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02화 (602/1,021)

#602.

“제가 조사한 바로는 KM 전자가 국내 새방 전지 쪽과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마츠타 고지 박사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깜짝 놀랐다. 설마 KM 전자가 자신들의 뒤통수를 치려고 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 쓰게 웃고 말았다. 자신도 최문경 부회장의 뒤통수를 쳤는데, 최민혁 실장이 자신을 배반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정말인가?!”

“…네.”

그는 다만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오즈 야스지로 과장이 알기는 어려운 정보였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안 거야?”

“…KM 그룹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하도 반응이 이상해서 조사를 해봤는데, 사실이었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기획실 직원을 보내서 새방 전지 쪽과 협상하고 있습니다.”

마츠타 고지 박사는 그제야 탄식하고 말았다.

“KM 그룹이라면? 권재홍 비서실장을 말하는 건가?”

“네.”

마츠타 고지 박사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미 자신은 권재홍 비서실장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권재홍 비서실장은 포기하지 않았구나. 아니면 이 일이 그만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긴, 우리가 최민혁 실장과 손을 잡으면, KM 그룹에 부담이 되긴 할 거야.’

일본 업체와 KM 전자 간의 상호 배터리 협약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물론 일본에서는 이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아니, 한국은 더할까?’

그 역시 KM 그룹의 경영권 갈등 때문에 최민혁 실장과 최문경 부회장이 대립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권재홍 비서실장 행동도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결정이 난 것이 없잖아. 새방 전지 쪽과 연락했다고 해서 협상이 진행된 것은 아냐. 괜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최민혁 실장 때문입니까?”

“그래.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최민혁 실장의 성정이 보통이 아니야.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아니, 그래서 더 최민혁 실장을 믿을 수 없지 않습니까. 새방 전지와 접촉하는 것 자체가 우리 마츠시타를 들러리로 세우려는 행보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건 성급하게 판단할 수 없어.”

오즈 야스지로 과장은 단호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마츠타 고지 박사도 골머리를 앓았다.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본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그라도 오즈 야스지로 과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곰곰이 고민한 결과.

‘가만, 굳이 오즈 과장의 주장을 무시할 필요가 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일이 자칫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까.

아니, 그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자네가 개인적으로 권재홍 비서실장과 계속 연락해서 도움을 얻어. 하지만 난 모르는 일이야.”

오즈 야스지로 과장은 마츠타 고지 박사가 최민혁 실장을 두려워 해 꼼수를 쓴다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다만 만약을 대비해서 계획 B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하지만 실수 없도록 해야 할 거야. 최민혁 실장이 만에 하나라도 이 사실을 알면 난리가 날 테니까. 특히 권재홍 비서실장 쪽은 오히려 이를 이용해서 최민혁 실장에게 정보를 흘릴 수도 있어.”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요?”

“아니, 권재홍 비서실장이 하는 것을 봐서는 그 이상도 할 거야.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새방 그룹 쪽도 한번 살펴봐.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도 수단을 달리해야 하니까.”

“네.”

마츠타 고지 박사는 그제야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는 솔직히 연구원이라서 이런 일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작이 너무 좋지 않았다.

‘후유, 괜한 선입견을 줬을 수도 있어. 생각보다 문제가 많이 생기는구나.’

* * *

새방 그룹은 원래 물류 종합 업체를 모태로 했다.

그리고 인수된 새방 전지는 주로 자동차용 축전지 분야에 집중했다.

어떻게 보면 이 새방 전지 이후로 새방 그룹이 급격히 팽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현재 새방 그룹은 현재 주택 건설 사업을 검토할 정도로 잘나갔다.

따라서 새방 전지에 대한 새방 그룹의 관심은 꽤 높았다.

새방 전지 김상우 본부장은 현 새방 그룹 김희수 회장의 손자였다.

김상우 본부장은 다른 재벌 3세와는 달리 밑에서부터 꾸준하게 업무 경력을 쌓았다.

그는 일반 직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을 거쳐서 지금의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일반인과 비교하면 빠른 진급이기는 하지만 나름 실적을 쌓은 편이다.

그렇기에 새방 전지 내부적으로는 김상우 본부장의 능력을 인정해 줬다.

그렇다고 김상우 본부장이 인간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맡은 일에 한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매달렸다.

그는 때문에 KM 전자 기획 팀에서 연락을 받자 이 안건을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진지하게 검토했다.

일단 KM 전자에 대해서 원점부터 하나씩 파보았다.

‘정말 대단하구나.’

KM 전자의 발전은 눈부시다는 말로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최민혁이 기획실장으로 취임한 이래 KM 전자는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순수익 관점에서 아주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다.

지금 KM 전자 내에 쌓인 현금은 이미 1조 원을 가볍게 넘었다.

이게 은행인지, 회사인지 이젠 구분조차 애매했다.

‘재정 경제원이 사람을 보내는 것도 이례적인 일만은 아냐.’

최근 김우석 국제경제 심의관이 KM 전자를 찾아간 이유였다.

다만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달러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 김상우 본부장은 KM 전자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했다.

그리고 새방 전지 기획 팀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새방 전지는 축전지 분야에서는 최고의 기업이다. 그들은 얼마 있지 않아서 다른 대기업처럼 KM 전자가 최근 출원한 리튬이온배터리 특허에 대한 것을 알아냈다.

“……?!”

