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7.
“그게 쉽지 않잖아. 당장 배터리 용량을 올리면 단가나 무게가 문제가 될 거야. 운송과 같은 사업 쪽에서는 아예 써먹지를 못해. 심지어 장난감으로도 안 먹힐 거야.”
박상기 차장은 역시 현실적인 성격답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산더미처럼 내놓았다. 부정적인 의견이 쓰나미처럼 와르르 밀려왔다.
지켜보는 팀원들조차 다들 혀를 내둘렀다.
정성근 대리 역시 순순히 수긍했다. 하지만 그는 배종대 과장이 애니 드론과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를 떠올렸다.
“저도 애니 드론을 동작시키면서 배터리 소모량을 확인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팀원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애니를 많이 사용했다.
아니, 정성근 대리는 마치 자신의 물건인 양 애니를 사용했다.
그런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드론 애니가 참 놀랍다고 인정했다.
“애니 드론의 큰 강점이자 약점은 드론 성능이 너무 뛰어나서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저 정도 성능일 필요가 있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회의실에 모인 이들 역시 정성근 대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 역시 며칠 동안 애니 드론을 사용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해봤다.
하지만 해결책을 쉽게 찾지 못했다.
정성근 대리는 확실히 다른 팀원과는 좀 달랐다. 그는 화이트 보도를 가져와서 애니 드론의 내부 시스템을 하나씩 그렸다.
시스템마다 사용하는 전력을 일일이 수치로 다 표현했다.
알고리즘에 따른 전력 크기 역시 구체적으로 나누어서 표기했다.
카테고리식으로 나누어진 차트에 따른 전력값은 최종적으로 가장 우측 칸에 기록했다.
파워 차이는 최저와 최대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성능이 좋을수록 파워 차이가 납니다. 각 용도에 따라서 성능을 줄이면 되지 않을까요? 일테면 배종대 과장님이 저렇게 장난감으로만 사용한다면 굳이 지금의 애니 지능을 다 활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딱 장난감 수준의 지능이면 되니까요.”
“야!”
배종대 과장이 발끈하기는 했지만 이 얘기를 들은 박상기 차장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신기한 것은 애니 드론이 정성근 대리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점이다. 애니 드론은 자기 지능을 떨어뜨린다는 데 불만을 품었다. 이윽고 애니 드론은 LCD 화면을 이용해서 눈물을 툭툭 흘렸다.
배종대 과장은 애니 드론을 토닥거리면서 정성근 대리를 째려봤다.
하지만 정성근 대리는 냉정했다.
“지금도 저기 보세요. 제 말을 다 알아듣고, 감정 표현을 하는 중입니다. 저 동작에 당장 CPU 로드, 인공 지능 로드, 거기에 음성 인식 로드까지 다 포함됩니다. 그러니 배터리 소모가 무진장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지적한 것은 애니 스펙서에 나와 있는 관련 칩이었다.
도면에 나와 있는 칩 하나하나를 찍으면서 관련된 전력 소모량을 일일이 표시했다. 그걸 다 합치면 전력 소모가 꽤 컸다.
배터리 소모가 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조루 배터리가 된 이유였다.
“아.”
박상기 차장은 그제야 탄식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은 상업성이다. 그런데 지금 애니 드론은 아예 그런 점을 무시한 채 만들어진 것이었다.
정확히는 이지수 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애니 드론의 완성에 집중했을 뿐이다. 성능을 제약해서 상업적인 면을 살린다는 것은 아예 고려하지 못했다.
실제로 최민혁 실장 역시 너무 앞서간 생각만 하는 중이었다.
애니 드론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또 향상시켜서 지능을 더 끌어올리는 일 말이다.
오직 CES 전시회에서 써먹을 미래용 드론만 생각한 것이었다.
만약 애니 드론 판매 쪽으로 과녁을 바꾼다면 상황이 좀 달라질 수 있었다.
굳이 지금처럼 애니 드론의 인공지능을 최대한 돌릴 필요가 없었다.
