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
‘하긴 장승일 실장이라면 최용욱 회장에게 늘 보고할 테니까. 결국, 의사 결정은 할아버지가 내리겠지. 이번 일 때문에 최두진 사장을 찾아가서 자문한 것인가? 아, 투자 때문일 수도 있겠어.’
그도 두 사람이 에플 주식 투자로 막대한 이익을 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투자 성과는 이미 한국 대기업의 다른 회장에게도 파다하게 퍼졌다.
특히 황당한 것은 최민혁 자신의 술수 때문에 DL 그룹이 이 시점에서 투자할까 망설이다가 이익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보고서는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이 돼지는 정말 끈질기네.’
최민혁은 전생의 김현우 수석 부장의 행패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의 동향을 보자 내심 지난 일이 아쉬워졌다. 최두진 사장이 가진 KM 전자 지분과 김현우 수석 부장의 처리를 두고 협상한 것 말이다.
그때 그냥 김현우 수석 부장을 바로 감방에 보내 버릴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뭐, 당시 협상한 KM 전자 지분 가치가 지금으로 치면 수천억은 넘으니.’
그는 혹시나 싶어서 한 가지를 확인했다.
“최두진 사장이 설마 김현우 수석 부장에게 자금을 준 것은 아니겠죠?”
조성돈 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상황이 좀 미묘합니다. 최두진 사장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전과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생겼나 보군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오래 살아도 몇 년 버티기 힘드니까요.”
“하긴 그분 나이도 있으니,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어요.”
“최두진 사장이 돌아가신 김현우 수석 부장의 모친을 그렇게 사랑했다고 합니다.”
“김현우 수석 부장에 대한 애증이 남달랐겠군요. 하긴 그 정도이니, 낙하산으로 KM 전자에 밀어 넣었겠죠.”
“그 관점에서 본다면 김현우 수석 부장을 안쓰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랬다.
최두진 사장도 김현우 수석 부장이 얼마나 수준이 낮은지 잘 안다. 그런데 자식이다. 이제 살 날도 얼마 안 남았고 말이다.
호적에 올라 있는 자식들에게는 충분히 가진 재산 일부를 넘겼다.
그런데 김현우 수석 부장은 좀 달랐다.
장남과 차남의 행패에 김현우 수석 부장을 호적에 이름 올리지도 못했으니까.
“허 참.”
최민혁 실장은 전혀 예상도 못 한 변화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는 그제야 최용욱 회장의 수명을 떠올리고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인생 1회 차와는 KM 그룹 분위기가 달라서 최용욱 회장 건강 상태는 꽤 좋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최용욱 회장이 10년, 20년 이상 더 산다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지금 와서 김현우 수석 부장이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날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의 하나란 거야. 그렇지. 권태성 실장의 의도를 알겠군. 하긴 김현우 수석 부장을 이용하면 나에 대해 그나마 잘 파악할 수 있겠지.’
권태성 실장이 좋아서 김현우 수석 부장을 끌어안을 리가 없다.
최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같아서는 땅에 파묻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렵겠죠?”
조성돈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살인 교사죄입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하시면 안 됩니다. 만약 최문경 부회장이 아는 날이면…….”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빌미를 줄 생각은 없으니까.”
최민혁은 기겁하는 조성돈 팀장의 태도에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 자신을 주시하는 이들이 최문경 부회장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제는 모건 스탠리를 비롯한 미국의 투자 은행도 말이다.
이런 시기에 무리수를 두는 건 그냥 자살골이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경제적으로 김현우 수석 부장을 묻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혹시 모르니, 김현우 수석 부장도 따로 동선을 살펴보세요. 어쩌면 그쪽을 통해서 오성 그룹이 내부 동향을 확인할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이미 판은 제가 처음에 예상한 것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그러니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없도록 하세요. 이번이 좋은 기회니까.”
“…네.”
조성돈 팀장 역시 굳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
천선구 과장은 김현우 수석 부장이 사무실에 들어오자 후다닥 쫓아갔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무시한 채 말이다.
실상 오성 전자 임직원들도 김현우 수석 부장과 천선구 과장을 보면서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들도 회사 내의 소문을 알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오성 전자 내의 분위기 때문에 이들 자리는 따로 사무실 내에 다시 조립식 건물을 만들어서 밀폐시켰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현우 수석 부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권태성 실장이 최민혁 실장 때문에 자신을 자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미국에 가서도 계속 최민혁 실장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정말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인공지능이라니.’
사실 그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래도 최민혁 실장의 성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에게 가장 많이 당한 사람 중의 하나가 그이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권태성 실장 측을 통해서 실제로 정보를 얻었다.
그는 때문에 권태성 실장의 자문에도 그럴듯하게 답변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대답으로 말이다.
“CF를 가지고 사기를 친다라…….”
첫 번째 에플 CF는 사기까지는 아니었다. 과장광고 수준이다. 그런데 김현우 수석 부장 처지에서는 사기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 사기 CF를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는 최민혁 실장은 이런 무리수를 둘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쪽저쪽에 안테나를 세웠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신 그런 중에 에플 공매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오성 그룹, 모건 스탠리, 최민혁 실장의 대립 관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 판에 들어갈 자금이 천문학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최민혁 실장이 결국 탐욕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
천선구 과장은 침이 튀도록 이 부분을 지적했다.
“최민혁 실장도 사람 아닙니까. 이제까지 모든 일을 다 순탄하게 이루었습니다. 인공지능 역시 비슷하게 생각한 겁니다.”
“그럴지도.”
“아니, 이건 분명합니다. 최민혁 실장은 이제까지 세상 쓴맛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가짜 CF라는 무리수를 둔 겁니다.”
