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64화 (664/1,021)

#664.

최민혁 실장은 연락을 받고 뒤늦게 나타난 우영민 부장에게 슬쩍 손을 내밀었다.

이미 회사 설립과 앞으로 당장 필요한 자금을 준비해둔 것이다.

모건 스탠리가 그냥 자리를 지키지 않을 정보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곤 그것을 받아서 이지수 박사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

그녀의 손에 쥐여진 것은 다름 아닌 법인 통장이었다. 통장에 찍힌 금액은 무려 1억 달러였다.

“그 정도면 두 회사를 쇼핑하고, 나머지 자잘한 것까지 준비하기에 충분할 겁니다. 본사 건물은 이미 따로 마련해 뒀으니, 그걸 확인해 보세요.”

“……!”

아직 협상에 앞서서 뭘 하겠다고 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민혁은 마치 그런 결과와 관계가 없다는 듯 사전에 이 모든 준비를 다 했다.

이건 이지수 박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조성돈 팀장 역시 최민혁 실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도 이제까지 최민혁이 이해하기 힘든 일을 많이 벌인 것을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이지수 박사는 황당한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바로 반박했다.

“아, 아직 협상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습니다만?”

하지만 최민혁은 단호했다.

“상관없습니다.”

“이견 조율도 필요 없다는 말입니까?”

“사업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는 천천히 해도 됩니다만 이 경우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냥 사업을 시작하면 됩니다.”

“…필요한 회사는 지금 바로 인수해서라도 빠르게 진행하란 뜻입니까?”

“제가 굳이 이 박사님을 통해서 이 사업을 처리하려는 것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고, 이권을 노린 이들이 꼬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문제의 소지가 있어서 이렇게 먼저 처리한 겁니다.”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우영민 부장이 강준석 팀장과 같이 슬쩍 나서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최민혁의 번개 같은 일 처리에 놀란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일행마저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최민혁은 별반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자, 이미 마음은 굳힌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당장 움직이는 것이 어떨까요? 지분 협상은 한번 스스로 고민을 해보세요. 얼마가 필요한지는 정해서 통보해 주면 됩니다.”

쿨한 정리.

“…….”

이지수 박사는 그제야 최민혁이 자신의 견해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사실 지금까지 기업체로부터 무수히 많은 제안을 받았지만 다 거절했다.

서로 뜻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달랑 돈만 지원해 놓고 과실을 빼먹으려는 기업들의 행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의 제안은 달랐다.

그는 이지수 박사 자신을 믿고 제안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서 헛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최민혁이 굳이 이렇게 일을 밀어붙이는 것은 이지수 박사의 인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녀가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니면 전생의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어차피 지금 내가 이룬 모든 것은 그녀 덕분이니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업자로서 서로 같이 일한다고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이 박사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깊은 신뢰가 담겨 있는 말.

하지만 이지수 박사는 크게 당황했다. 그녀는 아직 최민혁 실장을 잘 모르니, 이런 제안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너무 일방적으로 최민혁 실장에게 끌려다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당사자가 최민혁 실장이 아니었다면 이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이 한 제안은 여러 면에서 그녀의 마음을 끌었다.

“자, 잠깐만요. 전 지금 당장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하고는.’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지금 한 제안은 이지수 박사가 할 고민거리를 덜어준 것에 불과했다. 그래야 결정하기 쉬우니까.

“그러면 일단 기업 쇼핑 하면서 천천히 고민해 보세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때 다시 저에게 연락해도 됩니다.”

그놈의 빨리빨리.

최민혁은 전광석화처럼 모든 일을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밀어붙였다.

“하, 하지만…….”

이지수 박사는 저돌적인 최민혁 실장의 제안에 크게 당황했다. 그녀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란 사람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헬렌의 손에 결국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헬렌은 최민혁 실장이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잘 알았다.

최민혁은 그제야 피식 웃으면서 힐끗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조성돈 팀장 역시 KM 그룹 내부의 소식을 들었기에 머뭇거렸지만 차마 입을 열지는 못했다. 이지수 박사가 한 말 때문이었다.

KM 그룹도 이 메신저 서비스를 봤고, 이지수 박사도 이 채팅 서비스를 검토했다. 그런데 둘의 지향점은 천양지차였다.

‘역시 뭔가 있기는 있나 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이번 일은 특히 최민혁 실장이 원천기술을 내놓지 않고, 지향점만 밝혔다.

구체적인 부분을 메꾸는 것은 이지수 박사의 몫이었다.

이런 부분은 이전과는 좀 달랐다.

거기다 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현기가 가득한 선문답 같았다.

조성돈 팀장은 그 부분을 느껴서인지 그저 혀를 찰 뿐이었다.

‘아, 모르겠다.’

* * *

헬렌은 이지수 박사와는 달리 경영에도 꽤 재능이 있었다. 대학 시절에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택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이미 이지수 박사의 마음을 안다. 그녀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말이다. 새로운 제안을 검토하려면 시일이 많이 필요하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 일을 일단 빨리 매듭지으려고 하는 것 같아.’

그래야 일이 일단 풀려간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면, 이런저런 협의 문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이지수 박사 역시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과연 이 사업이 제대로 풀려갈지 말이다.

최악의 경우 그러다 몇 개월이란 시간이 그냥 흘러가 버린다.

‘최 실장님은 그런 상황을 원치 않은 것 같아. 구골 법인 설립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고작 일주일 정도 걸렸으니.’

