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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76화 (876/1,021)

#876.

그 역시 이 디지털 코덱의 가치를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아직 KM 전자 연구소 내에서만 도는 이 정보는 곧 여러 회사를 통해서 외부에 알려질 것이었다.

그리고 최초로 디지털 코덱 칩을 개발한 최구만 과장의 업적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해서는 감정 표현이 없는 최구만 과장이 최민혁 실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슬쩍 최민혁 실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바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칫했다간 눈물을 흘릴 것 같아서 참았다.

나이만 놓고 보면, 까마득한 후배이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한 말은 진실이었다.

그는 과거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완벽하게 지켰다.

최구만 과장도 이 AC9701을 만들고 나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다.

지금은 여전히 잘나가고, 당분간도 잘나갈 아날로그 TV 사업이지만 장래는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

최구만 과장이 다음에 설명한 것은 이 AC9701이 적용된 예였다.

놀랍게도 아이컴에도 적용되었고, 곧 출시될 차기 모델 KMP-02B에도 적용되었다.

최민혁 실장은 최근 에플에만 집착해서 집안일을 소홀히 한 터라 깜짝 놀랐다.

[설마 차세대 모델인 KMP-02A에 이미 적용된 겁니까?]

최병연 소장은 밝게 웃었다.

[당연히 적용되었습니다. 거기에 몇가지 기능을 더 넣었습니다. 아무래도 애플의 KMP-02B와 경쟁 구도를 갖추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메리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MP3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최병연 소장이 최구만 과장에게 손짓하자 그다음에 보여준 것은 KMP-02A1이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인공지능 칩이 들어가 있었다.

[…설마 그거 아니겠죠?]

최병연 소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회의실 안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물론 저 칩은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적용된 인공 지능 칩은 아닙니다. 이미 이지수 박사가 인공지능을 다운그레이드한다는 점을 활용했습니다. 이 MP3에 필요한 인공지능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MP3 수준으로 레벨을 낮춘 인공지능칩이었다.

지능 수준은 낮았다.

하지만 그 지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굳이 버튼을 눌러서 작동시킬 필요가 없었다.

[음성만으로도 MP3를 동작시킬 수 있습니다. 수동적인 인공지능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기능은 다 동작이 됩니다.

음악 플레이와 관련해서 말입니다.]

단순히 '플레이', '정지', '건너뛰기' 동작만이 아니었다.

음원을 들으면서 단계별로 건너뛰기와 같은 기능도 가능했다.

버튼만으로 할 수 없는 다양한 동작이 가능한 것이다.

일테면, 앞으로, 뒤로, 앞으로, 앞으로, 뒤로, 뒤로와 같은 명령어 말이다.

사람이 흔히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은 거의 다 포함되었다.

기존의 MP3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 성능이었다.

'가만, 이건 미래 MP3 플레이도 불가능한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적용할 수도 있구나.'

"…배터리 소모 문제는 없나요?"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이지수 박사님이 모듈형 지능 개념을 도입하면서 각 블록별로 저전력이 가능하게끔 설계해 놓았습니다. 그 기능을 그대로 가져와서 적용했습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최민혁 자신이 계속 물고 늘어진 것 하나하나가 다 독특한 기술이 되었다.

최병연 소장은 이지수 박사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그런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연구소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지수 박사가 흘리는 가치 하나 하나를 다 쓸어 담았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어."

최민혁은 내심 크게 당황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이런 식으로 나비 효과를 불러오게 될 줄은 몰랐다.

거기에 음성을 녹화하는 기능도 가능했다.

하지만 최병연 소장이 노린 것은 이게 아니었다.

[K투스 근거리 통신망을 이용하면, 이 기능이 있는 제품을 원격에서 다 제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탑재된 모델과 합치면 기능이 중복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기능을 이용하면 이중 음성 시스템 방식으로 오차율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설마 오성 전자의 가전제품……."

"네, 맞습니다. 다행히 오성 전자 측에서 애니 인공지능 탑재 모델 시제품을 개발 중입니다. 그쪽 연구소와는 이미 협업 중입니다."

"…빠르군요."

두 가지 기준을 가진 음성 인식 오차율 보정이다.

말을 하면 사람처럼 즉각 반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기술만으로도 기존의 기술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기능이었다.

최민혁은 진짜 놀랐다. 뭐, 그가 원한 것이기는 하지만 기반 기술이 벌써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는 건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

최민혁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바로는 아직 음성 인식에 오차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것은 그나마 있는 그 작은 오차마저 줄이기 위한 또 다른 대안이었다.

[…그건 프리미엄 제품으로 분류했겠군요.]

최병연 소장은 씩 웃었다.

[맞습니다. KMP-02A 모델은 여러가지 파생 모델이 존재합니다. 최고 사양은 100만 원을 호가할 예정입니다.]

"…허."

최민혁 실장은 한동안 혀를 내둘렀다. 그가 미니 드론에 미쳐 있는 동안에 국내 연구소의 최병연 소장은 착실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는 그제야 왜 블룸버그 쪽에 시연한 미니 드론 성능이 그렇게 올라간 건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작은 한 걸음이지만 그렇게 가볍게 볼 수만은 없었다.

최병연 소장은 그제야 혁신적인 기술에 충격받아서 넋을 잃고 있는 최영란 본부장을 쳐다보았다.

"최 본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영란 본부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AC97에 대한 개념도 여기서 처음 들었다.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저런 용도의 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말을 더듬었다.

"네, 네?! 뭘 말이죠?"

최민혁 실장이 구박했다.

