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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48화 (94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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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주식을 파는 것도 문제지만 주식 대금이 더 문제가 될 수 있어.’

평상시와는 다르다.

바로 IMF가 이제 서서히 다가온다.

최민혁 실장 자신이 아무리 영향력이 있어도 상황이 절박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 경제 상황을 한 번 살폈다.

복잡한 부분은 빼고, 우선 주가 위주로 말이다.

그런데 코스피 주가가 어제부터 내림세로 돌아서서 폭락했다.

단기 폭락처럼 보이는데,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이건 또 왜 이래?’

최민혁 실장은 전생의 기억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뭔가 좀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신경 쓰이는 일이 왜 이렇게 많아. 그냥 지르고 말았어야 했는데…….’

그는 결국 다시 미국 다우지수 경향을 꼼꼼하게 살폈다.

심지어 벨린 투자에서 자료도 받고 말이다.

‘가만, 미국 연기금 펀드가 빠져나갔다고?’

코스피에 들어와 있는 자금 일부분이 단기에 급속히 빠져나갔다.

그는 그 이유가 미국 금리 인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기로 나타난 현상인가? 설마 나랑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조성돈 팀장을 호출해서 한 번 확인을 해봤다. 그 역시 잘 모르는 사실이라 벨린 투자 쪽에 요청해서 자문했다.

“…금리 인하도 있지만 에플 주가를 비롯한 다우존스 주가가 단기에 급등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설마 저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큰 관련은 없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쉽게 말씀하시죠.”

“…최 실장님의 행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국내에서 한 일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우영민 부장도 이번에 입사한 전 골드만 삭스 출신인 조엘 맥클레인을 통해서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하면 에플 주식 매각이 한국 코스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가요?”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이 에플 주식 지분 매각으로 최민혁 실장님이 천문학적인 차익 수익을 얻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미국 투자를 대폭 늘리지 않을까요?”

“흠.”

그도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 될까 싶었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 얼굴은 심각했다.

“우영민 부장 이야기로는 최민혁 실장님의 명성이 이제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투자를 어떻게 하느냐는 정보조차도 주가에 영향을 줍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입니까?”

“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지만 이 일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재정 경제원 쪽에 한번 알아보세요. 혹시 저에 대해서 뭔가 다른 조처를 하고 있는지.”

“…알겠습니다.”

* * *

조성돈 팀장 직급으로는 원래 재정 경제원 쪽 인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무려 최민혁 실장의 최측근인 터라 예외적이었다.

재정 경제원의 국제경제 심의관 김우석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았다.

김우석 심의관은 안색이 좋지가 않았다.

코스피가 갑자기 폭락해서였다.

아무런 신호도 없이 일어난 일로 그 주체는 미국 연기금이었다.

“아, 요즘은 정말 힘듭니다.”

“그렇습니까? 혹시 코스피 폭락 때문인가요?”

“네, 그 일 때문인 것도 있고요. 솔직히 말해서 최민혁 실장님 때문이죠. 최근 LC 전자, HY 전자 측과 MOU를 체결한 덕분에 코스피가 큰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딱 그 시점에서 상승세를 이어 가던 코스피가 폭락했습니다.”

실제로 LC 전자, HY 전자는 최민혁 실장과 손을 잡았다는 뉴스만으로 주가가 폭등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 와중에 코스피가 폭락했다는 점이다.

재정 경제원은 두 가지 일이 워낙에 특이한 것도 있지만,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어서 유심히 지켜본 것이었다.

조성돈 팀장은 그게 좀 이상했다.

“…우리 실장님에게 관심이 많으시군요.”

김우석 심의관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저야 별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이환채 차관님이 최민혁 실장님에게 된통 당하고 나서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민혁 실장님 관련 뉴스는 무조건 챙겨봅니다.”

“이환채 차관님이라면 그렇게 할 분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만.”

고압적이고, 꼰대 기질이 다분한 이환채 차관이 최민혁 실장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우석 심의관은 피식 웃고 말았다.

“방송 나가서 국가 부도가 난다고 예언하는 최민혁 실장님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조성돈 팀장은 김우석 심의관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재정 경제원이 최민혁 실장을 거의 감시 수준으로 지켜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정 경제원이 겉으로는 조용한 것 같아도 내심은 좀 달랐다.

“…우리 쪽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아,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혹시 이번 코스피 단기 폭락 말입니다. 미국 연기금이 한국 주식을 정리한 거 말인데, 그게 최민혁 실장님과 관련이 있다면 문제가 되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조성돈 팀장은 딱히 비밀이 아니라서 최근 조사한 내용을 말해 주었다.

“…설마 LC 전자, HY 전자와 MOU 체결한 것이 영향을 줘서 미국 연기금이 한국 주식을 정리해서 다우지수 쪽으로 돌렸다는 말입니까?!”

“…그렇죠. 그 일이 에플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생산성이 확보되니까요. 결국 에플 매출은 그만큼 늘어날 것이고, 그게 주가에 반영됩니다.”

참고로 최민혁 실장은 에플 대주주고, LC 전자, HY 전자, 오성 전자에게 하청을 주는 처지였다.

“…아.”

