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65화 (665/1,021)

#665.

헬렌은 그때야 최민혁 실장이 왜 자신에게 협업을 제안했는지 깨달았다. 이지수 박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용이 생각보다 절감되는구나.’

일이 풀려도 너무 쉽게 풀렸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과 시간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더욱이 이 성과는 자신들이 참여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최민혁 실장이 만약 이 일을 홀로 진행했다면 협상부터 꼬일 수가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모른다고 해도 최민혁 실장이 협상자라는 것을 알면 최대한 이용할 테니까.

* * *

최민혁 실장은 이 소식을 듣고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는 조성돈 팀장에게 이 정보가 모건 스탠리 쪽으로 들어가게끔 지시했다.

“정보 채널을 여러 경로로 설정해서 우리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미 실장님은 예상하셨던 것입니까?”

“아무래도 제 명성을 무시할 수가 없죠. 이럴 때일수록 굳이 직접 투자하기보다는 다른 대리인을 내세우는 것이 훨씬 나은 판단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보다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호기심이 가득한 조성돈 팀장 눈빛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일이 잘 끝난 것도 있지만, 굳이 1억 달러를 쓴 것은 이지수 박사에게 뭔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실장님이 이런 일을 벌였을 리가 없습니다.”

당연히 이유가 있다.

최민혁이 단순히 이지수가 전생의 연인이라서 투자한 것은 아니었다.

“호오,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겠어요?”

조성돈 팀장은 이지수 박사 연구 팀과 과거 프로필을 조사한 보고안을 내밀었다.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 성과를 보면 무시하기 힘든 부분이 꽤 있습니다. 미국 국방성 쪽에 펀딩을 받아서 한 연구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이지수 박사는 학사 시절부터 프로젝트에 관여해서 꽤 많은 성과를 남겼다. 특히 석사, 박사 과정에서 낳은 결과는 놀라웠다.

인공지능은 그중 하나의 결과일 뿐.

그 곁가지로 나아간 영역은 생각보다는 광범위했다.

MPEG4 표준화는 하나의 과실에 불과했을 뿐이다.

이런 부분은 최민혁 실장의 성과와도 서로 연결되었다.

‘마치 가지를 친 것이 아닐까 할 정도이니.’

ARN, CDMA, MPEG4, 인공지능을 포함한 광범위한 연구 성과는 결코 가볍게 여길 것들이 아니었다.

조성돈 팀장조차 뒤늦게 이 정보를 파악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를 보면 1억 달러 투자는 절대 과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이지수 박사는 그만한 성과물을 내놓을 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어요.”

“네?”

“이지수 박사의 성과 말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알려지지 않은 것도 적지 않을 겁니다. 미국 국방성 관련 프로젝트는 기밀로 따로 취급될 테니까.”

“그게 무슨…….”

“이지수 박사도 저처럼 이리저리 압력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쌓인 것이 많지 않을까요. 지금까지야 힘이 없어서 몸을 사렸지만, 자금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죠.”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쉽게 말해서 제 능력이 고작 KM 전자 실장 정도였다면, 제 제안을 일방적으로 거절했을 겁니다. 그런데 전 KM 전자 실장 정도가 아닙니다. 에플의 대주주이자, 벨린 투자 오너입니다.”

두 가지는 비교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한국 대기업조차 최민혁 실장을 이제는 부담스러워할 정도였으니까.

다들 최민혁 실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말만 하는 중에 최민혁 실장의 체급이 무제한급으로 급성장한 결과였다.

“확실히 최 실장님은 이전과는 다릅니다. 설마 이제까지 기회를 기다린 겁니까?”

“그건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하면 이지수 박사가 굳이 최 실장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최 실장님을 염려해서라는 말입니까?”

“전혀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네요. 그런 면도 있을 테니까. 지금부터 이지수 박사의 행보를 잘 지켜보세요. 그러면 느끼는 것이 있을 테니까. 더 발전된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가 보여줄 수 있는 파급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겁니다!”

“…….”

조성돈 팀장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뭔지 짐작해 보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가 이번 일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굳이 그 내막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이제 모건 스탠리도 그냥 자리만 지키지는 못할 거야.’

* * *

최민혁 실장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실리콘 밸리 투자자들은 전부 최민혁 실장을 찾는 중이었다.

모건 스탠리 또한 이 소식을 모를 수가 없었다.

모건 스탠리 존 맥커니 사장이 결국 스탠리 이사를 사장실로 호출했다.

그는 우선 스탠리 이사가 진행하는 일을 걸고넘어졌다.

“스탠리, 이머징 마켓 쪽 상황은 어때?”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불만이 많았기에 퉁명스럽게 굳이 ‘태국’을 찍어서 말했다.

“태국 말입니까? 큰 무리 없이 돌아가는 중입니다.”

존 맥커니 사장은 피곤한 얼굴이었다.

“태국 수출 증가세가 우리 예상대로 급격하게 둔화하고 있잖아. 결국, 경상수지는 늘어나고 있어.”

특히 태국의 섬유 산업 수출 부분은 작년 대비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 큰 문제는 역시 임금 상승이다.

중국이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바로 태국이었다.

정확히는 미국 정부가 의도한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추세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들도 중국에 투자하게 되면, 동남아가 영향을 받을 거라는 것은 알아도 이렇게까지 휘청일 거라곤 짐작하지 못했으니까.

