러더스는 손자 민혁의 눈치만을 보는 중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자신이 그 사이에 껴서 중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봤다.

샐로먼 브러더스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든든한 손자 민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 사이를 중재해서 서로 손을 잡게 할 수도 있다고 봤다.

최문경 부회장의 생각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더욱이 그들이 노리는 사업은 최동영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다만 샐로먼 브러더스는 그 점을 알고 최동영을 부추겼으니.

‘하, 이 새끼들이 수작을 부려도 꼭 이런 식이라니까.’

최동영 상무는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TRS 사업이 당장 주파수 대역 800Mhz, 370Mhz 두 가지인 것도 문제입니다. 거기에 LC 정보 통신, HY 전자 역시 아날로그 방식을 택했는데, 디지털 방식은 아예 검토조차 안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 봐.”

최용욱 회장은 호기심을 떨치지 못했다. 그는 정확히는 손자 최민혁을 인정하는 최동영의 주장에 흥미를 느꼈다.

정확히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바로 DL 그룹.

최민혁 실장이 깔아놓은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공격적인 경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이동통신 사업 때문이다.

DL 그룹은 자본 상황이 좋지 않은 터라 컨소시엄 형태로 사업을 진행했다.

이들이 하는 일 중에는 TRS 사업도 있고 말이다.

‘김 회장은 적자가 계속 늘어나는데도 포기하지 않으니.’

문제가 되는 건 김상구 회장의 행보다.

제삼자인 그가 보기에는 DL 그룹의 행보는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한편으로 손자 최민혁의 충고를 받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섬찟했다.

“잠깐만.”

최용욱 회장은 그 일만 생각하면 심장마비라도 걸린 환자처럼 가슴을 떨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일도 보통 일은 아니었어.’

* * *

최용욱 회장은 홀로 저택 정원을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했다.

그는 최동영 상무가 한 말을 그다지 믿지는 않지만, 손자 최민혁이 한 일을 다르게 생각했다.

그중에는 DL 그룹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최민혁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면 KM 그룹은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무리한 투자로 KM 그룹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을 테니까.

거기에 부실한 기업의 적자가 문제였다.

계열사가 썩어 나갈 때 자신이 할 행보는 뻔했다.

임직원들을 살리기 위해서 무리수를 둘 테니까.

결국 KM 그룹 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제 수지 적자 상황을 볼 때,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회사 채권 사정이 절대로 좋아질 수가 없었다.

KM 그룹의 위기.

최용욱 회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도 개정판 X 리포트를 보면서 한국 위기 상황에 따라서 한국 기업이 악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만 KM 그룹은 그런 위기에 놓이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대로 뒀다간 KM 그룹은 늘어난 적자를 견디지 못해서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최용욱 회장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KM 그룹의 미래를 부정했다. 하지만 그는 손자 최민혁이 자신에게 이제까지 한 조언을 떠올렸다.

경고 하나하나가 현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그도 복잡한 현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차가운 현실을 깨달았다.

그는 천천히 최동영 상무 쪽으로 다가가서 다시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계속 이야기해 봐.”

최동영 상무는 최용욱 회장의 표정이 바뀐 것을 보자 이전처럼 조카 민혁을 깔아뭉개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조카 민혁을 더 높이 평가해서 몇 가지를 말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TRS 사업이 아닙니다. 통신 사업입니다. 민혁이가 통신 사업과 거리를 둔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니, 단순히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보고서 몇 가지를 최용욱 회장에게 내밀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목을 길게 늘어뜨린 채 보고서를 살폈다. 그는 최용욱 회장이 심각한 얼굴로 살핀 보고서를 건네받았다.

“…특별한 것은 없는데?”

“겉으로 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KM 전자 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예산이 무려 200억이 넘는 것이 몇 개 있습니다.”

“……!”

최용욱 회장과 최문경 부회장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200억짜리 프로젝트라니.

오성 전자 같은 대기업에서도 쉽게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KM 전자의 규모와는 맞지가 않는 셈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200억이 넘는 프로젝트가 있는 것이 신기하네. 다만 이런 자료를 어떻게 구한 거야?”

최동영 상무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기획 전략실의 장승일 실장에게 부탁해서 구한 자료입니다. 다만 그도 자세한 내막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당연히 의도가 있어서입니다. 차세대 프로젝트 정체성을 안다면 우리 쪽에서 써먹을 수가 있으니까요. 일테면 에니 아파트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 말이죠.”

“…거기까지만 하자꾸나.”

그도 이야기가 복잡해지자 이 정도에서 대화를 끝내고 말았다.

두 사람은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봤지만 일단 물러서야만 했다.

* * *

최용욱 회장은 최문경 부회장을 요즘 믿지 않았다. 당연히 최동영 상무 역시 좋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최동영 상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장승일 실장에게 전화해 봤다.

아니, 전화상으로 확인할 일이 아니라서 직접 기획 조정실을 찾았다.

장승일 실장은 갑자기 나타난 최용욱 회장 때문에 화들짝 놀랐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아, 그 일 말입니까?”

