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81화 (88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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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크게 당황해서 성환수 보좌관을 호출해 봤다.

그런데 그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결국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과 소통이 잘되는 김우석 국제경제 심의관을 호출했다.

다행히 김우석 국제경제 심의관은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블룸버그 쪽에서 최민혁 실장과 합작 법인을 만들 예정인 것 같습니다.”

“설마 TV 쪽 사업을 말하는 건가?”

“네. 이미 KM 그룹 계열사 중에는 케이블 TV 허가를 받은 곳도 있습니다. 구조조정을 진행하기는 했지만, 아직 그 허가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KM 그룹은 바보가 아니었다. 비록 케이블 TV를 어느 정도 정리하기는 했지만, 허가와 관련된 부분은 여전히 남겨뒀다.

비록 직원 수가 고작 20명이 채 안 되지만 말이다.

거의 기업 형태만 갖춘 셈이다.

KM 그룹 기획 조정실은 이 회사를 이용해서 문제가 된 직원을 정리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회사를 자발적으로 안 나가고 버티는 이들을 이곳에 보낸 것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블룸버그라면 같이할 기업이 넘쳐날 텐데, 왜 굳이 기반이 거의 사라진 KM 그룹을 파트너로 선택한 거지?”

“…최민혁 실장 때문이 아닐까요?”

“흠.”

이환채 차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였다. 사실 블룸버그만 아니었다면 케이블 인허가도 취소시켜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블룸버그는 그 자신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니, 재정경제원 전체 입장에서도 블룸버그를 가볍게 생각하기 힘들었다.

블룸버그는 막말로 한국 정부에 대한 찌라시를 찍어낼 수 있는 곳이다. 그 파급 효과도 크고 말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의 부정적인 정보는 꽤 많다. 블룸버그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더욱이 블룸버그의 자금 규모도 문제다.

그는 KM 그룹에서 온 초청장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면 그쪽에서 왜 날 찍어서 초청했다고 생각해?”

“그걸 저에게 물어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

이환채 차관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재정경제원 장관이자 부총리인 김웅배 장관의 태도를 떠올린 것이었다.

자칫하면 그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이거 골치 아프네.’

* * *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아마 빌딩은 모두 20층 높이였다.

이곳 빌딩 13, 14, 15, 16층에 블룸버그 지국이 개소되었다.

블룸버그 편집장인 매튜 윙어가 나와서 사회자 노릇을 했다.

매튜 윙어는 블룸버그 본사에서도 꽤 영향력이 있는 인사였다.

그 덕분에 이곳을 찾은 이들 중에는 의외로 한국 언론사도 꽤 많았다.

어지간한 대형 언론사는 다 왔다.

하지만 이들 못지않게 이곳에 신경을 쓴 이들이 한국 대기업 일가였다.

HY 그룹, LC 그룹을 비롯한 한국 10대 기업은 빠짐없이 이곳에 나타났다.

그들 역시 블룸버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아니, 그들은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얼떨떨하기만 했다.

블룸버그가 이 사무실을 매입하는 데는 불과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다.

행사가 진행되는 13층 외에 나머지 층은 이제 막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그리고 남들의 시선을 끄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안건민 회장.

그는 아들 안재운, 막내딸 안지연을 데리고 이곳에 나타났다.

최용욱 회장이 이들을 접대하기는 했지만 영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는 힐끗거리며 안지연을 계속 살폈는데, 아쉬운 듯 계속 입맛을 다셨다.

안건민 회장은 연일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안지연을 슬쩍 내밀어서 계속 소개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남녀 소개팅 자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오해를 받을 만했다.

“…….”

이환채 차관은 LC 그룹 쪽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안지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오성 그룹이 최용욱 회장에게 저렇게 관심을 보일지는 몰랐다.

다만 다른 대기업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들은 최용욱 회장을 그다지 좋은 눈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는 가능하면 분위기만 살피고는 이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런 그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오랜만에 정장을 한 최민혁 실장이었다.

“이환채 차관님이시죠?”

“…네.”

그는 최민혁 실장을 마주하자 최민혁 실장에 대한 반감 따위는 잊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나타나서 최용욱 회장을 살갑게 대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초청받은 이들은 다들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마이클 블룸버그에게 인사했다. 줄을 서서 다들 마이클 블룸버그와 인사를 한 것이었다.

새삼 블룸버그의 위세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환채 차관 역시 마이클 블룸버그와 최용욱 회장이 서로 친한 지인인 것처럼 환대하는 모습을 보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차관님!”

“아, 미, 미안합니다. 정신이 좀 없습니다.”

이환채 차관은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것처럼 최민혁 실장을 대할 수는 없었다. 지금 분위기가 그랬다. 도저히 최민혁 실장을 얕잡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이클 블룸버그가 최민혁 실장을 발견하자 다른 사람들과 인사 나누는 것도 접은 채 최민혁 실장에게 다가와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최민혁은 난감한 얼굴을 한 채 마이클 블룸버그의 손을 잡았다.

“오늘 이렇게 지국 개소식에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하하하, 최민혁 실장님이 그렇게 소심한 모습을 보이다니, 이상하군요.”

그는 자신만만을 넘어서 패기에 찬 첫인상을 떠올리면서 힐끗 마주한 이환채 차관을 쳐다보았다.

“이분은 누구…….”

