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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21화 (92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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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재운 사장은 황당한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지금 판매하는 디지털 웨이 제품 가격이 대략 20만 원 남짓했다.

그 가격의 무려 25%를 달라는 거다.

다만 여기에 다른 속내도 있다.

프리미엄 제품군에 이 MP3 애니 솔루션을 적용하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다만 설사 그렇다고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들보고 죽어라 일만 하고, 이익을 상납하라는 뜻이다.

칼만 안 들었지, 이 정도면 사채업자도 울고 갈 고리업자였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툴툴거렸다.

“설마 공짜로 솔루션을 제공해 달라고 하지는 않겠죠? 이런 기술을 헐값에 자문해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말 그냥 제공해 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범재운 사장은 오히려 안도했다. 이래야 최민혁 실장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오성 전자에 있을 때 들은 바로 최민혁 실장은 그냥 돈에 미친 괴물 그 자체였다.

“하, 하지만 우리 디지털 웨이는 이제 막 시작한 벤처 기업으로…….”

“아, 벤처 기업의 어려움은 잘 압니다. 좋습니다. 대신에 몇 가지 혜택을 드릴 겁니다. 소니 뮤직과의 연동 서비스를 포함해서요.”

그도 가끔 소니 뮤직 측과 협업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라서 포기했던 일이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럼요. 소니 뮤직을 온라인으로 받게 되면, 아무래도 경쟁에서 우위에 서겠죠. 특히 일본 시장을 공략한다면 말이죠. 다만 그게 일정 기간만 해당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면 미끼로 충분하겠지.’

소니 뮤직에 이은, 디지털 웨이까지 선택한 이상 HY 전자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국내 시장은 KM 전자가 먹을 테니까.

일본은 에플이 먹고 말이다.

심지어 동남아 쪽은 국내 MP3 플레이어 업체가 이를 갈고 있었다.

후발 주자인 HY 전자가 끼어들 소지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일단 MP3 애니 산업을 이용해서 HY 전자를 압박하는 것이 시작이지. 애니 아파트보다는 더 심각한 위기를 조성할 테니까.’

그는 내심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기는 했지만, 타이밍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한국 대기업을 끌어들인 이상 이쪽에 시선을 묶어둘 필요가 있어. HY 전자라면 딱 알맞은 상대이니까. 최소한 스티븐의 기조연설과 CES 전시회가 별 탈 없이 끝나도록 말이야. 그게 곧 공매도 플랜을 흔들 테니까.’

* * *

범재운 사장은 역시 오성 전자의 연구원 출신답게 MP3 애니 솔루션을 쉽게 받아들였다.

아니, 그는 기존에 진행 중인 차세대 제품을 다 엎어버렸다.

다행이라면 수정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디지털 웨이의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소니 뮤직이 딴짓하지 않는 것도 말이다.

물론 소니 뮤직 담당자는 그렇게 썩 마음에 든 표정은 아니었다.

그들도 설마 최민혁 실장이 디지털 웨이와 같은 벤처 회사를 선정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게 또 현실적인 방법이기는 했다.

소니 뮤직 역시 아직은 메이저 음반 업체의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그들 역시 MP3 애니 솔루션 기술과 차세대 제품 개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일단 속도 조절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KM 전자 본사로 돌아오자 조성돈 팀장에게 다음 지시를 내렸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LC 전자 측에 우리 모바일 애니 솔루션을 한번 영업해 보세요. 직접 가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네요. 소니 뮤직에서 우리 쪽과 손을 잡기로 한 것도 말해주면 딱 좋죠.”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당장 다른 가전제품에 적용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더 큰 문제는 제약이 있어서 적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모바일 애니 솔루션은 아직 안정화가 끝난 제품이 아니었다.

오성 물산의 애니 아파트가 그 증거였다.

애니 아파트 준공이 끝날 때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기간을 다 안정화 기간으로 본 것이었다.

물론 아이팟에 적용된 기술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에플 자산이었다.

그 정보까지 공개할 수는 없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MP3 산업을 보면 이제는 알 텐데요? 혼자 다 먹으려고 하다가는 그 산업 자체가 커질 때까지 꽤 기다려야 합니다. 굳이 그럴 이유는 없어요.”

폭발적인 MP3 산업의 발전.

여기에 따른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KM 전자였다.

그건 실적에서 나타난다.

KM 전자의 순이익 규모가 그 증거였다.

“…하면 인공지능 산업도 기술 공개를 통해서 키울 생각입니까?”

“물론 핵심 기술은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솔루션 형태로 주고, 거기에 인터페이스를 활용해서 응용할 수 있는 컴퓨터 언어를 공개할 겁니다. 이건 이지수 박사가 이미 진행 중인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아, 이왕이면 우리 영란 누님에게 도움을 청해보세요. 어차피 영업은 그쪽에서 할 테니까. 늘 말하지만 우린 이익만 챙기면 됩니다. 굳이 불필요한 인력을 동원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마세요.”

“…네.”

조성돈 팀장도 이제는 최민혁 실장이 그린 큰 그림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이 일을 잔뜩 벌이는 것 같아도 정작 KM 전자의 인력은 별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부분이 관련 기업이니까. 인건비는 어차피 그쪽에서 다 챙기고, 우린 과실만 챙기면 되니.’

그러니 KM 전자의 현금 보유고는 기하급수적으로 쌓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지금도 말이다.

* * *

최영란 본부장은 조성돈 팀장에게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듣고 나서는 한동안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최민혁 실장에게 전화해서 묻거나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반도체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 영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AC9701은 꽤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

그녀는 즉시 LC 전자 기획실장인 한병수에게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다.

한병수는 물론 바쁘다고 미팅 일정을 뒤로 연기하자고 했다.

