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40화 (837/1,021)

#840.

아마 기술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특허가 엮여 있어서 골치 아플 사안이었다. 국방성 무인 드론 특허를 다 인수하면 될 일이지만 그 일이 쉽게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더 웃기는 일은 따로 있었다.

조성돈 팀장은 당혹스러운 어조로 한 가지 사실을 보고했다.

“에플 공매도 물량이 갑자기 5억 달러 가까이 더 늘었습니다.”

“그게 이상한 건가요?”

“그게… 아무래도 최 실장님이 한국에 온 이후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재미있네요. 설마 제가 미국에 체류했기 때문에 에플 공매도를 비롯한 다른 일이 다 보류되었다고 하시는 겁니까?”

“네. 심지어 미국 국방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메이런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자레드 해리스 대령이 이지수 박사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건 처음 듣는 얘기군요.”

“이지수 박사님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어서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따로 정식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일어나는 일 정도는 알려왔습니다.”

사실 자레드 해리스 대령이 이지수 박사를 만난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그 역시 지지부진한 메이런 프로젝트 때문에 윗선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는 중이었다.

테일러 박사가 중간에 수작을 부린 덕분이다.

원래는 자레드 해리스 대령 역시 메이런 프로젝트에 책임을 지고 은퇴하려고 했다. 이지수 박사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최상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이지수 박사를 밀어준 덕분에 상황이 달라졌다.

국방성 윗선에서도 다시 메이런 프로젝트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인공지능 무선 드론 때문인가요?”

“네. 아무래도 미국 정보기관을 통해서 정보를 얻은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지수 박사를 만난 걸로 보입니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님이 이지수 박사님에게 필요하다면 미국 국방성과 이야기해도 좋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 덕분에 이지수 박사는 능동적으로 자레드 해리스 대령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다 메이런 프로젝트의 성공을 원했다.

생존을 위해서다.

다른 한편으로 국익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말이다.

최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조 팀장님 말씀은 저보고 당분간은 한국 일에 충실하란 뜻입니까?”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맞구먼.’

최민혁은 당황하는 조성돈 팀장의 표정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확실히 그가 미국에서 단기간에 이리저리 뛰면서 한 일이 제법 많았다. 그중에 끝판왕이 바로 인공지능 무인 드론이었다.

과연 그 광경을 본 투자자나 적이 어떤 생각을 할까.

부담스럽게 볼 것이 분명했다.

최민혁은 그제야 자신이 벌여놓은 미국 일들을 한번 쭉 떠올려 봤다. 확실히 무리하게 밀어붙여서 될 일은 아니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한국 일을 먼저 마무리 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긴 너무 서둘렀어.’

생각해 보면, 지금 자신은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게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 그의 태도는 틀리지 않았다.

* * *

최민혁은 국내에 있는 틈에 미국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았다.

우선 특이점이라면 에플 주가가 다시 50달러 선으로 내려앉았다.

아이컴과 KMP-02B에 대한 안 좋은 평가가 나왔다.

특히 아이컴은 과장 광고 의혹까지 생겨났다.

스티븐이 고소를 당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황당했지만, 손을 쓰지 않았다. 스티븐 사건이 오히려 노이즈마케팅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다.

‘설마 가짜 CF 광고에 대한 정보를 얻은 걸까?’

다만 그 정보는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알았다면 뭔가 해도 했을 테니 말이다.

그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장승일 실장 방문을 받았다.

‘뭘 그리 고민할 것이 있다고 이제야 사람을 보내는 걸까. 역시 인내가 답이야. 하여간에 할아버지도 참 속 보이는 수작을 부리시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게요.”

최민혁은 여유를 가지자 천천히 장승일 실장 이모저모를 살폈다.

장승일 실장은 마치 좀비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로에 쩔어서 내일 당장 관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한 가지 사라진 것은 있었다.

바로 최민혁을 대하는 태도 말이다.

이제는 마치 왕을 받드는 충신처럼 고개를 숙이고, 시선도 깔았다.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때요?”

“일이 많아진 덕분에 불만이 좀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인센티브와 사내 복지가 좋아졌습니다. 특히 최민혁 실장님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그래요?”

“KM 전자의 사내 복지 때문에 차라리 최민혁 실장님이 KM 그룹을 물려받기를 원하는 이들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KM 전자의 사내 복지는 단순히 복지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초호화 요트를 포함해서 다양한 초복지를 구현했기 때문이다.

만약 최문경 부회장이 회장이 된다면 이런 복지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오히려 구조조정이라는 쓰나미가 닥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그만큼 최문경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의심을 한 이들이 많았다.

“KD 통신 때문에 그럽니까?”

“KM 센서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 회사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계속해 보세요.”

장승일 실장은 딱히 아부하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주로 KM 센서의 미래 성장 가치에 관한 이야기였다.

“불과 설립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서 KM 산업을 제외한 KM 그룹 계열사 중에서 독보적인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이제는 최민혁 실장님의 경영 능력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최문경 부회장과 비교한 경영 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직원 태반은 최민혁 실장에게 표를 던지는 모양세였다.

금칠의 파노라마였다.

최민혁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장 실장님, 왜 그러세요?”

장승일 실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어지간해서는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질린 기색이었다.

“이번에 최 실장님이 회장님을 상대로 진행한 일을 보고 느낀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그러면 제 의도대로 우리 할아버지를 설득하셨어요?”

“네.”

최민혁도 그냥 던져본 말에 장승일 실장이 오케이라고 대답하자 감탄했다.

