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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60화 (660/1,021)

#660.

물론 이지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레즈비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헬렌을 친구로만 여길 뿐이다.

사실 이게 헬렌이 번민하는 부분이다.

그녀가 굳이 이지수 박사를 따라서 한국에 간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녀도 딴에는 지금은 살아 있는 이지수 박사의 아버지 데니스 리가 죽고 나서 남긴 유언을 돕는다고 나섰었다. 그런데 이는 최민혁 실장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감정적인 일이 엮였던 여러 가지 정황.

그건 최민혁 실장도 쉽게 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역시 우려했던 문제가 걸림돌이 되자 이 자리에 나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차라리 인생 1회 차대로 만나는 것이 그나마 나았을까?’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당분간은 이지수와 연인처럼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다. 더욱이 이지수 박사는 사람을 가린다. 자신이 아닌 그 누구도 쉽게 다가가기 힘든 여자다. 그러니 지금은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로 만나야 했다.

‘그렇게 보면 꽤 괜찮은 히든카드지. 강준석 팀장은 신뢰 그 하나의 강점 외에는 없지만 이지수 박사는 실로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졌으니까.’

그건 최민혁 자신이 아는 인생 1회 차의 소재 중에서 아이디어로만 존재하는 영역을 실제로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훌륭한 조언자였다.

‘뭐, 서두를 필요는 없잖아.’

최민혁은 그제야 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이번 일을 이용해서 천천히 다가가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헬렌과의 불화 역시 피해 갈 수가 있다.

서로 꾸준하게 알고 지내면, 친밀한 관계를 쉽게 쌓을 수 있으니까.

그는 그제야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확실히 잡았다.

헬렌은 헬렌대로 고개를 갸웃했다. 최민혁 실장의 표정 때문이다. 그녀는 최민혁 실장이 자신을 안다는 느낌을 받았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감이 그랬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했다.

그가 다른 남자처럼 자신을 스토킹한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런 것치고는 이상하게 친숙한 시선을 보낸단 점이다.

근데 이게 은근히 싫지는 않았다.

다름 남자라면 징그럽겠지만, 최민혁 실장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그것은 최민혁 실장의 경이적인 능력에 대한 존경심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그래서 이 상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보통 여자라면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헬렌은 생각보다 쫓아다니는 남자가 어마 무시하게 많았다.

그래서 예민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헬렌의 표정을 보면서 이미 이 미묘한 관계를 경험해 봤기에 서로 감정 상할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는 그래서 더 정색한 채 힐끗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장승일 실장에게 실리콘 밸리 비즈니스가 어떤지 보여주려고 데려왔는데, 그것이 예측과는 다르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는 기묘한 시선으로 최민혁 실장과 헬렌을 교대로 쳐다보는 중이다.

다만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다른 생각이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어째서 오성 그룹 막내딸 안지연을 걷어차 버렸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 헬렌이 최민혁 실장이 찾는 이상형이구나!’라고 수긍한 얼굴이었다.

한마디로 눈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높다는 뜻이다.

“흠.”

최민혁 실장은 한마디 할까 하다가 괜한 오해를 만들 것 같아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뭐, 구골 법인 설립은 알고 계실 테니,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그것과 비슷하게 메신저 쪽 서비스 사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장승일 실장보고 들으라고 한 말이다. 그도 그제야 정색했다. 다만 그는 힐끗, 자신 앞에 놓인 메신저 서비스 서류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최민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헬렌은 그제야 정색했다.

“하면 이 박사님에게 이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다는 건가요?”

최민혁은 괜한 분위기를 만들기 싫어서 가능하면 업무적인 멘트를 남발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자본만 투자하는 단순히 개발 요청이 아닙니다. 무조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 서비스 법인을 따로 설립할 테니까.”

“…설마 우리에게 지분도 주겠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구골 법인처럼 상업성 문제까지 고려할 겁니다. 다만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두 분이 나서서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놓으면 됩니다.”

그녀도 최민혁 실장의 명성을 잘 알기에 그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에 대해서는 기술도 없고, 경험이 없습니다.”

최민혁은 헬렌의 대답에 만족했다. 암, 그래야지.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헬렌도 펫처럼 길들일 수가 있으니까.

이 일은 굳이 서둘러 진행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이지수 박사라도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는 스마트폰 탑재 메신저 서비스에 대해서 알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 박사님과 같이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

“알았습니다.”

그는 물론 장승일 실장, 조성돈 팀장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 더 이상의 힌트는 주지 않았다. 일단 스스로 생각하게끔 놔두었다.

‘당분간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한 사업이니까. 하지만 이 정도 소스가 오히려 모건 스탠리 쪽을 더 자극할지도 몰라.’

* * *

헬렌은 곧바로 인공지능 연구실을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이지수 박사를 찾았다.

이지수 박사의 외모는 헬렌의 피부색만 살짝 바꾸고, 키만 조금 줄이면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적인 부분이다.

그녀는 헬렌보다는 더 침착하고, 지적이었다.

헬렌이 참모 이미지라면 이지수 박사는 사령관과 비슷했다.

그래서 이지수 박사의 모습은 어딜 가도 시선을 끌었다.

마치 여왕벌 같으니까.

다만 그걸 또 내색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래서 그녀는 동양인임에도 스탠포드 내의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지휘할 수 있었다.

헬렌이 이지수 박사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었다.

“지수야, 오늘 미팅 자리에서 최민혁 실장이 직접 나왔어.”

한창 연구에 빠져 있던 이지수 박사는 깜짝 놀랐다.