김상우 본부장은 영문을 잘 몰라서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내용 자체가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그건 새방 전지가 축전지 분야에 있어서 세계 최고인 만큼 리튬이온배터리 원천기술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술 검토를 하던 조학주 연구소장이 당장 김상우 본부장 사무실로 뛰어왔다.

“이, 이게 정말입니까? 저, 정말 KM 전자에서 리튬이온배터리 기술을 고안했습니까?!”

호들갑을 떠는 조학주 연구소장의 태도는 이상한 게 아니었다.

리튬이온배터리가 가진 취약점인 불안정성과 폭발은 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휴우, 거기 앉아서 숨 좀 돌리고 말하세요.”

하지만 흥분한 조학주 연구소장은 쉽게 자기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의 지금 모습은 세상일에 늘 반쯤 부정적이던 그의 평소 행동과는 너무 달랐다.

김상우 본부장은 조학주 연구소장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로서도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도 아직 상황을 잘 모릅니다.”

그는 이미 연구소에서 프린트해 온 오백 장이 넘는 보고서를 흔들었다.

“아니, 그러면 이 KM 전자의 배터리 특허가 다 어디서 나왔다는 말입니까?”

김상우 본부장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생각보다는 심각한 일이었다.

“그걸 소장님이 저에게 질문하면 어떻게 합니까? 직접 저에게 조언을 해주셔야죠!”

“아, 그렇죠. 맞습니다.”

조학주 연구소장은 연구소에서 먼저 배터리 특허에 관해서 조사 결과를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보고서를 들고 왔으니까.

그는 겨우 이성을 차리자 바로 연구소에 전화를 걸어서 추가 내용을 확인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연구소에서도 아직 내막을 잘 몰랐다.

KM 전자의 배터리 특허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이거 정말 이상합니다. 말이 안 됩니다. 아니, KM 전자는 배터리 산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배터리 사촌 격인 축전지에 있어 전문 기업인 우리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사기를 쳤지 않나라는 뉘앙스가 담긴 말을 남발했다.

하지만 김상우 본부장은 이미 지인 모임을 통해서 들은 내용이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김현탁 본부장에 대한 소식만 파고들어도 최민혁 실장의 주변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 수가 있으니까.

다만 기술적으로 배터리 특허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추론만 할 뿐이다.

‘MP3 상황과는 좀 다르지만, 위성 사업이나 IP 시티폰과는 비슷해.’

두 가지 기준으로 해서 배터리 특허도 추정할 뿐이었다.

“…역시 명불허전이네요.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황당해서 믿지 않았는데, 설마 배터리 쪽에도 손을 댔을지는 몰랐습니다.”

“정말 최민혁 실장이 한 성과라고 믿으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요. 이제까지 위성 사업을 비롯해서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이번 일도 같은 연장선일 겁니다.”

김상우 본부장은 특별한 의견이 없이 이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출원된 배터리 특허권자 목록에 최민혁 실장의 이름도 올라와 있었다.

다른 그룹의 재벌 3세 이름이 올라왔다고 하면, 평범한 버스 타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제가 아는 바로 최민혁 실장이 임직원 공을 강탈할 사람은 아닙니다.”

“…아니, 그러면 정말 최민혁 실장이 이 배터리 특허까지 고안했다는 말입니까. 그건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게요. 배터리 특허는 전공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내용인데,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어떤 소스를 이용한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가 특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리튬이온배터리 특허는 일본 업체조차 아직 제대로 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분야라는 점이다.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배터리 특허는 그들이 가진 리튬이온배터리 기술보다 더 발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만 봐서는 최민혁 실장도 이전과는 달리 기술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차세대 기술을 스스로 창안하는 방식을 취한 것 같아요.”

조학주 연구소장은 안절부절못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절대로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움직여야 합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KM 전자 측에서 연락했다면 손을 잡을 생각이 있을 겁니다.”

“알아요. 그런데 안 좋은 이야기도 있어요. 일본 업체에서 이미 최민혁 실장을 먼저 만났다는 소리가 있으니까.”

“네?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입니까? 설마 국내 기술을 일본 업체에 팔아넘긴다는 말입니까? 그거 완전히 매국노 아닙니까?!”

김상우 본부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왜 KM 전자 기획 팀에서 연락이 왔는지 이제는 좀 알 것 같았다.

“매국노까지는 아니죠. 아마 괜한 소리를 들을 것 같으니, 우리에게 연락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

조학주 연구소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라면 절대로 다른 기업에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 테니까.

김상우 본부장은 특히 이런 상황이 왜 만들어졌는지도 추론했다.

“미래 기술을 인수했어도 그쪽에서 물량을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만약 배터리 전문 기업 쪽으로 간다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은 선택과 집중일 테니까.”

“하긴 KM 전자가 좀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최근 KM 전자의 행보와 관련된 보고서를 읽으면서 최민혁 실장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만약 오성 전자가 리튬이온배터리 기술을 얻었다면 홀로 독식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KM 전자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이들은 배터리 전문 기업이 아니니까. 배터리 기술은 어디까지나 곁가지에 불과했다.

김상우 본부장은 탄식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잔가지가 리튬이온배터리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이라니.”

“저도 공감합니다. 최민혁 실장은 남다른 사람입니다. 이제까지 한 행보를 잘 봐도 쓸데없는 사업은 다 매각해 버리고, 핵심만 선택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국의 다른 대기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최민혁 실장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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