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
“자주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줄리엇 로버트슨은 비만 체형으로 장신의 인물이었다. 그는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린 후에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마주했다.
폴 고슬링은 슬쩍 그의 시선을 피한 채 다른 일행과 같이 침묵했다.
줄리엇 로버트슨은 갑작스러운 모건 스탠리 인사의 방문에도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짜증스러웠다.
그는 모건 스탠리를 떠올릴 때면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상판을 떠올리니까. 그를 마주할 때면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말투가 좋지 않았다.
“설마 내가 벨린 투자에 투자한 것 때문에 이렇게 찾아온 건가?”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눈치를 봤다. 그도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마이크 라이언 이사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태국 바트화 투자는 어떻게 보면 조지 소로스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중재자로서 둘 사이에 소통망을 놓아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익.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도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투자를 포기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래도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 눈치를 봐야만 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맞습니다. 줄리엇 회장님은 누구보다 지금 상황을 잘 아는 분 아닙니까. 이번 바트화 투자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최민혁 실장과 접촉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그 친구도 참 웃기는군. 내 돈으로 투자하겠다는 것까지 시비를 걸겠다는 건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최민혁 실장에 대한 방침은 내부적으로 정한 것으로 압니다. 모건 스탠리에도 꽤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척을 진 최민혁 실장에게도 자금을 대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하하하, 정말 황당한 소리를 하는군. 자넨 돈에 적군과 아군이 있다고 생각하나?”
“네? 그게 무슨…….”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여유로운 태도로 천천히 베란다 쪽으로 나갔다.
건물 베란다에는 뉴욕 건물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는 베란다 한쪽에 놓인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으면서 사용인이 내온 포도주를 음미했다.
“바트화 말인데, 최민혁 실장이 투자하겠다는 것을 막은 쪽이 모건 스탠리 쪽이라면서? 특히 마이크 라이언 쪽에서 태클을 건 것으로 알아.”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우리 쪽의 의견이 아닙니다. 헤지펀드 쪽에서 반대한 일입니다. 제가 알기로 타이거 펀드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최민혁 실장의 합류를 반대했다고? 그건 또 누가 한 개소리야?”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난 총알이 넉넉해지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어. 오히려 조지 소로스 측에서 강경하게 나갔는데, 그 배후에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 쪽이 있다고 했어.”
“네? 그게 무슨…….”
“쯧, 자네는 모건 스탠리 내부 사정을 잘 모르나 보군. 내가 듣기로는 좀 이야기가 다른데.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중간에 수작을 부렸다는 소리도 들리니까. 우리 쪽 실무진이 들은 바로 최민혁 실장이 수작을 부린다고 했어. 그런데 내가 알아본 바로는 전혀 달라. 최민혁 실장은 순수한 투자 목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확인이 되지…….”
“실무진을 통해서 확인한 사실이야.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이 한 이야기이니까. 설마 최민혁 실장의 최측근인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
“…….”
스탠리 로버트 이사도 최민혁 실장의 이야기가 나오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설마 대리인을 내세운 이유가 최민혁 실장에 관한 확인 때문인지 몰랐다.
더욱이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수작을 부렸다는 얘기가 나오자 입을 꾹 다물었다.
‘설마 마이크 라이언 이사 때문에 펜트하우스를 매각하면서 최민혁 실장과 접촉한 건가?’
그랬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애초에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믿지 않았다. 지금이야 이익 때문에 손을 잡았다고 해도 여전히 거리를 뒀다.
때문에 그는 이번 일과 관련해서 최민혁 실장과 접촉할 생각이었다.
이번 건도 펜트하우스 매각 명분이 생기자 대리인을 내세워서 필요한 정보를 얻은 것에 불과했다.
결국 이번 일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마이크 라이언 이사였다.
폴 고슬링은 뒤에서 어금니를 악문 채 서 있었다. 그는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에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잘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안색이 좋지가 않았다. 그는 계약 때문에 지금도 참고 있었다. 그 역시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이봐, 스탠리 이사, 자네는 모건 스탠리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나 봐.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폴 고슬링이 당황한 스탠리 이사를 대신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끼어들었다.
“좋습니다. 회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최민혁 실장과 손을 잡겠다는 이야기입니까?!”
“허, 그 젊은 친구가 너무하군. 내가 언제 최민혁 실장과 손을 잡겠다고 했어? 내 와이프가 가진 자금 일부를 투자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보도 좀 얻고 말이야.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
“정말 그것으로 끝입니까?”
“난 솔직히 지금이라도 최민혁 실장과 손을 잡고 싶어. 그 친구가 더 확실하니까. 다만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 끌려가는 것뿐이야!”
“아니,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격한 반응을 보인 폴 고슬링을 크게 타박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최근 모건 스탠리가 뭘 진행하는지 잘 알았다. 최민혁 타도를 외친 그들의 행보를 말이다.
지금 두 사람이 왜 굳이 자신 앞에 나타나서 오버액션을 취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런데 상황이 두 사람 뜻대로 풀려가지 않았다.
