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04화 (704/1,021)

#704.

윤종수 전무가 소리쳤다.

“혹시 배종구 사장님이 전생에 최민혁 실장을 도와준 것 때문이 아닐까요?”

놀랍게도 맞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없었다.

“전생은 무슨.”

허종진 팀장도 피식 웃었다. 설사 전생이라고 해도 그랬다.

“하면 최민혁 실장님이 전생을 기억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렇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고 가정하면 또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님의 행보를 보세요. 전 다른 것을 떠나서 MP3 특허를 사 모은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실상 최민혁 실장에 대한 일화는 이미 각종 매체를 통해서 쏟아졌다.

그중에 대표적인 이슈는 역시 최민혁 실장이 MP3 관련 특허를 얻기 위해서 독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을 돌아다닌 일이다.

심지어 특허 괴물 시즈벨을 상대로 특허를 사들인 일화는 여전히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야기다.

“이런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잘 보면 MP3 미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 당시에 누가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조용했다.

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한쪽에서 눈치만 보던 조헌주 과장이 넌지시 끼어들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최민혁 실장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을 겁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게 전생의 인연이든지, 아니면 시간 여행자이든지 말이죠.”

‘시간 여행자’ 이야기가 나오자 침묵이 감돌았다.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게 또 그럴듯했다.

배종구 사장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반박하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최, 최민혁 실장님?!]

* * *

최민혁은 경기 들린 환자 같은 배종구 사장 말에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놀랍니까? 설마 저 없다고 싸잡아서 씹는 중이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아, 그리고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최민혁 실장도 피식 웃고 말았다.

[제가 뭐 한 것이 있나요. 어차피 원천기술은 허종진 팀장 때문에 완성된 것이니까. 시제품은 미래 기술이 고안한 것 아닙니까?]

배종구 사장도 깜짝 놀랐다. 그도 평소라면 넘겼을 이야기인데, 최민혁 실장이 마치 이런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 건 아닐까 생각했다.

‘설마 정말 미래를 아는 것일까? 에이, 말도 안 돼.’

[아,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원천기술과 관련 자료를 넘기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렇게 볼 수는 없죠. 어차피 일은 미래 기술에서 다한 것이니까. 전 옆에서 가이드해 준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번 모토톨라 계약은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배종구 사장도 이제는 최민혁 실장의 겸손에 혀를 내둘렀다. 전생이든, 미래 정보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핵심은 최민혁 실장이 일을 매끄럽게 잘 풀어간다는 것이다.

[아닙니다. 그것도 KM 전자의 박상기 차장님이 중재를 잘해 주셔서 그렇습니다.]

[아, 박상기 차장님 말입니까? 아하, 그분이 큰 무리 없이 잘 처리했나 보군요.]

[그 정도가 아닙니다. 모토롤라 임직원들이 찍소리도 하지 않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흠.]

최민혁도 문득 박상기 차장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특이하게도 별다른 기억이 없었다. 거의 튀지 않았다는 거다.

‘하지만 KM 전자에 끝까지 붙어 있던 사람 중의 하나니.’

당신 최훈열 전무라는 독재자 밑에서 버텼던 이들은 결코 무시하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티를 내지 않고 능력을 발휘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배종구 사장은 모토롤라와의 협상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토막 이야기를 말했다. 협상이 쉽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으니 그만큼 얘깃거리도 많았다.

최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기 차장의 능력에 대해서 말이다.

‘하긴 이제 부장으로 올라가도 될 인물이지. 이번에 검증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윤종수 전무나 허종진 팀장도 최민혁 실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피커폰으로 돌린 덕분에 두 사람은 묵묵히 최민혁 실장 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최민혁은 충분히 모토롤라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판단하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 제가 전화를 드린 것은 배터리 생산 공급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죠?]

[투자받은 2,500억으로 당장 공장을 증설할 예정입니다.]

2,000억은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의 돈이었다. 애초에 미래 기술 지분을 인수한 자금이 최민혁 실장 개인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점을 말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해야겠죠.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실적도 중요합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기가 중요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최민혁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멀쩡한 자사 공장을 두고, 오성 전자 인프라를 이용하라고 말을 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고민을 길게 하지 않았다. 지금 일을 빠르게 진행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 막 국내 디지털 휴대전화 시장 경쟁에 불이 붙은 상태입니다. 스타택이 그 좋은 예죠. 따라서 다양한 핸드폰이 시장에 쏟아질 겁니다.]

[그건 압니다. 핸드폰 업체 쪽에서 이미 연락을 많이 받았습니다.]

연락을 단순히 많은 받은 정도가 아니었다. 미래 기술 본사 전화가 먹통이 될 정도로 업체들에서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 업체는 특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거기에는 MP3 업체도 있어.’

너무 많은 요청이 들어와서 미래 기술도 크게 당황한 상황이었다.

특히 한국 이동 통신, 신세기 통신, LH 정보 통신의 러브 콜은 스토커를 넘어선 행보였다.

이제야 숨을 좀 돌렸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배종구 사장은 그런 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미래 기술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안정적일 거라는 태도를 보였다.

최민혁은 그런 점이 꽤 만족스러웠다. 배종구 사장은 전생에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니까.

‘단순히 전생에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그를 선택한 것은 아니니까. 미래 기술을 맡을 만한 최적의 인물이라고 봐야지.’

