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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95화 (695/1,021)

#695.

아마 두 사람도 에플 주식으로 재미를 보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적당히 재미 본 정도였다면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초대박을 쳤다.

무려 수천억이 넘는 이익을 봤다 보니 최민혁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지금 취하는 포지션은 바로 최민혁의 반대편이었다.

그러니 고민할 수밖에.

물론 감성으로는 최민혁 측에 붙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성적으로 보면 좀 다르니까.

더욱이 그 내막을 확인한 이가 안재운 전무다.

이게 또 이상한 포인트다.

최민혁이 굳이 안재운 전무에게 불리한 정보를 흘렸을까.

그러니 두 사람 고민은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생각이 다른 이도 있었다.

[아버지!]

격한 소리와 함께 막아서는 경호원을 뚫고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김현우 수석 부장이었다. 그는 과거와는 달리 살이 많이 빠졌다. 그만큼 심적 갈등이 심했던 것이다.

그는 특히 최민혁 실장이 최근 얻은 로열티 수익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당시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일이 별것 아닌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가지는 탐욕은 광기를 넘어섰다.

육중한 덩치로 경호원을 밀어붙이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무려 다섯 명의 경호원이 막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120㎏짜리 멧돼지의 돌격에 압박을 받는 것처럼 주르르 밀려났다.

최두진 사장이 보다 못해서 손짓으로 경호원을 말렸다.

뒤로 물러나는 경호원.

김현우 수석 부장은 이전과는 달리 경호원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최용욱 회장 앞에 가서 넙죽 엎드렸다.

“회장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털털한 목소리로 지난 일을 떠들었다.

시원시원한 목소리는 지난 일을 잊은 것 같았다.

지난 일에 대한 그 어떤 앙금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실상 가면을 뒤집어쓴 배우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

최용욱 회장은 힐끗 김현우 수석 부장을 쳐다보았다. 최훈열 전무와 같이 KM 전자를 쓰레기로 만든 인물이니까.

김현우 수석 부장이 한 일은 감방에 가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최두진 사장과 최민혁이 딜을 본 덕분에 감옥에 가지 않았다.

그로서도 안다.

한편으로 손자 최민혁이 이 일에 대해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구는 감방에 보내고, 누구는 풀어줬으니까.

‘하지만 그때 넘긴 KM 전자 지분 가치가 수천억은 넘으니까.’

수천억이라면.

최민혁이 김현우 수석 부장을 용서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로서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었고, 애증이 가득한 최두진 사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최두진 사장은 과거 김현우 수석 부장에게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김현우 수석 부장을 병신 취급했다.

그런데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이제는 무덤에 갈 나이다.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다.

자기 성조차 물려주지 않은 서자 김현우 수석 부장을 타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용욱 회장에게 부탁해서 KM 전자에 낙하산으로 보낸 것이니까.

설마 그 직위를 이용해서 KM 전자를 부실 기업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물론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다.

최민혁 실장이 김현우 수석 부장을 스스로 걸어 나가게 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그 보상으로 최민혁 실장은 주식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떡하니 오성 전자에 다시 입사해서 수석 부장까지 달았다.

심지어 아직도 오성 전자를 잘 다니는 중이었다.

‘신기한 놈이야.’

물론 김현우 수석 부장이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최두진 사장과 관련된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

그는 이제 지난 일을 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하자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밝혔다.

“솔직히 저도 최 실장이 하는 성과를 보면서 느낀 바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당장 KM 전자 제조 매출이 증가하기는 하지만 예측한 증가 폭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회사 순이익은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특히 특허료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임직원이 회사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절박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최민혁 실장이 대주주로 있는 에플의 미래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의 말은 단순히 그의 의견만은 아니었다.

오성 전자 기획 팀에서 작년 KM 전자 매출을 분석해서 도출한 결과다.

KM 전자는 굳이 무리수를 둬가면서 생산량을 늘리지 않았다.

오로지 효율만을 중시했다.

그게 아니라면 미국 기업의 러브 콜마저 씹었다.

최용욱 회장은 김현우 수석 부장이 갑자기 최민혁 실장 옹호론을 내세우자 피식 웃었다.

“KM 전자가 잘나가기는 하지. 그런데 KM 전자 기준으로 에플을 판단하나 본데,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이번이 그 좋은 예잖아. 이번에 매킨토시 생산을 중단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인적 구조조정에 따른 구조조정의 일환이기는 해. 그렇지만 실적만 놓고 보면 에플 미래는 암울하지.”

이것은 KM 그룹 전략 기획실의 최근 분석 결과였다.

KM 전자와 에플은 같을 수가 없다는 것 말이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에플의 차기 제품이다.

그 성공이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부분 역시 딱히 좋은 평가가 나오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성공을 한다고 해도 과거 에플 신화가 이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대부분의 판단이다.

조작된 정보가 아니라 현재 에플의 실적을 통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김현우 수석 부장의 생각은 좀 달랐다.

“단기적으로는 그럴 겁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 기술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역시 성숙할 겁니다. 최민혁 실장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에플 옹호론.

김현우 수석 부장은 최용욱 회장 앞에서 최민혁 실장을 계속해서 칭찬했다. 높이 평가했다. 경영의 신이라고 평가했다.

최용욱 회장도 손자 칭찬을 듣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최두진 사장의 표정은 달랐다. 그는 안색을 굳힌 채 김현우 수석 부장을 째려봤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이상할 정도로 최민혁 실장 옹호론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 말인즉슨 에플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에플 내부를 계속 들여다보면서 말이다.