그녀는 이미 최민혁 실장이 뭔가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일어나는 일은 말이 되지 않았다.

헬렌은 일단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POWWOW를 개발한 트리뷰 보이스사를 찾아갔다.

이지수 박사는 이게 잘하는 짓인지 여전히 의문이었다.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우리 이 박사님은 연구만 해서 사업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최민혁 실장은 이미 이 사업을 한다고 마음을 굳혔고, 그 파트너로 우리를 선택했어. 그러면 일단 그의 제안대로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야.”

그런데 역시나 이 회사는 고민이 많았다. 시장 점유율이 너무 낮아서 OEM를 계획 중이었다.

문제는 업체 쪽에서 헐값에 거래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협상이 될 리가 없었다.

업체 쪽에서는 굳이 메신저 프로그램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지수 박사는 혀를 찼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는구나.’

만약 업체 쪽과 일단 손을 잡고, OEM으로 밀어붙인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게 부정적이라고 해도 변화는 생길 것이다.

‘하지만 최 실장님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일까?’

헬렌은 이지수 박사와 같이 자신을 간단히 소개했다. 딱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 이지수 박사님이시군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상대도 왜 이들이 굳이 POWWOW를 원하는지 안 것이었다.

둘 사이의 이해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헬렌은 최민혁 실장이 말하던 타이밍 이야기의 본질을 이때서야 깨달았다. 지금은 POWWOW를 헐값에 살 수가 있었다.

처음 부른 가격은 100만 달러.

상대는 당연히 발끈했다.

결국 협상 끝에 나온 결과는 200만 달러.

그녀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남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민혁 실장에게 전화했다.

[1억 달러는 알아서 사용하라고 준 겁니다!]

역시 쿨한 최민혁 실장.

헬렌은 얼떨결에 트리뷰 보이스사와 계약하고 말았다.

“…….”

이지수 박사는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POWWOW를 인수하면, 몇 가지 유용한 원천기술을 확보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 기술이 있으면 일을 풀어가기가 아주 쉬워진다.

특히 트리뷰 보이스사 인력도 흡수한 덕분에 잡일은 자신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았다.

다만 이런 상황 자체를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망설이면서도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그냥 따르고 있었다.

‘귀신에 홀린 것 같아.’

* * *

이지수 박사의 생각이야 어쨌든 헬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골드핑그가 생각보다는 줏대가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아서다.

그녀는 기호지세라는 뜻을 아는 듯 골드핑그가 머문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그 안에는 씻지도 않은 부랑아 5명이 멍하니 코딩만 하는 중이었다.

골드핑그는 허벅지를 벅벅 긁으면서 계속 인상을 찡그렸다.

동료가 계속 돌아가면서 골드핑그를 싸잡아서 맹비난했다.

[도대체 펀딩을 받기는 하는 거야?]

[정말 이 사업이 잘될 거로 생각해?]

[아무도 관심을 안 기울이는데?!]

사무실은 절망과 쓰레기만이 가득했다.

헬렌은 혀를 찼다. 그녀는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이 일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일 때는 분명 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이런 타이밍인지는 몰랐다.

물론 최민혁이 이런 상황을 아는 것은 이지수 박사가 전생 1회 차에서 술자리에서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푸념 덕분이었다.

이 타이밍이 그녀에게도 꽤 아쉬운 기회였던 것이다.

“어? 헤, 헬렌? 아니, 이, 이 박사님?!”

사무실은 발칵 뒤집혔다.

그들은 허겁지겁 사무실을 청소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골드핑그는 헬렌과 이지수 박사의 눈치만을 봤다. 그는 사실 두 사람의 외모에 뿅 가서 그녀들을 계속 찾아갔을 정도였으니까.

사업도 사업이지만 두 사람과 어떻게 해보고 싶은 심정이 컸다.

특히 헬렌에게 꽂혔으니까.

골드핑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두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허장성세를 떤 것이었다.

이미 둘 사이에는 어느 정도 협업을 위한 사전 조율이 있었다.

덕분에 협상은 생각보다 순탄하게 흘러갔다.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두 사람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200만 달러는 결코 나쁜 거래 금액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뼈대가 나온 프로그램, 거기에 몇 가지 특허뿐이었으니까.

이지수 박사의 연구 성과에 비하면 자신들의 연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헬렌은 특히 골드핑그와 그의 친구들 능력을 무시하지 않았다.

“지분의 15% 정도는 넘기겠습니다.”

다만 그녀가 굳이 최민혁 실장의 이름을 내세워서 계약을 복잡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새로운 사업가인 것처럼 의견을 제안했다.

“대신 우리 회사에 들어오겠습니까?”

“좋습니다. 합류하겠습니다!”

골드핑그는 반대를 모르는 이였다. 그건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도 펀딩을 알아보면서 불안감을 느꼈다.

때문네 차라리 이지수 박사의 도움을 얻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골드핑그도 POWWOW도 이지수 박사의 배후에 최민혁 실장이 있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그걸 알았다면 최소한 2천만 달러, 아니, 3천만 달러를 불렀을 테니까.

이지수 박사의 연구 팀이 하는 영역을 잘 알기에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순수 연구와 자신들의 응용 기술의 결합이라고만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

그녀는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절묘해서 감탄도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술술 풀려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최민혁 실장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이지수 박사 자신이 쌓아온 경력 덕분이었다.

최민혁은 이지수 박사의 실력과 평판을 절묘하게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거기다 자금은 그저 덤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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