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03화 (903/1,021)

#

최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자기 제안을 들어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은 없었다.

아니, 차라리 중도가 나았다.

‘휴전은 IP 시티폰 정리가 끝난 후지. 그런데 과연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 그 일이 끝난 후에 나랑 휴전하자고 할까? 아니, 샐로먼 브러더스가 생존하기는 할까?’

좀 힘들어 보였다.

그는 순간 자신이 이 자리에 온 이유 한 가지를 떠올렸다.

“참 록히드마틴에 대해서 아십니까? 사드가 요즘 계속 실패 중이라고 하던데, 그것과 관련해서 혹시 아는 정보가 있습니까?”

“네?”

‘쳇, 모르네.’

최민혁 실장은 화들짝 놀란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아닙니다. 연락 주세요.”

* *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한국지사에 복귀한 후에 최민혁 실장과 한 협상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급한 일을 끝을 끝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데릭 모건 이사라도 이전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 제안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그건 힘듭니다.”

“네? 최민혁 실장과 잠깐 휴전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는 말입니까?”

“아뇨. 그 이야기가 아니라 최문경 부회장을 정리하는 일 말입니다. 그건 안 됩니다.”

“아니, 그게 왜…….”

“이유는 지금 말해줄 수 없습니다. 다만 안 된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단호한 데릭 모건 이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더 황당한 것은 내막도 말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어이가 없었다.

반박한 것은 안 그래도 최문경 부회장 정리를 이제 끝냈다고 확신한 제임스 러너 이사였다.

“데릭 이사님도 지금 상황을 잘 알지 않습니까? 최문경 부회장이 한 짓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본사에서도 최문경 부회장을 잠정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굳은 얼굴을 한 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이 안건만큼은 두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에게 압력을 넣는 것까지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를 완전히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만 알아주세요.”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한 걸음 슬쩍 물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제임스 러너 이사는 맹렬하게 반대했다.

그는 격한 어조로 최문경 부회장을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굳이 최민혁 실장과의 대립 때문이 아닙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반골입니다. 그자는 반드시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겁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정 불안하면 최문경 부회장에게 사람을 배당해서 따로 감시하세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이해하지 마세요. 이건 제 권한을 넘어선 일이기도 합니다.”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맹렬하게 반발하는 제임스 러너 이사의 표정을 살폈다.

데릭 모건 이사의 표정이 점점 험악하게 변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제임스 러너 이사에게 한 소리 들을 군번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제임스 러너 이사는 스스로 자폭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제임스 러너 이사는 딱 선을 코앞에 넘겨두고는 뒤로 물러서 버렸다.

“데릭 이사님, 이 일은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겁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혀를 차면서 데릭 모건 이사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는 상대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기다려 왔으니, 대안을 내놓으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순간 갈등했다. 여기서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궁금했다.

최민혁 실장의 숨겨둔 카드가 뭔지 말이다.

데릭 모건 이사는 결국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보면서 질문했다.

“데니스 이사님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까?”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만약을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을 고민해 봤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렵게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민혁 실장이 투자한 회사 대부분은 성장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인력 충원 말이군.”

“마침 우리도 이제까지 인재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습니다.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 KMBOOK에 합류한 이들 중에도 적당한 대상이 있을 겁니다. 그건 데릭 모건 이사님이 더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저도 과거 최민혁 실장을 얕잡아보고 무리수를 많이 던졌습니다. 결국, 번번이 다 깨졌습니다.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서둘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마주한 후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들은 확실히 최민혁 실장의 수법에 말려서 무리수를 뒀다.

그런데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의견을 듣고서야 왜 자신이 그런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 자체가 최민혁 실장의 수법이었나?’

자기도 모르게 말려들어 간 것.

실로 교묘한 수법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최민혁 실장이 모략을 꾸민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두 사람은 머리로는 계획했는데, 가슴은 반드시 계획이 실패할 것이라 확신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내부에 사람을 투입하는 것으로 가죠.”

다만 이전과는 방법과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아예 전담 팀을 꾸려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니, 거의 첩보 수준이었다.

* * *

데릭 모건 이사, 제임스 러너 이사, 데니스 샐로먼 이사 세 사람은 이전과는 달리 힘을 합쳤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 타도를 위해서 당분간 서로에 대한 감정을 잊기로 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타깃으로 선정한 회사는 KM 전자가 아니었다. KM 전자 내에는 한국인이 태반이라서 첩자를 밀어넣기가 곤란했다.

결국 차선을 선택한 회사는 요즘 들어서 뜨거운 주목을 받는 KMBOOK이었다.

최근 KMBOOK 방산업 라이센스 허가를 받아서 인재 충원에 정신이 없었다.

아니, 단순히 방산업만이 아니었다.

KMBOOK 자체에서 진행하는 메신저 서비스 역시 급성장 중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 메신저 서비스 때문에 더 큰 주목을 받았다.

AOL과 협업을 통해서 베타 버전만으로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AOL은 KMBOOK에 이 메신저 사업에 대한 탐욕을 감추지 않았다.

무려 10억 달러 매각 제안까지 했다.

하지만 이지수 박사는 단호하게 AOL의 제안을 거절해버렸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 의견이었다.