그러면 그 일은 누가 할까.

잘만 하면 여기에 김현우 수석 부장도 한 다리 걸칠 수가 있는 것이다.

최두진 사장은 에플에 대해서 잘 모를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두진 사장은 초사기꾼 같은 김현우 수석 부장의 유혹에 오히려 콧방귀를 꼈다. 그는 김현우 수석 부장이 최용욱 회장을 상대로 수작을 부리자 소리쳤다.

“저놈 말 듣지 말게. 저게 술수야. 돈을 달라고 사기 치는 거야. 하, 내 자식만 아니라면 다리를 부러뜨렸을 텐데!”

김현우 수석 부장은 다시 허리를 숙였다. 그는 이번 일이 진심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심지어 눈물까지 보여 주었다.

그야말로 할리우드 남우조연상을 달성하고도 충분할 정도의 연기력으로 말이다.

“아닙니다. 저도 지난 일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지랄 마!”

최두진 사장은 벌떡 일어나서 문쪽에 기대둔 안마용 막대기를 붙잡았다. 그는 그것으로 김현우 수석 부장 얼굴을 향해서 휘둘렀다.

놀라운 것은 김현우 수석 부장. 그가 기꺼이 안마용 막대기에 맞았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충무공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버지가 절 못 믿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저 자신 있습니다. 이번 에플 투자는 최고의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

최용욱 회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김현우 수석 부장의 행동에 크게 놀랐다. 아마 김현우 수석 부장이 과거에 한 짓을 몰랐다면 그의 충심에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김현우 수석 부장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결국 원하는 것은 돈이겠지?’

김현우 수석 부장이 에플 주식을 사들이자고 하는 건지, 아니면 에플 공매도를 하자는 건지는 그다지 신경을 쓸 일이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은 신기한 눈으로 김현우 수석 부장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김현우 수석 부장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아직도 돼지 같지만 살이 꽤 빠졌다. 눈빛도 많이 이전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면 넌 민혁이를 지지한다는 거냐?”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최 실장 반대편입니다. 다만 5개월 후라면 최민혁 실장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밍을 잘 계산해야 합니다. 이번 투자는 반드시 진행해야 합니다!”

결국에는 그 투자를 자신이 주도하겠다는 뜻을 내포했다.

최용욱 회장이나 최두진 사장이 그런 술수에 넘어갈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김현우 수석 부장이 왜 저러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두 사람 다 에플 주식 투자로 재미를 단단히 봤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뒤늦게 안 김현우 수석 부장이 그 돈을 노린 것이었다.

최두진 사장은 오히려 자꾸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김현우 수석 부장의 애틋한 태도에 갈등하는 중이다. 오죽하면 저럴까 봐, 뭐 그런 태도다. 김현우 수석 부장이 딱 원하는 반응이었다.

그는 김현우 수석 부장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자금을 빌려달라는 수작이라는 것을 알면서 모질게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이미 처음에는 몇 번이나 부정했지만 질척거리는 아들의 제안을 무시하지 못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틈만 나면 자신의 집에 찾아와서 계속 거머리처럼 들러붙었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합리적인 의견 제시를 한다는 점이다.

최용욱 회장은 자신의 지인과 민혁이 문제를 토론하고 싶어서 여기 왔다. 그런데 지금은 김현우 수석 부장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저놈의 의도는 잘 안다. 그런데 김현우 수석 부장의 시점은 자신과는 또 달랐다. 그게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래서 머리가 더 복잡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이 과도한 주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또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가 쉽지 않아.’

김현우 수석 부장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봤다. 자신의 노력은 어느 정도 통했다고 생각했다. 최용욱 회장은 어렵다고 해도 최두진 사장은 좀 다르니까 말이다.

‘됐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돼!’

* * *

미국 기업 중에 잘나가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제법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부동산 매각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아니고 고집을 부리는 예도 있다.

이런 때에는 채권자가 경매에 넘겨 버린다.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은 이런 부동산을 놓치지 않았다.

무려 700억 저택도 그런 경우다.

이 저택은 무려 9에이커 면적에 침실만 무려 20개, 욕실은 23개를 보유했다.

이탈리아 분위기를 자아내는 디자인은 캘리포니아 내의 다른 저택에 비해서도 특색이 있다.

최민혁은 이 저택 한쪽에 40피트 높이의 야자수 앞에 놓인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서 포도주를 홀짝였다.

비키니 옷을 입은 사용인이 최민혁에게 포도주 잔을 채워주었다.

‘좋네.’

뭐, 미국에서 일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이제는 굳이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야 아쉬운 것이 없으니 말이다.

최민혁은 실로 만족스러웠다. 다만 곧 후다닥 뛰어온 정장맨에 눈살을 찌푸렸다.

“조 팀장님, 좀 편하게 있으라고 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여전히 표정 관리를 한 채 입을 열었다.

“전 휴가를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푸념을 하는 조성돈 팀장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그도 솔직히 미국에 와서 이런 호사를 누릴지는 상상도 못 했다.

“쯧.”

그는 고리타분한 조성돈 팀장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내놓은 보고서만 조용히 살폈다. 내용은 뜻밖에도 김현우 수석 부장에 대한 정황이 적혀 있었다.

정확히는 김현우 수석 부장을 조사한 것이 아니라 최용욱 회장의 동선을 확인하던 차에 끼어들어 간 것이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는 최문경 부회장을 조사하는 중에 최용욱 회장도 같이 조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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