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
KM 전자 기획 팀 역시 IP 시티폰 사업 매각 대금이 2,950억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와.”
그들은 황당했다.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이 굳이 삼우 통신을 인수해서 일을 오히려 더 키운 이유를 깨닫고 말았다.
배종대 과장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디지털 통신 봉이 김선달의 재림이 바로 최 실장님이야!”
소회의실에 들어와서 회의를 준비하는 정성근 대리가 배종대 과장을 구박했다.
“최민혁 실장님의 최근 행보를 가장 부정적으로 보신 분이 한 말은 아닙니다.”
“야, 난 그런 적 없어.”
“장담하세요?”
“아, 그렇다니까.”
하지만 정성근 대리가 내놓은 것은 놀랍게도 휴게실 CCTV였다. 그 안에는 배종대 과장이 최민혁 실장을 씹는 장면이 있었다.
“정 대리, 너 설마 날 감시한 거야?!”
“최근에 보안 때문에 CCTV를 업그레이드했잖아요. 그때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정영일 사원이 잘린 후에 대대적인 보안 공사가 있었다.
또다시 회사 임직원이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것을 원천 봉쇄 하기 위함이다.
이 분야에 경험이 있는 정성근 대리는 그 작업을 옆에서 감시했다.
그 와중에 배종대 과장이 찍힌 한 동영상을 구해서 따로 저장해 놓았다.
배종대 과장 처지에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야, 정 대리,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다 배 과장님을 위해서 한 일입니다. 앞으로는 생각 좀 하고 말하세요. 아무리 그냥 하는 말이라도 듣기 불편하니까.”
“…최 실장님을 말하는 거야?”
“네, 다른 주장이면 저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최 실장님이 지금까지 한 일 중에 실패한 일이 있습니까? 지나고 나면 다 맞는 이야기와 기획만 했습니다. 그때 가서 또 최민혁 실장님 타령하실 겁니까? 그거 정말 보기 안 좋습니다.”
“쩝.”
배종대 과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른 이들 역시 시선을 피했다. IP 시티폰과 관련해서는 다들 최민혁 실장에게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늘 최민혁 실장이 옳았다.
더욱이 IP 시티폰 때문에 지금 자신들이 진행하는 스마트폰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최 실장님이 스마트폰 때문에 IP 시티폰 사업을 더 부추겼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IP 시티폰의 상황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다른 사업과는 달리 지금까지 IP 시티폰 사업과 관련해서 들어간 투자금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인건비와 그럴듯해 보이는 장비 정도였다.
이건 아무리 많이 쳐줘도 고작 30억이 넘지 않았다.
오히려 삼우 통신 인수 대금이 더 많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걸 다 합친다고 해도 300억 남짓한 비용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무려 10배를 부른 것이다.
거의 사기 수준이었다.
배종대 과장은 그저 혀를 찰 뿐이었다.
“우리 최 실장님은 뭘 해도 손해를 보지 않아. 정말 대단한 분이야.”
하지만 정성근 대리 생각은 달랐다.
“지금까지 사전에 준비한 것을 보면 꼭 그렇게 보기는 힘듭니다. IP 시티폰 특허도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니니까요.”
주로 무선랜 관련된 특허다. 이 부분은 따로 취합하는 중인데, 여러 분야에 써먹을 수 있는 특허였다.
배종대 과장은 솔직히 이 부분을 확신하지 못했다.
“난 솔직히 모르겠어.”
그로서는 KD 통신이 하루꼴로 기획실을 찾아와서 IP 시티폰 매각 대금을 협상하는 것도 신기했다.
최민혁 실장은 그저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지켜보기만 했다.
협상을 한 사람은 뜻밖에도 조성돈 팀장, 특허 팀 임기석 부장이었다.
실로 골치 아픈 일이었다.
배종대 과장은 베트랑드 실브, 스콧 포스탈, 크레이그 행크스가 회의실에 들어오자 곧 매각 문제를 접어버렸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이들 세 사람은 우선 기획 팀 두 사람에게 자신이 했던 성과물을 나타내 보였다.
두 사람은 이미 다 들은 내용이지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지켜봤다.
정성근 대리는 특히 사전에 자신이 준비한 프로젝트 기획안에 대해서 같이 설명했다.
서비스 기획, 콘텐츠 기획, UI, 사운드를 비롯해서 전반적인 것들을 점검했다.
세 사람을 대표해서 나선 것은 베트랑드 실브였다.
“아, 기획안이라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놓은 기획안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역시나 엔지니어답게 문서에는 능하지 못했다.
아니,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이 정확했다.
저렇게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밤을 꼬박 새웠을 테니 말이다.
그 범위는 생각보다 광범위했다.
배종대 과장은 도저히 쉽게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짰다. 그는 베트랑드 실브에게서 받은 자료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사전에 문건을 정리한 정성근 대리는 달랐다.
그는 인내를 가진 채 꼼꼼하게 자신이 만든 기획안을 토대로 내용을 분석해 나갔다.
그 집요한 행동에 베트랑드 실브는 질겁했다.
다른 두 사람은 정성근 대리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그들은 자신이 한 성과를 다시 되새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 사람이 정성근 대리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체계적인 일 처리는 반드시 필요했다.
실제로 에플에서 스티픈 일을 도와줄 때는 그렇게 했으니까.
다만 벨린 소프트에서 자유롭게 일한 기억이 아쉬울 뿐이다.
배종대 과장 역시 정성근 대리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꼭 그 일까지 할 필요가 있어? 이미 결과가 나왔잖아. 필요한 것만 발취하는 것이 맞지 않아?”