“재정경제원의 이환채 차관입니다.”

“오, 이환채 차관님, 이거 반갑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의외로 소탈하게 그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이환채 차관은 크게 당황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그 자신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괜히 말실수를 했다가는 큰일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좀 달랐다.

“이번 블룸버그 한국 지국에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KM 그룹에도 많이 양보했습니다. 이건 다 최민혁 실장님을 생각해서입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방송 설비, 콘텐츠 계약, 한국인 채용 등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양보했다.

어떻게 보면 블룸버그가 자신의 노하우를 일방적으로 베푼 것이었다.

KM 블룸버그의 성장은 당연하다고 봐야 했다.

콘텐츠 자체가 유니크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이번에 인터넷 실험 방송 역시 한국 지국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이건 우리 블룸버그에서 꽤 큰 양보를 한 겁니다.”

“…네.”

최민혁 실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마이클 블룸버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그는 한국 블룸버그 지국에서 얼마나 많은 양보를 했는지 쉬지 않고 다 말했다.

그는 잔소리꾼 마이클 블룸버그의 행동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뭘 원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투자 정보도 한몫할 것 같군. 그 외에 내가 할 일에 대한 사전 정보도 필요할 것이고, 그거야 서로 이익이 된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실제로 최민혁은 언론이 가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블룸버그 정도면 그 상대로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굳이 마이클 블룸버그에게 애니 드론을 소개해준 이유였다.

“블룸버그에서 지금처럼 도와준다면, 저도 반대급부를 드려야겠죠.”

“하하하,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의 소탈한 웃음 때문에 다시 시선을 끌었다.

이 연회장에 모인 이들은 다들 최민혁 실장을 살피기 급급했다.

그들 역시 마이클 블룸버그와 친한 친구처럼 소통하는 최민혁 실장의 모습에 경악한 것이었다.

“…….”

이환채 차관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같은 거물이 왜 최민혁 실장에게 저자세인지 말이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그런 이환채 차관의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미국에 오면, 제가 파티에 초대하겠습니다. 소개해 줄 사람이 많으니, 와서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도 최민혁 실장을 꽤 만나고 싶어 하는 눈치입니다. 서로 쌓인 앙금이 있다면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초대해 주신다면 굳이 안 갈 이유는 없겠죠.”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마이클 블룸버그와 이야기를 끝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지금 한국에서 만날 사람이 많았다.

KM 블룸버그 설립과 관련해서 이왕이면,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게 좋으니까.

이환채 차관은 그제야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상황이 생각보다는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의 명성을 듣기는 했지만, 미국 내에서 이 정도로 인망이 높을 줄은 몰랐다.

최민혁은 이환채 차관의 모습에 기묘하게 웃고 말았다. 그는 굳이 자신이 나서서 더 입을 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자존심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전처럼 자신을 타깃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뭐, 미치지 않고서야 블룸버그와 적대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다만 그 배후가 문제인데, 골치 아프네. 한국은 이게 문제야.’

최민혁은 물론 지금 당장 이환채 차관을 묻어버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굳이 자신의 손을 더럽힐 이유는 없었다.

‘IMF가 알아서 청소해 주겠지.’

* * *

KM 블룸버그 합작 법인 설립은 언론에서 떠드는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정부에서도 이 회사 설립과 관련해서는 특혜라고 할 정도로 빠르게 밀어붙였다.

KM 그룹 때문이 아니라 블룸버그 때문이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직접 방한해서 진행하는 일에 감히 훼방을 놓지 못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서광수 과장 일 때문에 이 일에 전혀 끼어들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지사를 찾아가서 푸념을 늘어놓는 일 정도였다.

당연히 이 정보는 데릭 모건 이사 귀에도 곧 들어가고 말았다.

데릭 모건 이사는 마이클 블룸버그의 위치를 추적해서 직접 그를 찾았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한국 내에 펜트하우스 하나를 사들였다.

“회장님, 이건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서로 협상까지 다 끝난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까? 이 일이 알려지면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님을 감히 누가 믿겠습니까?!”

분노한 데릭 모건 이사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이미 데릭 모건 이사가 자기 사무실을 찾아와서 깽판을 쳤다는 보고를 받았다. 사실 그도 데릭 모건 이사를 피해 다녔다. 자신이 잘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데릭 모건 이사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정중하게 말했다.

“데릭 이사, 당신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 내 개인 감정을 넣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입니까.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을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스티븐 CES 강연에 제동을 걸어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스티븐만이었다면 저도 이러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배후에 있는 최민혁 실장은 가볍게 볼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님이 눈치를 볼 수준은 아닙니다!”

“글쎄,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전 이번 일로 스티븐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마저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데릭 모건 이사는 결국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마이클 회장님이 고작 최민혁 실장이 무서운 겁니까?!!”

“…….”

마이클 블룸버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이번 일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정말 말이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 계열사를 조사하면서 더 심각한 번민에 빠지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블룸버그 보고서는 시작에 불과했다.

최민혁 실장이 꿈꾸는 미래 로드맵은 그 자신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한 세대 앞서간 인공지능 미니 드론을 보고는 두 손을 다 들고 말았다.

그가 최민혁 실장에게 고개를 숙인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절 겁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전 최민혁 실장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도 최민혁 실장의 정보를 다 믿지는 않았지만 직접 경험한 그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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