이를 잘 아는 존 맥커니 사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스탠리 이사, 자네 정도라면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태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 것 아닌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솔직히 자신은 죽어라 투자를 진행하는데, 한쪽에서는 투기를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비밀리에 말이다.

사전에 자신에게 정보를 줬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한다.

그랬다면 그쪽은 피해 갈 테니.

그런데 뒤늦게 아는 바람에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존 맥커니 사장이 사전에 조율한 덕분에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보안 때문에 아직도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좀 쓴맛을 봤으면 했는데, 생각보다는 잘 피해 갔어.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어.’

존 맥커니 사장은 야심이 가득한 스탠리 로버트 이사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개인적으로 스탠리 이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아니면 눈치가 없어서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가 태국 바트화를 계속 매집하고 있고, 바트화 절하 문제를 계속 언급 중이잖아. 그게 그냥 나온 이야기 같아?”

스탠리 이사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 바트화 절하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외채 상환 부담이나 물가 상승 압력 때문에 보류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존 맥커니 사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걸 그렇게 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일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조차도 바트화 게임에 배팅을 한 브로커 중의 한 사람이니까.

정확히는 후환이 두려워서 이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나야 돈만 벌면 되니까.’

솔직히 자존심이 상할 일이지만 굳이 정부 기관의 사냥개 노릇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멕시코 상황을 보면서도 짐작 가는 것이 전혀 없어?”

스탠리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머징 마켓을 담당한다. 아예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그 일을 모건 스탠리 윗선에서 직접 관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나 홍콩 쪽에도 위기가 확산된다는 말입니까?”

“멕시코 페소화 신용 붕괴는 외환 시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그러면 당장 수출 경기가 둔화하는 동아시아 쪽은 영향을 받지. 특히 태국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그는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 멕시코 페소화 신용 붕괴가 단순한 폭락 상태가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국 바트화 평가 절하 문제는 그 연장선에서 나온 일이었다.

즉 지금 진행하는 일은 일련의 연쇄 반응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어차피 돈 놓고 돈 먹기 아닌가.

지금 도박판은 한창 물이 올랐다.

이때 한껏 챙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는 왜 이런 이야기를 이제 와서 들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해당 사안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날 믿지 못해서일까?’

둘 다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해주는 이유가 자신이 얼마 전에 보고한 ‘최민혁 실장 제안’ 내용 때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혹시 최민혁 실장이 그 일에 끼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입니까?”

“아무래도 시기가 좀 그렇잖아. 포커판에서 한창 카드를 돌리는 중에 새로운 선수로 교체할 수는 없어. 다들 싫어하잖아.”

‘이익을 나누기 싫다는 말을 어렵게 하네.’

“하면 최민혁 실장에게는 협상이 어렵다고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존 맥커니 사장은 멕시코산 시가 하나를 꺼내서 연기 굴뚝을 뿜어냈다. 그는 그래도 짜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그게 그럴 수가 없어.”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호한 태도를 취한 존 맥커니 사장.

하지만 그도 고민거리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푸념을 털어놓는 스탠리 이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 후에 잠깐 손을 들어서 그의 입을 막았다. 한 사람에 전화를 걸어서 몇 가지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좀 더 기다려 봐. 한 가지 확인할 사실이 있으니까. 꽤 예민한 정보라서 시간이 좀 걸려. 그걸 확인한 후에 다시 이야기하지.”

* * *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우유부단한 존 맥커니 사장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꾹 입을 다물기만 했다.

간혹 자신이 하는 일에 훼방만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일도 다 이유가 있었다.

‘멕시코 금융 위기가 시작이었나?’

자세한 지시는 없었다.

그저 금융 위기에 쏠리지 않도록만 선을 그었다.

이런 부분은 이머징 마켓 투자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자칫하면 큰 손실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큰 이익이 날 수도 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의 성과는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었다.

스탠리 이사도 간혹 의아한 부분이나 회사 내에 도는 루머를 들었지만 무시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 일이 그냥 찌라시는 아니었다.

그는 존 맥커니 사장의 일방적인 강요를 탓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존 맥커니 사장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그게 더 알고 싶었다.

존 맥커니 사장은 불과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자신의 사무실에 보고서 하나를 들고 와서 보여주었다.

그가 내놓은 것은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보고서였다.

스탠리 이사 역시 따로 최민혁 실장을 조사하고 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대부분의 안건은 익히 다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안건에서만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이지수 박사 팀의 합류였다.

그녀는 과거 미국 국방성이 펀딩한 프로젝트에 끼어서 작업한 기록이 있는데, 다름 아닌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이다.

이 기술이 사용된 곳은 다름 아닌 드론, 그것도 군사용 드론이었다.

무인 드론에 적용된 이 기술은 시뮬레이터 차원에서 진행되었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았다.

미국 국방성이 펀딩한 다른 프로젝트 팀에서 실제로 이지수 박사 연구 팀이 고안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이지수 박사 팀은 이 결과를 몰랐다.

이지수 박사 팀 소속이었던 테일러 박사가 이지수 박사 팀을 배반해서 몰래 진행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성 담당자는 비용을 절감할 수가 있어서 딜을 했고 말이다.

다만 이 내용은 보고서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누군가 펜으로 급하게 추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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