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99화 (599/1,021)

#599.

정미선은 신기한 눈빛을 한 채 아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민혁이 너도 참 별일이구나. 저런 일까지 간섭하다니.”

최민혁 역시 순순히 인정했다. 이번 일은 메드 드로닉에 원한이 있어야 가능할 정도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마케팅 팀에서 주도적으로 한 겁니다.”

정미선은 아들이 자신을 바보로 아나 싶어서 구박했다.

“그게 그거 아니니? 어차피 네가 마케팅 팀 업무를 승인해서 일이 진행된 거잖아. 기획실장이 승인하지 않으면 그 일이 진행될 수 없잖아.”

최민혁은 억울해서 변명했다.

“…그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가 기획실장이라고 해도 각 팀의 업무를 구석구석까지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정미선은 최민혁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각 조직에 의사 결정 권한을 주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다만 최민혁은 아무래도 어린 아들이라서 그런 부분이 익숙하지 않을 거라 착각했다.

“그렇구나. 난 회사 일은 잘 몰라서 그래. 그래도 이번 일은 잘한 것 같아.”

“…네"

최민혁도 피식 웃고 말았다. 이번 일이 저렇게 흘러가기까지는 복잡한 내막이 꽤 있었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다만 우리 부회장이 저 뉴스를 보면 배가 많이 아프겠는데.’

* * *

최민혁은 다음 날 출근해서 김명준 과장에게 최문경 부회장의 행적을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호, 우리 부회장님이 이번에는 KD 통신에 직접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말입니까?”

“이번 임원 회의를 시작으로 KD 통신 경영에 직접 간섭하려는 것 같습니다.”

“설마 미국 메드 드로닉 소송 때문입니까?”

“네. 그게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하긴 우리 최영란 본부장에게 계속 쓴맛을 봤으니, 무리수를 둘만 하네요.”

그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오래 하진 않았다. 그러곤 곧바로 장승일 실장에게 전화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KD 통신에 할아버지 지분도 있는 것으로 알아요. 아마 그쪽에서 박아놓은 임원도 있죠?]

[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장 실장님도 우리 부회장님을 믿지 않잖아요? 최문경 부회장이 쓸데없이 간섭하는 경우에 KD 통신도 산으로 갈 테니까.]

사실 최민혁은 KD 통신이 산으로 가기를 원했다. 다만 그냥 두면 목표한 에베레스트 산이 아니라 무등산으로 흘러갈까 염려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최문경 부회장을 자극하면, 상황이 재미있어질 것이라 봤다.

장승일 실장은 이런 최민혁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왜 굳이 KD 통신에 손을 쓰려고 하는지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하시는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아, 전 우리 부회장님이 KD 통신에 쓸데없이 간섭하기를 원치 않아요. 만약 장 실장님 측에서 손을 쓰지 않으면, 제가 직접 손을 쓸 겁니다.]

장승일 실장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공격적인 최민혁 대응에 깜짝 놀랐다.

[…우리 쪽에서 최문경 부회장의 영향력을 줄이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죠. 어떻게 할래요?]

[…회장님에게 보고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좋네요. 기다리죠. 다만 어설프게 처리하면 가만 안 둘 겁니다. 아직 KM 그룹은 저랑 엮여 있는 것이 많으니, 제 말을 듣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아, 꼭 KMB-01 배터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

[…네.]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의 압박에 내심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 반응이 공격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이 시기일까.’

* * *

최용욱 회장은 황당한 눈으로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민혁이 그놈이 지금 나에게 협박한 거냐?”

“그건 아닙니다. 이보다는 최문경 부회장이 괜히 KD 통신을 건드리는 것을 염려한 것 같습니다. 만약 KD 통신이 성공하면 최문경 부회장의 입지가 오성 그룹의 안재운처럼 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힘듭니다.”

“설마?”

“아니,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IP 시티폰이 국내를 시작으로 동남아 쪽에서 자리를 잡으면, KM 그룹 내의 시선도 달라질 겁니다.”

최용욱 회장은 내심 혀를 찼다. 설마 손자 최민혁이 이런 문제를 걸고넘어질지는 몰랐다. 하지만 한편으로 수긍했다.

이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최민혁은 충분히 KM 그룹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자신 역시 KM 산업 지분 외에 인센티브를 줘야 할 입장이니까.

“장 실장 자네 생각은 어때?”

“꼭 최 실장님 제안이 아니라고 해도 KD 통신에 우리 사람을 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미 이 부분은 김현탁 사장과 이야기를 해둔 사안입니다.”

KD 통신에 들어간 지분 중에는 KM 그룹 지분도 꽤 있다.

최문경 부회장이 이를 주도하지만 그렇다고 최용욱 회장이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KM 그룹 오너는 최용욱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장 실장 자네는 누구를 보냈으면 하나?”

“역시 양승준 전무님이 어떨까요?”

“아, 양 전무.”

양승준 전무는 장승일 실장의 사수이기도 했다.

지금의 장승일 실장으로 키운 이다.

다만 최용욱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날 때 같이 은퇴했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이 다시 복귀한 마당.

이제는 양승준 전무를 부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자네가 양 전무에게 연락해 봐. 지금 돌아가는 상황도 말해서 문제가 없도록 해. 문경이 그놈이 헛짓하지 않도록 잡아줘.”

“…알겠습니다.”

* * *

사실 최문경 부회장은 지금 상황이 그렇게 썩 좋지가 않았다.

KM 그룹 내에서는 최영란 본부장에게 점점 밀리고 있었다.

이 일로 KM 그룹 내에서 말들이 많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하기는 해야 했다.

그가 선택한 대안은 역시 KD 통신이다.