[그러면 더 좋네요. 현실적인 문제점은 배 사장님도 잘 알 것 같으니, 제가 대안을 하나 제시할까 합니다. 오성 전자와 손을 잡는 것은 어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성 전자는 이미 라이센스를 받은 후에 KMB-01 배터리 생산 설비를 어느 정도 구축해 놓았습니다. 그 설비를 미래 기술이 빌려서 당장 배터리 생산을 했으면 해서요.]

[그건 좀…….]

그는 크게 당황했다.

오성 전자가 배터리 생산 설비를 이미 만들어놓았다는 것은 그럴듯했다.

오성 전자라면 사전 정지 작업으로 그럴 수가 있다.

심지어 오성 전자 내의 공장에 손을 본다면 지금쯤이면 양산하고도 남았다.

다만 그건 오성 전자 내부에 쓸 배터리를 생산할 목적일 것이다.

그 설비를 중소기업에 대여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오성 전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계약을 할 리가 없었다.

보통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물량 외주를 주고, 그 물량을 받아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물량을 공급하는 것이니까.

즉 이 방식은 미래 기술이 갑이 되어서 오성 전자에게 물량을 준다는 것이다.

최민혁도 자기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그런데 지금은 오성 전자도 자기 말을 안 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권태성 실장과 이미 협의를 해놓았으니, 오성 전자 쪽에 한번 이야기를 해보세요. 일단 KMB-01 생산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직접 알리세요.]

[네?]

[기왕이면 언론을 통해서 미래 기술은 필요하다면 외부 공장을 이용해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하라는 말입니다. 제품 불량률 같은 경우는 오성 전자의 생산 기술을 이용해서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알리는 것이 좋죠.]

윤종수 전무가 옆에서 조용히 듣기만 하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윤종수 전무입니다. 혹시 오성 전자가 우리 기술을 베끼면 어떻게 합니까?]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글쎄요. 배터리 기술만 있다면 그럴 수 있죠. 근데 설마 우리 KM 전자에 배터리 기술만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허종진 팀장이 피식 웃으면서 슬쩍 끼어들었다.

[허종진 팀장입니다. 일단 오성 전자라 할지라도 배터리 우회 특허를 당장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만약 특허권 분쟁이 생기면 오성 전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잃어야 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협상에서 더 많은 자금을 뱉어내든지 하겠죠. 더욱이 오성 전자가 있어서 좋은 점은 다른 곳에서 우리 기술을 베끼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최민혁은 허종진 팀장의 말에 만족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배터리 원천기술 특허는 앞으로 더 보강될 테니까. 그걸 오성 전자가 다 베낄 수는 없어요. 그리고 오성 전자가 굳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잘 협상만 하면 됩니다. 모토롤라 측에 지분 15%를 넘긴 것도 그런 이유이니까.]

[아.]

배종구 사장은 그제야 탄식하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왜 뜬금없이 모토롤라 측에 미래 기술 지분을 넘기고, 협상 과정을 대폭 줄였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안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당장은 오성 전자 설비를 이용해서 KMP-01 배터리 생산을 늘려서 모토롤라에 공급하고, 그사이에 다른 업체 쪽에도 영업을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 * *

임권수 부장은 요즘 오성 전자 기획 팀이 너무 정신없이 돌아가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생각보다 이 기획 팀이 너무 거세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가 특히 귀찮은 점은 김현우 수석 부장이 툭하면 찾아와서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김현우 수석 부장을 내키는 대로 굴릴 수가 없었다.

바로 김현우 수석 부장에게 들은 최두진 사장이 가진 자금력 때문이다.

그가 특히 놀란 이유는 초창기 에플 주식에 투자해서 수천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오성 전자 기획 팀은 김현우 수석 부장을 다 피해 다녔다.

심지어 다른 오성 전자 임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통로를 오가다가 마주치면 김현우 수석 부장 옆을 그냥 쓱 지나갔다.

원래라면 김현우 수석 부장 욕을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했다.

“아, 돼지 새끼 때문에 죽겠네!”

황광수 차장 역시 혀를 내둘렀다.

“진짜 대단한 인간입니다. 최훈열 전무는 감방에도 갔는데, 저 인간은 감옥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최훈열 전무보다 횡령 금액이 더 많았을 겁니다!”

어지간해서는 남을 욕하지 않는 황광수 차장 역시 질린 얼굴이었다.

그가 특히 놀란 건 아직도 오성 전자에서 잘 버티고 있는 김현우 수석 부장의 처신술 때문이다.

오죽하면 칸막이로 격리된 사무실에 김현우 수석 부장 팀을 봉인시켰겠나.

“솔직히 이제는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긴.”

임권수 부장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우 수석 부장을 퇴출한 이가 최민혁 실장이니까. 이제는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미국에 가 있는 권태성 실장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에는 곧 한국에 온다는 전화로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미래 기술 측에 우리 배터리 생산 공장을 대여하라니요? 농담으로 하시는 말이시죠?]

[나도 일이 우습게 된 것은 알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그러니 지시에 따라. 보고서는 이미 메일로 보냈으니까. 아, 내 전결로 처리했지만 이미 윗선에는 다 보고가 된 사안이니, 그대로 진행해.]

[자, 잠깐만요. 시, 실장님, 이건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아니 그러면 지금 우리 오성 전자가 미래 기술 하청을 받으란 이야기 아닙니까?]

[하청까지는 아니야.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가 없어. 최민혁 실장이 직접 요구한 사안이니까. 하, 그리고 이미 오성 그룹 본사에도 보고가 들어간 사안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괜히 일을 막아서 문제를 더 악화시키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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