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02화 (799/1,021)

#802.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박수갈채는 단순히 박수갈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최민혁 실장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내심 최민혁 실장 욕을 하지만 협상 전까지는 최대한 최민혁 실장을 자극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굳이 ARN 지분 10%의 가치를 깎아내리지도 않았다.

그저 순순히 최민혁 실장이 말한 4억 달러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민혁으로서는 아쉬운 반응이었다. 그는 꼬투리를 잡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것이었다.

“정말 4억 달러에 10% 지분을 사들일 생각입니까?”

“…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굳이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자극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서 회의실 프로젝트 앞으로 갔다.

그러곤 재킷을 벗어 놓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좋습니다. 이번 투자가 잘 판단한 거라는 이유 정도는 알고 계셔야 할 겁니다. 제가 단적인 예로 들어줄 수 있는 사업이 바로 DVR입니다.]

DVR는 원래 은행이나 백화점에서 주로 많이 사용된다.

3년 후에 있을 법한 일이기는 한데, 소니를 비롯한 파나소닉 역시 이 분야에 뛰어든다.

판매 가격은 무려 6,000달러 수준, 한화로 무려 420만 원이다.

[하지만 기존 사업과는 차이가 크게 납니다.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순이익이 대략 30%를 넘습니다.]

제조 기업이 평균적으로 5% 정도 순이익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였다.

[KM DVR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부품 가격대를 감안해도 수익성이 높은 사업입니다. 이미 KM 센서는 몰려드는 요청에 샘플을 계속 보내는 중입니다. 지금 당장은 대규모 계약이 이루어져 있지 않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다를 겁니다. 그 시작이 누구인지는 잘 아시죠?]

[…연방 정부입니까?]

[빙고, 모건 스탠리 측에서도 충분히 도와줄 거로 생각합니다. 그게 귀사에도 이익이니까. 필요하다면 KM 센서 지분도 일부 매각할 수 있습니다.]

[…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힐끗 폴 고슬링을 한 번 쳐다보았다.

폴 고슬링은 이미 케네스 최와 KM DVR의 가치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케네스 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KM DVR 자체에는 단순히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여러 솔루션이 같이 포함된다.

그걸 옵션으로 놓고 보면, 판매 가격 자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로열티 수익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최민혁은 이런 KM DVR이 가지는 우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는 모건 스탠리의 투자를 받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모건 스탠리가 이익을 보는 본다면 그만큼 도와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니 이런 점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하거나 애걸 따위는 없었다.

고성능 ARN이 적용된 KM DVR의 미래 가치에 대한 자세한 설명만 있을 뿐이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폴 고슬링이 눈치껏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과 더는 협상을 질질 연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부적으로 확인을 끝냈습니다. 모건 스탠리 이사회에서 이미 결정한 사안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계약서를 든 변호사가 우르르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그들의 행동에 단 한 치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괜히 오성 그룹이 중간에 끼어들 것을 염려한 행동이었다.

최민혁 실장과 동행한 변호사 몇 사람이 나서서 그들과 협상을 시작했다.

ARN 지분 10%가 4억 달러라는 것은 이제 결정이 난 셈이다.

모건 스탠리가 이렇게 곧바로 계약을 결정하려는 이유는 역시나 다름 아닌 오성 그룹의 대응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헛웃음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까. 다만 아직 매각할 지분은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추가 10% 지분은 관심이 없습니까?”

“그건…….”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머뭇거렸다. 그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참, 혹시 10% 지분 4억 달러도 세후 금액입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세후라고 해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그쪽이 투자하지 않는다면 740 펀드를 통해서 다른 쪽으로 투자를 돌릴 생각이니까.”

그는 다시 머뭇거렸다. 솔직히 ARN은 아직 성과도 별로 없었다. 최민혁 실장 말만 믿고 밀어 넣기엔 4억 달러 이상은 좀 그랬다.

최민혁은 그런 점을 순순히 인정했다.

“아마 곧 아시겠지만, KM DVR를 미국 연방 정부 쪽에 공급할 예정입니다. 그 수량은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기존의 아날로그 CCTV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걸 대체하는 것이니, 매출 자체가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KM DVR에 들어간 ARN 매출이 늘어난다는 말입니까?”

“CPU 코어, MPEG-2 코덱, MP3-코덱 이렇게 세 개가 들어갈 테니까요.”

“…이상하군요. 그렇게 많이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까?”

“당연합니다. 단순히 KM DVR 기능만이 아니라 인식 기능까지 포함되니까. 일테면 음성 인식과 같은 기능이죠. 보안이 필수적인 연방 정부 처지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죠.”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다시 폴 고슬링을 쳐다보았다.

폴 고슬링은 슬쩍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도 사실 억울했다.

지금껏 디지털 DVR이라는 시장 자체가 없었다.

있다고 하면 CCTV 시장 정도로 시장을 평가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두 시장은 격 차이가 심했다.

내부적으로 조사를 해봐도 아직은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에 인식 보안 기능까지 들어간다면 가치 차이 자체가 달라진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상황을 파악하자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설마 그런 기능까지 가능합니까?”

최민혁은 동행한 조성돈 팀장에게 손을 내밀어서 KM DVR과 관련된 추가 자료를 받아 스탠리 로버트 이사에게 내밀었다.

