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7.
뜬금없는 최민혁의 지시에 조성돈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최민혁의 지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제가 마침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기술 특허를 바로 신청해 주세요. 작업은 비행기 안에서 할 테니, 미리 필요한 자료도 챙겨주세요. 아, 한국보다 미국 특허청에 먼저 신청해야 합니다. 벨린 소프트를 통하면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조금 뜬금없는 상황이지만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가끔 이런 일을 벌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송도연은 이런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텍사스 주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다시 캘리포니아 주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아함, 실장 오빠는 또 왜 저런대요? 설마 한 달마다 있는 그 일은 아니겠죠? 아, 죄송요. 농담으로 한 말이에요.”
“…….”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을 은근히 비꼬는 송도연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최민혁 실장이 떠올린 아이디어가 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아이디어이기에 저러는 것일까? 하긴 캘리포니아에 건물을 사들일 때부터 뭔가 준비하는 것 같았는데, 어쩌면 그것과 관련이 있을까?’
하지만 최민혁의 얼굴은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분노해 있었다.
이전에 보였던 그 소심한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니, 저게 당연한 모습이기도 했다.
‘하긴 실장님이 이제까지 많이 참았지. 그렇게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해 놨으면 지금처럼 좋게 좋게만 나갈 필요도 없지.’
* * *
스탠퍼드 대학 출신의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가 개발한 검색사이트가 바로 야후다.
이 사이트는 디렉터리 검색법과 서칭 기능을 적절하게 혼합한 방식을 사용했다.
야후의 인기는 시작할 때와는 달리 지금은 폭발적이었다.
게다가 야후 상장일을 앞두고 기대 심리는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
최민혁 실장 처지에서는 야후는 아쉬운 투자처다. 그가 최문경 부회장을 상대로 어느 정도 우위에 접했을 때는 이미 야후 쪽에 투자하기엔 좋은 타이밍이 아니었다.
이미 야후 미래 가치는 공개되었고, 투자자는 차고 넘치는 상태였다.
고작 동아시아 한국의 중견 그룹 계열사 실장으로서는 야후에 명함을 내밀어 봐야 먹히지도 않았다.
이것은 인생 1회 차에서 이미 뼈아프게 경험한 일이다.
아무것도 내세울 리가 없는 이가 야후 이권에 개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아니, 설사 권력과 자금이 있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최민혁 자신은 최문경 부회장과 계속 갈등 중이었다.
거기에 DL 그룹도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이 부추긴 오성 그룹을 비롯한 한국 대기업 역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사방이 적이다.
이들과 대립 중에 자칫 미국 기업에 투자했다가는 엉뚱한 문제를 만들 수도 있었다.
선친 최병문처럼 최문경 부회장에게 좋은 일을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눈치가 기민해서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곧바로 야후 주식에 손을 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결국 차선책으로 내세운 방법은 장기적으로 IT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는 사전 정지 작업으로 팔로알토 네트웍스 본사 빌딩과 오피스텔을 사들였다. 또한 우영민 부장에게 주식 수익이 나면 부동산에 투자하도록 지시했다.
뉴욕에 초호화 고급 아파트를 산 것도 그 일환의 하나였다.
그리고 이런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독자적으로 움직일 만한 대리인을 보냈다.
자신이 믿고 모든 것을 걸 수 있으며, 미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임직원 말이다.
그 대표적인 이가 바로 인생 1회 차에서 검증이 된 강준석 팀장이다.
덕분에 강준석 팀장은 국내 KM 전자 기획 팀과는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그는 기획 팀의 지시가 올 때만 그 일을 처리하고, 평시에는 스스로 움직였다.
다만 최민혁 실장이 내린 지시는 잊지 않았다.
[미국 IT 기업을 조사할 것, 필요하다면 인재풀 관리를 지속해서 할 것. 한 번에 돈으로 얼굴을 들이밀지 말고 신뢰를 얻을 것.]
