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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07화 (90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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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오성 물산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언론사에서 이 사건을 가지고 오성 그룹과 HY 그룹 간의 싸움을 부추긴 것이었다.

오성 물산이 그룹 간의 전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안 그래도 오성 전자와 LC 전자 간의 LCD 갈등 때문에 말이 많은 시점.

이제는 오성 그룹과 HY 그룹의 자존심 대립으로 격화된 것이었다.

문제는 이 두 그룹이 한국 재계의 양대 산맥이란 점이다.

지금까지는 둘 다 서로 의식하면서도 정면 대결을 지양했다.

HY 그룹이 오성 그룹보다 매출 규모를 4조 원 더 높이 잡은 76조로 책정한 것이 그 증거였다.

오성 그룹 역시 그냥 손가락만 빨고 있진 않았다. 특히 자동차 사업에 대한 승부수를 던졌다. KM 전자가 이런 시기에 인공지능 가전용 제품을 오성 물산과 손을 잡고 선보인 것이었다.

HY 그룹은 당연히 KM 전자를 괴롭혔다. 그들은 심지어 HY 건설 사장과 담당 임원을 포함한 수십 명을 직접 KM 전자 기획실로 보냈다.

박상기 차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이들을 접대해야 했다.

“무슨 말씀을 하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HY 건설의 김광현 사장은 박상기 차장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매년 신축 주택이 늘어나도 집 없는 사람은 아직 많습니다. 주택 보급률이 여전히 기대한 것에 미달하기 때문입니다.”

“네?”

박상기 차장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에도 우성 건설 이후에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미분양이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오성 물산의 애니 모델 하우스는 달랐습니다. 경쟁률이 살인적이더군요.”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아파트 붐을 일으켰다.

다만 이게 KM 전자에게는 막상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애니 아파트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다.

실제로 아파트 건설 이후에 납품까지 시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성 물산 역시 그런 점을 잘 안다.

그런데 다른 기업에 애니 솔루션을 공급하는 건 이야기가 좀 달랐다. 더욱이 아직 제품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다른 대기업 납품은 선뜻 지금 정할 수는 없었다.

“아, 네.”

“우리는 애니 모델 하우스에서 미래 아파트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저만의 의견이 아닙니다. 지난번 HY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결정한 일입니다.”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문제죠.’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HY 그룹의 박 회장님이 이번 일에 직접 관여하는 겁니까?”

“네.”

김광현 사장은 김춘림 비서실장이 내민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았다.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 인사에서 잘릴 수도 있었다.

그는 월급쟁이 사장으로 HY 건설에 대해 아무런 힘이 없었다.

뭔가 말을 하려면 오로지 실적이 있어야 했다.

HY 건설 매출 규모를 고려하면 김광현 사장은 적어도 KM 전자 사장은 만나야 격이 맞았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박상기 차장이 최민혁 실장의 최측근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최근 취임한 문형섭 사장이 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민혁 실장이 일방적으로 박아 넣은 사람이니까.’

HY 그룹은 나름 최민혁 실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을 어수룩하게 보지 않았다.

박상기 차장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는 김광현 사장이 계속 자신을 설득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었다.

HY 건설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KM 전자가 잘나간다고 해도 HY 건설 사장을 가볍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건 KM 전자의 기획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HY 건설의 기획사 직원과 같이 사전 협상에 임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오성 물산의 인공지능 아파트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제가 직접 모델 하우스에서 본 애니 수준은 완벽했습니다. 딱 그 정도면 됩니다.”

“아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군요. 그쪽에서 원하는 가격만 말하세요. 바로 계약을 할 테니까.”

박상기 차장은 내심 피식 웃고 말았다. 그도 생각 같아서는 대당 납품 가격을 10억씩 부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애니 아파트 솔루션은 하나의 부품이 아니라 종합적인 솔루션 형태였다.

KM 전자, KM 센서, 오성 전자, KMBOOK이 합쳐져야 가능한 기술이란 말이다.

‘여기에 오성 전자의 라이센스도 있어.’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은 최민혁 실장에게 배운 그대로 했다. 그는 이번 개발에 참여한 엔지니어를 괴롭혀서 수백 가지의 특허를 미리 만들었다.

이 특허는 KM 전자, KMBOOK과는 관계가 없는 오성 전자만의 것이었다.

박상기 차장은 이런 점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막무가내였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박상기 차장은 결국 최소한의 보안 문제와 비켜난 이야기를 해줬다. 주로 오성 전자와 같이 협업하면서 공개한 정보였다.

“만약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계약이 바로 파투날 수 있는 느슨한 방식입니다.”

“…그건 뜻밖이군요.”

HY 건설이 당연히 이런 방식으로 협상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명확한 납품 일정과 현실적인 납부 단가를 요구했다.

그런데 박상기 차장이 이런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물론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상의까지 벗어 던진 채 소파에 앉아서 농성 시위를 벌였다.

“이대로 물러갈 수는 없습니다.”

“…….”

박상기 차장은 결국 몇 번에 걸쳐서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다행히 애니 솔루션 기술의 가치가 높은 만큼 선뜻 협상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 김광현 사장은 결국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다시 제가 찾을 때는 지금처럼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네.”

* * *

“와아, 진짜 이거 어이없네요.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됩니다.”

KM 전자 기획실에 참석한 배종대 과장의 탄식이었다.

