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75화 (875/1,021)

#875화.

"아, 그리고 최민혁 실장의 계열사에 대한 정보와 주식 가치에 대한 보고서도 다시 올려. 애플, 퀄컴, ARN를 비롯해서 모든 정보를 다시 재조사해 봐. 필요하다면 아직 비상인 지분도 확인해 봐. 필요하다면 최민혁 실장에게 사들일 대안도 찾아보고."

"…최민혁 실장 계열 주식을 사들일생각입니까?"

"저걸 보고도 몰라?"

"…네."

그만 놀란 것은 아니었다. 회의실에 참석한 이들 역시 다들 마른침을 삼켰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굳이 주식 매입을 알리는 이유는 최민혁 실장에게 그만큼 잘하라는 뜻이었다.

딱히 그걸 지시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은 필요가 없었다.

다들 동영상에 나온 애니 드론에서 여전히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단순히 날아다니면서 말을 하는 동작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언론사에 있으면서 얻은 식견으로도 미니 드론 안에 담겨 있는 기술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충격과 공포마저 느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저 인공지능을 응용한 산업을 떠올렸다. 그 파급 효과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

미니 드론 내부에 들어 있는 기술은 그다지 어려울 것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블룸버그 실무진이 미니 드론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은 그만큼 기술에 대한 안목이 있어서다. 다른 정치인이 본 것과는 다르게 생각했다.

실제로 미니 드론 내에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

최민혁 역시 그런 점은 잘 몰랐다.

그 역시 그저 중요한 아이디어만 제공했을 뿐이었다.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은 당연히 최병 연 이사였다. 그는 조창호 차장을 미국에 보낸 후에도 관련 정보를 꾸준히 수집했다.

그는 미니 드론 기술의 한계에 대해서는 최민혁 실장과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A/D, D/A 컨버터였다.

전자는 아날로그 음성을 디지털로 바꿔주고, 후자는 디지털을 다시 아날로 그 음성으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 아날로그 음성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앞 단에 이 기능 칩을 사용해야 한다.

원래는 오디오 사업부에서 연구를 진행하던 프로젝트였다.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아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었다.

최병연은 연구소장이 되자 사내 연구프로젝트를 다 재검토했고, 이 프로젝트를 최대한 이용해서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궁리했다.

'A/D, D/A를 하나의 칩 안에 넣고, 필요하다면 AC-Link 표준을 만들어라…….'

그도 처음에는 잘 이해를 못 했다.

그런데 음성 해상도라는 개념을 이해 하게 되자 자연히 AC 표준에 대해서 고민했다.

최민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최병연 소장에게 아이디어를 툭툭 던져줬다.

바로 내년에 인텔에서 개발하게 되는 AC97 표준이었다.

이 표준은 머더보드, 모뎀, 사운드 카드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최병연 소장은 자존심을 버린 채 시간이 날 때마다 최민혁 실장을 괴롭혔다.

물론 전화로 말이다.

최민혁 실장 역시 이 오디오 코덱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저 어떤 형태로 돌아가는지만 알았다.

하지만 그 정보면 충분했다.

거기에 조창호 차장이 마침 미니 드론 하드웨어 업데이트를 진행 중이었다. 그의 도움을 얻어서 이 AC97 표준을 만들었다.

A/D, D/A 커버트 성능만이 아니라 오디오 음질을 개선하는 여러 가지 기능을 넣었다.

최병연 소장은 이 성과를 일단 미니 드론에 적용해 보았다.

결과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단 음성 인식 오차율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더 큰 효과는 반응 특성이었다.

오차율이 줄어든 만큼 미니 드론의 반응 속도가 빨라졌다.

최병연 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 오디오 코덱 성능 품질을 대폭 개선해서 최민혁 실장이 대충대충 말한 그 제품에 따르는 칩을 만들어냈다.

이름하여 AC9701 칩이었다.

이 칩 하나만 사용하면, 머더보드뿐만 아니라 핸드폰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최민혁 역시 이 내막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는 그저 최병연 소장이 질문하면 들어주는 축에 불과했고, 필요하다면 기술적인 방향성만 얘길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로서도 미니 드론의 성능이 이전과 비교해서 너무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는 오랜만에 최병연 소장에게 전화했다.

[혹시 미니 드론 개발과 관련해서 다른 변화라도 있습니까?]

[아, 최 실장님, 가만, 미니 드론 개발과 관련해서 말입니까?]

[이번에 블룸버그 상대로 시연을 보여줬는데, 제가 아는 미니 드론과 특성이 너무 달라서요.]

[…그렇다면 아마 음성 인식 기능 개선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네? 그게 그렇게 큰 차이를 줍니까?]

최병연 소장은 최민혁 실장의 질문에 밝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인식률에 오류가 생기면 일단 애니 시스템도 그것을 파악합니다. 다시 인식 오차를 교정하기 위해서 동작합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중복 연산입니다. 그런데 음성 인식 오차율만 줄어도 그 연산은 대폭 줄어듭니다.]

[설마 그게 배터리 소모에도 영향을 주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10가지 오류와 1가지 오류 사이의 파워 차이는 큽니다.]

[놀랍군요. 하지만 지금 기술로는 오차율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한계일 텐데요?]

[안 그래도 그것과 관련해서 보고드릴 사안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죠?]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방문해서 보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좋아요. 오늘 바로 가죠.]

[오늘 말입니까? 아, 한국에 오셨나 보군요. 하면 최영란 본부장님하고 같이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았어요.]

***

최민혁 실장은 최영란 본부장에게 연락해서 당장 KM 전자 본사 회의실로 오라고 협박했다.

그는 KM 전자의 회의실 앞에서 최영란 본부장을 만났다.