최민혁 실장은 돈으로 인재를 살 수 없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인생 1회 차에서 죽음으로써 얻은 깨달음이었다.
강준석 팀장은 이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절대 잊지 않았다.
그는 결국 벨린 소프트와 벨린 투자의 도움을 얻어서 스탠포드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 아이비리그를 돌면서 인재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있는 인재라면 장학금 외에 여러 가지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이웃집 아저씨처럼 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결코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제안한 것이 아니라 마냥 친근한 친구처럼 다가갔다.
강준석 팀장은 이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자신이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해서 회의를 느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결코 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성경 구절처럼 진지하게 믿었고, 조금씩 미국 생활에 젖어 들어갔다.
스탠포드 대학생을 관리하면서 자신도 마치 스탠포드 대학생인 것처럼 돌아다녔다.
아니,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해 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생활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누구도 누리기 힘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한국인의 직장 생활과는 도저히 비교하기 힘든 일이었다.
가끔 신입 사원 동기들에게 전화를 할 때면 다들 부러워한다.
[와, 배부른 투정 좀 하지 마라. 여기 특허 팀 야근이 얼마나 지독한지 아냐? 연봉? 좋지. 지난달 상여금으로 2,300만 원 받았다. 하지만 준 만큼 부려 먹는 게 회사다. 넌 완전히 신선놀음하는 거야.]
[그것도 마음이 안 편해. 아무도 업무를 정해주지 않아서 스스로 일을 만들어 가야 해.]
[아니, 그러면 더 좋은 거 아냐? 매일 놀기만 해도 터치하는 사람이 없어?]
[…어.]
진짜였다.
[하, 씨발.]
신입 사원 교육 중에 인정을 받아서 조기 진급, 그리고 가장 먼저 팀장 직급을 달았다.
그리고 그 생활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 할 생활이었다.
강준석 팀장도 처음에는 최민혁 실장이 내린 이 황당한 지시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돈으로는 인재를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웃기시네, 날 스카우트하겠다고요?]
한 번은 뜻밖에 사심 없이 이야기하던 중에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강준석 팀장에게도 꽤 쇼킹한 일이었다.
그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때가 되면 연락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그 생활에 변화가 생겨났다.
‘역시 예상대로구나. 가만, 그런데 페이지 랭크 기술을 오늘 당장 출원하라고?’
이메일로 온 내용은 검색사이트 기술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 역시 야후에 대해서 모를 수가 없어서 호기심을 가졌다.
‘진짜 아쉽지. 반년만 더 빨리 미국에 왔어도 야후에 대해서 투자했을 텐데, 하지만 이미 늦었지. 지금은 야후 상장에 대한 기대 때문에 난리니까.’
지금 와서 야후 주식에 들어가도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품이 잔뜩 낀 이 시점에 들어가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이것은 한 가지를 의미한다.
검색엔진 기술은 이미 나스닥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라는 것.
유명한 벤처 캐피털도 새로운 검색엔진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 말은 경쟁자가 많다는 의미다.
아무리 벨린 투자가 제법 명성을 얻었다고 해도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때문에 야후와 관련이 있는 페이지 랭크란 기술에 집착했다.
‘정보 중요도를 판별한다고? 확실히 야후의 단점을 극복한 기술이네.’
야후가 검색엔진으로서 가지는 장점은 많지만, 그 이면엔 불필요한 정보가 너무 많이 모여 있다는 한계 역시 존재했다.
그런데 이 페이지 랭크 방식이면 그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특허출원자가 놀랍게도 최민혁 실장이었다.
회사 내에 있다 보면 전설적인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바로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쓰면 순식간에 믿기 어려운 기술이 나온다는 거다.
지금의 페이지 랭크 기술은 바로 그 이야기와 닮아 있었다.
그는 왜 최민혁 실장이 자신을 굳이 실리콘 밸리에 박아놓은 것인지 깨달았다.