그런데 기획실 직원 중에 배종대 과장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애니 아파트 시스템 개요도였다.

이 개요도 안에는 애니 아파트 솔루션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자세하게 나왔다.

오성 전자의 각 전자 제품 솔루션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같이 말이다.

마치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에게 자기 기술을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KMBOOK 엔지니어도 오성 전자의 제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야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KM 전자 기획실은 바로 이 오성 전자, KMBOOK, KM 센서에서 올라온 모든 자료를 취합하는 중이고 말이다.

KM 전자 기획 팀이 이 개요도를 다시 검토하는 것은 양산 일정을 줄일 대안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보고서야 그게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성근 대리조차 두 손을 들었다.

“이건 안 되겠습니다. 단순히 오성 전자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인터페이스 자체에 들어간 ARN 기술만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박상기 차장 역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 팀이 모두 머리를 합쳐서 애니 아파트 내부를 들춰보고서야 이 일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종대 과장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조창호 차장님 이야기로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하더군요. 내부 칩 설계를 한 본인조차 너무 복잡해서 자세한 것을 모른다고. 이 솔루션을 유일하게 잘 아는 사람은 이지수 박사 한 사람뿐이라고.”

“이지수 박사라…….”

KM 전자 기획 팀은 다들 탄식하고 말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지수 박사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잘 알았다.

아니, 그들은 최민혁 실장보다 이지수 박사의 능력에 대해서 더 잘 알았다.

지금 자신이 보는 자료뿐만 아니라 세부 자료도 전부 이지수 박사가 다 담당했다.

그게 인간의 머리로 가능한지가 의문이었다.

정성근 대리는 어지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 일은 좀 달랐다.

“이지수 박사님이 한두 명만 더 있어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좀 어려울 겁니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 자체는 계획에 없었습니다. 무리수를 던져서 나온 일입니다.”

“…그렇겠지.”

배종대 과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건 안 되는 일입니다. 박 차장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이번 일을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하지만 무리입니다.”

“…그래.”

“이보다는 이제 인정해야 합니다. 최민혁 실장님의 능력을 말입니다. 이지수 박사를 스카우트해서 한 일은 기존의 다른 업적을 능가합니다.”

“그렇지.”

박상기 차장만 최민혁 실장이 과거에 한 실적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기획 팀 역시 다들 역시 ‘최민혁 실장님’이라고 하며 추앙했다.

그들도 막상 최민혁 실장의 성과를 들여다보고서야 그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했다.

박상기 차장은 착잡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는 혹시나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역시 다른 대안은 없었다.

그는 결국 기획 팀 내부적으로 협의한 내용을 정리해서 조성돈 팀장에게 SOS를 요청했다.

[HY 건설 쪽에서 계속 애니 아파트와 관련해서 업무 요청을 제안했습니다. 이번 일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계약이 제법 큽니다. 문제는 내부적으로 검토해 봤는데, 대안이 없습니다.]

* * *

최민혁 실장도 박상기 차장의 보고를 듣고 나서는 무리하지 않았다. KM 전자 기획 팀의 능력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력 배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

KMBOOK의 애니 응용 인력은 따로 담당이 다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HY 건설의 요구처럼 들어줄 수가 없었다.

신규 인원은 물론 뽑기는 했다.

그런데 그 인원이 바로 이 일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부 첩자 문제도 있지만.

이지수 박사가 스티븐의 기조연설 준비 때문에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니, 그녀가 시간이 난다고 해도 문제였다.

아직 이런 비즈니스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오성 전자의 미래 아파트는 오성 전자 팀에서 먼저 나서서 진행한 일이었다.

자금, 전문 인력도 전부 오성 전자 측에서 알아서 한 것이었다.

HY 건설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리고 HY 건설 쪽은 최민혁 실장의 비즈니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HY 건설은 이런 최민혁 실장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골 때리네.’

최민혁 실장의 이 시대 한국 대기업이 어떤지 잘 알았다.

오성 그룹은 그나마 말이 통한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에게 계속 당하면서 몸을 사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HY 그룹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은 권태성 기획실장이 최민혁 실장에게 어떻게 당해 왔는지 정보로는 알지만, 그 위험성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재정 경제원 사태도 있고 해서 최민혁 실장을 얕잡아 보지 않을 뿐이었다.

결국 최민혁 실장은 더 깊은 잠수를 선택했다. 그는 스티븐의 기조연설이 끝나기 전까지 그냥 숨기로 마음먹었다.

[검토 중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아, 혹시 모르니, 오성 전자와 어떤 식으로 협업했는지 정보를 흘려보세요. 걔들도 바보가 아닌데, 어느 정도는 알 겁니다. 생각 같아서는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싶지만 지금 여건이 그러지 못해요.]

[…네.]

다만 그도 한 가지 연락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록히드마틴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고요? 책임자 중에 한 사람이 만나자고요? 인수합병과 관련된 제안이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록히드마틴의 의도를 알 필요가 있었다.

[알겠다고 전해주세요.]

* * *

최민혁 실장이 HY 그룹 제안을 무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정보까지 모른 척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잠수를 탄 시점에서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폈다.

그 과정에 눈에 뜨인 것은 HY 그룹만이 아니었다.

대운 그룹 역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이 KM 센서, 오성 전자, KMBOOK의 합작에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비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대폭 늘리다니. 제대로 미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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