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
DVR 산업 자체는 아직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폐쇄회로 TV 시장이 주류였고, 비디오테이프 저장 방식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 누구도 동영상 파일을 하드 디스크에 저장하는 방식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은 말이다.
MPEG-2 원천기술도 아직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더 그랬다.
정작 이 원천기술을 파고 있는 이들조차 삽질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미쓰비시 전기, 마쓰시타, 도시바와 같은 일본 대기업이 몰라서 이 MPEG-2 원천기술을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다만 일본 대기업들의 경기가 나빠지면서 미처 이 새로운 기술을 간과한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그 틈새를 노리고 잽싸게 MPEG-2 원천기술을 가로챘고, 심지어 부족한 원천기술을 더 보완해서 무려 450건까지 특허를 늘렸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 역시 MPEG-2를 조사하면서도 정작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꼼수를 부려놓았다고 확신해서 에플 공매도 물량을 줄여 나갔다.
대신 그가 한 일은 에플 주식 매입이었다.
폴 고슬링 역시 딱히 에플 주식 매입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2%를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에플 주가가 45달러를 돌파한 터라 지금은 지켜보는 중입니다.”
“45달러라…….”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에플 주식 가치를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거품이 너무 과한 가격대였다.
폴 고슬링 역시 몇 번이나 보고 했던 내용이라서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마이크 라이언 이사에게서 미국 재무부를 상대로 손을 썼다는 것을 들었다. 오히려 그 상황이 어떤가가 더 궁금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식으로 볼 필요는 없어. 일은 생각한 것보다 잘 진행되는 중이니까.”
“…혹시 미국 정부에서도 이미 최민혁 실장을 주시한 겁니까?”
“분위기를 봐서는 그런 것 같아. 미국 하원에서도 이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최민혁 실장 이름이 오르내렸으니까.”
폴 고슬링 역시 깜짝 놀랐다. 미국 하원에서 최민혁 실장을 주시할 줄은 몰랐다.
“…그 정도였습니까?”
마이크 라이언 이사 역시 재무부 내부를 들여다보는 중에 우연히 이 정보를 얻었다. 그 역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무래도 첨단 기술에 대해서는 국가 보안 차원에서 따로 관리하잖아. 최민혁 실장이 소유한 원천기술이 문제가 된 것 같아.”
“하면…….”
“그래, 괜히 쓸데없이 로비로 자금을 낭비한 것 같아. 하지만 그래도 전혀 효과가 없지는 않았어. 덕분에 최민혁 실장에 관한 재무부 조사가 더 빨라졌으니까.”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번 일이 쉽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폴 고슬링 팀 중에 실무진이 사무실로 들어와서는 TV를 틀었는데, Breaking News에서 최민혁 실장의 인터뷰 내용이 흘러나왔다.
“……?”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황당한 눈으로 인터뷰 과정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도 처음에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에 관한 조사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시골 마을에서 갑자기 최민혁 실장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다만 그는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몇 번 당한 적이 있어서 최민혁이 흘리는 ‘악어의 눈물’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새끼가 또 꼼수를 부리네.’
그보다 DVR에 더 집중했다.
다행이라면 폴 고슬링 실무진 한 사람이 DVR 관련 자료를 내놓았다.
복잡한 설명은 스킵하고, 핵심만 보고 안 사실은 그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MPEG-2 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CCTV라고?”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폴 고슬링은 잠깐 사무실을 나갔다가 DVR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나타났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DVR이 아니라 MPEG-2를 띄울 목적인 것 같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미국 재무부와의 미팅을 앞두고 무슨 미친 짓…….”
하지만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이미 최민혁 실장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몸으로 경험했다.
MPEG-2 특허는 아직 수익성과는 무관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DVR 때문에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DVR 산업 생태계는 둘째 문제였다.
이 MPEG-2 기술이 응용된 DVR 제품이 나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최민혁 실장의 인터뷰 내용이 아니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납치된 아홉 명의 앳된 소녀들이었다.
이제 막 부모의 품 안에서 울고 있는 그 모습은 안쓰럽기만 했다.
체포된 윌슨 부부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증오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반대 역시 적용되었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기대 심리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다급하게 오늘 날짜 메이저 신문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역시 각종 언론은 이번 사건을 기회 삼아서 최민혁 실장 영웅 만들기에 미쳐 있었다.
“이 기자 새끼들이 단체로 돌았군.”
심지어 워싱턴 포스트는 더했다. 그들은 DVR 산업과 MPEG-2 원천기술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일면 전체를 할애해서 설명했다.
“Mother Fu……."
“…….”
폴 고슬링 역시 뒤늦게야 신문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미국 전역이 이번 일로 난리였다.
특히 몇몇 언론은 만약 최민혁 실장이 나서지 않았다면 이번에 구한 아홉 명의 소녀 중에 여섯 명은 죽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물론 윌슨 부부 집 주변에 대한 대규모 수색이 이루어졌다. 혹시라도 발견 못 한 희생자가 더 있을지 확인한 것이었다.
아니면 시체라도.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이를 악물었다.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둬서는 곤란했다. 그런데 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니, 그래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그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손을 쓰기에 앞서서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에플 주식 매입을 더 늘릴 수는 없겠어?”
폴 고슬링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 의도를 깨닫고는 쓰게 웃었다.
“에플 주가 거품 때문에 우려하는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 에플 주주를 만나서 협상을 해보겠습니다.”
