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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08화 (90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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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 그룹의 부채가 얼마나 천문학적인지 잘 아는 최민혁 실장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대운 그룹은 물론 그냥 비메모리 쪽을 파지는 않았다.

반도체 제품 사이클이 짧아서 재투자가 필요해서 가전 쪽에 투자한 방침을 바꾼 것이었다.

[하지만 수익성이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 쪽은 상황이 다르다. 애니 아파트가 뜰 수 있는 것도 이런 기술 때문이다!]

대운 전자, 대운 건설의 시너지가 합쳐진 롤 모델이 애니 하우스라고 봤다.

덕분에 오성 전자 역시 앗 뜨거워 하는 심정으로 반도체 설비 사업에 무려 3조 원을 퍼붓기로 했다.

“…….”

최민혁 실장은 조성돈 팀장이 정리해 온 국내 대기업 현황을 살피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가 한 일이 나비 효과 정도가 아니라 고래 효과로 작동한 것 같았다.

다만 그런 최민혁 실장이 의아한 사람도 있었다.

“…최민혁 실장님?”

크리스 세이건 이사였다. 그는 검은 정장을 한 채 친근한 미소로 최민혁 실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최민혁 실장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뒤를 따르는 경호원은 뒤쪽으로 물러나서 자리를 잡았다.

김명준 과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진 것은 덤이다.

최민혁 실장은 마치 첩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들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록히드마틴의 경영진을 이렇게 뵙게 되다니, 그저 믿기지 않습니다.”

“하하하, 별것 아닙니다. 저희가 방산업이라는 특이한 사업을 할 뿐이지, 다른 기업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바로 최민혁 실장에게 말해서 주문을 받은 후에 흔한 샐러리맨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민혁이 상상한 무기 밀매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하긴 그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니까.’

시작은 서로에 대한 간단한 안부와 인사 정도였다.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뜻밖에도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KM 전자를 어떻게 키웠는지도 알았다.

심지어 구조조정 과정에 대해서도 말이다.

“오성 전자에게 사업부 매각을 통해서 자금을 확보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그 자금을 투자해서 자산을 증식한 것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벨린 투자를 키워서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최민혁 실장 자신을 계속 떠받드는 모습만 봐서는 마치 최민혁 실장 팬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인생 2회 차를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크리스 세이건 이사의 사탕발림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록히드마틴은 요즘 상황이 좋지 않아 보이더군요. 사드 실패에 대해서 말들이 많고요. 미국 의회에서도 사드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서 예산을 대폭 축소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하하하,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미사일 방어 체계는 반드시 미국 안보를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심지어 한국 역시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록히드마틴이 내년까지 사드 배치를 약속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앞으로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더욱 탄력이 붙을 겁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사드는 한국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방어 시스템입니다!”

최민혁은 상대가 의외로 사드를 강하게 밀어붙이자 피식 웃었다.

그는 크리스 세이건 이사가 자신의 애국심을 자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다른 이들과는 달리 자신을 협박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저는 어쭙잖은 애국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이야기라면 그만 끝내죠. 그리고 이건 충고입니다. 아마 이번 사드 실험에서 요격탄두 분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실패할 겁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아서 잘 확인을 해 보세요.”

“자, 잠깐만요!”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최민혁 실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다급하게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김명준 과장이 막아 섰다.

최민혁 실장은 마치 그런 모습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그냥 약속 장소를 나가고 말았다.

‘애가 좀 탈 거야.’

* * *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최민혁 실장의 경고가 황당하기만 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드 시스템 엔지니어에게 넌지시 경고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도대체 누가 우리 요격탄두 시스템에 대해 뭘 얼마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사드 담당 엔지니어는 발끈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크리스 세이건 이사라고 해서 사드 기술진에게 더 과한 것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충고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로 사드의 요격탄두-분리 시스템의 오류로 목표물 타격에 실패한 것이었다.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설마 이번에도 사드가 실패할 것을 염려해서 보험 성격으로 최민혁 실장에게 자문했다.

그런데 그의 염려가 맞아들어간 것이었다.

그로서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사드 엔지니어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뒤늦게 크리스 세이건 이사를 찾아서 이 사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자신들도 모르는 이 정보를 누가 사전에 알렸는지 꼭 알아야 했다.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물론 실무진에게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일단 다시 어렵게 최민혁 실장과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다시 만난 최민혁 실장은 이전과는 표정과 분위기가 달랐다.

“…혹시 최문경 부회장님이라고 아십니까?”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안 그래도 사드 실패 원인 때문에 정신이 나간 터라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네? 자, 잘 모르는 이름입니다.”

‘역시 아는구나.’

최민혁 실장은 내심 깜짝 놀랐다. 록히드마틴의 크리스 세이건 이사가 최문경 부회장의 이름을 알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사업상 알 수는 있다.

다만 KM 산업과 록히드마틴은 서로 얽힌 관계가 아니었다.

