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56화 (856/1,021)

#856.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여기 설명서가 있는데,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둘은 평소처럼 티격태격했다.

정성근 대리는 요즘 많이 커서 그런지 쉽게 물러나지도 않았다.

배종대 과장 역시 자존심이 상해서인지 계속 받아쳤다.

“…….”

박상기 차장은 밀려오는 두통에 이마를 잡았다. 그가 끼어든다고 두 사람의 행동이 달라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을 비롯한 기획실 직원은 다들 슬그머니 드론 주변에 와서 드론을 살폈다. 그들은 충격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드론은 놀랍게도 사람 말을 알아들었다.

아니, 사람을 눈으로 보고 판단했다.

기존 초도 모델에서 기능이 좀 더 발전된 인공지능 미니 드론이었다.

이지수 박사 팀이 나름 인공지능을 제법 개선한 것이었다.

다만 그들은 드론 애니에게 끼어들 수는 없었다.

정성근 대리가 냉큼 그들 눈치를 보면서 드론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애니야, 내 눈앞으로 와.]

[애니야, 내 얼굴 왼쪽으로 가봐.]

[애니야, 내 얼굴 오른쪽으로 가봐.]

[애니야, 내 손을 터치해 봐.]

[애니야, 댄스 한번 춰 봐.]

각각의 지시에 드론 애니는 즉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심지어 댄스를 춰보란 말에 허공에서 귀엽게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애니의 댄스 무대였다.

정성근 대리는 애니와 같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대놓고 불렀다.

드론 애니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익숙한 댄싱 음악을 플레이했다.

“…….”

배종대 과장을 비롯한 KM 전자 기획 팀은 다들 입을 벌린 채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정성근 대리의 능력이야 다들 알아준다.

그럼에도 애니 드론의 동작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정성근 대리는 춤이 익숙해지자 손짓으로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는데, 드론 애니는 그 동작에 따라서 회의실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다.

마치 귀여운 강아지 같았다.

안정적인 움직임이 다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소통 방식이었다.

정성근 대리가 시간이 갈수록 대충 말을 해도 드론 애니는 잘도 알아들었다.

“애니야, 만나서 반가워요.”

“넵, 주인님.”

시간이 지날수록 애니 드론은 사용자 정성근 대리의 취향을 파악했다. 말도 자연스러웠다. 심지어 유머도 보여주었다.

비록 데이터베이스에 남아 있는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지만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

박상기 차장은 큰 충격에 빠져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다른 팀원과는 달리 조성돈 팀장에게 인공지능 무인 드론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그때는 아 놀라운 미니 드론이구나 하는 정도의 인식이었다.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라도 인공지능 드론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인공지능 드론은 너무 나간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가 직접 마주한 드론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SF 영화에 소재로 삼아도 개연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준이었다.

결국 탄사가 이어졌다.

“와, 세상에!”

“맙소사, 이, 이게 드론이야?!”

“한동안 미국에 가 있어서 조용하다고 생각했는데, 저걸 만드는 중이었구나!!”

“드론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인지는 상상도 못 했네!!”

“와,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역시 최민혁 실장님!!!”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역량에 너무 놀라서 감탄만 계속했다.

대다수 기획 팀원이 놀란 이유는 애니 드론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기 때문이다.

정성근 대리의 손짓에 달랑 붙어서 애교까지 부리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감탄은 오래가지 않았다.

딱 10분 정도 하늘을 날던 드론은 최승진 직원이 한쪽에 설치해 놓은 전원 어댑터 쪽에 자동으로 내려앉았다.

배터리 충전 때문이었다.

배터리 조루였다.

배터리 게이지를 확인한 최승진 직원이 혀를 찼다.

“뭐야? 이거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잖아!”

초기 배터리값이 60% 정도였다곤 해도 배터리 소진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배종대 과장은 그 점을 오히려 옹호했다.

“에이, 이런 단점도 있어야지. 조금 전에 동작을 보고 그런 소리를 해?”

“그렇기는 하지만…….”

정성근 대리는 입맛을 다셨다. 그 역시 배종대 과장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아쉬워했다.

하지만 배터리 소모는 애니 드론을 사용하면 할수록 더 나빠졌다.

배터리 소모가 이상하게 더 빨라진 것이다. 대용량 배터리를 붙여놓았는데도 그랬다.

인공지능 동작 때문이었다.

복잡한 동작이 많아질수록 배터리 소모가 너무 심해졌다.

인공지능 기능을 업데이트한 것은 좋았지만, 배터리 소모는 말도 안 되게 심해진 것이다.

“…아, 이거 문제네.”

박상기 차장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미국에 있는 최민혁 실장이 갑자기 애니 드론을 보낸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애니 드론에 문제가 없었다면 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혁신적이기는 한데, 애매하네.’

* * *

최민혁은 애니 드론이 KM 전자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평소라면 지금 미국에서 진행하는 일 때문에 바빴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모든 일정을 다 취소한 채 기획 팀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골치 아프네, 미래가 너무 많이 바뀌었어.’

당장 그 자신이 흔든 샐로먼 브러더스, 타이거 펀드가 문제였다. 특히 샐로먼 브러더스는 자신 때문에 중국에 너무 많은 자금을 투자했다.

결국 샐로먼 브러더스는 운용 자금이 부족할 것이었다.

동남아 외환 위기가 생긴다고 해도 그 여파가 과연 한국까지 갈까.

‘정말 IMF가 발생할까? 아니, 그 흐름은 바뀌지 않을 거야. 다만 날짜는 변경되겠지.’