“그렇게 봐야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 정보를 안 이상 이제 돈이 필요했다.
그는 그래서 에플 주식으로 초대박을 친 최두진 사장을 계속 찾아갔다.
처음에는 온갖 욕설과 폭력을 시달렸다.
최두진 사장은 아예 자신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최두진 사장 핏줄이다.
자기 노력이 통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온갖 인간적인 모욕에도 버틴 것이었다.
그 방식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그걸 잘 아는 천선구 과장이 김현우 수석 부장에게 달라붙었다.
“그, 그러면 최 사장님이 도와주시는 것으로 결정 났습니까? 확실히 투자하는 겁니까?”
김현우 수석 부장은 건방진 표정을 한 채 피식 웃고 말았다.
“잘되었어.”
“서, 설마 그러면 최두진 사장님에게서 투자를 받는 겁니까?”
김현우 수석 부장은 최두진 사장의 반응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최용욱 회장이 같이 있는 자리였기에 크게 핍박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마 많은 자금을 크게는 힘들어도 어느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야!”
“맙소사, 정말 축하합니다.”
“고마워.”
그가 이번 일이 잘될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최두진 사장이 에플 주식으로 꽤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독한 아버지의 행동에 치를 떨었다.
‘1달러 시점에서 투자에 들어간 거면… 아니, 도대체 얼마나 번 것일까? 하, 설마 그렇게 많은 돈을 벌고도 나에게 단 1달러도 주지 않다니.’
지금 에플 주가가 등락을 거듭하기는 하지만 그 기준이 8달러 선이다.
따라서 대략 무려 800% 이익을 번 셈이었다.
초기 투자금이 얼마인지 모른다.
대신 그가 어렵게 얻은 정보에 따르면 가지고 있는 부동산과 여유 주식을 다 팔아치웠다. 적어도 1,000억은 넘는 자금이다.
만약 1,000억을 전부 부었다고 가정하면 무려 7,000억을 번 셈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자금이다.
최두진 사장이 이 정도 돈을 벌었다면 자신에게 얼마 정도는 줄 것이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자신과 최두진 사장은 부자 관계이니까. 아니, 굳이 많은 돈을 받지 않아도 좋았다. 그걸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기회라면 말이다. 그 자금만 있다면 다시 부활할 수 있다. 굳이 오성 전자가 아니라도 독립할 수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은 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최두진 사장의 자금을 얻는다면 그 돈으로 돈을 불릴 방법은 꽤 있었다.
천선구 과장을 쳐다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앞으로 잘해.”
“아이구, 저만큼 수석님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래.”
그도 인정했다. KM 전자에 있다가 이직한 오성 전자로 같이 자리를 옮긴 이들 중에 여전히 버티는 소수 몇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천선구 과장이니까.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돼. 이번 일만 성공하면 대박이 날 테니까. 인공 지능과 음성 인식이라니,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기술이지.’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사실 그가 최민혁 실장을 옹호한 것은 최두진 사장 돈을 노렸기 때문이다. 진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참, 천 과장, 혹시 모건 스탠리 쪽에 아는 투자 관리자가 있다고 했지? 그쪽에 한번 연락해서 준비해 봐.”
“아, 알겠습니다.”
천선구 과장이 신이 나서 사무실을 뛰어나갔다.
* * *
김현우 수석 부장의 행보는 단지 한 사람만의 반응은 아니었다.
에플 정보를 얻은 세력 역시 다들 탐욕에 들떠서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안재운 전무는 한국 대기업 내에 꽤 인맥이 많았다. 때문에 그가 흘린 정보는 30대 대기업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한국 대기업 중에 이 에플 정보를 얻은 이들은 누구 하나 조용하지 않았다.
최민혁은 이런 상황을 어렵지 않게 확인했다. 그는 심지어 김현우 수석 부장이 다시 최두진 사장에게 달라붙었다는 정보도 얻었다.
다만 최민혁도 고민에 빠졌다. 일단 한국 내에 정보를 흘리기는 했는데, 자신이 예측한 것과는 좀 달랐던 것이었다.
움직여도 다들 소극적이었다.
철저하게 조직을 꾸려서 이쪽저쪽을 다 확인 중이었다.
실상 미국과는 반응이 좀 달랐다.
조사는 그럴듯하게 해도 직접적인 투자를 하는 반응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미국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아무리 한국 내의 지역 경제가 안 좋아도 의아한 반응이었다.
이 정보를 얻은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문경 부회장과 DL 그룹의 소극적인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모건 스탠리 역시 당황했다.
그들은 에플 정보를 얻은 한국 내의 세력 반응을 보고 다시 재조사에 들어갔다.
이건 최민혁이 짜놓은 플랜과는 좀 달랐다.
그들이 에플 정보를 이용해서 미친 듯이 이 계획에 말려들기를 바란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최민혁으로선 이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자칫 이대로 내버려 두다가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아서다.
결국 조성돈 팀장을 호출했다.
“우리 KM 전자에 대한 시선을 끌 필요 말씀입니까?”
“이왕이면 지금 당장 가능한 이벤트면 좋겠습니다. 특히 KM 전자가 가지는 가치를 좀 더 끌어올려서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어영부영하지 않도록 말이죠.”
“그 정도 일이라면, 이건 어떨까요? 모토롤라 측과 지금 계속 미팅 중인데, 몇 가지 로열티 협상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래 기술 배터리 협상까지 겹쳐지면서 재협상에 들어갔습니다. 다만 그걸 아직 언론에 알리지 않았는데, 그 기회를 이용하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