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3.
이 알고리즘은 수십 개의 센서와 수백 개의 제어 알고리즘과 결합하여 있었다.
단순히 단편적으로 접근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었다.
이 알고리즘은 단일 컴퓨터 알고리즘이 아니라 경험치를 토대로 복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후일 말하는 빅데이터 방식과 비슷했다.
거기에 특수한 보안 알고리즘까지.
덕분에 메이런 프로젝트의 연구 개발 속도는 서서히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멈추고야 말았다.
마크 프랭클린은 이 일을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실적이나 자금 문제가 아니었다. 이 인공지능 드론 기술은 미국 국익에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능력으로도 이 문제를 막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 기술은 단순히 천재라고 해서 어떻게 손을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는 결국 다른 대안이 없어서 일단 메이런 프로젝트에 달라붙어서 이 프로젝트의 생명이 유지되도록 손을 썼다.
그런데 갑자기 변화가 생겨났다.
밀리아머가 갑자기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뗀 것이었다.
그건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지금 당장은 가치가 없다고 해도 미래 전장에서의 가치는 다르기 때문이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자레드 해리스 대령을 찾아갔다.
“이지수 박사가 한 일이네.”
“네? 이지수 박사님이 능력이 있다는 건 알지만 밀리아머가 순순히 그 의견을 수긍할 리가 없을 텐데요?”
“그렇겠지.”
“아니,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마치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말했다.
“이지수 박사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문제지. 최민혁 실장이라고 하니까.”
“네? 아니, 최민혁 실장의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옵니까?”
“말했잖아. 이지수 박사가 메이런 프로젝트를 언급했는데, 그 배후가 최민혁 실장이라니까. 더욱이 최근 이들이 고안한 인공지능 무인 드론이 문제야. 여기에 메이런 프로젝트 기술이 일부 적용되었으니. 아니, 그 이상이겠지.”
사실 그도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다.
그가 내놓은 것은 FBI를 통해서 확보한 기술 자료였다.
다만 이 자료에는 인공지능 미니 드론과 기존 메이런 프로젝트의 차이가 대략적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사용된 기술이 다름 아닌 MP3, ARN, MPEG-2를 포함한 것이었다.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완벽한 내용은 아니었으니까.
“최민혁 실장이 배후에 있다고 봐야 해. 우리 처지에서는 메이런 프로젝트 완성이 꼭 필요해. 알잖아. 지금까지 한 삽질을. 이전처럼 그렇게 다시 시행착오를 할 수는 없어. 더욱이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 같으니, 더 반대하기 힘들지.”
한마디 한마디가 그냥 하는 게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뒤에서 뭔가 수작을 부리지 않고서야 절대 나올 수가 없는 말이었다.
국방성 역시 그걸 잘 안다.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지난 아픔을 경험하고서야 이지수 박사의 진정한 능력을 알았다.
이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는 메이런 프로젝트 때문에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지금은 메이런 프로젝트의 완성이 더 중요했다.
이게 되어야 스캔들 문제가 커지지 않으니까.
“…….”
마크 소령은 이 일의 배후에 최민혁 실장이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말문을 닫고 말았다. 그는 뒤늦게 정신을 차려서 허겁지겁 자료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지수 박사는 이곳을 떠난 후에 자기 나름대로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했다.
그것은 기존에 그녀가 해왔던 기술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특히 영상, 음성 인식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기술은 메이런 프로젝트에서 다루기는 했지만, 성과가 좋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이게 정말입니까?”
자레드 해리스 대령도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지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 다만 그가 한 성과는 이상한 정도로 메이런 프로젝트의 성과와 손발이 착착 맞아. 마치 메이런 프로젝트 내용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아직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모르시는 겁니까?”
“그래. 어쨌든 이번 일은 최민혁 실장이 원한 대로 넘어가는 것으로 결정했어.”
‘그랬군.’
이지수 박사를 끼워 넣으면 지금 돌아가는 일들은 모두 다 말이 된다.
그녀의 능력은 대체 불가능하니까.
굳이 의문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거기에 자본과 기술이 넘쳐난다는 최민혁 실장이 최종 보스라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국방성은 물론 최민혁 실장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능력을 원해서 타협했고 말이다.
그도 물론 바보는 아니었다. 이지수 박사가 굳이 메이런 프로젝트에 다시 손을 대려고 하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드웨어 때문일까?’
* * *
메이런 프로젝트 자체는 무인 항공기 개발이 목적이었다.
다만 이 프로젝트는 세부 항목으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포용했다.
그중에는 손과 같은 인공 관절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하부 팀에서 일부 담당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산업체 쪽에서 진행했다.
그들이 이지수 박사가 원한 대로 관절 부분을 만든 것이었다.
이 모든 게 자동화를 위해서였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이런 밑바닥 기술이 생각보다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지수 박사를 만날 날만 기다렸다.
그녀는 생각보다 빨리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만난 그녀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바뀐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KMBOOK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 뭔가 변화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다만 그 변화가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기 전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쪽에 다시 연락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런 그의 판단은 틀렸다.
불과 며칠 사이에 메이런 프로젝트가 다시 검토되기 시작했다.
국방성에서 다시 내려온 인력은 이전에 자신이 잘 아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마크 소령님, 오랜만입니다.”