장난감용이면 거기에 맞는 동작만 하면 될 테니 말이다.
박상기 차장은 기대 어린 눈빛으로 정성근 대리를 쳐다보았다.
“혹시 배터리 소모와 관련해서 더 자세하게 조사한 것이 있어?”
“물론이죠. 제가 각 인공지능 레벨별로 해서 따로 다 정리했습니다.”
10단계 지능 지수에 따라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동작을 다 정해놓았다. 프로그램이나 칩 상에서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약만 걸면 되도록 말이다.
정성근 대리는 냉큼 자신이 정리한 아이디어를 내밀었다.
다들 그 내용을 보고는 감탄하고 말았다.
각 목적에 따라서 체계적으로 배터리 소모 자체를 줄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테면 영상 기능 블록을 평소에는 다 동작시킬 필요가 없었다.
이때는 저전력 모드로 맞추면 된다.
각 동작에 따른 배터리 소모 차트를 쭉 이어가 보면 상업적인 타깃에 맞출 수가 있다.
그렇게만 한다면 배터리 사용 시간을 대폭 늘릴 수가 있었다.
4~5배 사용 시간만 되어도 그럭저럭 쓸 만하기는 했다.
게다가 각 레벨별로 판매 가격을 따로 처리해도 된다.
“좋네. 야, 이거 기가 막힌다. 역시 정 대리야, 이대로 한번 해보자고.”
박상기 차장은 팀원에게 각자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KM 전자 기획 팀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다들 알아서 움직였다.
그들은 일하기가 무섭게 이 인공지능 무인 드론의 동작이 참 주먹구구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봐야 할 것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상하네, 최 실장님이 왜 이런 것까지 감안하지 않은 걸까?’
당연히 최민혁 실장은 이런 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애초에 인공지능 무인 드론은 그의 전생에서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 * *
최민혁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는 심지어 스티븐이 찾아와도 바쁘다고 만나지 않았다. 지금은 KM 전자 기획 팀의 대답만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역시 다른 이들은 최민혁처럼 느긋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곳이 다름 아닌 미국 국방성이었다.
그들은 이지수 박사의 제안에 따라서 은근슬쩍 최민혁 실장과 손을 잡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렇다면 최민혁도 어느 정도 타협안을 제시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메이런 프로젝트의 연구원들도 딱히 과거 이지수 박사와 갈등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이는 달랐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카스 프리먼 국방성 차관이었다.
그가 메이런 프로젝트의 변화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이미 일이 어느 정도 다 끝난 후였다.
더욱이 그 일이 바로 KMBOOK에서 매입한 건물 사정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이 건물 매입에 최민혁 실장이 국방성 핑계를 댔다.
무려 1억 5천만 달러에 가까운 건물의 소유주인 건물주도 ‘국방부’, ‘보안’이라는 말에 쫄아서 건물을 매각했다. 주변 시가에 매각하기는 했지만 원래는 10년을 내다보고 팔 생각이 없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정을 알아봤다.
그런데 미국 국방성도 잘 몰랐다.
아니, 알기는 아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최민혁의 협박이 100% 사실인 건 아니었다.
건물주는 결국 열을 받아서 국방성과 최민혁 실장을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카스 프리먼 차관이 부랴부랴 이 일을 중재한 후에 최민혁 실장을 찾아왔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설마 우리 국방성 명의로 일을 진행한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길길이 날뛰는 카스 프리먼 차관의 모습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전형적인 관료인 카스 프리먼 차관은 무리수를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만 국방성 내에서 나름 고위직인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어째서 당신 말이 맞습니까. KMBOOK은 아직 방위산업 허가를 받은 기업이 아닙니다!”
“어차피 라이센스 줄 거 아닙니까?”
“우리 쪽에서 제안한 것은 다른 방산업체를 인수하는 거였습니다!”
정확히는 100% 지분 매입이 아니라 일부 지분을 사들이는 것이다.
실제로 방산업체 태반은 미국 정부가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봐서는 특혜 같아도 잘 들여다보면 전혀 아니올 시다였다.
