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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85화 (88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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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샐로먼 브러더스 같은 회사에 대한 위험성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특히 이번 단기 외환 시장 파동을 생각해 보면, 최악의 경우 심각한 사태가 생길 수도 있었어.’

만약 KM 그룹이 구조조정이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맙소사. 파산할 수도 있잖아.’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배종대 과장의 지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당연한 일이었다.

KM 전자 기획 팀은 단기 외환 위기를 경험하면서 개정된 X 리포트가 마치 예언서 같다는 것을 절실히 실감했었다.

배종대 과장은 다른 기획 팀원들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가만, 그러면 최 실장님은 사전에 이미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잖습니까?”

“…아!!”

탄식이 터져 나왔다.

KM 전자 기획 팀은 누구보다 최민혁 실장과 근접 거리에 있었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MP3 특허권을 얻기 위해서 유럽을 종횡무진으로 활동한 일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최민혁 실장의 행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콜린스 사업부 매각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었던 걸까?’

콜린스 사업부와 당장 KM 센서 사업부와는 차이가 존재했다.

자본금 차이다.

콜린스 사업부는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필요했다. 사업 규모를 키우기도 쉽지 않았다. 외부 리스크에도 취약했고 말이다.

조성돈 팀장은 흥분한 배종대 과장이 날뛰는 것을 보면서 딱히 막지 않았다. 그 역시 배종대 과장 말을 듣고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과거 이해되지 않았던 최민혁 실장의 행동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다 이유가 있었구나.’

기획 팀은 다들 그저 혀를 찰 뿐이었다.

[최 실장님이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건 좀 심합니다.]

박상기 차장이 한마디 했다.

[사건 하나하나만 해도 가볍지 않은 일이잖아. 각 사업부를 매각할 때도 간단하지 않았어. 새로운 사업부를 만들 때 처리하는 일도 그렇고. 당장 에플 주식 가치만 봐도 알 수가 있잖아.]

[그래서 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님이 한 일은 사전에 로드맵을 짜놓고 움직였다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미래를 알지 않고서야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하긴]

더 이상의 반박은 없었다. 다들 그저 최민혁 실장의 과거 행적을 떠올리면서 설마 정말 미래를 알고 있었을까에 대해 의심할 뿐이었다.

회의가 완전히 산으로 간 셈이다.

다만 정성근 대리는 회의실 분위기가 산만해진 것을 보자 슬쩍 손을 들었다.

“굳이 일을 어렵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미국 언론이 최민혁 실장님을 공격한다면, 한국 언론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한국 언론?”

“네. 아무리 샐로먼 브러더스라고 해도 한국 언론사 전체를 압박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어려울 겁니다. 더욱이 정보 채널도 있지 않습니까. KM 블룸버그를 이용해서 그 사태를 더 키우면 될 것 같은데요?”

배종대 과장이 바로 타박했다.

“아니, 그게 좀 어려워. 언론사가 우리 말을 들을 것 같아?!”

“우리가 굳이 언론사를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들이 찾아오게 하면 되잖아요.”

“뭐로? 이제 최민혁 실장님 능력 가지고는 어그로를 끌기 어려워. 다들 최민혁 실장님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야.”

“그러면 다른 어그로를 끌면 되죠? 일테면 ‘송도연 임신설’이 좋은 대안이죠.”

“뭐?!”

배종대 과장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주식에 미친 샐러리맨답게 정성근 대리의 제안을 반박하지는 못했다.

송도연 임신설이면 난리가 날 일이었다.

이건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임신설 그 자체가 관심을 끌 테니까.

정성근 대리는 한 가지 점을 더 지적했다.

“최민혁 실장님과 송도연의 지난 스캔들이 비록 수면 밑으로 가라앉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찌라시를 통해서 여전히 정보가 돌고 있습니다. 동거설도 있습니다. 이렇다면, 송도연 임신설은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최민혁 실장님도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분은 효율을 중시하니까요.”

“…….”

다들 침묵했다. 상식을 넘어선 일이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라면 웃으면서 이번 일을 밀어붙일 것이 분명했다.

특히 송도연에 대한 시선을 끌기 위해서 말이다.

정성근 대리의 의견이 너무 과한 것 같아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스캔들은 송도연에 대한 검사만 하면 간단히 증명되니까.

다만 박상기 차장이 한 가지를 걱정했다.

“괜찮을까요? 이거 최민혁 실장님 명성에 독이 될 수도 있는데…….”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최민혁 실장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더욱이 정 대리 말이 일리가 있어요. 송도연 임신설이 뜨면, 송도연 무대 역시 주목을 받습니다. 결국 송도연과 관계가 있는 스티븐의 CES 기조연설에 대한 관심은 폭발할 겁니다. 그때는 누가 방해해도 막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뇨. 이건 단순히 최민혁 실장님 때문만은 아닙니다. 송도연의 노래는 진짜니까. 단순한 홍보만으로 힘듭니다. 차라리 극단적인 영업이 오히려 훨씬 낫습니다. 그녀의 인기가 사태를 더 키울 겁니다.”

“…확실히.”

박상기 차장 역시 슬쩍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제는 반대하는 이들이 없었다.

다만 기획 팀도 이 일 역시 최민혁 실장이 설마 사전에 계획한 것인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이건 아닌가?’

물론 조성돈 팀장은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나마 가능한 결론을 내려놓고 나서야 이 일을 최민혁 실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 면전에서 과연 이 사실을 보고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젠장맞을.’

* * *

최민혁은 CES 기조연설 리허설 관련 보고를 받으면서 이 사안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이지수 박사를 통해서 추가 지시도 내렸고 말이다. 다만 구체적인 부분까지 간섭하지는 않았다.

