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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채 차관은 확실히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고위 공무원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만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였다.
최민혁은 이후에 말을 빙빙 돌려서 이환채 차관에게 몇 가지를 물어봤다.
“물론입니다. 최민혁 실장님은 우리 재정 경제원에서도 롤 모델로 지켜봅니다. 다른 정부 기관을 포함해서 윗선도 다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말 같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날 감시라도 한다는 말인가? 하긴 그럴 수 있지. 이번에 차익 수익이 나오면, 분명히 수작을 부리고도 남을 것 같아.’
IMF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다음 달이라도 뭔가 조처를 할 것 같았다.
다만 강압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많지.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때는 역시 잠적하는 게 최고일까?’
* * *
최민혁 실장은 재정 경제원 태도가 아주 달라진 것을 알자 이번 에플 지분 매각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생의 기억을 다시 들추었다.
한국, 미국 주식 시장을 연동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미래에 달러 찍어내기가 있었지. 그때 이후로 주가가 폭등했으니까.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다시 물가가 폭등하자 금리를 올려서 주가를 끌어내렸지. 하면 FRB 쪽이 그런 위험성을 고려해서 손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생각해 보니, 문제가 될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다.
미국 정부는 금리 인하라는 당근을 제시해서 미국 주가를 끌어올렸다.
훌쩍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이건 이 일에 초를 치는 일이었다.
‘아, 이건 아닌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실업률 발표 이후에 갑자기 일어나는 다우지수의 폭락 말이다.
‘어라? 시기가 모호하게 겹칠 것 같은데…….’
최민혁 실장은 순간 크게 당황했다. 이 시기에 다우지수는 기록적인 폭락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은 미국 정부가 미는 금리 인하 정책에 재앙을 만드는 일이었다.
‘미치겠군. 이 타이밍은 또 뭐야?’
그렇다고 현금 확보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결국 입맛을 다셨다.
변화된 미래의 전생 기억을 떠올리면 행동에 나서는 편이 좋긴 한데 말이다.
‘그건 욕심일까?’
그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답을 찾지 못하자 곧 자기 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했다.
다시 조성돈 팀장을 호출했다.
“네? 벨린 투자에게 의사 결정을 맡기자는 말입니까?”
“중요한 것은 시기를 특정하지 않는 겁니다. 가능하면 매각 타이밍이 교차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 이번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는 듬뿍 준다고 하세요. 아, 물론 실적이 없으면, 인센티브는 없다고 못을 박고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 역시 이번 기획 팀 재조사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임직원의 실력을 키워줄 생각이신 건가?’
큰 오해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 * *
“…네.”
벨린 투자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우영민 부장의 호출과 다시 바뀐 지시에 겉으로야 대답했다.
사실 좋아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무려 12조 물량 주식 매각을 알아서 판단하란 이야기에 당황했다.
한편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측면에서 좋을 수도 있었다.
벨린 투자 임직원들의 상기된 표정이 그 증거였다.
다만 현실이 녹록하지 않았다.
확실히 에플 주가는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더욱이 미국 연기금이 갑자기 하던 투자를 모두 청산하고, 미국 다우지수로 돌린 예도 있었다.
차라리 지금 시점에서 에플 주식을 파는 게 오히려 나은 선택이었다.
우영민 부장은 물론 한 가지 점을 더 지적했다.
“다만 그냥 막 던지지 말고, 일주일, 아니, 필요하다면 이 주일, 현실적으로 무리라면 삼 주에 걸쳐서 파는 것으로 하죠. 아니, 시간을 좀 더 늘려서 이 주일 정도 좋으니까. 투자가 서로 겹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물론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권고입니다. 이건 각자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인맥을 총동원해도 됩니다. 지금 시가 대비 10% 선에서 블록딜 거래도 가능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해서요. 권한을 넘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네.”
블록딜이라는 말에 벨린 투자 임직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량이 아니라 일부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인센티브에 반영될 테니, 그것도 기대해 볼 만했다.
200억, 300억 물량 블록딜이라면 인센티브가 억 단위는 나올 테니까.
“다만 조심하세요. 괜히 이 일로 시선을 끌어서는 곤란하니까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금융계 쪽도 경계할 필요가 있어요.”
시선을 피한다라.
그게 과연 가능이나 할까.
블록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일부 흘려야 했다.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다우존스가 그 어느 때보다 거품이 많이 꼈다는 점이다.
자금 흐름이 좋으니, 잘하면 대규모 에플 주식 매각을 숨길 수 있지 않을까.
아마 될 거다.
좋게 생각하자.
막대한 인센티브가 걸린 일이었다.
“…네.”
우영민 부장 처지에서는 최민혁 실장이 과도한 관심을 끌지 않도록 주의하란 지시를 충실히 지킨 셈이었다.
‘혹시 이래도 SEC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닐까? 아니, 괜찮을 거야. 그보다는 세력이 끼어들면 곤란해. 그게 오히려 문제가 될 거야.’
* * *
우영민 부장은 나름의 주의를 기울였다.
벨린 투자 역시 과거의 그 벨린 투자가 아니었다.
740 펀드를 굴려서 꾸준한 명성을 얻은 집단이었다.
꼭 투기판에서 투자를 할 이유는 없었다.
이런 일 때문에 벨린 투자는 과거와 비교하면 더 주목을 받았다.
월가 내의 몇몇 투자 회사들이 곧바로 정보를 얻기는 했다.
KM 전자와 최민혁 실장에게 학을 뗀 김현탁 사장 역시 벨린 투자에 대해서는 레이더를 상시로 켜놓고 살폈다.
DL 그룹 상황이 나빠진 덕분에 최민혁 실장을 주의할 인물로 간주했다.
혹시라도 최민혁 실장이 엉뚱한 수작을 부려서 DL 그룹을 흔들 수가 있었다.
