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46화 (843/1,021)

#846.

제임스 러너 이사가 비록 한국에 와 있지만 샐로먼 브러더스 내에서는 나름의 영향력이 있었다. 그는 때문에 최문경 부회장과의 일을 본사 측에 피력했다.

최문경 부회장과의 사업적인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의 투자 성향이 샐로먼 브러더스와 맞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최문경 부회장의 자산 대다수는 최병문 상무의 놀라운 투자 성과 덕분에 불린 것이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문경 부회장을 높이 평가한 데에도 최병문의 친형이라는 점이 컸다.

그런데 최병문 사후에 최문경 부회장의 행보는 사뭇 실망적이었다.

더욱이 최문경 부회장의 가장 큰 문제는 능력도 없는데, 욕심만 많다는 거다.

실제로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는 최문경 부회장과 같이 손을 잡은 후에 천문학적인 손실만 봤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려 나가자 쾌재를 불렀다.

그가 최문경 부회장의 방문을 받은 것은 샐로먼 브러더스 이사회에서 최문경 부회장을 어떻게 관리할지 1차적으로 결론이 난 것을 축하할 때였다.

최문경 부회장도 제임스 러너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알자 말을 높였다.

“이거 제가 자리를 방해한 건가요?”

제임스 러너 이사는 자신의 측근을 사무실에서 내보낸 후에 최문경 부회장과 마주했다. 그는 한숨부터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실무진의 대다수는 최문경 부회장의 관계를 몰라서 이전처럼 대우한 것이었다.

“…어쩐 일입니까?”

“우리 이러지 맙시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하루 이틀 아는 사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가 높이 평가한 사람은 최병문 상무였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최병문 상무’ 이름이 나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었다.

“민혁이 그놈이 수작을 부리는데, 이렇게 내부 갈등이나 하는 것은 자멸만 재촉할 뿐입니다!”

“…최민혁 실장이라니, 무슨 일을 말하는 겁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최근 한국에 귀환한 최민혁이 무슨 일을 하는지 하나씩 설명했다. 그는 ETRI 내부 투자에 대한 점을 강조했다.

“ETRI 쪽에 미리 손을 써 두지 않았다면 이전에 늘 호구처럼 당한 것처럼 최민혁에게 무선랜 관련 원천기술을 다 빼앗기고 말았을 겁니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 KD 통신은 타격이 엄청났을 겁니다!”

“…….”

제임스 러너 이사는 최문경 부회장이 푸념과 함께 내민 신기섭 실장의 보고서를 읽었다. 그는 이번에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충격적인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논리대로라면 IP 시티폰의 단점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에게 잠깐 양해를 구한 후에 측근을 불러 긴급 회의까지 열었다. 전문가에게도 전화상으로 급하게 문의도 했다.

이후에 다시 자기 사무실로 돌아와서 최문경 부회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내심 갈등했다. 최문경 부회장과는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하고 엮인 사업을 단순하게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이미 최민혁 실장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최문경 부회장의 이름으로 특허 출원까지 해놓았기 때문이다.

‘기가 막히네.’

그가 원한 것은 시간을 두고 사업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섭 실장의 관련 보고서에 대한 실무진 평가 말을 다시 되새기면서 다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젠 최문경 부회장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번 일은 최민혁 실장이 아니라 최문경 부회장이 말썽이었다.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급하게 내가 일을 처리해 놓았으니,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아버지가 사들인 지분은 다 인수해야 합니다. 그게 민혁이 그놈의 손에 들어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이마를 짚었다. 갑자기 자본이 들어갈 곳이 생겼다. 더욱이 무시할 만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지금까지 KD 통신에 들어간 자본이 있으니.’

* * *

제임스 러너 이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특히 KD 통신 경영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지켜봤다. 최용욱 회장의 자금이 늘어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KD 통신 자체가 KM 그룹과 DL 그룹이 공동 출자한 회사였다.

최용욱 회장은 KD 통신에 대한 투자를 알게 모르게 계속 늘려갔고 말이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동거이기는 했지만, 최용욱 회장의 자금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특히 KD 통신 적자가 늘어날수록 말이다.

초기 투자 회사에게 투자를 더 늘리는 것도 한 대안이었다.

적자폭이 확대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샐로먼 브러더스 내부에서 계속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미묘한 시기에 최민혁 실장이 끼어들었으니.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는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급하게 신기섭 실장의 보고서를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다였다.

최민혁 실장이 왜 이제 와서 움직이는지도 깨달았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무리수에 치를 떨었다.

결국 상황이 빠르게 변했다.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 측에서 최용욱 회장의 지분 전체를 다 사들이는 것으로 말이다.

10억 달러가 안 되는 자금 정도는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있어서 무리는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는 손자 최민혁이 손을 쓴다는 것은 알았지만 일이 이렇게 풀려갈지는 몰랐다.

“…이건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잘된 일입니다.”

“이 일이 잘하는 일인지 판단할 수는 없어. 내가 문경이 때문에 KD 통신 지분 매입을 늘린 것이 아니야.”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여전히 집착을 버리지 못한 최용욱 회장에게 냉랭하게 말했다.

“잘 생각해 보시면, 할아버지가 원한 꿈은 KM 그룹을 통째로 앗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할아버지가 최두진 사장 명의로 지분을 매입한 것 말입니다. 자칫하면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분 사이도 틀어질 겁니다.”

“…….”

최용욱 회장은 잠깐 다시 고민하나 싶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도 CDMA 기술에 대해서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더욱이 미국 정부가 지금처럼 CDMA 사업을 밀어준다면 결과는 더 빨리 나올 것이다.