최영란 본부장 역시 최민혁 실장의 강압적인 초대가 있었지만, 그저 혀를 차며 피로에 절은 얼굴로 툴툴거리기만 했다.

"미국에 있다더니, 한국에 왔어?"

"어, 잠깐 급한 일이 있어서."

"케이블 TV 사업 때문이야?"

"할아버지가 얘길 해준 거야?"

너무 자연스러운 어조였다.

최씨 일가 내에서 최용욱 회장을 할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최문경 부회장조차 최용욱 회장을 호칭할 때는 조심했다.

어지간한 신뢰를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아버지? 넌 회장님을 그냥 할아버지라고 편하게 말하네."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하지. 그러면 아버지라고 해야 할까?"

대수롭지 않은 말이기는 하지만 이번 케이블 TV 이벤트와 관련해서 최용욱회장에게 그만큼 큰 신뢰를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쓰게 웃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최용욱 회장이 KD 통신 지분을 최민수에게 증여한 것 때문에 난리가 났다.

다들 최용욱 회장에게 지분을 증여받기 위해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KM 그룹 지분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긴 돈이 많기는 해."

"그렇다고 KM 그룹을 무시하지는 않아."

최영란 본부장은 말이 나온 김에 계속 마음에 품고 있는 질문을 던졌다.

"가끔은 그것도 이해가 안 가. 굳이 KM 그룹 경영권에 집착할 레벨은 아니잖아?"

최민혁도 순간 반사적으로 '어'라고 말할 뻔했다. 그는 다시 자책했다. KM 그룹은 그저 그런 수준의 그룹은 아니었다.

KM 그룹 회장이 자신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지만 사지 하나를 마비시킬 정도의 역량은 되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이 먹게 내버려 둘수는 없어."

"하긴."

최영란 본부장은 자기 아버지를 씹는 최민혁 실장의 태도에도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최민혁 실장의 처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 남자친구의 기일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실 최문경 부회장이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복수했을 것이다.

그나마 친아버지라서 간접적으로 복수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곧 떨쳐 버렸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오라고 하다니? 최병연 소장이 보여줄 것이 있어서 오라니. 최병연 소장이 너무 건방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본부장님, 제가 그런 이미지였습니까? 나름 제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최병연 소장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마침 두 분께 소개할 물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급히 불렀습니다."

최민혁도 툴툴거렸다.

"…중요한 일이겠죠?"

"물론입니다. 원래는 최 실장님이 한국에 귀환하면 바로 보여 드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아예 정착하신 터라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검증에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최민혁은 최병연 소장과 눈인사를 하면서 흥미를 보이기는 했다. 그는 최병연 소장이 이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다.

다만 그는 소장 직급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일일이 다 쫓아다니면서 지시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부품이기에 저러는 걸까?'

그는 뒤를 따르는 조성돈 팀장과 박상기 차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막을 아는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

회의실 분위기는 조용했다.

이미 내막을 아는 이들은 그저 최민혁 실장의 눈치만 살폈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이 어떤 반응을 보이나 그게 궁금했다.

AC97 디지털 코덱에 관한 이야기가 KM 전자 연구소에서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이리저리 설치면서 오히려 그 일에 주의가 갔다.

하지만 최병연 소장은 자기 중심을 절대 잃지 않았다.

그는 최구만 과장에게 지시해서 이 표준과 관련된 칩 개발을 진행하게 했다.

다행히 그 개발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A/D, D/A 필터와 관련된 특허가 있다면 바로 매입까지 하면서 말이다.

최구만 과장은 자신의 새로운 직무인 아날로그 경험을 최대한 살렸다. 그는 그 과정에서 조창호 차장의 도움을 아주 크게 받았다.

[이 AC97 디지털 코덱은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표준이 만들어진 후에 개발은 급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MP3에서 사용된 양자화 기법을 이용했습니다.]

디지털 처리 과정에서 정보가 불가피하게 손실되면서 생기는 오차가 문제였다.

이 오차는 시간이 갈수록 누적이 되어서 더욱더 커진다.

그렇게 된다면 음질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에는 극단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를 개선한 새로운 알고리즘이 만들어졌다.

최구만 과장은 이 과정에서 한 수많은 삽질을 떠올리면서 잠깐 침묵했다.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다들 물끄러미 최구만 과장을 쳐다보기만 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만큼은 혀를 내둘렀다. 그 자신이 지시하기는 했지만, 기술적인 방향성만 정보를 제공했다.

저렇게 세세한 정보는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역 양자화 알고리즘이었다.

그는 슬쩍 손을 들었다.

[그 역 양자화 알고리즘은 어떻게 고안한 겁니까? 우리 쪽의 지금 인력으로는 무리가 따를 텐데요?]

최병연 소장이 슬쩍 나섰다.

[대학 몇 곳에 외주 용역을 줬습니다. 다행히 한 곳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아, 물론 특허권은 우리가 가졌습니다.]

[…좋네요. 계속하세요.]

최민혁 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최병 연 소장이 사용한 수법은 자신이 애용하는 것이니까. 다만 자신은 전생 기억을 통해서 미래 지식을 이용했다.

최병연 소장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순순한 실력으로 이 일을 진행했다.

'아무리 내가 힌트를 줬다고는 해도 대단하구나. 이것도 나비 효과지. 좋은 의미의 나비 효과라고 해야 하나. 이것도 신경을 좀 써야겠어.'

특히 디지털 코덱 관련 표준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최구만 과장 역시 잠깐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솔직히 전 보직이 바뀌면서 가끔 후회도 합니다. 차라리 전원 엔지니어 쪽을 다시 할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솔직히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만족감과 성취감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