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3.
[지금 당장은 일정이 안 됩니다.]
[아니면 조성돈 팀장님이라도 좋습니다. 에플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니, 그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저희 생각은 다릅니다. 일단 서로 조율을 해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하, 진짜 그쪽과 할 이야기가 없다니까요.]
[지금 저택 앞에 도착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만나서 분명히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선마이크로시스템 실무진이 너무 막무가내라서 크게 당황했다. 더욱이 이 협상의 최종 보스는 놀랍게도 선마이크로시스템의 회장이다. 즉 거물이다. 때문에 그의 제안을 계속 거절하지만은 못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아예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는 이 일이 갑자기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자신이 한 일 중에 딱 모건 스탠리의 스탠리 로버트 이사와 권태성 실장과 소통한 것을 떠올렸다.
‘설마 스탠리 로버트 이사의 솜씨인가? 가만, 권 실장이 문제를 만든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힘들었다.
권태성 실장이 무슨 힘이 있어서 선마이크로시스템을 이용하겠나.
그는 일단 무시했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뉴욕 포스트에서 갑자기 기사 하나를 내보냈다.
[에플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 선마이크로시스템에 지분을 넘기나?]
[경영난에 빠진 에플의 미래는 명확하지 않다. 물론 차세대 제품에 대한 기대 때문에 에플 주가가 10달러 선까지 상승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의 입장은 다르다. 그에겐 1달러 선에서 사들인 에플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해도 될 사안이다. 선마이크로시스템의 고트 회장은 에플 가치를 높이 봤고, 이미 몇 년 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둘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맞아들어갔다. 최민혁 실장은 에플 지분을 매각해서 이익을 챙기고, 선마이크로시스템은 에플 기반을 이용해서 시너지를 최대한 올릴 수 있다.]
최민혁 실장과 선마이크로시스템 고트 회장은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다.
실로 황당한 기사였다.
다만 서로 전화로 연락한 적은 있었다. 심지어 저택을 찾아온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때 당사자는 조성돈 팀장이었다. 그는 물론 실질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미팅 자체를 거부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뉴욕 포스트는 그 상황만 가지고 두 회사 간에 긴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기사를 내보낸 것이었다.
“…….”
최민혁은 기사를 보고서는 황당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조성돈 팀장은 물론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봤다.
“죄송합니다.”
그가 한 말은 물론 선마이크로시스템 제안을 칼같이 정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사과다.
그도 그럴 것이 선마이크로시스템의 거물급 인사가 전화하는데, 최소한 들어는 봐야 했다.
심지어 저택 앞에까지 찾아왔다.
최소한 저택 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는 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근데 그걸 두고 협상이라니.
최민혁 역시 CCTV로 봤던 조성돈 팀장의 냉정한 행동을 떠올리고는 혀를 찼다.
“아니,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가 명분을 주지 않았다면…….”
“아니, 이자들은 어차피 다른 대안을 찾았을 겁니다. 방법은 많으니까요. 그나저나 골치네요. 스티븐이 엄청 열받았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스티븐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민혁은 괜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먼저 일축했다.
[지분 매각은 가짜 뉴스입니다.]
[…네?]
스티븐은 화부터 내려다가 흠칫 놀랐다.
최민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채 지금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스티븐은 기가 막혔다.
[…설마 의도적으로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지금 에플 주가 보세요. 완전히 춤을 추고 있지 않습니까. 그 목적이 클 겁니다.]
[하.]
스티븐은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역시 에플을 둘러싸고 최근 일어나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이 잽싸게 말했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기자회견을 열어서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스티븐을 설득하고 겨우 안도했다. 다만 그는 뒤늦게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에플 관련 정보를 읽으면서 혀를 찼다.
‘에플 매각과 관련된 소동이 있기는 했구나. 하지만 이미 내가 지분을 사들였는데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황당하네.’
* * *
[에플 매각은 없다!]
스티븐이 기자를 불러 모아서 한 이야기였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더욱이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은 자기 지분을 매각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에플 매각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가짜 뉴스입니다!!]
하지만 기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일부 주주들은 작년 에플 실적에 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문제가 된 전 에플 CEO는 이미 책임을 지고 물러난 상황입니다. 설마 저보고 지난 CEO가 만든 회사 부진을 책임지라고 하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분위기를 부추기던 기자들도 슬쩍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스티븐에게 작년 에플 성과에 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스티븐이 한 것은 에플 구조조정과 차세대 제품 개발이었다.
그 제품은 아직 시장에 나오지도 않았고 말이다.
스티븐은 화가 났다. 그는 지금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짜 뉴스에 속아서 엉터리 기사를 내보내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당신들은 기자 내용에 대해 검증은 하지 않은 겁니까? 당신들 기자 맞습니까?!!!]
노골적인 스티븐의 비난에 기자들은 다들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기자 한 명이 슬쩍 다른 이야기를 했다.
[차세대 제품인 아이컴에 인공지능 기능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까?]
스티븐은 그제야 흠칫 놀랐다. 하지만 굳이 숨길 일은 아니었다.
[맞습니다. 아이컴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입니다!]
