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38화 (835/1,021)

#838.

최용욱 회장은 화를 내려다가 문득 KD 통신과 관련해서 손자 최민혁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야기는 짧았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의 의견은 늘 바뀌지 않았다.

투자하되 무리수를 두지 말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말을 무시한 채 그 자신이 이 사업이 될 것이라 섣부르게 판단했다.

‘맙소사!’

최민혁이 슬쩍 패배자인 양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실수를 시인했다.

“할아버지, 이번 일은 제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정이 가득한 사과로 보였다.

다만 최민혁의 내심은 좀 달랐다.

그는 악어의 눈물을 보이기 위해서 전쟁의 괴로운 기억을 떠올렸다.

나름 진심 어린 눈물이었다.

진짜로 말이다.

“…….”

진지한 사과에도 최용욱 회장은 그 어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의 사과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에플 투자로 번 수익뿐만 아니라 다른 지인들의 자금도 퍼부었다.

그들 역시 이 사실을 알면 분노할 것이다.

그는 내심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정원 벤치에 앉아서 일단 감정을 추슬렀다.

“하…….”

최용욱 회장은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그는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10분 동안 단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힐끗 손자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두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눈물 같지가 않았다.

‘이놈이 설마 알고 있었던 걸까?’

동기는 아주 간단했다.

KD 통신, KD LCD 투자에는 최문경 부회장 자금 역시 들어갔다. 그 자금 태반은 DL 그룹에서 빌리기도 했고 말이다.

‘DL 그룹 강 회장이 이 사실을 알면 화병으로 죽을지도 모르겠어. 허, 생각해 보니, 꼭 날 노리는 것만은 아니었어.’

자신은 미끼였다.

자신이 먼저 수천억을 퍼부으니, 다른 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지금 강 회장이 문제가 아니잖아!’

그가 당장 자신이 KD 통신에 투자한 자금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그가 퍼부은 자금은 무려 5천억이 넘었다.

그만큼 손자 최민혁을 믿었다.

손자 최민혁이 고안한 기술이 아니었다면 이런 투자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민혁 역시 그런 점을 잘 알았다. 그가 의도한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진실을 최용욱 회장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대안이 있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얼마나 큰 소리였는지 저택 입구에 나와 있는 최민수와 김여정이 쳐다보았다.

“저, 정말이야?”

최민혁 역시 힐끗 최민수 표정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은 가능합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급히 온 것입니다.”

최용욱 회장은 최민수와 관련된 고민 따위는 머리에서 지운 채 소리쳤다.

“마, 말해봐라.”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 할아버지 지분을 다 매각하는 겁니다.”

“…그들이 내 지분을 다 매입할지는 알 수가 없다.”

“그거야 제가 하기 나름입니다.”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쓰겠다고 하자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지금 봐서는 손자 최민혁은 이미 이 상황까지 고려했다.

그는 결국 몇 번 고민하다가 손자 최민혁이 내민 보고서를 다시 살피면서 갈등했다. 솔직히 아직 결정이 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손자 최민혁의 예측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지한 눈을 한 손자 최민혁 눈빛을 보고서야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제까지 최민혁 말을 들어서 손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돈이 많아. 정말 많지. 네 말은 이런 샐로먼 브러더스를 부추겨서 내 지분에 매달리게 하겠다는 거지? 쉽지 않을 거다.”

최민혁은 그제야 씩 웃었다.

“일을 쉽게 만들면 됩니다. 일테면 제가 오늘 한국에 온 이유가 할아버지가 보유한 KD 통신 지분에 욕심내는 것으로 하면 됩니다. 오늘 미팅 때문에 서로 싸웠고 말입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연기입니다. 할아버지가 큰소리를 치시고요. 저는 거기에 대응할 겁니다.”

실제로 최민혁이 바로 소리쳤다.

[할아버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KD 통신, KD LCD는 이미 상황이 심각한 겁니다. 지금 당장 조처를 해야 합니다. 네,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지분을 저에게 다 넘겨주는 조건입니다!]

[…너, 지금 할아비를 협박하자는 거냐?!!!]

[다 할아버지를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두 회사 지분은 제값에 처리하겠습니다!!!]

최민혁의 격한 목소리는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 실장 대응에 맞추면서도 내심 감탄했다.

그는 힐끗 최민수와 김여정을 쳐다보았다. 현관에 나와 있던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란 채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최민혁은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었다.

“잘하셨습니다. 이 정보가 우리 최문경 부회장님 귀에 들어가야 하고요. 운 좋게 민수 형이 흘린 정보를 최문경 부회장님이 확보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 지분은 최종적으로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넘어갈 겁니다.”

“…너.”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최민혁의 의도는 알고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도 손자 최민혁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최민수에게 KD 통신 지분 일부를 넘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당당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KD 통신 지분이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IP 시티폰 사업이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최민혁은 다시 갈등하는 최용욱 회장에게 냉정히 말했다.