“…놀랍네요.”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진짜 놀랐다. 그 서류를 받아서 확인한 폴 고슬링 역시 경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순히 감시 장치로만 생각한 KM DVR은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최민혁은 감정 없는 얼굴을 한 채 다시 한번 ARN 지분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번 거래는 단순히 금전적인 거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가 굳이 마이크 라이언 이사까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쪽에서 한 일을 다 바로잡는 것까지 포함한다는 것만은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그쪽에서도 연방 정부에 대한 영업을 도와주기 바랍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추가 10% 지분 매입도 손해가 아닐 겁니다.”

“…….”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한 짓을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는 힐끗 폴 고슬링을 한 번 쳐다보았다.

폴 고슬링은 당연히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마주하지 못했다.

“…그건 내부적으로 좀 이야기를 해봐야 합니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서 기다리죠. 딱 20분 드리겠습니다.”

“…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심 욕설을 퍼붓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갑은 누구인지 결정이 난 일이었다.

* * *

“음성 인식과 영상 인식을 통한 보안이라…….”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황당해서 그저 탄식만 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음성 인식 보안 수준이다. 단순히 몇 가지 음성 데이터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개, 심지어 평소에 사용하는 음성까지 다 녹음해서 그것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 비교도 인공지능 애니가 한다.

한두 번은 해킹이 가능하다고 쳐도 세 번째부터는 동일한 방식이 먹히지 않았다.

아, 물론 그 한두 번도 쉽게 되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다소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 기술은 이지수 박사가 따로 연구했던 결과물 같습니다. 국방성 과제라서 자세한 내용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무인 드론에 적용된 기술이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지수 박사가 원하는 인공지능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기술이었다.

무선 드론 프로젝트 때문에 성과는 제법 나왔다.

이지수 박사는 그 기술을 KM DVR에 적용한 것뿐이었다.

그걸 모건 스탠리라고 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실상 이 기술은 그만큼 오랜 실험을 거쳐서 안정화된 것이었다.

음성이 가지는 고유의 특성을 비교하기 때문이었다.

영상 인식 기능 역시 마찬가지다. 이건 단순히 영상 이미지를 비교하는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입체적인 화면 데이터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런 처리가 슈퍼컴퓨터가 아니라 저렴한 비용에 가능한 것은 역시 MPEG-2 칩 때문이었다.

더욱이 KM DVR은 단순히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후속 업데이트 작업까지도 가능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골치가 아픈지 두통약 다섯 알을 한 번에 꿀꺽 삼킨 채 자료를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게 가능한 기술입니까?”

“네, 확인해 봤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가져온 샘플로 일단 모건 스탠리 임직원 100여 명을 동원해서 일일이 체크했다. 최민혁에게 하루를 달라고 해서 한 일이었다.

결과는 완벽했다.

단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건 그럴 수밖에 없다.

KM DVR에 사용된 애니 인공지능은 비록 제한된 기능이기는 해도 상업적으로 그 어떤 것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기가 막히는구나.’

그냥 툭 쳤는데, 뭐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 기술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뿐이었다.

그가 집중한 것은 ARN 기술이었으니까.

이렇게 기술이 복잡하게 엮여 있을 줄은 몰랐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허탈해서 한동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는 테일러 박사를 만나서 이지수 박사에 대한 평가를 듣기는 했다.

처음에는 테일러 박사도 이지수 박사를 맹렬하게 욕하기는 했지만 결국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했다.

더욱이 그녀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도 들었다.

‘국방부 차세대 무인 드론에 들어가는 인공지능을 총괄했다고 했었지?’

이 프로젝트 자체는 실패가 아니었다. 다른 어떤 프로젝트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다만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은 테일러 박사가 중간에 이지수 박사를 모략해서 쫓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테일러 박사가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난 후다.

그가 맡고 나선 프로젝트 결과가 산으로 가버렸다.

테일러 박사는 자신에게 반기를 연구원을 다 잘라 버렸고, 심지어 관련 국방부 고위직조차 압력을 넣어서 내막을 알지 못하게끔 손을 썼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나타난 이후에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

이지수 박사가 이제까지 한 연구 성과를 상업적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단지 일부였을 뿐이다.

“스탠리 이사, 자네 생각은 어때?”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단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10% 지분 인수는 찬성입니다. 하지만 추가 10% 지분은 무리입니다. 차라리 이사회 통해서 투자자를 모으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봅니다.”

“20%라, 굳이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물량을 내놓은 것은 역시 재무부의 압박 때문이겠지?”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파악한 정보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도 눈치가 보일 겁니다. 다만 굳이 이렇게 지분 매각을 하는 이유는 그런 압력을 적당히 정리해 달라는 뜻일 겁니다. 실제로 지분을 인수한 이들이 재무부에 압박을 넣을 테니까요. 아니, 어쩌면 재무부 쪽의 인사들이 지분을 차명으로 알아서 인수하겠죠. 그게 그들이 원한 것이니까.”

다만 그 상대 중에는 재무부과 미국 하원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게 문제인데.”

마이크 라이언 이사도 머뭇거렸다. 그가 알기로 최민혁 실장 문제는 단순히 로비한다고 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스탠리 로버트 이사의 생각은 좀 달랐다.

“마이크 이사님이 일단 로비스트를 통해서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면, 재무부도 마냥 그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클린턴 행정부 재선도 있는데,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내지 않을 겁니다. 그 이후 문제는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그 역시 자신에게 압박을 넣었던 인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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