물론 겉으로는 주광진 상무를 임원 회의에 박아 그를 통해서 제어했다.

이런 내막은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잘 몰랐다.

만약 이런 사실이 어느 정도 외부에 알려진다면 최문경 부회장 자신의 이미지는 달라질 수도 있다.

최문경 부회장은 때문에 무리수를 뒀다. 그는 형식적으로는 KD 통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임원 회의에 참석한 것이었다.

물론 KD 통신 임원 대부분은 다들 배후가 있어서 최문경 부회장을 무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KD 통신 사장인 김현탁은 오히려 최문경 부회장을 환영했다.

[부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 김 사장도 잘 지내지?]

[부회장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 해도 임원 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IP 시티폰 특허까지 사들인 이상 자신들의 장애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의를 제기한 이가 있었다.

바로 최용욱 회장에게 지시를 받는 양승준 전무였다.

그는 늦게 임원 회의에 들어와서 TV 채널을 켠 것이었다.

[이걸 한번 보시죠.]

다들 임원 회의 중에 갑자기 TV를 켠 그를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양승준 전무를 무시한 이는 없었다.

양승준 전무는 한때 KM 그룹 기획 조정실 실장으로 있다가 KM 그룹 계열사 사장으로 옮겨간 후에 퇴직한 이였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이 복귀한 후에 다시 제안을 받고 KD 통신 이사로 복귀했다.

그는 오히려 TV 뉴스에서 나오는 메드 드로닉 사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이번 일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이번 소송을 통해서 미래 기술,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님이 새로운 배터리 기술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

‘결국 문제가 터졌구나.’

오성 전자가 밀어 넣은 김광헌 이사는 어느 정도 내막을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윗선의 지시대로 상황만 확인했다.

하지만 한부 그룹이 배후인 이필영 전무는 내막을 잘 몰랐다.

[…갑자기 웬 배터리입니까?]

아는 임원은 서로 눈치를 봤고, 모르는 임원은 의아해서 옆을 쳐다보기만 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짜증스러웠다. 그가 오늘 KD 통신 임원 회의에 참여한 것은 자신이 KD 통신 대주주란 점을 주지시키기 위함이다.

KD 통신의 실적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원한 것이다.

실제로 지금 임원 회의가 끝나면, 최문경 부회장이 나름 KD 통신 투자를 통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했다는 점을 피력할 것이다.

그렇게만 되어도 쪼그라드는 영향력을 어느 정도 키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양승준 전무는 그런 최문경 부회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미래 기술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이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양승준 전무는 마치 최민혁 실장 대리인처럼 구체적으로 말했다.

심지어 KM 전자가 이번에 출원한 특허에 대한 분석도 있었다.

아니,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특허가 일본 배터리 업체에 얼마나 치명타인지도 설명했다.

[사실 최민혁 실장이 마음만 먹으면 일본 배터리 업체에서 진행하는 리튬 이온 관련 배터리는 모두 접어야 할 겁니다!]

일본 업체가 왜 최민혁 실장에게 매달려야 하는지, 심지어 KM 전자를 찾아가서 이런저런 다양한 제안을 내놓는지 설명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움찔 몸을 떨었다. 이 일은 자신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 일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양승준 전무도 그 내막까지는 잘 몰랐다.

[솔직히 일본 배터리 업체가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아직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몰랐다면 일이 쉽게 풀렸을 텐데, 이젠 그러기 어렵습니다. 당장 최민혁 실장님 성향상 일본 업체와 국내 업체 사이에 경쟁을 시킬 테니까.]

그는 일본 업체 부분은 간단하게 설명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최민혁 실장님도 일본 업체가 가진 리튬이온배터리 관련 특허 때문에 그들의 제안을 무조건 거절하기는 힘들 겁니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주광진 상무는 무려 2,700억을 들여서 IP 시티폰 특허 인수한 것을 상기했다.

[…설마 일본 업체가 KM 전자, 아니, 미래 기술에 투자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그게 현실적인 대안이니까. 다만 최민혁 실장님이 가진 배터리 특허 가치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 가치가 더 큽니다. 아마 어지간한 자금으로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최민혁 실장님 역시 굳이 자신이 서두를 일이 아니니 지분 매각을 고민할 겁니다.]

[…….]

임원 회의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은 주판을 두들겨 봤지만 최민혁 실장이 지분 매각 대금을 얼마를 부를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금액은 단순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일본 배터리 업체가 얻을 수 있는 미래 수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오성 전자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김광헌 이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자, 잠깐만요. 설마 그 특허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제품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겁니까? 올해 안에 상용화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게 사실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일본 업체와 손을 잡으면 양산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리튬이온배터리가 만약 시장에 나온다면 그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당장 휴대폰 배터리를 다 교체해야 하니까.

아니, 게다가 그게 다가 아니지 않은가.

모바일 기기에는 전부 다 적용된다.

가장 큰 포지션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노트북이었다.

양승준 전무는 탐욕에 푹 빠진 KD 통신 임원진들의 모습에 혀를 찼다.

그러곤 얼어 있는 최문경 부회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저는 솔직히 걱정됩니다. 최 부회장님은 최민혁 실장과는 사이가 너무 안 좋습니다. 설사 어렵게 계약이 되었다고 해도 최문경 부회장님 측에서 무리수를 둔다면, 최민혁 실장님은 이걸 빌미로 차세대 배터리를 우리 KD 통신에 공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심각하지 않았을 안건이다.

그런데 임원 회의에 최문경 부회장이 나타나서 문제가 되었다.

KD 통신 이사진은 최문경 부회장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들 중에는 최문경 부회장이 박아놓은 주광진 상무 역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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