“어차피 최문경 부회장님의 지분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IP 시티폰이 대박을 쳐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다만 할아버지가 가진 지분은 좀 그렇죠. 지분을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

최용욱 회장은 한동안 손자 최민혁의 얼굴을 째려보았다.

그도 뒤늦게야 이 일이 최문경 부회장까지 노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만 그도 간섭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최민혁 말처럼 사업이 대박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떠올린 것은 손자 민혁의 예측 능력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을 고려하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최민혁이 최용욱 회장 얼굴을 보면서 넌지시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샐로먼 브러더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복수라면 복수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제 말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최용욱 회장은 말을 하려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도 그 일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은 결국 내 지분을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다 넘기면 되느냐?”

“이왕이면 KD LCD 지분도 다 매각하세요.”

“…그것까지 말이야?”

“네.”

“…알겠다.”

최용욱 회장은 결국 최민혁 제안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KD 통신 적자는 당연한 이야기고, KD LCD 역시 상황이 좋지가 않았다. 당장 시제품 샘플은 도저히 상업적으로 판매하기 힘들 정도로 품질이 좋지가 않았다.

오성 전자나 LH 전자가 만든 IPS-LCD를 보고 쉽게 이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아니었다. 이제 막 시작한 KD LCD 기술 수준은 오성 전자와 도저히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결국 3~4년은 더 필요했다.

실제로 오성 전자나 LH 전자 역시 상품 안정화를 위해서 더 시간을 투자하는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어. 다만…….’

그가 고민한 것은 KD 통신 지분 일부를 증여받은 최민수였다. 만약 손자 최민혁 예측대로 된다면 KD 통신 지분 가치는 똥값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내막을 말할 수가 없었다. 일단 자기 지분 매각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휴, 나도 모르겠다.’

* * *

지분 증여 문제는 이 자리에서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

최민수나 김여정 두 사람은 최민혁 실장과 최용욱 회장의 대립을 보면서 몸을 사렸다.

특히 최민수는 저택을 나서기가 무섭게 최문경 부회장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했다.

“…지분 매각이라.”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미국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최근 최민혁 실장의 미국 행보는 들쭉날쭉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 일을 내버려 두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최용욱 회장이 가진 KD 통신, KD LCD 지분을 노렸다.

솔직히 이런 일이 없었다면 그 자신이 이 지분을 조카 최민혁에게 넘기고 싶었다.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깊은 고심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의 의도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회사 다 최민혁 실장의 기술과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적자 폭이 너무 심했다.

“민수, 이번 일은 정말 중요하다.”

최민수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만 본 것이 아닙니다. 제 어머니와 같이 최민혁 실장과 회장님이 싸우는 것을 봤습니다. 필요하다면 저택 내의 CCTV를 구해서 보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 CCTV가 있었지.”

뭐 지금 당장은 그랬다.

아직 여유는 있으니 말이다.

그는 슬쩍 권재홍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선랜의 안정화 기술입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그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회장님 지분을 노리는 것이 말이 됩니다.”

“KD LCD 양산 기술도 이미 확보했다는 소리인가?”

“네. 그러면 지금 이 시점에서 두 회사의 주식을 헐값에 인수할 수 있습니다.”

“하.”

최문경 부회장은 이마를 잡았다. 사실 그도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에게 호구처럼 당하지 않았다면 다른 관점에서 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조카 최민혁 실장이 멍청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한 가지를 더 가정했다.

“최 실장이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핵심 기술을 넘기지 않았고, 기회를 노렸을 수도 있습니다. 공장 설비, 인력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랬다.

회사 설립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공장도 설립하고, 관련 생산 설비를 추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최문경 부회장조차 잘 아는 사실을 실제로 무리수를 둬서 밀어붙이다가 된통 당한 셈이었다.

그는 고민하다가 한 가지를 우선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장님에게 전화해서 지금, 아니, 내일 찾아뵈겠다고 연락해.”

“…알겠습니다. 저는 비서실 직원을 당장 호출해서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는 그제야 긴장한 최민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수고했다.”

“아, 아닙니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네 자리는 마련해 주마.”

“가, 감사합니다.”

최민수는 쾌재를 불렀다. 그는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KM 그룹 내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최민혁 이 새끼, 반드시 복수한다!’

* * *

최용욱 회장은 권재홍 비서실장을 통해서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는 손자 최민혁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는 장승일 실장에게 연락해서 KD 통신, KD LCD에 대해서 새벽 06:00까지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덕분에 불똥이 떨어진 것은 KM 그룹 기획 조정실이었다.

최용욱 회장이 이렇게 무리수를 둬서 지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장승일 실장은 물론 이 일이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미국 동선을 꼼꼼히 확인 중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최소한 미국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잘 알았다.

‘CES 때문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와서 최용욱 회장과 대립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더욱이 두 사람이 싸웠다니.

아마 작년이었다면 최민혁 실장이 미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랐다.

최민혁 실장이 최용욱 회장과 대판 싸워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장승일 실장은 결국 KD 통신, KD LCD 사업을 원점에서 검토했다. 대안 기술이 있다면 이 두 계열사가 초대박을 칠 수 있을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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