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
조성돈 팀장은 일차적으로 설치가 끝난 재무부 보안 건물 내의 몇 곳 사진을 보여주었다.
“음성 인식, 영상 인식이 끝나야 내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음성 인식이 단순한 보안이 아니었다.
영상 인식 기능이 같이 결합하여서 두 가지를 다 확인하기 때문이다.
일테면 녹음기나 사진을 이용해서 동일 인물과 관련된 정보를 내밀어도 소용이 없었다.
영상 인식은 단순히 얼굴만이 아니라 외형을 다 보기 때문이다.
키, 몸무게를 비롯한 사소한 모든 정보를 다 같이 말이다.
“이지수 박사가 이 KM DVR 총괄 시스템까지 같이 팔았는데, 이게 정말 물건입니다. 단순한 인식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그랬다.
SF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감시 프로그램 애니가 태어난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빅데이터 형태로 동작한다. 기존 인물 데이터를 누적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떤 우회 수단도 먹히지 않았다.
지켜보는 재무부 공무원의 모습도 보였다.
다들 입을 딱 벌린 채 경악한 모습이다.
몇몇 공무원 수십 명이 모여서 제대로 확인도 했다.
그들은 이 기술이 어떻게 가능한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어떤 재무부 직원은 DVR과 소통까지 했다.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
그것은 도저히 지금 이 시대의 기술처럼 보이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도 피식 웃었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 에플 CES 전시회를 비롯해 산적한 일이 산더미 같은데, 이런 일을 해야 해서 짜증이 났습니다. 다만 지금 결과를 보니,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번 일도 에플 CES 전시회가 동기를 제공했습니다. 만약 그 일에 매달리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를 잡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애들이 우리 기술을 보고 많이 놀란 눈치네요.”
“하드웨어 쪽보다는 오히려 인식 기술에 더 관심이 많은 눈치였습니다. 연방 정부 내에 보안을 요구하는 곳에서도 검토 중입니다.”
“그건 따로 처리해야겠군요.”
“계약이 까다롭기는 하지만 영업 측면에서 나쁘지 않습니다. 이번 계약 덕분에 추가 물량도 대폭 늘어났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흥분을 쉽기 감추지 못했다.
최민혁 역시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연방 정부 물량 때문에 다른 곳에서도 수입 요청이 들어오나 보군요.”
“네. 특히 거대 기업에서 요청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업종도 천차만별입니다. 이게 모두 미국 재무부 공입니다!”
KM DVR이 소녀 납치극을 통해서 언론을 알려졌을 때도 바이어가 관심을 뒀다. 다만 그때는 실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었다.
영업 팀이 구체적인 계약에 대해 검토를 할 정도이니까.
KM 센서의 하반기 실적은 KM 산업을 제외한 다른 어떤 계열사보다 높았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자들을 너무 믿지 마세요.”
조성돈 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이용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지금 재무부 분위기의 원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걸 안다고 뭐 달라지겠습니까. 지금은 미국 재무부에게서 최대한 이익을 뽑아먹어야 합니다!”
“그렇습니까?”
“네. 전 최 실장님이 재무부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계약을 썩 좋아한 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보면 미국 재무부를 이용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잘된 셈이죠.”
최민혁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조성돈 팀장이 미국 자본주의에 중독되어서 이전과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런데 숨기는 것이 도대체 뭘까? 하긴 이상한 점이 제법 있었지. 내가 블랙 리스트에 오른 것도 근거가 너무 약했으니까.’
* * *
최민혁은 딱히 재무부를 상대로 압박하거나 협박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협상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재무부 미팅에 대한 마무리를 해둬야 그다음이 쉽다고 생각했다.
서로 앙금이 남아 있으면, 결국 후환이 될 테니 말이다.
최민혁과 미국 재무부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아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있다고 한다면 재무부, 국방성 관련 요직의 인물이었다.
이런 이들 중에 있다고 한다면 역시 이 사태의 근원인 샐로먼 브러더스의 데릭 모건 이사였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그는 최민혁 실장, 미국 재무부, 미국 하원 사이에 갈등을 부추겼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갈등은 고사하고, 오히려 서로 손을 잡아가는 관계를 확인했다.
그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손을 쓰기 힘든 상황이었다.
바로 무인 드론 때문이었다.
국방성 내부의 고위직은 이 무인 드론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심지어 이 사실은 백악관에 보고가 들어간 사안이었다.
당시 이 보고를 들은 백악관 윗선은 이 무인 드론에 진지했다.
굳이 방산업체가 무리수를 둬도 그다지 손을 터치 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일에 최민혁 실장이 숟가락을 올린 상황이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크게 당황했다. 최민혁의 행보는 전혀 상상도 못 한 전개였다. 차라리 에플, ARN에만 집중했으면, 크게 염려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상황이 그렇게 안 좋습니까?”
킬리언 시몬스 이사 역시 데릭 모건 이사 지시를 받아서 움직였기에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다.
“최민혁 실장 쪽에 호감을 보이는 이들이 이번 사태로 꽤 늘어났습니다. 특히 국방성 고위 관료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결과가 나온 게 없잖습니까?”
“이지수 박사와 메이런 프로젝트의 내막을 아는 이들이 문제입니다. 그게 미국 국익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고위 관료가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 대립해도 국익을 위해서는 서로 손을 잡는다. 메이런 프로젝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메이런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파급 효과가 큰 기술이었다. 이를 위한 인공지능이 꼭 범용화된 인공지능일 필요는 없었다.