“일단 최대한 에플 주식을 확보해. 지금 이야기 나오는 저 DVR이 에플 주가에도 영향을 줄 거야. 아니, 스티븐이라면 그렇게 하고 말 거야.”
“…알겠습니다.”
폴 고슬링은 혀를 차면서도 딱히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지시를 반박하지는 않았다. 에플 공매도는커녕 오히려 에플 주식을 사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좀 걱정이기는 한데, 어차피 서로 믿는 처지는 아니었으니. 휴우, 이것도 골치야. 최민혁 실장이라, 진짜 못 말리는 사람이다.’
* * *
최민혁은 정신없이 인터뷰를 하면서도 중심을 잃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벌인 일 때문에 이익집단들의 행동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을 확인했다.
“미국 재무부 고위 관료를 만나서 직접 손을 쓰고 있다는 말입니까?”
조성돈 팀장은 KM 시큐리티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미국 재무부 내의 고위 관료와 만나는 장면이었다.
다만 특별하게 불법적인 행위는 없었다.
성접대와 같은 그런 일 말이다.
그저 두 사람이 잠깐 만나서 헤어지는 정도였다.
그런 만남이 꽤 있었다.
이건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역량으로는 일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민혁 안색은 좋지가 않았다. 그가 생각한 것보다는 더 나쁜 상황이었다. 재무부 측에서 단순히 그냥 자신을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걸까?’
그런데 이게 단순한 기우는 아니었다. 미국 국익에 반한 자들에 대한 미국 정부 행동은 생각보다 무자비했다.
최민혁 자신을 암살하는 정도까지 가지는 않아도 여러 채널을 통해서 견제가 들어올 수 있다.
단적인 예가 인수합병이다.
최민혁은 결국 자신이 한 행위를 떠올려 보았다.
‘CDMA 외에 다른 원천기술도 문제의 소지가 다분히 있어. 이지수 박사 건은 더 심각할 수도 있어. 미국 국방성 산하 기술의 일부를 응용했으니.’
그건 미국 정부의 보안 기술과도 관련이 있었다.
아무리 한국이 동맹국이라고 해도 그어놓은 선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 DVR 쇼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가 달라졌다는 거다.
기존에 투자 천재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미국 사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업가 이미지 말이다.
미국 여론이 좋아지자 미국 언론사 역시 이전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에 대한 것을 세세히 다루었다.
최민혁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미국 언론사에 광고를 줘도 좋으니, 이번 윌슨 부부 사건을 최대한 키워 보세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비용이 많이 들 텐데요?”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오성 그룹과 비교해 보면 우리 광고 지출은 거의 없는 셈이죠. 그런 점을 고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 역시 미국 기업 수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니까요.”
조성돈 팀장 역시 다급하게 진행된 일 때문에 꽤 지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급한 일이 끝나고 나자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역 경찰 역시 자신들을 괴롭힌 이번 최민혁의 행동에 대해 의문투성이었다.
“저기 최 실장님…….”
“왜요?”
“세 자매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납치된 것을 아신 겁니까?”
“아, 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DVR 설치 위치를 일일이 정해줬잖아요.”
“하지만 DVR 설치 위치가 윌슨 부부 차량이 움직인 동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운이 좋아서죠.”
“…운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제가 최민혁 실장님을 의심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너무 이상해서입니다.”
최민혁은 천연덕스럽게 반문했다.
“제 추리 능력이 좋다고 해야죠. 윌슨 부부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았습니다. DVR 덕분에 그런 점을 드러난 거죠. 실제로 윌슨 부부 집을 뒤진 것은 지역 경찰이었고요.”
“…네.”
조성돈 팀장은 석연치 않은 최민혁 실장의 대답에 더 반문하지 못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날카로운 추리력은 명탐정도 울고 갈 능력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얻은 이익이 너무 컸다.
특히 250억 이상의 자금을 퍼부어서 무리하게 DVR 수입을 진행한 것도 의아했다.
고작 기능 구현만 되는 DVR를 급히 미국 내에 가져온 것이니 말이다.
앞날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 무모한 시도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최민혁은 그런 조성돈 팀장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 팀장님, 평소처럼만 합시다. 뭘 그렇게 의심을 품고 그럽니까?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재수가 좋은 사업가는 당할 수가 없어요. 제가 무슨 예언자라도 된다고 착각하시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휴우… 알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조성돈 팀장을 타박하고 난 후에야 자신이 지시해 놓고도 이번 일은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운 좋은 사업가, 아니, 운이 정말 좋은 사업가, 뭐 그런 이미지도 나쁘지 않겠어.’
* * *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자산 보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외국의 미국 진출 규제가 그 방식이다.
여기에는 딱히 동맹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처음 대상은 역시 미국 경제 침공에 앞선 일본이었다.
미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견제는 플라자 협상 이후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다음 순위는 대만이다.
대만 역시 일본과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규제를 받아왔다.
그다음 대상은 뜻밖에도 한국이다.
이 안건은 미국 하원에서 따로 다루어진 문제였다.
하원의 외국 규제 현황 보고서는 자연스럽게 재무부 측에도 보고가 올라갔다.
한국의 경우에 첨단 반도체 기술 3건, 일부 부품 3건, 광 금속 3건, 건설 2건으로 모두 11건이나 되었다.
그런데 이 보고는 KM 전자 성장 이전의 결과였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은 아직 이 보고서에서 빠져 있었다.
최근 미국 하원의 외국 규제 현황 보고서에 한국 내용이 업데이트되었는데, 그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2,311건? 진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