미니 드론 인공지능 부분은 이지수 박사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이보다 최문경 부회장이 최용욱 회장에게 재떨이로 맞아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들었다. 나름 자신이 한 일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때문에 이번 케이블 TV 사업에 더 집중했다.

기획 팀의 검토 결과도 기다렸고 말이다.

‘시간이 더 필요한가?’

최민혁 실장은 결국 다른 문제로 재정 경제원의 압박 때문에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계속 검토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시간이 나면 KM 전자 분위기도 살폈다.

오영근 사장은 KM 센서 사장 쪽으로 간 이후에 꽤 일을 잘 풀어갔다. 그는 최용욱 회장에게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최영란 본부장이나 장승일 실장에게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심지어 계열사 사장과도 잘 지내고 말이다.

의외인 점은 최문경 부회장 역시 오영근 사장이 KM 사장으로 내정된 것에 대해서 반발하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본 것이었다.

KM 그룹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최문경 부회장은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덕분에 KM 산업이 세계적인 포토 마스크 업체인 포트로닉스와의 합작 투자 계약을 하는 자리에도 나설 수가 없었다.

다만 최민혁 실장 역시 슬쩍 뒤로 물러나서 실무진 계약에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이번 계약 때문에 KM 그룹에서 파견된 기획 조정실 사원들은 다들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봤다.

특히 장승일 실장은 암묵적으로 허락을 구했다.

조성돈 팀장은 기획실에서 결론을 내린 ‘송도연 임신설’ 플랜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이면서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는 이번 계약 분위기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

반면 최민혁은 이 미묘한 분위기 속에 억지로 여기 끌려와서 마음이 불편했다. 포트로닉스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기억하기 싫었다.

최용욱 회장이 결국 타박했다.

“민혁아, KM 그룹 일에 너도 이제는 신경을 써야 할 거다.”

“하지만 이미 기획 조정실에서 다 결정한 사안 아닙니까.”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 실장을 째려봤다. 결정했다고 해서 완전히 확정하지는 않았다. 손자 최민혁이라면 다른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최민혁은 혀를 찼다. 그는 결국 머리를 굴려봤는데,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는 자회사 중의 하나가 이 계약을 하는 것이구나.’

그랬다.

지금은 구조조정되어서 사라진 KM 그룹의 피케이라는 회사가 대리로 진행할 일이었다.

그런데 KM 산업에 반도체 관련 사업이 통폐합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KM 산업 내에 반도체 사업부가 이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포토 마스크 기술을 무시할 수는 없지.’

포토 마스크 자체는 반도체 회로 형상을 웨이퍼에 이식하는 재료였다.

따라서 이번 계약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만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서 중요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최민혁은 혀를 찼다. 그는 조성돈 팀장이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자 차라리 조성돈 팀장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기획실에서 얼추 결론이 난 것 같은데…….’

“장승일 실장님이 이미 검토를 끝냈을 테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혹시 다른 일은 없고?”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내 말은 포토 마스크와 관련해서 새로운 혁신 기술이 없느냐 하는 거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설마 네가 모르는 기술도 있어?”

“당연합니다.”

최민혁은 단순하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KM 그룹 기획 조정실 직원뿐이 아니었다.

조용히 계약서를 살피던 포토로닉스 대리인 역시 귀를 쫑긋했다. 놀랍게도 한국어를 잘 아는 이가 나온 것이었다.

최민혁은 오영근 사장 때문에 최용욱 회장의 부탁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이 자리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는 곧 후회하고 말았다.

‘그냥 개길 것을.’

그래도 이 자리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 자신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KM 그룹의 기획 조정실 직원과 포토로닉스 대리인이 죄다 다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용욱 회장이 아니라 최민혁 실장을 더 신경 썼다.

최용욱 회장이 최민혁을 타박했다.

“이제 네 위치를 알겠느냐?”

“…무슨 말씀이세요?”

“내 의견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 KM 그룹 분위기가 너를 중심으로 흘러가. 이제는 KM 전자만이 아니라 KM 그룹에도 신경을 좀 쓰거라.”

최민혁 실장은 최용욱 회장 말에 내심 안도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교묘한 수작을 부린 터라 그걸 신경 쓰고 있긴 했다. 그래도 그 문제는 잘 끝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이 KM 그룹 계약에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영란 누나가 알아서 잘할 겁니다.”

“안다. 그 녀석도 괜찮더구나. 하지만 너의 안목이 필요해. 지금 KM 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의 하나로 안주할 뿐이다.”

“그건…….”

“내 말은 진심이다.”

그는 최용욱 회장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혀를 차고 말았다. 자신이 간과한 일도 이제는 살펴야 했다. 그건 단순히 KM 전자 일만이 아니었다. KM 그룹도 다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힐끗 자기 눈치만 보는 조성돈 팀장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골치 아프네. 가만, 조 팀장은 왜 저렇게 내 눈치를 보는 거야?’

* * *

최민혁은 잠깐 포토로닉스 합작 계약식 자리에 참석한 후에 다시 사내로 복귀해서 오영근 사장 외에 한 사람에 대한 것을 더 살폈다.

문형섭 사장이었다. 그는 사장이 된 후에 KM 전자 관련 부서를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그들을 격려했다.

필요하다면 회식 자리도 마다치 않았다.

거의 매일 술로 살아갔다.

‘난 죽어도 못 할 일이야.’

하지만 그는 곧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죽기 전에는 자신도 했던 일이었다.

협력업체를 찾아다니면서 사장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문형섭 사장의 이런 노력은 KM 전자의 경직된 분위기 전환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딱딱하게 굳은 사내 분위기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문형섭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점도 큰 효과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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