아니, 군사용 인공지능은 차라리 딱 지시에 따르기만 해도 좋았다.
“…….”
데릭 모건 이사는 ‘왜 굳이 일을 만들었냐고!’ 하는 뉘앙스로 째려보는 킬리언 시몬스 이사의 시선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일이 생각보다 지저분하게 흘러갔다.
“…뭐, 좋습니다, 그렇다고 합시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왜 이 사태를 계속 만든다고 생각합니까? 설마 우리 쪽에서 진행하는 일을 눈치를 챈 겁니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최문경 부회장이 더 큰 문제입니다. 최민혁 실장은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문경 부회장의 배후라는 음모론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슬쩍 데릭 모건 이사의 안색을 쳐다보았다. 혹시 자신의 추론이 맞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데릭 모건 이사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정말인가?’
그는 슬쩍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최문경 부회장을 정리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임스 러너 이사도 이 문제를 이미 지적했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이 무시할 만한 인물은 아니지만 이것 때문에 차후 큰 문제가 될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단순히 경고 정도가 아니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최문경 부회장과 꽤 긴밀한 관계였다.
그런데 그런 그조차 최문경 부회장을 정리하자고 주장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손으로 이마를 잡았다.
“그건 섣불리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아, 그 문제는 넘어가죠.”
“아니, 최문경 부회장이 결국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일 아닙니까. 둘은 KM 그룹 경영 승계권을 가지고 싸우는 단계이고요. 솔직히 지금의 최민혁 실장이 굳이 KM 그룹에 욕심낼 수준은 아닙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최문경 부회장 손을 들어줄 필요가 있습니까?!”
“…….”
데릭 모건 이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내심 크게 당황했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한국 지사장인 제임스 러너 이사와는 달리 소극적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공격적인 반응을 내세운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미국에서 최민혁 실장 일 때문이겠지.’
그는 솔직히 지금 최민혁 실장의 행동이 황당하기만 했다.
최민혁 실장은 한국에 돌아가도 벌써 한참 전에 돌아가야 했다.
그랬다면 재무부 미팅 일은 크게 비화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최민혁 실장이 계속 긁어서 부스럼을 낸 덕분에 이번 일을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 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서 뻗대다가는 일을 더 키울 것으로 판단했다.
“이미 지난 일에 대해 따지는 것은 너무 늦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하죠. 최민혁 실장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도록 손을 씁시다.”
“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데릭 모건 이사는 냉랭하게 소리쳤다.
“최민혁 실장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나마 이 사태가 진정이 될 겁니다. 문제가 된 이들에 대해서는 직접 손을 쓸 테니까.”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갑자기 돌아갈 일은…….”
데릭 모건 이사는 음흉하게 웃었다.
“최민혁 실장이 미국 재무부를 상대로 설친 덕분에 싫어하는 사람이 꽤 생겨났더군요. 그들 중에는 한국 고위 관료 역시 포함됩니다. 그들은 지금 배가 아파서 미칠 지경입니다.”
“…최민혁 실장이 ARN 지분을 매각한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있고, 미국 재무부 미팅도 있죠. 최소한 미국 정부 고위 관료와 만나려면 한국 정부에도 사전 조율이 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미국 재무부 미팅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재무부 미팅 만남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몰랐다.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미국 정부 고위직 중에는 최민혁 실장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최민혁 실장이 미국 재무부, 국방성 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손을 묶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쪽 채널은 제가 신경을 쓸 테니, 킬리언 이사님은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재무부, 국방성 쪽을 살피세요.”
“…알겠습니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욕심 많은 제임스 러너 이사와 데릭 모건 이사와는 달랐다. 그는 왜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민혁 실장과 대립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꼭 일을 이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차라리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최문경 부회장을 정리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못 들은 것으로 하죠.”
데릭 모건 이사 역시 골치가 아팠다. 최문경 부회장 문제는 간단히 처리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이보다 최민혁 실장 때문에 내심 부아가 치밀었다. 그가 일을 벌일 때는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까지 나올지는 상상도 못 했다.
‘휴, 한 놈 때문에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 * *
데릭 모건 이사는 샐로먼 브러더스를 이끌어가는 실세 중에 한 사람으로 정치 쪽에 인맥이 제법 있다. 그중 미국 재무부가 한 좋은 예다.
하지만 그는 한국 고위 관료 쪽에도 알고 지내는 이가 꽤 있다.
정확히는 과거 일이다.
미국 정부 쪽을 후원한 덕분에 그 사이에 껴서 한국 정부와의 협상 자리에 나가면서 이런저런 인맥을 쌓았던 것이다.
물론 샐로먼 브러더스로 자리를 옳긴 후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미국 정부가 샐로먼 브러더스를 적대한 덕분이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이런 상황이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만 한국 고위 관료는 이런 자세한 내막까지는 몰랐다.
더욱이 한국 고위 관료 중에는 꼰대 기질이 다분한 이도 많았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를 팔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돈과 권력에 집착하니까.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환채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다.
그는 데릭 모건 이사를 조용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부탁을 들었다.
바로 상속세.
이환채 재정경제원 차관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피식 웃고 말았다.
다만 그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