“설마 에플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을 말하는 거야?”

“어. 그런데 정말 나이가 어려. 아무리 봐도 나보다 3~4살 연하처럼 보였으니까.”

실제로 그녀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차마 그 자리에서 최민혁 실장 나이를 물을 수는 없었지만.

이지수 박사는 그제야 커피를 홀짝이면서 헬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 참.”

헬렌은 즉시 자신이 받은 계약서와 미팅 내용을 간단히 설명했다.

이지수 박사도 처음 접하는 주제에 고개를 갸웃했다.

“메신저 서비스라…….”

당연히 그녀도 안다.

“…혹시 ICQ를 말하는 건가. 그거 올해 서비스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비슷한 것 맞아. 하지만 모바일 서비스에서 사용한다는 것을 봐서는 단순히 인터넷만 한정한 것은 아닌 것 같아.”

“호오.”

이지수 박사는 인터넷 메신저와 모바일 메신저 두 가지 개념을 떠올려 보았다. 확실히 방향성이 전혀 달랐다. 다만 전자는 인터넷에서 구현할 수 있어도, 후자는 그런 시스템 자체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그걸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하나였다.

“ICQ와 비슷한 서비스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게 의미가 있나.”

“최민혁 실장님이 내놓은 제안서잖아. 단순히 그런 의미만은 아닐 것 같아.”

“그렇겠지. 최민혁 실장이 고작 ICQ를 베껴서 뭔가 하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어, 그래서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이건 이지수 박사에게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야후의 나스닥 상장으로 스탠포드 대학 전체가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최소한 스탠포드 대학생이라면 검색엔진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와 사촌격인 메신저 서비스 이야기가 나오니, 무시하기 힘들었다.

‘ICQ 서비스와 경쟁하려는 것은 아닐 거야. 그렇다면 나에게 제안한 이유는 역시 인공지능 때문인가?’

헬렌이 마침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더욱이 인공지능 기술까지 결합해서 뭔가 하려는 것 같아.”

“아니, ICQ에 무슨 인공지능이 필요해? 설마 인공지능 아바타라도 만들 생각이야?”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최민혁 실장이 자세한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팀장님 의견이 가장 중요하잖아.”

“아, 확실히 명확하지는 않구나.”

그런데 이 문제는 쉽게 결론 내리지 못했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지수 박사도 문득 이 일이 자신에게 돌파구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힐끗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어차피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들은 마당.

의외로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녀가 진행하는 인공지능은 추상적인 부분이 너무 많았다.

최근에는 뇌공학 연구소와 손을 잡았는데, 진척은 오히려 없었다.

분위기가 바뀐 셈이다.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녀도 최민혁 실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그가 굳이 자신에게 내건 제안이라면 그리 간단한 의미가 아닐 것이다.

굳이 그 내막을 공란으로 한 것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느 정도 스스로 따라오기를 원하는 것일까?’

확실히 이번 제안은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해온 방식과는 달랐다.

이전 사업은 최민혁 자신이 지분을 다 가져가면서도 식탁 위에 숟가락까지 다 챙겨줬다. 다만 그도 이번에는 이지수 박사 스스로 나서기를 원한 것이다.

최민혁의 입장에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서로 쉽게 알고 지낼 수가 있다는 꼼수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다.

이지수 박사는 고민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벽에 막힌 것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차라리 여유를 두고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안 그래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히다.’

“지도교수님에게는 내가 말할 테니, 최민혁 실장에게 가서 그쪽 제안을 다시 한번 잘 들어봐.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다면,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물론 다른 팀원들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해.”

“…알았어.”

헬렌은 이지수 박사의 반응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휴우, 어쩔 수 없지.’

그녀는 다시 연구 삼매경에 빠진 이지수 박사를 보면서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교대로 떠올렸다. 머릿속이 생각보다는 아주 복잡했다.

* * *

최민혁은 헬렌과 다시 만나서는 다른 때완 달리 새로운 원천기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헬렌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지수 박사가 긍정적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절 사인을 보냈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그는 형식적인 제안을 꺼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 인공지능과 비교해서 난이도는 가장 쉬운 정도로 보입니다. 두 분이 고작 그 정도 일도 못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만큼은 최민혁도 구체적인 특허를 제시하지 않았다.

단지 방향성만 내놓았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

이 메신저 서비스와 관련된 부분은 아직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에는 올려야 하니, 지금쯤이면 연구에 들어가야 해.’

더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인생 1회 차에서 이지수 박사에게 진 빚을 일부 갚고 싶었다. 만약 이 일이 성공한다면 적어도 20% 가까운 지분을 양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녀에겐 최대한의 보상이 될 것이다.

다만 일방적으로 퍼줄 생각은 없었다.

만약 구골 법인 때처럼 쉽게 모든 것을 얻는다면, 그녀와 소통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흠.’

최민혁은 나름 보안이라는 명분을 스스로 되새기면서 헬렌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이지수 박사가 되었든, 헬렌이 되었든 스스로 노력하기를 원했다.

‘다행이라면 반발은 없었나 봐. 역시 타이밍이 딱 좋았구나.’

아마 몇 달 전에 이 제안을 했다면 이지수 박사는 자존심 때문에 단호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기업의 투자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헬렌은 갈등했다. 그녀도 최민혁 실장의 명성을 잘 알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쉬이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거절할 자격이 없었다.

거절하려면 이지수 박사와 같이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일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녀의 감이 이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최민혁과 뭔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안 역시 흥미로워 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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