그는 이지수 박사에게 이 연락을 받고 나서는 잠깐 웃었다.

[제 살아생전에 KMBOOK을 매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답변.

이지수 박사는 협상을 나온 AOL 임원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았다.

그녀도 이 일을 하고 나서는 쾌감마저 느꼈다.

헬렌이 혀를 내둘렀다.

[어디 아파?]

이지수 박사는 당연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테일러 박사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정작 AOL을 통해서 풀었기 때문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미국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다.

KMBOOK과 AOL, 두 회사의 체급을 비교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덕분에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KMBOOK이었다.

갑작스러운 KMBOOK의 인기에 당황한 데릭 모건 이사,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샐로먼 브러더스가 지원하는 인재풀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제 막 박사 학위를 따고, 진학한 이가 좋았다.

대다수 인재는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에 지원했다.

다만 만약을 위해서 다른 회사에 지원한 이들도 있었다.

일테면 방산업체 말이다.

애국심 때문이다.

‘카일리 로엔이라…….’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적임자가 없다면, 차라리 새로운 인물을 KMBOOK에 투입하려고 했다. 다만 그도 카일리 로엔의 프로필을 보자 마음을 바꾸었다.

당장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진 빚만 무려 300만 달러를 넘었다.

단순히 학자금 때문이 아니었다.

여동생이 희귀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카일리 로엔은 벼랑 끝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어서 샐로먼 브러더스에 지원하기는 했지만, 차선책도 찾았다.

KMBOOK에 입사할 수 있다면 급료가 괜찮아서 쉽게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방산업에 종사한다는 자신의 꿈도 이루고 말이다.

그는 운 좋게 KMBOOK에 합격했다.

두 회사 다 합격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여러 업체가 더 있었지만, 그가 노린 타깃은 두 회사였다.

아니, 정확히는 KMBOOK이었다.

그는 KMBOOK 합격에 열광했다. 이제 힘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KMBOOK에서는 성과만 보이면 얼마든지 천문학적인 인센티브는 받을 수 있었다.

단 한 건이다.

자신의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단 하나의 성과만 달성하면 이 개미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더욱이 자신이 좋아하는 방산업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늘이 도왔어. 설마 KMBOOK이 방산업체 라이센스를 얻다니.’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경호원을 대동한 검은 정장을 입은 두 사람이 자신을 막은 것이었다.

“전 샐로먼 브러더스의 데니스 샐로먼 이사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데릭 모건 이사님입니다.”

“네? 네. 네?!”

카일리 로엔 박사는 화들짝 놀랐다. 그는 경호원보다 데릭 모건 이사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샐로먼 브러더스를 움직이는 실세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이 바로 데릭 모건 이사였다.

데릭 모건 이사는 샐로먼 브러더스 내의 다른 이사와는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피식 웃었다.

“…우리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죠?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거절할 수 있나요?”

“판단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죠.”

카일리 로엔 박사는 샐로먼 브러더스에 차압된 자신의 미래를 떠올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말이다.

다만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에서 일방적인 지원을 받을 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하, 알았습니다.”

* * *

“…….”

카일리 로엔 박사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한 말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사람이 왜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났나 싶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KMBOOK 때문이었다.

“…저보고 KMBOOK의 내부 기술을 빼돌리는 첩자 노릇을 하란 말입니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피식 웃었다. 그는 그렇게 극단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KMBOOK 내부 사정 중에 중요한 정보를 넘겨주면 됩니다. 일테면 인공지능 애니 개발 진행 상황 같은 거 말이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데릭 모건 이사가 보다 못해서 슬쩍 끼어들었다.

“그쪽은 아직 KMBOOK에 정식으로 입사한 상황이 아니라서 모를 겁니다. 아마 KMBOOK에 입사하면 알겠지만, 록히드마틴에서 KMBOOK의 방산사업부를 인수합병할 계획입니다. 그와 관련된 정보를 우리 쪽에 보고하면 됩니다.”

얼핏 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

회사 기밀은 아니라서 부담이 좀 적기는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문제는 데릭 모건 이사의 대답이었다.

“우리 제안을 받는다면, 당신 여동생 치료에 최선을 다하죠. 일단 병원비는 우리 측에서 다 제공할 겁니다. VIP에 입원시켜서 케어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치료법이 나오면, 가장 먼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아예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저, 정말입니까?!”

데릭 모건 이사는 냉정한 눈으로 말했다.

“당신은 샐로먼 브러더스에서 계속 지원을 받아 왔습니다. 막대한 액수죠.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당신을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믿음을 대신하기에는 부족합니까?”

“…….”

카일리 로엔 박사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는 저 말이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미래를 보고 투자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악수를 청하면서 카일리 로엔 박사를 위로해 주었다. 그는 사실 이 방법이 내키지 않았다.

카일리 로엔 박사는 첩자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재능 있는 공학자였다. 이런 방식으로 상처를 줘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괜히 그에게 PTSD와 같은 질병을 안겨준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지금은 최민혁 실장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할 수밖에 없어. KM 전자, KM 센서, 미래 기술은 어렵지만 KMBOOK은 이야기가 달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