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39화 (93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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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구 기자가 악을 써서 한 말 때문이었다.

[그러면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님이 KM 전자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대답이 없으면 그렇게 알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었다.

한국 기자의 집요함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특히 그 화두가 최민혁 실장이라서 더 극단적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더욱이 이번 일이 최민혁 실장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을 찾았다.

이곳에서 괜한 루머라도 돌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상하군. 이들이 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하필이면 미국으로 가려는 시점에서 말이야. 도통 알 수가 없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잠깐 고민했다. 그는 갑자기 몰려온 기자들 패거리 때문에 머리를 굴렸다. 도대체 정보 출처가 어디인가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그는 뒤늦게야 KM 전자 본사를 방문하면서 증인을 너무 많이 남긴 것을 깨달았다.

‘혹시 최민혁 실장 짓일까? 아니, 그건 알 수가 없어. 내가 너무 충격적인 소식에 생각 없이 움직였어. 최민혁 실장 탓으로 몰기는 그래.’

마땅한 증거가 없었다.

문제는 만약 이 일이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쓴 것이고, 그에게 다른 꼼수가 있을 경우다.

대충 넘겨서 될 일은 아니었다.

결국 괜한 말이 나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차 돌려, 기자회견장을 임시로 만들어서 교통정리 좀 하게.”

“…알겠습니다.”

* * *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미국 내의 헤지펀드 중에서 꽤 명성이 있는 인물이다.

다른 헤지펀드와는 달리 그나마 양반에 가까운 헤지펀드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었으니.

메이저 방송사까지 우르르 몰려와서 취재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 기자회견 내용은 딱히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 시장 개방과 아울러서 자신 역시 한국 주식에 관심이 많다는 정도였다.

물론 편법으로 주식을 사들인 부분에 대해서 기자들이 날카롭게 공격했다.

하지만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된통 당한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 기자회견은 당연히 뉴스 특종으로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흠.”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지시해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정확히는 기자회견이 아니라 KM 그룹 주가 말이다.

역시 KM 그룹 주가는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체로 10% 가까이 올랐다.

그중에 KM 산업은 가격 제한폭까지 올랐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KM 전자는 워낙에 주가가 많이 올라서 고작 8% 상승 선에서 그쳤고 말이다.

경제 뉴스를 보면, 온통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KM 그룹 투자’뿐이었다.

[며칠 전에 방한한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비밀리에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KM 그룹 투자와 관련된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협상은…….]

인터뷰 내용과는 좀 다른 가짜 뉴스였다.

언론사가 오버해서 막 나가는 중이었다.

한국 뉴스는 온통 KM 그룹과 타이거 펀드 이야기뿐이었다.

특히 최민혁 실장 이름 말이다.

최민혁은 혀를 차고 말았다.

“…별일이 아닌데, 정말 믿기지 않네요.”

“배종대 과장이 아무래도 이쪽 경제 쪽에는 식견이 있습니다. 그게 유효한 것 같습니다.”

“단순히 그렇게만 볼 수는 없죠. 당사자인 저조차 몰랐던 내용이고, 그 주체인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조차 생각하지 못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 좀 걱정이 됩니다. 이 정도 일만으로 이렇게 난리 아닙니까. 에플 주가는 파급 효과가 더 클 겁니다. 더욱이 복잡하게 얽힌 것도 많은데…….”

최민혁 실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절 나쁜 테러리스트로 보겠습니까? 착한 테러리스트로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도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할아버지. 오늘 저녁요? 일정에 원래 없던 것으로……. 알겠습니다.]

“회장님입니까?”

“저녁 식사 타임을 바꾸었다고 하네요.”

“…준비해 두겠습니다.”

“저녁에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죠. 기획 팀을 통해서 확인을 해보세요.”

“…네.”

조성돈 팀장은 힐끗 TV 뉴스를 다시 쳐다보았다.

KM 그룹 주가 전체가 오른 것 때문에 난리였다.

‘생각보다 파급 효과가 너무 커. 하긴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이제는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거기에 타이거 펀드까지 엮었으니.’

* * *

갑작스러운 KM 그룹 일가 가족 식사 시간이지만 의외로 빠진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들 식탁에 앉아서도 서로 눈치만 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최영란 본부장은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TV를 켰다.

[이번 KM 그룹 주가 폭등은 실로 이례적인 일입니다. 타이거 펀드가 KM 그룹에 관심을 둔 것만으로 이렇게 주가가 폭등한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이건 타이거 펀드가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증거입니다. 단순히 주식 매입을 넘어서 인수합병에까지 관심을 보인 거니까요.]

인수합병은 너무 나간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럴듯했다.

당장 DL 그룹의 한농 인수와 HY 전자의 제니스 인수 이야기가 나왔다.

[대주주 경영권 보호를 하던 증권거래법 200조도 얼마 있지 않아 폐지됩니다. 따라서 한국 대기업은 인수합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당장 성장을 거듭하는 KM 그룹은 꽤 매력적인 테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수합병.

KM 그룹 일가는 그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이거 펀드가 나오자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최민혁 실장이 그나마 느지막하게 식사 시간에 나타났다.

당연히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어머니 정미선이 눈치를 보다가 최민혁에게 귓속말로 질문했다.

[정말 타이거 펀드가 KM 그룹을 인수하는 거니?]