‘이 CDMA 사업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것이 민혁이 저 녀석이었으니.’

결국 지금 생각해 보면, 최민혁은 이미 이 판을 다 짜놓고 밀어붙인 셈이다.

사실 이것 자체는 아무리 봐도 잘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장승일 실장에게 지시해서 KD 통신, KD LCD 지분을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이 녀석 이야기가 다 맞았으니. 아니, 맞게 돌아가도록 손을 썼다고 봐야지.’

최용욱 회장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손자 최민혁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자칫하면 그 역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딱 한마디만 남겼다.

“잘하신 결정입니다. 아마 1년 후에는 이 말의 의미를 아시게 될 겁니다.”

“…….”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의 말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의 말에서 섬뜩한 한기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 * *

KD 통신, KD LCD 지분 매각 이야기는 뉴스에서 잠깐 언급되는 정도로 끝났다.

제임스 러너 이사가 한국 언론사 쪽에 손을 썼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정부 쪽에서 샐로먼 브러더스의 요청을 받아서 도움을 주었다.

다만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결국 다른 채널을 통해서 자금을 들여와야 했다.

최민혁은 이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투기 자본이 어떤 식으로 국내에 스며드는지 알았다.

‘방법이 참 많구나.’

애초에 재정경제원 이환채 차관이 관련되어 있는 일이었다.

이것 역시 음모론 따위가 아니었다.

재정경제원은 외국 자본을 유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수수료 명목을 챙기는 일이었다.

‘KD 통신만 파산하면, 아무리 샐로먼 브러더스라도 휘청할 거야.’

최민혁은 히죽 웃었다. 그가 만든 함정이 생각보다는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더 KD 통신에 신경 쓸 일이 없다고 판단하자 미국 일에 다시 집중했다.

메이런 프로젝트 문제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미국 국방성이 당연히 이 일에 관심을 둘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뭐야? 아니, 일을 어떻게 하자는 소리야?]

클린턴 대통령은 황당한 얼굴이었다.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차마 클린턴 대통령의 눈빛을 직접 마주하지 못했다.

서머스 부장관이 설친 덕분에 얼마 전에 메이런 프로젝트 담당자에게서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재무부 측에서 계속 일을 파고 들어갑니다. 이러다가 만약 청문회라도 열리면 진짜 큰일 납니다!]

불법적인 일을 벌인 주 세력은 다름 아닌 테일러 가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준 이들 중에는 국방성 산하 장교와 장성들이 제법 있었다.

이 일은 청문회가 파고들면 큰일이 날 일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테일러 가문이 중간에 나서서 이리저리 중재했다.

거기에는 언론사마저 포함된다.

하지만 모든 언론 입에 재갈을 물릴 수는 없었다.

잊을 만 하면 언론사에서 터뜨리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그 소스가 다름 아닌 한국에 잠시 몸을 피해 있던 최민혁 실장이었고 말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게 사실은…….”

눈치를 보던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도 결국 테일러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돌려서 늘어놓았다.

[대통령님도 잘 아시는 사실이지만…….]

다행스러운 사실은 클린턴 대통령은 테일러 가문과는 큰 유착 관계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이번 일도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혀를 찼다.

손끝에 가시 같은 이름이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아직 최민혁 실장 일이 안 끝난 겁니까?!”

“…죄송합니다.”

“최민혁 실장은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게…….”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갑자기 한국으로 도피한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이유도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신기섭 실장의 무선랜 관련 원천기술을 이용해서 KD 통신 사업 가치를 끌어올리려고 한 것 말이다.

애초에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 투자한 이들은 더더욱 이 내용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는 다들 소극적이었다.

클린턴 대통령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한 단계 건너 이미 최민혁 실장이 지금 뭘 하는지 정도는 보고받았다.

다만 그 역시 ‘최민혁 실장’ 이름이 왜 미국 국무회의에서 나와야 되는 건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그 말을 듣자는 게 아닙니다. 왜 한국 기업가 이름을 지금 국무회의에서 정식으로 논해야 하는 겁니까?”

조용히 지켜만 보던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최민혁 실장이 무시할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주먹으로 회의실 테이블을 쾅쾅 치면서 소리쳤다.

“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 한국 정부와도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최민혁 실장 이름이 한국 정부 고위 관료 입에서도 간혹 나옵니다.”

물론 이 일은 재무부 때문이었다.

한국 재정경제원에서도 이제는 최민혁 실장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최민혁 실장의 독단적인 몇몇 행위가 문제였다.

분명 최민혁 실장 본인이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재정경제원은 최민혁 실장이 자신들을 무시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다만 자금은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용욱 회장의 지분을 매입하는 거래가 이루어진 터라 지금은 조용할 뿐이다.

“…최민혁 실장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재선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텐데, 왜 이런 소모성 이야기만 하는 겁니까!”

* * *

최민혁은 의외로 자기를 놓고 생각보다 주변이 조용한 것에 고개를 갸웃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용욱 회장의 KD 통신, KD LCD 지분 인수 거래가 나온 후에 자기 이야기가 쑥 들어갔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놈들이네.’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태에 대한 말들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다 사라졌다.

최민혁은 내심 웃고 말았다. 자신이 만든 일 때문에 샐로먼 브러더스와 최문경 부회장이 침묵한 것도, 그들의 미래도 말이다.

하지만 미국의 행패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 불구경이나 하려다가 슬쩍 태도를 바꾸어서 이지수 박사에게 메이런 프로젝트 실무진과 만나라고 지시를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