기자 회견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질문은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덕분에 이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 에플 주가는 다시 급등해서 10달러 선을 뚫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중에 에플 인공지능은 그저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기사가 나오자 다시 에플 주가는 8달러 선으로 내려갔다.
에플 주가는 실시간으로 요동치면서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에플 주가가 7달러 선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에플 매수세는 여전히 죽지 않았다.
* * *
“3천억을 벌었다고요?”
우영민 부장은 차를 청소하는 최민혁 실장 옆에서 입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 소동 때문에 에플 주가가 생각보다는 많이 요동쳤습니다. 그래서 오를 때는 팔고, 내릴 때는 다시 샀습니다.”
에플 주가는 하루 단위로 폭락과 폭등을 무식하게 반복했다.
가짜 뉴스가 나오면 에플이 적극 대응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 옵션 이야기가 나왔다.
심지어 가짜 CF에 대한 것도 말이다.
아직 CF는 방송 준비 중이었다.
타이밍을 맞추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CF 촬영진 중에 입이 가벼운 이가 꽤 있었다.
최민혁은 물론 그들 입을 막지 않았고 말이다.
그들이 언론사와 만나서 가짜 CF에 대한 정보를 뿌린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진짜 CF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정확히는 있기는 했는데, 가짜 CF와 엮여서 애매해진 경우다.
어차피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가짜 CF와 진짜 CF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폭로해도 믿는 사람이 없었다.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거야 원.’
최민혁 실장은 흥분한 우영민 부장의 얼굴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에 번 수익은 부동산에 전부 다 퍼부었군요.”
“주식도 좀 사들였지만 성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당장 최민혁 실장이 있는 저택이 그 대상이었다.
최민혁은 덕분에 미국에 와서도 휴가 생활을 즐길 수가 있었다.
그는 솔직히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다행히 핑계는 충분했다.
어쨌든 그는 우영민 부장의 능력을 잘 알았다. 4억 달러 안팎의 자금을 우영민 부장에게 맡겨서 투자를 진행시켰던 것이다.
그 성과는 나쁜 편이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이 결국 자신이 한 일이 원인이었으니.
그는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야 할지 고민하다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러다 결국 권태성 실장에게 전화해서 KMB-01 양산에 대한 것을 압박했다.
[권 실장님, 실망입니다. 아직도 일이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도대체 이 일을 언제부터 진행한다는 말입니까?!!!]
권태성 실장은 분노에 가득한 최민혁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죄, 죄송합니다. 일어 많이 밀려 있어서 말입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아실 만한 분이 제가 굳이 이렇게 전화해서 압박해야 합니까? 제가 좋아서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폭풍 잔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권태성 실장은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 역시 에플 사태가 어떤지 잘 알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물론 권태성 실장이 움찔하는 어조를 느꼈지만 계속 타박했다. 이 정도쯤은 애교로 봐도 될 정도이니까.
[또 일정이 늘어지면 저랑 사업할 생각이 없다고 알겠습니다!]
[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권태성 실장의 행동에 혀를 찼다. 오성 전자 사령탑인 기획실을 이끄는 기획실장이 자기에게 숨도 못 쉬기 때문이다.
‘적당히 좀 했어야지. 뭐, 일단 KMB-01 양산 문제에 집중해야겠어.’
* * *
미래 기술 배종구 사장은 요즘 정신이 반쯤 나가 버렸다.
그는 모토롤라와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서도 아직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은 결코 꿈이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 놓인 2,000억 투자금 때문이다.
윤종수 전무나 허종진 팀장 역시 이 일이 꿈이 아닌가 싶었다.
그들은 자고 일어나면 이 일이 사라질까 염려스러웠다.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될 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00억이라니.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1억, 2억 때문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1억 어음 만기 때문에 은행 앞에 가서 빌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주거래은행장이 직접 자신을 찾아와서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전혀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은 KM 전자와 모토롤라가 다 했으니 말이다.
모토롤라도 사실 이미 수십 차례 KM 전자와 만나서 마라톤 협상을 이어갔다.
그들은 다른 회사와는 달리 워낙에 판매하는 핸드폰이 많아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 사실 국내 인맥을 동원해서 넌지시 KM 전자를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국세청부터가 KM 전자에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들은 이미 KM 전자를 내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모토롤라도 이때서야 최민혁 실장이 어떤 능력자(?)인지 알았다.
소문이 무성한 최민혁 실장이 알려진 것보다 더한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모토롤라가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갈등했는지 말이다.
때문에 최민혁은 모토롤라가 자신과 대립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막을 잘 모르는 미래 기술 임직원은 아직도 패닉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
전자 부품 연구소에서 이직한 허종진 팀장은 자신의 선택이 최고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어젯밤에 전자 부품 연구소 전 직장 동료의 전화를 받고는 쾌감마저 느꼈다.
그들은 처음에 자신보고 미래 기술로 이직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한다니.’
새삼 미래 기술의 인지도가 바뀐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님은 정말 놀라운 분입니다.”
배종구 사장은 다시 한번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생각했다. 최민혁 실장이 레전드 인물이라는 것은 잘 알았다. 다만 그로서는 최민혁 실장이 왜 이렇게 자신에게 잘해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난 그가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