김우석 심의관은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국 코스피 수급에 영향을 줄 정도인지는 몰랐다.

정확히는 다우존스 주가 흐름이 운이 좋게 맞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이 여기에 이바지를 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 일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성돈 팀장은 그 점을 지적했다.

“저희도 일이 생기기 전에 말을 해야 하는데, 이걸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는 사전에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넵! 가, 감사합니다.”

김우석 심의관은 솔직하게 인사했다. 최민혁 실장은 재정 경제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것저것 엮여 있는 곳이 많아서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다른 한국 재벌가처럼 비자금을 운용하든지 하면 좋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일단 보고는 해야겠어.’

* * *

김우석 심의관은 다시 재정 경제원으로 복귀한 후에 이환채 차관에게 직접 보고했다. 주로 국내 코스피와 관련된 여러 가지 현황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동아시아 16개국 대다수는 주가가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이 코스피가 폭락한 것이었다.

거기에 다우존스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상승했고 말이다.

“…이게 모두 최민혁 실장이 LC 전자와 HY 전자 계약한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네. 의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 연기금이 알아서 판단한 일입니다. 확인해 보니, 미국 연기금 말고 다른 투자자도 다우존스 쪽으로 투자처를 옮긴 것 같습니다.”

“흠.”

이환채 차관은 순간 고민했다. 그는 이번 일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성 아파트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아직도 이 일로 말미암은 여진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성 전자 관련자 이야기로는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이보다 최민혁 실장의 최측근인 조성돈 팀장이 굳이 김우석 심의관을 찾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어차피 이전 일 때문에 최민혁 실장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말이다.

‘뭐 별일이 없으면, 그냥 인사 정도로 생각하면 되니까.’

결국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래 잡혀 있던 약속도 다 취소하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에게 전화해서 약속을 잡아 봐. 가능하면 빨리.”

“…네?”

“지금 다 들었잖아? 이번 코스피 폭락이 최민혁 실장하고 관련이 있다는 거. 왠지 이 일이 다가 아닐 것 같아.”

“…아, 알겠습니다.”

* * *

최민혁 실장은 딱히 큰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서 조성돈 팀장에게 재정 경제원 내부를 알아보라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문제가 터졌을 때 대비책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일테면 자신이 주식을 팔아서 천문학적인 차익을 얻을 때 나올 수 있는 반응 말이다.

그걸 파악하기 위해서 재정 경제원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했다.

그런데 재정 경제원 이환채 차관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KM 전자 본사를 찾아온 것이었다.

KM 전자 직원 중에는 이환채 차관을 알아본 이가 있었다.

재정 경제원 관련 뉴스가 나올 때 간혹 얼굴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신기했다.

재정 경제원 차관이 최민혁 실장을 직접 찾은 것이니까.

사실 정부 기관 고위 관료가 이렇게 기업가를 찾는 일은 흔치가 않았다.

구설수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환채 차관은 그래도 상관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루머가 워낙에 많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얼떨떨한 얼굴을 한 채 자기 사무실에서 이환채 차관을 만났다.

그는 비서에게 마실 것과 다과를 내오게 한 후에 힐끗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 역시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 조 팀장님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번 코스피 폭락 때문에 솔직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유독 우리나라 증시만 갑자기 폭락한 것 때문에 재정 경제원이 예민해져 있었고요.”

거기에 최민혁 실장이 언급한 국가 부도설도 관련이 있었다.

혹시라도 지금이 국가 부도 징후가 아닌가 호들갑을 떨었다.

최민혁 실장은 미국 연기금 일부가 과도하게 빠져나갔다면 외환 시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아, 네. 그렇군요.”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에플 주식을 그냥 막 던지면, 한국 코스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문제가 생기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태도가 중요했다. 잘 모르는 일이라고 명확하게 태도를 보여야 했다.

물론 지금 자신의 사정을 굳이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래도 재정 경제원 내부가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이환채 차관은 놀랍게도 최민혁 실장에게 사과부터 했다.

“지난 일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벌떡 일어나서 자신에게 허리를 숙이는 이환채 차관을 쳐다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환채 차관도 나름 걱정거리가 많았다. 그도 처음에는 최민혁 실장을 원망하고, 증오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의 조언을 기준으로 해서 검토에 검토를 해보자 많은 문제를 발견했고 말이다.

그런데 그 문제 중에는 당장 어떻게 할 대안이 없는 것도 있었다.

최민혁 실장은 이환채 차관의 피로에 절어 있는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저도 한국인인데, 재정 경제원 일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다만 그는 곧 다가올 IMF 사태를 떠올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만 기업가의 한 사람으로서 한계는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업가가 정부를 돕기에는 무리수가 따르니까요.”

“아닙니다. 최 실장님이 겸손하셔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최 실장님이라면 정부에게 따끔하게 조언을 하고도 넘칩니다.”

“과찬입니다.”

“정말입니다. 우리 재정 경제원은 이전과는 다릅니다. 다른 정부 기관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님의 진정한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아, 왜 이래, 부담스럽게.’

최민혁 실장은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재정 경제원 내부 사정과 후일 생길 수 있는 변화만 떠볼 생각이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알겠습니다. 뭐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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