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65화 (96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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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국내 계좌가 아니라 해외 계좌에 말이다.

최민혁 실장도 뒤늦게 그 점을 수긍했다.

“아, 그래서 IMF가 이 난리를 친 겁니까? 아무래도 샐로먼 브러더스에서 부추겼다고 해도 행동이 좀 이상하긴 했는데…….”

“맞습니다. 아무래도 이제까지 우리 KM 전자가, 아니, 최민혁 실장님이 한 투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발끈했다.

“아니, 그놈들이 하는 바트화 조작질은 문제가 없고, 제가 파는 정상적인 에플 지분 매각은 문제가 된다는 겁니까?!”

“…….”

조성돈 팀장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오히려 피식 웃고 말았다.

“뭐, 이렇게 하죠. 일단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에게 연락해서 한번 만나자고 해보세요. 한번 이야기는 들어봐야겠습니다.”

“…약속을 바로 잡겠습니다.”

* * *

IMF의 행보는 단순히 최민혁 실장의 에플 지분 매각 때문만이 아니었다.

멕시코가 과거 긴급 구제받은 차관 135억 달러를 예정보다 3년 앞당겨서 상환한 것도 무시하기 힘들었다.

클린턴은 선거를 앞두고 이번 차관을 통해서 6억 달러 가까운 이자 수익을 올렸다는 점을 내세웠다.

미국으로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과거 멕시코 긴급 구제 자금을 둘러싸고 반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클린턴의 재선에 꽤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다만 IMF의 입장은 달랐다. 3년 일찍 멕시코에서 긴급 차관을 상환한 탓에 IMF의 이자 수익이 확 떨어진 것이었다.

IMF는 외채를 명분으로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이런저런 갑질을 하던 것도 중단해야 했다.

막바지에 간 협상 중에는 군침이 도는 것도 많았다.

일테면 통신, 전기와 같은 사업 말이다.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 역시 멕시코의 조기 상환을 간과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에 와 있는 동안에도 멕시코 조기 상환 문제에 대해서 계속 보고를 받았다.

전부 안 좋은 이야기였다.

그가 굳이 한국에 서둘러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거기에 최민혁 실장과의 협상은 한국에 손을 쓰기 전에 반드시 끝내야 할 일이었다.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은 조성돈 팀장에게서 연락을 받고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최민혁 실장을 만나려고 했다.

이미 최용욱 회장을 만나서 이야기한 터라 오해의 소지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의 평판이 워낙에 좋지가 않았다.

그도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보험으로 성환수 보좌관에게 연락했다.

다시 만난 성환수 보좌관은 ‘최민혁 실장’의 이름을 듣고 나서는 피식 웃었다.

“아하.”

“저는 한국 국제 무역 수지 적자가 걱정됩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를 위해서 진심으로 일하는 건데,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오해 안 해요.”

“네?”

“최민혁 실장님의 악명이 워낙에 자자해서 오해를 많이 받는데, 그분은 대화가 되는 분입니다. 알아듣게 설명하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혹시 안병우 차관보에게 헛소리를 들은 겁니까? 에이, 그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똑같습니다. 괜히 최민혁 실장의 악명을 부풀려서 이간질시키는 겁니다.”

“…정말입니까?”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너무 그렇게 숨길 일은 아닙니다. 우리 재정 경제원 역시 최민혁 실장님을 부담스러워합니다. 딱히 좋은 관계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중도가 좋을까요? 차라리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은 머리를 맹렬하게 돌리기 시작했다. 그도 문제가 될 소지가 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이 과연 자신을 상대로 원하던 반응을 보일지도 관건이었다.

“이 일은 IMF 공식적인 행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으로…….”

“네. 물론이죠. 상관없습니다. 우리 정부 입장이 있으니까요.”

“하,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물론이죠!”

* * *

최민혁 실장은 갑자기 성환수 보좌관의 연락을 받고 나서는 어리둥절했다.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에게 연락했는데, 성환수 보좌관이 끼어들지는 몰랐다.

그는 결국 전생의 기억을 맹렬히 돌려봤다.

IMF의 이번 행정부에 대한 자문은 원래 역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다만 시기가 많이 달라.’

그 규모도 달랐고, 분위기도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당장 재정 경제원이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언론사 역시 마찬가지다.

더욱이 피터 어빙 재정국 수석 자문관은 이전 전생에는 없는 대형 나비였다.

덕분에 생긴 변화 중의 하나가 이번 논란에서 ‘최민혁 실장’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플 지분을 무려 8% 가까이 팔아치워서 벌어들인 150억 달러 수익.

아니, 정확히는 150억 달러가 훌쩍 넘었다.

다만 여러 가지 비용을 제한다면 또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나머지 4% 지분 매각을 고려하면 대략 230억 달러 수준이었다.

아니, 이 수치도 정확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금액이 나와 봐야 알 일이었다.

중간에 블록딜 거래가 대박 쳤다고 소문났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거품을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하는 터라 130달러 선이 아니라 100달러 선에서도 많이 거래되었다.

최민혁은 이런 변화가 IMF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서울 도심의 한 한정식집에서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을 만났다.

동행한 성환수 보좌관 역시 포함해서다.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은 성환수 보좌관에게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자리를 좀 비워주시면 좋겠습니다.”

성환수 보좌관은 어이가 없었다.

“네? 하지만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같이 듣는 게 좋지 않을까요?”