‘결국 한패거리란 소리인데, 그렇다면 최문경 부회장, 샐로먼 브러더스, 밀리아머, 록히드마틴이 다 같이 얽혀 있다는 소리인가?’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추론하고서도 어이가 없었다. 그는 전생의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이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순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하, 이거야 원. 아마 이해관계로 얽힌 것 같기는 한데, 그 내막을 알려면 더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다만 전생에서 왜 밀리아머가 얽힌 건지는 알 것 같았다.

‘역시 연결 고리인 이지수 박사 때문일까? 하긴 이자가 내 앞에 나타난 것도 전생과는 다른 이지수 박사 행보 때문이겠지.’

최민혁 실장은 순간 골치가 아팠다. 그가 생각한 것보다 스케일이 너무 컸다. 새삼 이제까지 자신이 한 처신을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가 주식으로 번 자금에 집착해서 스스로 나댔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뒤통수를 맞았을 수도 있다고 봤다.

아니, 그는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이제 정상이 막바지인 만큼 여기서 더 조심해야 했다.

“혹시 사드 때문에 메이런 프로젝트, 아니, 애니에 관심을 둔 겁니까?”

“…흠.”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최민혁 실장에 관한 사전 조사를 통해서 풋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더 큰 문제는 최민혁 실장이 사드 시스템의 문제점을 잘 안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떻게 안 것일까? 내부 첩자? 아니야, 담당 엔지니어도 모르는 사실이었어.’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그는 자신이 던진 화두에 크리스 세이건 이사가 완전히 집착한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서로 솔직해지죠. 저는 애니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는 기업가입니다.”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순간 망설였다. 그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최민혁 실장이 애니 기술 단가를 천문학적으로 부를 것 같았다.

“솔직히 애니 기술이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록히드마틴에서 고안한 플랫폼과 애니를 비교해서…….”

“혹시 애니 사업부만을 인수하고 싶은 겁니까?”

“…그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여러 가지 기술 보안적인 문제도 있고…….”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최근 한국의 애니 모델 하우스 소식 정도는 확인했을 겁니다. 그 가치만 봐도 제가 메이런 사업부를 매각하겠습니까? 아니, 실시간 메신저에도 애니가 포함된다는 것을 알 텐데요?”

“하아, 물론 이해합니다. 따라서 거기에 맞는 보상을 이미…….”

“그거 아세요? AOL에서 메신저 사업부 인수에 10억 달러를 제안한 것을요? 황금알을 낳는 애니 사업부를 록히드마틴에 매각할 리가 있겠습니까?”

“…….”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실 KMBOOK을 통째로 인수하는 게 바람직했다. 아니면 메이런 사업부만을 인수해도 좋고 말이다.

다만 내부적으로 이게 어렵다는 것은 익히 예상한 일이었다.

결국 다른 대안을 떠올렸다.

최민혁 실장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 사드 실험도 이번에 또 실패했죠? 쉽게 가죠. 제가 반대 제안을 하겠습니다. 네, 제가 록히드마틴 지분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20%, 최대 30% 지분이 필요합니다.”

실상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당장 미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문제였다.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자금이 있냐고 묻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들고 있는 현금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알기 때문이다.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압니다. 하지만 록히드마틴이 알아서 중재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저도 미국인입니다.”

“…네.”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안다. 황당한 일이지만 최민혁 실장은 벌써 미국 시민권자였다.

그는 굳이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묻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사전에 손을 썼을 것이 분명했다. 바로 이런 일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물론 당근도 제시했다.

“이번에 실패했죠? 그 사드 개발 제가 도와드리죠. 아마 제 도움이 없다면, 록히드마틴이라고 해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미국 의회가 너무 부정적이라서 실패를 거듭하면 사드 개발을 접으려고 할 테니까.”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성급한 판단입니다.”

“두고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다만 제가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해둘 수 있는 건 제가 참여한다면 목표한 사드보다 한 단계 끌어올린 새로운 사드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건 미국이나 한국 안보보다 오히려 수출 아이템으로 꽤 매력적인 상품이 될 겁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장담하죠.”

“…….”

크리스 세이건 이사는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가 안 됐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걸어오면서 보여준 실적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한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사드를 모르고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내부적인 검토를 거쳐서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좋은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최민혁은 겉으로는 씩 웃었다. 다만 그의 속내마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일은 결국 최문경 부회장의 배후를 파고 들어가는 일이었다.

‘전생에서도 몰랐던 일이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자신은 최훈열 전무에게도 휘둘린 상황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이지수 박사라는 연결 고리 때문에 테일러 박사도 알았다.

테일러 박사는 당시 최민혁 실장으로서는 천외천의 존재였다.

그런 테일러 박사의 윗선인 록히드마틴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은 대상이었다.

다만 그는 록히드마틴을 유심히 살피면서도 국내 사정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에게 작업하려면, 그 주변의 문제가 될 만한 대기업에도 사전에 손을 써 둬야 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최문경 부회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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