최민혁은 어이가 없었지만 겉으로는 비웃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국방성 차관 자리 아닌가.
“저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세요.”
하지만 카스 프리먼 차관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최 실장 당신은 우리 미국이 당신네 조국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압니까. 한국 병력과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요격용 첨단 미사일 40기를 배치했습니다!”
실제로 방어용 미사일을 설치한 것은 사실이었다.
심지어 병력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 나온 제안이 더 있었다.
“지금은 사드 요격 미사일 배치를 검토 중입니다. 이 미사일은 패트리어트 미사일보다 훨씬 광범위한 지역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이게 다 동맹으로서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입니다!”
“사드라…….”
최민혁은 자신이 죽기 전에 뉴스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사드 미사일이란 말에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설마 사드 이야기를 지금 들은 줄은 몰랐다.
‘이때 사드 미사일 이야기가 나왔던가?’
하지만 이런 그의 감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죠. 애초에 당신네가 원하는 것은 이익 때문 아닙니까. 인공지능 무선 항공기 개발을 통해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볼 요량이죠.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자꾸 딴소리하면 저도 생각을 바꿀 겁니다.”
“최 실장!!!”
“아, 알았으니, 목소리 좀 낮추시죠. 귀가 아파서 짜증이 납니다.”
최민혁은 길길이 날뛰는 카스 프리먼 차관을 경비원을 통해서 쫓아 보낸 후에 고민에 빠졌다. 그는 무인 항공기의 가치가 생각보다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인 항공기, 인공지능 무인 드론은 확실히 가볍게 볼 물건은 아닌 것 같아.’
* * *
최민혁은 카스 프리먼 차관이 날뛰는 것을 보자 오히려 안도했다.
그는 굳이 자신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답답한 이들은 자신에게 뭔가 노리는 것이 있는 이들이니까.
그는 때문에 오히려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런 그의 시도는 틀리지 않았다.
불과 일주일 남짓한 사이에 박상기 차장이 보내온 애니 드론 사업성 보고서를 살피면서 내심 감탄하고 말았다.
“아, 이런 방식이 있구나.”
그도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애니 드론은 너무 앞서 나간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터리 소모에 따라서 성능을 제약한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
조성돈 팀장 역시 흐뭇한 표정이었다. 박상기 차장이 올린 보고서는 꽤 정교하면서도 무리수를 두지 않은 방법이었다.
다만 이 방법 역시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다.
“박 차장님에게 이 안건을 제대로 확인해 보라고 하세요. 필요하다면 연구소 쪽과 같이 진행해서 사업성을 제대로 확인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애니 드론에 대한 상업성을 확인하자 굳이 자신의 실책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렸다.
‘그렇다면 일을 좀 더 빨리 밀어붙여야지.’
그는 결국 메이런 프로젝트 진행을 좀 더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KMBOOK 내의 방산 시설 유치는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건물 리메이크는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거기다 기존 소형 비행장에 보안을 위한 설비도 추가했다.
무선 항공기를 개발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도록 신경을 썼다.
부족한 건물은 동시에 여러 업체에서 진행해서 추가적으로 건설했다.
건설 인력이 다른 건물에 비해서 3~4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건물은 미국 국방성에서도 보기 드문 보안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켜보던 KMBOOK 임직원들은 다들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저렇게까지 무리해서 일할 필요가 있나?”
“걱정도 팔자야. 우리 회사 걱정하는 것보다 더 미련한 짓은 없어. 이번에 복지로 추가된 초호화 요트를 타보면 그런 소리가 안 나올 거야.”
“아, 맞다. 요트.”
그랬다.
KM 전자 복지가 미국 내에 있는 KM 계열사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아니, 한국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KMBOOK 임직원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실상 방산업 관련 설비는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심지어 경비원 수준 역시 현역 군인 못지않았다.
알고 보니, 아는 지인도 있었다.
“마, 마크 소령님?”
“리암 중위?”
“충성.”
“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