평소 눈치가 빠른 성환수 보좌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성환수 보좌관 역시 바보는 아니다. 그는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의 행동을 석연치 않게 바라본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두 사람이 한편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저렇게 말하는 것을 봐서는 서로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하긴, 다른 꿍꿍이가 있는 IMF 직원이 IMF 속내를 한국 정부 공무원에게 말할 수는 없겠지.’

그는 기다렸다.

다행히 성환수 보좌관은 눈치가 빨라서인지 결국 체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은 경호원마저 빠져나간 그 모습에 입을 열었다.

그는 그제야 여유로운 포즈를 잡았다. 시작은 가벼운 이야기였다. 최민혁 실장이 이룬 성과를 흥미롭게 설명했다.

“우리 IMF는 다른 기관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님의 잠재력을 잘 압니다. 사람들이 아는 애니 인공지능 기술 수준이 아니라 진정한 AI 기술 수준 말입니다. 심지어 무인 항공기나 사드에도 적용하는 것으로 압니다.”

실제 사실이었다.

그 역시 이지수 박사에게 가끔 보고를 받았는데, 의외로 메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고 지낸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테일러 박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지금까지 기회만 기다리던 이들이었다.

덕분에 이지수 박사가 진행하는 일은 이미 예상한 범위를 아득히 넘어섰다.

다만 최민혁 실장 자신은 굳이 잡다한 일에 관심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하지만 IMF는 좀 다른 것이다.

‘하긴 미국 정부가 의결권을 가지고 있으니.’

“저희도 이런저런 채널이 있고, 최민혁 실장님이 혼란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번 에플 주식 매각 전까지는 말입니다.”

최민혁은 툴툴거렸다.

“하, 같은 이야기를 또 해야 한다니, 주가가 너무 올라서 지분을 정리한 것뿐입니다.”

“그 금액이 최소 200억 달러가 넘는데도 그런 말씀을 하실 겁니까?”

“저도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블록딜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플 가격에 대량으로 사들이는 이가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에플 매출은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만 해도 주당 1달러에 불과했다.

매출이나 미래 성장성은 이 주가를 기준으로 보면 답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150달러였다.

한 주도 아니고, 천억 달러 규모로 누가 에플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겠나.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건 좋다고 하죠. 하지만 상황이 너무 미묘합니다. 올해 한국 정부의 국제 무역 수지 적자가 200억 달러를 넘어서 250억 달러를 넘을 예정이라는 것 때문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의아한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아니, 제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네?”

“전 한국 정부의 국제 수지 따위는 몰라요. 알 수도 없고 말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수치를 어떻게 정확히 압니까?”

“그건…….”

피터 어빙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최소한의 애국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단순히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화를 낸 채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정말 실망입니다. 고작 한국 국제 수지 적자 이야기를 하려고 절 부른 겁니까? 다시는 이런 일로 만날 일 없기를 바랍니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진짜 나가 버렸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눈치가 빨랐다. 그는 당황한 피터 어빙에게 달라붙어서 달콤한 이야기로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그는 내심 최민혁 실장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뻔히 보이는 이런 수작을 또 부리다니.’

하지만 피터 어빙의 태도는 예상과는 달랐다.

그는 크게 당황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 삽질이었다.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을 살살 달래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말았으니.

조성돈 팀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 * *

최민혁 실장이 화를 내면서 바로 일어난 것은 단순히 피터 어빙을 압박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역시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피터 어빙의 이야기를 듣자 자기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IMF 자체를 막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이 반대다.

IMF를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멕시코 정부가 조기 상환한 것처럼 한국도 그럴 수가 있었다.

전생과 다르게 흘러가게 하면 될 일이다.

그 와중에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를 정리하고 말이다.

다만 최민혁으로선 단순히 그냥 퍼지기만을 기다릴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이 개혁 와중에 핵심 사업을 따로 챙길 생각이었다.

그는 오히려 IMF가 일어나 한국 경제가 제대로 변화하기를 바랐다. 전생의 IMF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개혁과 혁신을 통한 변화 말이다.

물론 이런 마음을 먹은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 스스로가 힘숨찐을 포기하자 마음을 달리 먹은 것이었다.

그는 조성돈 팀장이 중간에서 중재한 덕분에 다시 만난 피터 어빙을 상대로 자기의 신념과 철학을 말했다.

“설마 제가 한국 정부를 도와줄 거로 생각한 겁니까? 정부와 제 관계를 잘 들여다보면, 친구가 아니라 적에 가깝다는 것을 알 텐데요?!”

“그거야…….”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는 IMF 일에 전혀 간섭할 생각도 없고, 능력도 안 됩니다. 에플 주식 매각은 어디까지나 시세 차익을 노린 행위일 뿐입니다!”

“…….”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은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로서는 아무런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넘길 사안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었다.

“조, 좋습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도대체 그 천문학적인 자금을 가지고 뭘 하려고 하는 겁니까? 은행에만 모조리 집어넣은 것으로 압니다만.”

“부동산을 일부 사들였죠.”

“하지만 최저가 한화로 15조, 최대로 잡으면 20조가 넘는 돈입니다. 무려 300억 달러가 조금 안 되는 천문학적인 자금입니다!”

목이 찢어지라 외치는 피터 어빙 수석 자문관의 모습은 도저히 IMF의 수석 자문관이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 점을 뒤늦게야 알아챘다. 그는 오히려 피식 웃고 말았다.

‘하, 요놈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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