하지만 최영란 본부장은 꽤 집요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 LC 전자는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기술이니까. 이왕이면 실무진도 불러 같이 미팅하고 싶어요.]

“글쎄요.”

그가 부정적으로 대답한 것은 LC 전자 역시 바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LC 전자는 차세대 워크맨 형태의 제품도 개발 중이었다.

기존 카세트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를 결합한 이 제품은 세계 최초의 제품이었다.

그런데 최영란 본부장은 놀랍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아요. LC 전자 나름 새로운 MP3 플레이어를 개발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우리 KM 그룹의 KM 전자는 세계 최초로 MP3를 개발했습니다. 그 점을 잊지 말아주세요.”

“무슨 말씀이신지?”

카세트와 MP3 플레이어를 통합한 이 제품에는 소형 IPS-LCD까지 포함된 제품으로 기존 MP3 플레이어보다 나은 점이 있었다.

심지어 FM 라디오 수신 기능까지 포함했다.

LC 전자 역시 나름 KM 전자 타도를 외치면서 절치부심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최영란 본부장이 보기에는 MP3 애니 타입과는 격 차이가 있었다.

“우리 회사 차기 모델 기술을 보면, 정말 깜짝 놀랄 겁니다. 그러니 최소한 그게 무엇인지는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이 맞지 않겠어요?”

“그거야…….”

“우리 최민혁 실장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사업가죠. MP3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어요. 그런 분이 칼을 갈았는데, 그게 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알겠습니다.]

한병수 실장도 집요한 최영란 본부장의 요구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 * *

한병수 실장은 안 그래도 HY 전자의 박용혁 전무와의 미팅 때문에 고민 중이었다. 그는 박용혁 전무가 만나자고 한 이유가 최민혁 실장 때문이라는 것을 사전에 들었다.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난감한 일이라서 지금까지 시간을 끌었다.

중간에 미국 출장도 갔다 오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의 동선도 살폈다. 역시 최민혁 실장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달랐다. 갑자기 일본을 방문했다는 소리도 들었고.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과 박용혁 전무 상황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가 아는 박용혁 전무 성질대로라면 어지간한 기업이면 그냥 밟아버릴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헛짓하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조용히 거래만 했다.

‘아무래도 HY 그룹 차원에서 뭔가 있나 보지.’

한병수 실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어떤 인간인지 다른 대기업들보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직접 부딪치면서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오성 전자를 통해서 정보를 취합하기도 했다.

만약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최민혁 실장은 최괴물이었다.

‘과장이 있겠지만.’

하지만 그는 LCD 산업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특히 IPS LCD 기술 말이다.

핵심 기술은 죄다 최민혁 실장이 들고 있었다.

덕분에 IPS LCD 한 대를 판매할 때마다 특허료를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바로 MP3 플레이어.

요즘 MP3 플레이어 산업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MP3 플레이어 관련 특허풀을 저렴한 가격에 다 오픈한 덕분에 MP3 산업 생태계가 폭발 중이었다.

한병수 실장이 MP3 플레이어 시장에 기웃거릴 때는 이미 한참 늦은 후였다.

CES 전시회가 열리기도 전에 관심을 받는 에플은 그렇다고 하자.

국내 중견 기업의 MP3 플레이어 매출세도 심상치 않았다.

아니, 국내 시장까지도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심지어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모든 사태에 알게 모르게 기여한 이가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었다.

한병수 실장은 IPS LCD 때문에 최민혁 실장과 엮인 터라 최민혁 실장의 행보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탓에 그는 솔직히 최영란 본부장 연락을 받았을 때 화들짝 놀라서 거리를 뒀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일까? 더욱이 우리 회사가 차세대 MP3 플레이어 제품을 개발한다는 정보는 어떻게 안 것일까? 역시 MP3 특허풀 때문일까?’

MP3 특허풀 계약을 할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할 조건이 있다.

MP3 특허풀을 사용한 제품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KM 전자에 보고해야 했다.

그 정보를 토대로 분석한다면 LC 전자에서 진행하는 일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한병수 실장은 가능하면 이런 정보가 KM 전자에 늦게 흘러갔으면 했는데, 그의 이런 기대와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었다.

‘HY 전자도 골치인데. 그간 애니 아파트 때문에 말이 많은 HY 건설과 엮여서 말이 많다고 하니까. 설마 그 일 때문일까? 하긴 오성 전자의 애니 가전제품이 문제기는 하지.’

한병수 실장도 그제야 긴장했다. 생각해 보면 애니 아파트는 그 자체도 문제지만 정작 그게 불러올 파급 효과가 더 심각한 문제였다.

LC 전자로서는 오성 전자도 문제지만 HY 전자도 마찬가지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들 하는 짓이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혹시 최민혁 실장에게 큰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곰곰이 최근 행적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일단 만나봐야겠지.’

* * *

갑작스러운 기획 팀의 요청에 우르르 몰려온 연구원들은 다들 의아한 얼굴이었다.

한병수 실장은 물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회의실에 수석 부장급 직위의 인물들이 가득할 때에 최영란 본부장이 LC 전자의 기획 팀의 안배를 받은 채 나타났다.

그녀 역시 보좌관을 비롯한 몇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아, 생각보다 많이 모이셨네요.”

한병수 실장은 재벌 3세답지 않게 소탈한 인물이었다.

“최영란 본부장님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죠.”

최영란 본부장은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그녀는 그저 영업한다는 자세로 이 자리에 나타났다. 사실 최민혁 실장의 요구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 자리에 나설 이유는 없었다.

“그러면 고맙죠.”

“천만에요. 전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MP3 산업과 관련된 이야기라서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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