생존을 위한 필사의 자세.
그는 최민혁 실장의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파고들어 갔다.
그는 덕분에 DL 그룹 본사에 만들어진 최민혁 실장 전담 팀을 통해서 벨린 투자의 특이한 동향을 곧 발견했다.
“에플 주식을 판다고요?”
“이유는 확인 중입니다.”
“혹시 에플 주가 폭등 때문입니까?”
“그게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었다.
에플 주식을 팔고 있다만 알지 그 규모가 얼만지까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박태정 비서실장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도 이번 정보를 얻고 나서는 처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저 일상적인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플 지분 매각 분량이 장난 아닙니다. 하루 만에 무려 0.5% 지분을 매각하는데, 우리가 미처 모르는 채널까지 고려하면 그 분량이 더 많을 겁니다.”
“0.5% 지분이라…….”
그도 최근 에플 주가와 0.5% 지분 물량을 비교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엄청난 물량이었다. 무려 120달러를 돌파한 에플 주가 기준으로 해도 말이다.
‘기타 비용을 뺀다고 해도 자금 규모가 엄청날 거야.’
막상 머릿속으로 계산하니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상식을 벗어난 자금 규모 덕분이다.
과거 최민혁 실장이 에플 주식을 매입할 때는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에플 주식 매입은 가히 신의 투자라고 할 만했다.
다만 이 투자 성공은 단순히 에플 덕분이 아니라 최민혁 실장 스스로 개척해서 이루어 낸 업적이다.
그가 직접 나서서 스티븐도 다시 귀환시키고, 에플의 혁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 이제는 질투도 안 나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걸까?’
김현탁 사장은 과거 최민혁 실장과 있었던 악연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 지난 일을 계속 머릿속에 담아둘 수가 없었다.
그는 이보다 최민혁 실장과의 미래 관계에 대해서 고민했다.
다만 핵심은 이게 아니었다.
“꽤 이익이 많이 날 것 같네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이번 매각 주식 평균 매입가가 1달러 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100배 이상의 수익입니다!”
“휘이!”
김현탁 사장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역시 최민혁 실장이라고 생각했다. 도저히 현실성이 없는 주식 차익 실현이었다.
박태정 비서실장도 평소와는 좀 달리 흥분했다.
“그냥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 막대한 자금이 생긴다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일테면 우리 DL 그룹을 인수 합병할 수도 있습니다!”
“으음.”
김현탁 사장은 창백한 안색을 한 채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DL 그룹이 최훈열 전무를 통해서 하려고 했던 일.
최민혁 실장이라면 당연히 보복해야 할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게 좀 이상해. 이제까지 최 실장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 상념을 곧 털어버렸다.
최민혁 실장이 지금까지 한 일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가 있었다.
‘아니, 이보다 더한 일도 저지를 사람이야.’
다만 냉정하게 생각했다.
최민혁 실장이 기존에 한 일 말이다.
과거 최민혁 실장을 차분히 돌아보면, 인수합병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걸 아닐 겁니다.”
“네? 하지만…….”
“아뇨. 최민혁 실장은 금융 기업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건 제가 장담하죠. 이번 일도 기존의 단기 투자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벨린 투자가 자주 이용하는 수법이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 매각 물량은 이전과는 크기 자체가 다릅니다.”
“그거야 이번에는 돈이 좀 필요해서인가 보죠.”
“그렇게 보기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입니다. 좀 필요한 수준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천문학적이겠지만 최민혁 실장에게는 아닐 겁니다. 엄밀히 말해서 자금을 확보할 생각이라면, KM 전자 계열사 지분을 팔아도 됩니다. KMBOOK이나 구골 지분만 팔아도 어마어마한 자금을 챙기겠죠.”
“…….”
박태정 비서실장도 아차 싶었다. 시간이 너무 지나서 간과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자금을 만들려면 그 대안이 아주 많았다.
“더욱이 지금까지의 벨린 투자 형태를 봐도 그런 일은 안 할 겁니다.”
실제로 벨린 투자는 에플 주식 단타로 재미를 많이 봤다.
몇 개월 동안에 진행된 일이라서 이제는 다들 그런가 싶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을 만나 본 터라 최민혁 실장의 본질을 잘 안다. 만에 하나라도 최민혁 실장이 금융 기업에 손을 댈 이유는 없었다.
“이번 일은 그냥 이 정도로 하죠.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냈다가는 DL 기업 꼰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다만 그도 최민혁 실장이 왜 굳이 에플 주식 매각 물량을 늘렸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역시 에플의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그런 건가?’
* * *
김현탁 사장은 최민혁 실장 일을 조용히 접어 버렸다. 그는 최근 KD 통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안 좋은 일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도움을 얻어서 중국 쪽에 IP 시티폰 투자를 늘린 것은 좋았지만 안 좋은 소문이 파다했다.
IP 시티폰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이런 찌라시를 그저 소문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중에 최민혁 실장과 LC 전자, HY 전자 간의 협업 소식이 새끼를 친 것을 보고받았다.
처음에는 그저 말만 나올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이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바로 모바일 애니 솔루션과 관련해서 MOU를 체결한 일 말이다.
특히 HY 전자는 자동차 애니 솔루션 공급 계약 체결에 꽤 만족했다는 정보도 들었다.
‘어이가 없네. 결국 오성 전자와 차별화를 꾀한 것인가?’
LC 전자, HY 전자, 오성 전자가 받는 사업부는 다 따로였다.
LC 전자와 오성 전자가 사업이 서로 겹치는 것 싶지만 그렇지 않았다.
LC 전자는 오성 전자가 애니 아파트에 적용한 솔루션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 쪽과 손을 잡았다.
물론 이 부분은 논쟁의 소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