결국 그래 버리면 IMF에 따른 기업 도산 순서도 다 바뀔 것이다.

심지어 IMF 사태를 피해 가는 기업이 생길 수도 있었다.

‘KM 그룹이 그러니까.’

최민혁은 잠깐 전생과 현생 기억을 비교하면서 생길 가능성을 살피다가 두통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그의 내심을 잘 모르는 조성돈 팀장은 평소처럼 보고했다.

“박 차장이 일단 다른 프로젝트를 보류한 채 검토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결국 결론이 없는 상념을 떨친 채 드론 문제에 집중했다.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는 자레드 해리스 대령이 연락해 왔습니다. 국방부 내에 관련 보좌관을 소개하려는 것 같습니다.”

“방산업체 인수 때문인가?”

“아무래도 그게 큰 것 같습니다. 일단 방산업체 명단을 보내왔습니다.”

최민혁은 곧바로 손을 흔들어서 조성돈 팀장의 입을 막았다.

그는 조성돈 팀장이 내미는 방산업체 후보 명단도 보지 않았다.

“그 리스트는 아직 안 본 겁니다.”

“네?”

“제 말은, 굳이 우리가 서두를 것이 없다는 거죠. 우린 아쉬울 것이 없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기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그는 소련 붕괴 이후에 미국 방산업체의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메이저 방산업체를 제외하고는 인수합병 분위기에 빠질 테니 말이다.

밀리아머가 무리수를 둔 것도 이런 분위기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자칫 서두르다가는 부실한 방산업체를 떠안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물론 미래 가치는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조 팀장님도 분위기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그냥 방산업 인허가만 받는 것이 가장 좋아요. 드론 하나만 집중하는 게 좋으니까.”

“하지만 그건 분위기 봐서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난색을 표했다. 그가 자레드 해리스 대령을 비롯한 실무진을 만나본 결과 미국 국방성도 원하는 것이 있었다.

공짜가 아닌 셈이었다.

메이런 프로젝트 역시 마냥 공짜는 아니었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효율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다음 일은 메이런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완성되고 난 후에 진행할 일이었다.

최민혁이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 서둘렀다간 미국 국방성이 만들어 놓은 덫에 빠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

“밀리아머도 바보가 아닙니다. 국방성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척하지만,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에요.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우리에게 보복하기 시작할 겁니다.”

“…메이런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난 시점 말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애초에 미국 국방부, 정부, 밀리아머를 다 믿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탐욕의 크기를 잘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도 한 가지 실수를 인정합니다. 스마트폰 개발이 그 좋은 예죠. 욕심 때문에 너무 서둘러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그러지 말아야죠. 일단 우리 기획 팀 실력을 한번 두고 봅시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의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심각했다. 그는 자신의 전생 기억을 이용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으로 그럴 거냐는 좀 다른 문제였다.

‘일단 미래가 너무 바뀌었어.’

당장 이지수 박사, 미국 국방성, 밀리아머의 미래가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이제는 그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신이 실수했다.

그 실수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이럴 때는 내 주변의 인물을 최대한 활용해서 확실하게 리스크를 풀어가는 것이 좋겠지. 기획 팀이 그 좋은 예야. 일단 이들의 판단을 지켜보자.’

그는 정성근 대리를 비롯한 KM 전자 기획 팀을 떠올렸다. 각자 개성이 너무 강해서 서로 대립하는 것 같아도 일 하나는 확실하게 잘 풀어갔기 때문이다.

* * *

최민혁 실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상기 차장에게 연락해서 인공지능 미니 드론 사업성에 대해서 전력을 다해달라고 부탁했다.

박상기 차장으로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다만 그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기획 팀과 같이 애니 드론을 수십 차례 사용해 보고서야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업 유발 계수 관점에서 드론을 살펴보았다.

생산, 부가 가치와 같은 부분 말이다.

그런데 조루 드론은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박상기 차장은 뾰쪽한 대안을 찾지는 못했다.

애니 드론은 나름 장난감으로는 괜찮지만 써먹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정성근 대리는 크게 실망했다.

“이 안에 들어간 부품 숫자를 봐서는 적어도 100만 원은 넘을 겁니다.”

“이걸 100만 원에 누가 살까?”

“아니, 100만 원 더 이상입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보내온 애니 드론 서류 스펙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최저 가격대가 100만 원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부품 리스트에 적혀 있는 출처도 문제였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미국 나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황당하네.’

이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들어간 부품 가격보다 더 심각한 것은 출처였다.

다른 기획 팀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애니 드론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는 없었지만 실제로 써먹기에는 참 아쉬웠다.

배종대 과장만큼은 애니 드론을 앞에 두고 장난질을 계속 치면서 감탄했지만 말이다.

그는 급한 대로 삼 일 만에 올라온 팀원들의 제안서를 취합한 보고서를 살피면서 그들을 힐끗 훑었다.

하지만 당장은 뾰쪽한 대안이 없어서 다들 시선을 피했다.

다만 한 사람은 좀 달랐다.

바로 정성근 대리였다. 그는 이미 드론과 관련된 기사를 봤다. 심지어 최민혁 실장이 바라보는 경영 철학도 잘 알았다.

“최민혁 실장님은 드론 산업이 고속으로 성장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흐름을 따라야 합니다.”

박상기 차장은 따끔하게 말했다.

“추상적인 이야기는 말고.”

배종대 과장이 피식 웃었다.

“저도 공감입니다.”

정성근 대리는 두 사람의 타박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배터리 소모인데, 이것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꽤 쓸 만하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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