[…….]

최민혁은 어이가 없어서 어머니 정미선을 째려봤다.

정미선은 이제 최씨 일가에 잘 적응해서인지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모습은 딱 재벌가 며느리다워 보였다.

이유는 당연했다.

다들 정미선의 눈치를 보지, 정미선이 그들 눈치를 보지는 않았다.

정미선은 팔꿈치로 쿡쿡 아들 옆구리를 찍었다.

최민혁은 정미선의 행동보다 다른 가족들의 시선이 더 부담스러웠다.

특히 최문경 부회장.

그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것처럼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막 최용욱 회장이 안으로 들어서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최용욱 회장은 물론 식사 분위기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밥 먹자.]

* * *

정미선은 깨작깨작하면서도 힐끗 식사 분위기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하지만 다들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더 특이한 것은 여전히 TV가 켜져 있다는 점이다.

최용욱 회장이 평소라면 TV를 끄게 하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 역시 TV 뉴스에서 나오는 KM 그룹 주가 폭등 소식을 봤다.

그러곤 씩 웃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좋으세요?”

“…넌 싫으냐? 우리 KM 그룹 주가가 저렇게 일거에 오른 건 내 살아생전에 본 적이 없다.”

“타이거 펀드를 믿으시는 겁니까?”

“아니, 난 우리 KM 그룹을 믿는다.”

“…하.”

최문경 부회장은 어이가 없어서인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과거 최민혁 실장 때문에 KM 그룹 주가가 오른 적은 있었다.

다만 그룹 차원에서 골고루 오른 적은 없었다.

그건 곧 KM 그룹 자체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타이거 펀드가 욕심을 낼 정도로 말이다.

최용욱 회장은 따스한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민혁아.”

“네.”

“고생했다.”

“네?”

“KM 그룹에 신경을 써 준 것 말하는 거다.”

“무슨 말씀이신지.”

최민혁 실장은 정말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KM 그룹 일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려는 겁니까라는 불만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자잘한 것을 무시했다.

“솔직히 네 성정이 만만하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 너라면 KM 그룹에 도움을 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KM 센서란 계열사도 설립했고, 심지어 타이거 펀드를 이용해서 KM 그룹 주가를 끌어올렸다.”

사실 이 일은 최민혁이 최문경 부회장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 일이었다.

최용욱 회장의 말 대로 최문경 부회장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절대로 할 리가 없는 일이었다.

최문경 부회장도 그걸 느꼈는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건 다들 최씨 일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최용욱 회장의 절묘한 의도도.

“하지만 좋게 생각했으면 한다. 결국, KM 그룹 임직원들에게 너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않았느냐. 어차피 너도 사업을 하다 보면, 그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해. KM 센서가 그 증거니까.”

“글쎄요.”

최민혁 실장은 삶은 한약을 씹은 사람처럼 인상을 구기고 말았다.

그도 최용욱 회장이 한 말 때문에 왠지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최문경 부회장과의 대립 말이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선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이번 일도 경영권 승계에 좋은 점수가 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해두지만, 경영권 승계자는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라.”

침묵이 감돌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최훈열 전무 아내인 김여정은 힐끗 장남 최민수를 쳐다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평소 표정이 없던 최동영 상무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용욱 회장은 이런 중에 최민혁 실장에게 슬쩍 충고도 해주었다.

“타이거 펀드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을 무시하지 말거라. 아니, 이와 연동된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주시해. 자칫하다가는 당할 수도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최민혁 실장도 순순히 수긍했다. 그가 최용욱 회장에게 당한 것이 그 증거였다. 실로 교묘한 수법이었다.

‘하긴 할아버지를 무시할 수는 없지.’

* * *

최민혁 실장은 저녁 식사 시간 후에 바로 저택을 빠져나왔다.

차량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성돈 팀장은 기획 팀을 통해서 취합한 보고서를 들고 설명하려다가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안색을 봐서는 그렇게 안 보입니다.”

“휴, 뭐 있다면 있죠. 우리 할아버지가 잔머리를 굴렸다고 자백했으니까요.”

간단한 이야기.

조성돈 팀장은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 회장님이 나쁜 뜻으로 그렇게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KM 그룹은 작년 대비 두 배 이상 커졌습니다.”

“날 이용해서 말인가요?”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조성돈 팀장은 이번 주제와 관련해서는 최용욱 회장의 의견에 찬성했다.

최민혁 실장은 너무 냉정하고, 합리적이었다.

자신과 관련이 있는 쪽은 잘 봐도 나머지는 나 몰라라 하는 성격이니까.

이게 안 좋을 수도 있었다.

KM 그룹을 다 먹으려고 한다면 말이다.

그도 늘 시간이 날 때면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미 그 자신이 조언할 단계는 아득히 넘어섰다.

때마침 최용욱 회장이 그런 점을 지적했으니.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KM 센서 같은 계열사가 대표적입니다. 이 회사의 덩치는 이미 작년 KM 산업, KM 전자를 합친 것보다 더 커졌습니다. 이게 다 최민혁 실장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 계열사 자체가 지금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랬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는 했지만, KM 그룹으로서도, 최민혁 자신에게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아니, 최상의 결과였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성과였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도 최용욱 회장의 뜻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가 한 일이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뭐, 내 능력을 끌어올렸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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