그는 그제야 이지수 박사의 현황을 다시 살폈고, 최민혁 실장에 대한 것도 파악했다. 최민혁 실장의 자료를 들여다보고서야 흐름을 이해했다.
하지만 마크 프랭클린이 굳이 정치적인 문제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윗선의 지시를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지시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메이런 프로젝트의 자산을 한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 작업이 끝나면 관련 방산업체에 연락해서 다시 세팅하면 된다.
지시는 지시였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결국 메이런 관련 모든 장비를 군용기에 실었고, 윗선의 지시대로 이 화물을 한곳으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있었다.
“어? KMBOOK?”
그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이 프로젝트를 책임진 자레드 해리스 대령 역시 이곳에 도착해서 군용 모자를 위로 올린 채 한동안 물끄러미 KMBOOK 건물을 쳐다보았다.
“…뭔가 일이 있나 보군.”
마크 프랭클린 소령 역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국방성의 이번 일 처리는 이례적이었다.
“찔리는 것이 많나 봅니다.”
“일이 잘못되면 크게 비화될 수가 있으니까. 최소한의 세팅은 해놓고 싶은 거지.”
“이러면 문제가 없을까요?”
“아마 그 일을 파기 전에 다른 일이 더 크게 비약될 거야. 그걸 보는 거지.”
“설마 메이런 프로젝트가 이제 와서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이미 인공지능 미니 드론 모델까지 나왔잖아. 그렇다면 메이런 프로젝트가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봐야지.”
“하긴 그렇게 보면, 또 그렇군요.”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이 갑작스러운 일 처리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꼭 일을 이렇게 해야 하나?’
* * *
최민혁 실장 역시 KMBOOK 옆 건물과 부지를 사들여서 일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잘하는 일인가 싶었다.
CES 전시회가 아니라 다른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 재무부가 자신에게 한 일을 다시 떠올렸다.
정확히는 미국 하원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말이다.
물론 물밑에서 누군가 약을 쳤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일이 앞으로 계속되리라는 것이 문제였다.
대안이 필요했다.
미국 정부를 견제할 방법이 말이다.
그런 장벽이 없다면 CES 전시회 이후에 견제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는 아마 모든 일에 제동이 걸릴 수가 있어. 방산업체 라이센스는 아예 얻기가 어렵겠지.’
생각보다는 많은 규제와 압력을 받을 수 있었다.
그건 곤란했다.
최민혁은 CES 전시회 전에 비밀 무기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다만 조성돈 팀장은 피곤한 얼굴이었다.
“다행히 건물 매입은 어떻게 잘 해결했습니다.”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고요?”
“가격을 좀 더 올려달라고 했는데, 그 부분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으로 했습니다.”
“좋네요.”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는 CES 전시회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굳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미국 재무부 미팅만 없었다면 이렇게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달랐습니다. 저에게 경고장을 제시했습니다.”
“…이미 ARN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협상을 본 것이 아닙니까?”
최민혁 실장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아니에요.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개인적인 문제도 있어서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네? 개인적인 문제라뇨?”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데니스 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미 보고서를 올렸으니, 어느 정도는 알 겁니다. 이지수 박사의 아버지죠. 문제는 이분이 지금 밀리아머 재무 팀에 있다는 겁니다.”
“설마 이분이 최 실장님에게…….”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추측인데, 아마 이지수 박사 때문일 겁니다. 이지수 박사를 인질로 밀리아머에 끌어들였을 겁니다.
조성돈 팀장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메이런 프로젝트의 가치를 떠올리자 수긍하고 말았다.
밀리아머가 이지수 박사를 그만큼 높이 평가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이지수 박사가 왜 이걸 몰랐을까요?”
최민혁 실장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확실하지는 않은데,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안 좋습니다. 거의 원수지간이라고 봐도 됩니다. 갈등이 생각보다 심합니다. 그러니 서로의 사정을 잘 모를 겁니다. 밀리아머는 아마 그런 틈을 파고들었을 거고요.”
“하.”
조성돈 팀장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의 안색은 좋지가 않았다. 이지수 박사에 대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서야 두 사람의 지금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야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조금씩 확신했다. 더욱이 데니스 리에게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차라리 빨리 이지수 박사를 만난 것이 잘한 선택인 것 같아. 다만 앞으로가 문제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그렇게 보면 한국의 일도 간과하기 힘들다.
그는 이미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풀려가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최용욱 회장에게 연락해 봤다.
‘정확히는 민수 형하고, 둘째 큰어머니겠지. 이상하게 연락이 없어.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건가? 확인은 해봐야겠어.’
* * *
최용욱 회장의 KD 통신, KD LCD 지분 매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언론에서 살짝 끼어들어서 문제가 잠깐 되나 싶었지만, 재정경제원이 중간에서 손을 썼다.
최용욱 회장 역시 지분 매각 과정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현금을 받고 나서는 희희낙락했다. 최종적으로 나온 매각 대금 액수가 무려 10억 달러를 넘긴 것이었다.
그가 최민혁 실장에게서 전화를 받자 손자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김여정에게 전화를 걸어서 최소한 손자 최민혁 실장에게 감사를 해야 하지 않으냐는 말 한마디 정도였다.
김여정은 뒤늦게 최용욱 회장의 전화를 받고는 화들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