“오, 정말입니까?”

장승일 실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민혁 실장님이 미국에서 한 일을 고려하면 돕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면 회장님이 이미 결정을 했나 보군요.”

“…네.”

장승일 실장은 막상 최민혁 실장을 만나자 하고 싶었던 수많은 질문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는 오랜만에 만나 최민혁 실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 풋내기 기획실장이 아니었다.

아니, 이미 몇 달 전에도 달랐지만, 지금은 그때와 격이 달라졌다.

차라리 그룹을 움직이는 최용욱 회장 못지않은 기질이 가득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과거 전경련에서 만난 오성 그룹의 안건민 회장 못지않았다.

‘그럴 수가 있나? 오성 그룹 직원 숫자와 KM 전자 직원 숫자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아. 역시 세상에 대한 안목 때문일까?’

답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장승을 실장은 새삼 놀라운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최 실장님도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에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손사래를 쳤다.

“그런 사탕발림은 듣고 싶지 않네요. 그보다 우리 회장님은 제가 제안한 지분 매각 건에 대해서 어떻게 하신다고 그래요?”

그는 적극적으로 최용욱 회장을 설득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최민혁 실장님이 원한 그대로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호.”

최민혁은 자신이 계획을 짜기는 했지만, 솔직히 계획대로 될 것이라 확신하지는 못했다. 최용욱 회장의 생각은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장 실장님이 의도적으로 제 일을 더 도와준 것이 이 부분입니까?”

“…네.”

“좋습니다. 제가 그 공적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신기하네요. 장승일 실장님이 사적으로 절 밀어줄 리가 없을 테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겁니까?”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 실장 눈치를 보다가 CDMA와 IP 시티폰 관련 보고서를 슬쩍 내밀었다.

“네. 솔직히 인정하겠습니다. 전 실장님보다 회사의 미래를 더 걱정합니다. 사실 우리 기획 조정실에서도 나름 계속 이 사업을 검토해 왔습니다. 이 보고서가 그 자료입니다.”

“호.”

최민혁은 흥미로운 눈길로 보고서를 하나씩 살폈다. 다만 그는 곧 인상을 찡그렸다. 보고서 골격 자체가 꼭 최민혁 자신의 스토킹 리스트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검토 사안의 뼈대는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진행한 사업 기준이었다.

그 사업을 하나씩 거미줄처럼 엮어서 카테고리로 만들었다.

당장 미국 재무부 일만 했다.

이 일 역시 KM 센서라는 계열사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계열사는 ARN이라는 사업 시장을 넓히는 행동대장 역할이다.

KM DVR 아이템만 해도 그렇다. 응용 범위는 무시무시했다.

문제는 이런 사업 하나하나가 너무 방대해서 다른 쪽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최민혁 실장이 왜 일을 이렇게 난잡하게 진행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전체를 하나로 다 엮어보면, 핵심 카테고리가 나온다.

그중에 하나가 CDMA였다.

그리고 이 사업이 영향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IP 시티폰이었다.

“무선랜 관련 기술은 근본적으로 도달 범위가 너무 좁습니다. 로밍도 불가능하고, 사용자가 많아지면 치명적입니다. 따라서 중국에는 전혀 맞지 않은 서비스인 셈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중국 IP 시티폰 사업의 미래는 정해져 있습니다.”

주섬주섬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날카로운 비수와 같았다.

이런 자료를 샐로먼 브러더스가 봤다면 당장 태세를 바꿀 것이 분명했다.

최민혁 처지에서도 가슴이 서늘한 보고서였다.

“…할아버지도 이 보고서를 보셨나요?”

“네.”

“그렇군요. 으음,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마세요. 특히 우리 최문경 부회장님 말입니다.”

“이 최종 보고서를 아는 사람은 기조실 내에도 두 사람뿐입니다. 나머지 한 사람은 회장님이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훌륭합니다.”

최민혁은 감탄스러운 눈길로 장승일 실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단아한 모습과 행동만 봐서는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잘 아시죠?”

“압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게 곧 KM 그룹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도 아세요?”

“…네.”

장승일 실장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가 굳이 최민혁 실장에게 충성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KM 그룹에 헌신했다.

최민혁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성돈 팀장이 샐로먼 브러더스에 있었다면 생각보다는 일이 꼬였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도와주실 겁니까?”

“네. 그런데 문제는 부회장님입니다. 만약 부회장님이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차입금을 받아서 지분을 다 흡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손을 대기 어렵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아는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욕심도 많지만 신중한 사람입니다. 그런 점이 장점이죠. 절대로 혼자 다 먹지 않습니다. 특히 샐로먼 브러더스가 우리 부회장님을 좋아하죠.”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깔아놓은 덫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짐작했다.

그는 솔직히 최민혁 실장이 사람인지 의심스럽기만 했다.

최민혁 실장이 깔아놓은 덫과 관련된 자본 규모는 자신이 아는 바로 무려 10조가 넘었다. 아니, 자본이 문제가 아니라 인력과 기술은 그의 상식 범위를 아득히 넘어섰다.

이제까지는 설마 했는데, 오늘 최민혁 실장을 보고서야 그것이 거대한 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지만 입을 쿡 다문 채 허리를 정중하게 숙였다가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최민혁은 새삼 자신이 KM 전자에 남은 선택이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모르는 인재를 무조건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세계적인 인재라고 막 끌어안다가는 언제라도 뒤통수를 맞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안 부리기를 잘했어. 역시 검증된 인재가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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