‘이거였구나.’
* * *
강준석 팀장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로 벨린 소프트 법무 팀, 인사 팀에 정신없이 뛰어갔다. 그는 벨린 소프트 법무 팀을 통해서 미국의 꽤 유명한 로펌도 같이 불렀다.
그리고 페이지 랭크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단순한 출원이 아니라 한국 본사 특허 팀에도 자료를 보내서 추가 특허까지 검토해서 받았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페이지 랭크 유사 특허가 수백 건, 아니, 수천 건이 올라갈 것이다.
한국 특허청을 시작으로 일본, 유럽에도 동시에 말이다.
이건 KM 전자 특허 팀의 전형적인 업무 패턴이었다.
이 작업을 하는 데 불과 이틀이 채 걸리지 않는다.
나머지 소소한 것은 벨린 소프트 쪽 엔지니어 통해서 추가로 계속 작업할 예정이었다.
그들도 이 독특한 페이지 랭크 검색 기술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님이 이 일을 담당한 사람은 따로 정해놓았다고 했습니까?”
“네, 여러분이 할 일이 아닙니다.”
“아쉽네요.”
스콧 포스탈은 스마트폰 플랫폼 개발 때문에 지쳐 있었다. 이 일은 하나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서 지루하기만 하고, 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에 눈에 들어온 페이지 랭크 검색 알고리즘.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건 단순히 알고리즘을 구현만 해서 적용만 하면 된다.
야후 나스닥 상장이 눈앞에 닥쳤으니, 이것이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아니, 구현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기술도 아닌데, 따로 굳이 사람을 구해야 합니까?”
“네!”
“아니, 잘 생각해 보세요. 저도 나름 천재 소리 들으니까. 안 그래도 요즘 야후 때문에 학교가 난리가 났어요. 저도 뭔가 해보고 싶습니다.”
야후 창립자가 스탠포드 대학 출신이다. 그리고 그들이 설립한 야후의 나스닥 상장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스탠포드 대학이 시끄럽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스콧 포스탈도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눈앞에 떡하니 야후 검색 엔진 사이트의 단점을 극복한 기술특허가 있다.
강준석 팀장은 오히려 씩 웃었다.
“압니다. 하지만 이것도 최 실장님이 제시한 아이디어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스마트폰 OS 작업도 최 실장님이 고안한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스마트폰 프로젝트는 덩치가 너무 큽니다!”
사실 스콧 포스탈도 초반에는 큰소리를 쳤다. 그는 이미 전 회사에 있을 때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마트폰 프로젝트를 막상 시작하고서야 이 일이 이전 회사에서 하던 프로젝트보다 더 복잡하고, 발전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큰 문제는 그 일이 자기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말 짜증이 났다.
강준석 팀장도 스콧 포스탈이 가지는 불만과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지켰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OS나 플랫폼이 안정화되지 않아서 계속 죽지 않습니까. 보기에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쳇!”
스콧 포스탈은 콧방귀를 끼면서 툴툴거렸다. 옆에서 같이 페이지 랭크 특허 문서를 살피던 베트랑드 실브나 크레이그 행크스 역시 안색이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허락을 구해서 적지 않은 사람을 구했지만, 이놈의 일이 끝이 보이질 않았다.
전부 다 너무 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폰 개념과 KMP 시리즈를 서로 같이 연동시키는 것, 이 일은 그들에게도 도전적인 과제였던 것이다.
가장 힘든 부분은 ARN이나 퀄컴 쪽에서 결과물을 받아서 작업해야 했다.
그런데 이 인간들이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작업을 던져줬다.
그러면 어떤 형태로든지 문제가 생겨났다.
문제는 이 하드웨어가 도대체 어디서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칩 오류인지 아니면 시스템 오류인지조차 말이다.
여기에 OS 문제도 있고, 플랫폼 문제까지도 생긴다.
심지어 테스트 앱 문제 역시 가볍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