당장 마이크 라이언 이사도 문제지만 그 배후도 가볍게 볼 수는 없었다.
그로서는 남의 집 내부 사정이라서 결국 피식 웃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당장은 최민혁 실장과 손을 잡을 이유는 없지. 그런데 솔직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내 자금도 일부 들어갔어. 자네들이 진행하는 에플 공매도에 말이야. 그거 성공할 수는 있는 거야? 공매도가 이론적으로 손실이 무한대라는 것을 알지? 노파심에서 묻는 건데, 위험 분산은 충분히 한 거겠지?”
“그건…….”
그는 포도주잔을 한쪽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두 사람을 째려봤다.
“난 솔직히 걱정이 많아.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보면 절대로 손해를 본 적이 없어. 정보는 그 친구가 다 쥐고 있어. 에플 이사회 쪽을 통해서 알아보고는 있지만 세세한 것까지는 알 수가 없어. 솔직히 모건 스탠리나 샐로먼 브러더스 자네들이 아니었다면 최민혁 실장과 벌써 협상을 다시 했을 거야.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보험 정도는 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
두 사람은 그제야 침묵하고 말았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목적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가 이번에 최민혁 실장과 싸워서 막대한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문제는 폴 고슬링도 역시 그런 불안감을 계속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두 사람의 태도에서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봐, 그쪽이 폴이라고 했지? 이번 에플 공매도 사령탑이고? 그러면 말해봐. 이번 싸움에서 자네가 최민혁 실장과 싸워서 이길 확률 말이야. 자네가 100%, 아니, 70%라고 말하면 최민혁 실장과는 아예 손을 끊겠네!”
“그건…….”
폴 고슬링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가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저것이었다. 이번 일에 참여한 이들 중에도 적지 않은 실무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차가운 얼굴을 한 채 일축했다.
“내 이야기는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이만 가주게. 마이크 라이언 이사에게도 내 이야기를 분명히 전하게. 이것은 경고야!!”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잠깐 머뭇거렸다. 차라리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내심을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사실.
이 모든 사태의 배후에는 최민혁 실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에플 공매도 계획에만 집착해서 최민혁 실장의 대응책을 간과한 결과였다.
‘무섭구나.’
결국 두 사람은 몸을 돌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에플 주가가 너무 올라서 공매도 플랜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망설이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타이거 펀드가 자신들을 불신할지 모르는 일까지 생겨났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갑자기 배신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두 사람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골치 아프네.’
* * *
최민혁은 스탠리 로버트 이사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만난 것과 둘 사이에 좋지 않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것을 보고받고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줄리엇 회장 대리인을 통해서 들었다고요?”
우영민 부장은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네, 지난 펜트하우스 계약에서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아무래도 이제까지 우리 벨린 투자가 한 실적이 있습니다. 특히 2조 6천억 수익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둘 정도였습니다. 무려 1,300%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니까요.”
그랬다.
이번 일의 방아쇠가 된 것은 2조 6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투자 이익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에플 주식 가치가 13배 올랐다 식으로 말이 나온 것과는 이야기가 좀 달랐던 셈이다.
“그쪽은 좋네요. 한국 사정은 어때요?”
조성돈 팀장이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얻은 정보를 말해주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흥분한 것 때문에 여전히 난리입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해도 최용욱 회장님이 사장단 회의에서도 최문경 부회장님을 대놓고 깨고 있습니다.”
“파크 애비뉴 투자 효과가 여전히 유효한가 보군요.”
“네. 그 일 때문에 최용욱 회장님을 몇 번이나 찾아가서 사과했다고 합니다. 애초에 시야를 CMOS 이미지 센서에만 좁힌 터라 나머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좋네요. 그렇다면 MPEG-2 기술 확보만 성공적이면 된다는 말이군요. 시즈벨 측에 다시 한번 연락해서 현재 상황을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잠깐 멈칫했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펜트하우스 매입도 이런 상황을 다 예측해서 하신 겁니까?”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혀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네요. 미국 내의 투자 은행이나 헤지펀드 측과 소통하고 싶은 채널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그렇군요.”
두 사람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정신없이 움직이는 두 사람을 보면서 꽤 만족했다. 그 역시 헤지펀드 쪽과 연락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선뜻 손을 먼저 내밀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 내부 사정을 모르니까.’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였다.
그런데 괜히 긁어서 헤지펀드 측과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최민혁은 가능하면 그쪽의 내부 정보를 알고 싶었는데, 그럴 틈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호화 펜트하우스 매입 건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다.
‘설마 그게 될 줄은 몰랐어. 아니, 어쩌면 구골이나 KMBOOK 지분에 관심을 뒀을지 모르지.’
둘 다여도 상관은 없었다.
결과는 그가 원한대로 흘러갔으니 말이다.
이제 마무리만 잘하면 될 일이었다.
* * *
사실 CMOS 이미지 센서 기술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당장 동영상 압축 관련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MPEG-2 미래 가치까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 나와 있는 MPEG-2 원천기술만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코다 도시히로 이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