"저 AC9701 칩 말이야. 저거, KM 산업에서 충분히 물량을 소화할 수 있어. 다만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하면 공장을 대폭 늘려야 할 거야. 바로 반도체 공장을 말하는 거야. 그리고 저 칩을 수정해서 판매할 비메모리 설계 부서도 더 늘려야 할 거야."

"아!!"

최영란 본부장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녀는 그제야 저게 돈이 되는 칩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맙소사. 생각해 보면, MP3 플레이어 업체에는 다 들어가잖아!'

최민혁은 그녀의 표정에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번 일로 최영란 본부장의 영향력은 커질 테니 말이다.

그는 이보다 밝게 웃고 있는 최병연소장과 칭찬을 기다리는 연구원들을 쳐다보면서 손뼉을 쳤다.

"잘했습니다. 훌륭합니다. 솔직히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성과에 따른 보상은 제가 따로 하죠."

와와와 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기만 했는데, 이번 성과는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물론 마이클 블룸버그가 왜 그렇게 저자세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인공지능 기능에 집착한 나머지 애니 관련 기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애니 드론의 기술 속에 숨겨진 수많은 기술.

그건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기술이 아니었다.

이지수 박사가 무려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삽질한 이유도 말이다.

'하긴 기반 기술이 없다면 스마트폰은 아예 시제품조차 못 만드니까. 앞으로는 이런 일에 신경을 더 써야 할것 같아.'

***

최민혁 실장은 최병연 소장에게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로선 막상 미니 드론 개발을 서두른다고 했는데, 정작 중요한 문제를 간과한 것 때문이다.

그는 더욱이 이제는 굳이 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애플 CES 전시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과정은 애플 공매도를 이용해서 상대를 한 방 먹이는 이벤트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KM 전자가 가는 미래의 방향이었다.

최민혁은 그렇다면 다른 모든 일보다 지금 자신이 살피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이클 블룸버그라면 이 정도 기술 수준은 예상했을 테니 말이다.

제품 개발을 하는 것과 미래를 읽는 것은 좀 다르다.

블룸버그라면 미래 시장이 어떤지 예상할 수가 있었다.

심지어 미니 드론에 적용된 기술도 말이다.

AC9701 이 뭔지 몰라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 정도는 예측이 가능할 테니까.

이런 산업은 기술 우위가 높아서 수익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KM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는 당연히 이런 일이 언급되지 않는다.

이보다는 반도체 기술과 관련된 부분이 주로 언급된다.

최문경 부회장이 오랜만에 열린 사장 단 회의에서 자신 있게 한 설명이 이와 같았다.

[대만의 친풍 그룹과 기술 이전 협약을 완료했습니다. 최근 개발을 끝낸 리드 프레임 제조 장비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이 시스템은 일본에서 공급받은 설비보다 불량률이 80%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번 대만 수출 건을 계기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시장 쪽을 공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설비는 더 발전된 공정 기술과도 관련이 있었다.

KM 산업이 구조조정 이후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완성한 기술이었다.

핵심 기술을 배제한 채 계열사를 매각한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이룩한 성과였다.

다양한 비용을 절감하고, 이익 자체를 키운 좋은 경우였다.

최문경 부회장은 설명하면서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비록 이 일의 성과는 최민혁 실장의 깔아 놓은 흐름에 따른 결과였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계열사 사장들도 순수하게 최문경 부회장의 실적에 손뼉을 쳤다.

최용욱 회장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받은 제안을 잠시 잊었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회장님.]

[친풍 그룹 계열사 쪽에서 추가 주문을 받은 것으로 안다.]

[이번 계약과 동시에 진행한 패키지 공급 물량은 5년간 대략 2억 달러 규모입니다.]

한 해 계산으로 치면 400만 달러 규모다. 하지만 대만 시장을 뚫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친풍 그룹으로 영업을 넓힌 덕분에 대만 쪽 시장 공략은 순조로웠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만 해라. 네 공적을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순순히 최용욱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 KD 통신 지분 증여 이후에 그도 몸을 많이 사렸다.

최문경 부회장은 나름 기분이 좋았다. 이번 실적은 확실히 자신이 생각해도 훌륭했다. 새로운 영업선을 만든 것이니까.

최문경 부회장의 실적 때문에 다른 계열사 사장들의 이야기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친풍 그룹과의 선린 관계는 KM 그룹에게도 나쁘지는 않았다.

최영란 본부장이 나설 때까지 이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그녀의 발표 차례가 되자 다시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근 KM 전자의 최병연 소장님의 도움을 얻어서 오디오 코덱 칩인 AC9701 를 개발 완료했습니다. 이 제품을 기반으로 해서 KM 산업 내에 있는 비메모리 사업부를 독립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갑자기 나온 뜬금없는 신사업부 이야기.

사장단 역시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이미 최용욱 회장에게 인정받은 최영란 본부장이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동을 건 사람은 최문경 부회장이 아니라 최용욱 회장이었다.

[최 본부장, 자네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비메모리 사업부 독립은 아직 성급해. 이미 비메모리 사업 영역이 얼마나 치열한지 잘 알지 않아?]

말이 좋아서 반도체, 비메모리 사업부다. 그런데 이쪽 시장은 생존하기가 쉽지 않았다. 글로벌 반도체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실상 최민혁 실장이 최용욱 회장에게 한 조언도 이와 비슷했다.

KM 산업 쪽에 메모리, 비메모리 사업부가 있기는 하지만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최영란 본부장이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아니, 실상 그녀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녀는 손짓해서 자신이 준비한 자료 파일을 벽면 한쪽 프로젝트에 띄웠다.

"……."

최문경 부회장은 황당한 눈으로 최영란 본부장을 쳐다보았다.

요즘 비메모리 쪽이 잘나가서 아주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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