다행히 장승일 실장은 내막을 좀 알았다.

정확히는 최동영 상무가 데니스 샐로먼 이사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사에 착수해서 안 사실이다. 적어도 전략 기획실에서는 KM 그룹 계열사 정보를 알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KM 그룹 계열사끼리 기술에 대한 조언을 요청한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장승일 실장처럼 KM 그룹 전체를 관리하는 이라면 오히려 당연히 알아야 할 일이었다.

“KM 전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정보를 모아 왔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아예 정보를 막지는 않았습니다.”

KM 전자도 그 사실을 알아서 필요한 정보는 넘기기는 했다.

“다만 최민혁 실장님이 정말 중요한 부분에서는 자세한 정보를 넘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괜히 최민혁 실장님을 자극할 것 같아서 자세히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 부분은 그럼 최동영 상무의 이야기가 맞다는 소리야?”

“네, 그 정보는 알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최동영 상무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알아보았습니다.”

“하면 동영이가 샐로먼 브러더스에서 놀아나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야?”

“네, 특히 이동 통신 서비스 사업에 직접 들어가기 어렵다면, DL 그룹처럼 컨소시엄 형태에 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최용욱 회장도 장승일 실장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동영 상무를 자극한 부분은 충분히 탐욕을 가질 만한 것이었다.

최동영 상무는 그 점을 조사하다가 손자 최민혁이 뭔가 다른 꼼수가 있다고 생각했고 말이다.

“알겠네. 혹시 모르니, 관련된 부분은 추가 조사를 해 봐. 굳이 민혁 그 녀석에게 의심을 살 필요는 없어. 솔직하게 물어봐도 되니까.”

“…알겠습니다.”

* * *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 실장, 최문경 부회장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최동영 상무와의 관계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는 때문에 가족 내에 괜한 오해를 만들기 싫어서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지시를 내렸다.

다만 장승일 실장의 입장도 복잡했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최동영 상무를 만난 일을 알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차입금 때문이다.

장승일 실장은 차입금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알고 나서는 계속 샐로먼 브러더스의 행보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는 때문에 최용욱 회장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해서 넌지시 정보를 흘렸다.

하지만 최민혁은 대수롭지 않게 답변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최민혁은 장승일 실장에게 간단히 대답한 것과는 달리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최동영 상무가 혹시나 헛짓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하, 또 무슨 일이지?”

결국 그는 조성돈 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성돈 팀장 역시 뒤늦게 최용욱 회장, 최문경 부회장, 최동영 상무가 한자리에서 뭔가 긴밀한 협의를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시 회장님을 만날 생각입니까?”

최민혁도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가 움직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번 일을 그냥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에플 지분 매각 때문에 당장 미국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

국내 일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IMF에 앞서서 국내 일이 더 중요했다.

“아뇨. 그러지 마세요.”

* * *

최민혁은 겉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도 솔직히 조금 분노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피식 웃고 말았다. 이번 일이 어떤 식으로 시작되었는지 잘 아는 탓이다.

‘시작은 샐로먼 브러더스가 했지만.’

전생이라면 초조하고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당시에는 적이 최문경 부회장 하나라고만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샐로먼 브러더스도 간접적으로 자신을 계속 공격했다.

다만 그 자신이 몰랐을 뿐이다.

그는 문득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나서야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나.’

최민혁은 왜 이제까지 자신이 고구마처럼 행동했는지 스스로 깨달았다. 그는 몸을 사린 것이다. 최악을 대비해서 말이다.

‘다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 그렇다면 보복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깔아놓은 덫을 하나씩 돌이켜 봤다.

다만 이 일은 이동통신 사업이 매개가 되어야 했다.

‘하긴 이동통신 사업이라면 쉽게 포기하기는 힘들지.’

물론 지금이 늦기는 한창 늦었다.

다만 아직 CDMA 서비스 성과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지금 이동통신 사업에 들어가도 나쁘지는 않았다.

컨소시엄을 이용해서 말이다.

다만 컨소시엄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동통신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다고 생각했지만, 초기 결과는 달랐다.

다만 그들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문제는 그때까지 어떻게 버티느냐 하는 점이다.

최민혁 실장은 참 엿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재미있네.’

사실 자신이 힘이 없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동통신 사업에서는 완전히 배제된 상황이니 말이다.

다만 최민혁은 이 이동통신 사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아는 터라 굳이 성급하게 판단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이보다 이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했다.

‘…차라리 그냥 두는 것이 어떨까?’

이동통신 사업이 나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IMF가 왔을 때 과연 이 사업이 잘될까 하는 의문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신중한 터라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최동영 상무는 달랐다.

거기에 최문경 부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최문경 부회장은 지금은 자신에게 밀려서 승계 구도에서 추락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는 전생의 기억을 한 번 돌려 보았다. 바로 나오지는 않았다. 때문에 키워드를 몇 가지로 바뀌어서 하나씩 돌려 보았다.

‘DL 그룹은……. 하, 미쳤구나.’

전생의 기억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현생 역시 DL 그룹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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