“제 생각은 달라요. 이 세 분 능력은 인정하지만 서로 바라보는 시야는 다르잖아요. 우리 기획이 바라보는 시야와 엔지니어가 바라보는 세상은 다릅니다. 교차검증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나올 거고, 그 부분을 메꿔야 시행착오가 줄어들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일을 두 번 할 필요는 없잖아. 당장 이 일만 있는 것도 아냐. 콜린스, 아이컴을 비롯해서 쌓인 일이 많아.”
“전 생각이 다릅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본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하.”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이 달라서 또 대립했다.
“야, 정 대리, 내 말 좀 듣자.”
“아뇨, 이번 일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다시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에이, 그건 오버야. 이 세 사람이 그 정도도 모를 것 같아?”
“물론 저 세 분 능력을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저분들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 대리, 난 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이건 병이라니까.”
“제가 꼼꼼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차라리 처음부터 철저한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짜 일정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
세 사람은 처음과는 달리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고개만 돌려가면서 쳐다보았다.
그들은 다행히 한국어를 어느 정도 들을 수가 있어서 내용을 파악했다.
특히 감정이 없는 얼굴을 한 정성근 대리는 그들도 꼭 시어머니처럼 불편했다.
하지만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지시를 받을 터라 꾹 참았다.
정성근 대리는 배종대 과장의 압박을 무시한 채 묵묵히 세 사람에게 입을 열었다.
KMOS, KMOS 개발 환경, 응용 에플 시스템과 관련된 이야기는 끝도 없이 나왔다.
실제로 이 일은 여기 다섯 사람만으로 감당할 만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아, 그건 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인력이 부족해서 무리입니다.”
“결국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그게 좀 애매합니다. 아직 KMOS가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니까.”
KMOS는 생각보다 큰 프로젝트다. 엄밀히 말해서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때문에 기본 타입을 만들기 위해서 무리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어느 정도 큰 골격을 정할 수 있었던 셈이다.
최민혁이 한 일이 바로 그거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도 많았고, 생략된 부분은 넘쳐났다. 심지어 중첩되어서 서로 겹치는 부분도 많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과정에서 중복된 알고리즘이 꽤 나왔다는 점이다.
정성근 대리가 구조적인 접근을 통해서 바로 그 부분을 찾아냈다.
“어?”
처음에는 은근히 정성근 대리를 무시하던 베트랑드 실브는 크게 당황했다. 주기적으로 보이는 구멍이 꽤 컸기 때문이다.
배종대 과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정성근 대리의 성격을 잘 알면서도 다시 한번 그의 능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주도권을 가져온 정성근 대리는 그제야 감을 잡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죠!”
“…네.”
세 사람은 썩은 감자를 씹은 표정을 한 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정성근 대리가 하자고 하는 일은 자신들이 한 프로젝트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서 정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거꾸로 기획안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정성근 대리는 그나마 처음 보는 아이템이라서 할 만했다.
그런데 세 사람은 여태 이 일만 죽어라 했다. 자신이 피땀 흘려서 한 기억을 다시 점검하는 일이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배종대 과장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극성맞은 정성근 대리를 말리지 못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정성근 대리가 그린 개요를 토대로 해서 자기 일을 해야 했다.
솔직히 누가 상급자고, 누가 하급자인지 모를 정도였다.
‘에고, 나도 모르겠다.’
* * *
정성근 대리도 자신이 무리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라면 기획 팀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벨린 소프트 엔지니어가 그 규정을 어긴 셈이다. 만약 이런 일이 습관적으로 일어난다면 기획 팀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정확히는 그보다 기획 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KMSP-01(Smartphone)에 사용된 KMOS에서 논리적인 문제점이 꽤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이 KMSP-01은 폰이 아니라 바로 스마트폰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기 때문에 기존의 폰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이 생겨난다.
“제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부분은 모바일 데이터 접속, 모바일 데이터 전송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터치스크린 방식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기획 팀은 정성근 대리의 주장에 고개를 갸웃했다.
배종대 과장은 옆에서 보다가 자신이 나섰다.
“베트랑드를 비롯한 세 사람의 엔지니어가 한 노력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과에만 집착해서 모바일 폰과 스마트폰을 같이 취급했습니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섞여 버린 거죠. 결국 이 부분을 나누어야 합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배종대 과장은 힐끗 정성근 대리를 다시 한번 살핀 후에 쉽게 설명했다.
“모바일 데이터 전송 특허는 폰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됩니다. 오히려 네트워크 개념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노텔과 같은 네트워크 회사에서 다룰 수 있는 특허입니다.”
“설마 노텔에서 이미 특허를 출원한 거야?”
“일부 몇 가지를 출원했지만,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시간이 지난다면 상황이 좀 달라질 겁니다. 노텔도 이 새로운 시장을 안다면 적극적으로 달려들 거고요.”
“…그건 정말 문제겠군.”
“이 새로운 네트워크 개념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좀 쉽게 설명을 해봐. 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까.”
조성돈 부장이 투덜거린 건 그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맡은 분야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배종대 과장은 자신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쉽게 설명을 시작했다.
정성근 대리는 역시 노텔이 가진 관련 특허 자료를 내놓았다. 특히 네트워크와 관련된 천 건이 넘는 특허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이거 수량이 만만치 않네. 이게 다 네트워크 특허란 소리야?”
“대다수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수준입니다. 다만 눈여겨봐야 하는 건 일단 이들이 이 부분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겁니다.”
조성돈 팀장도 그제야 아차 싶었다. 네트워크 접속 방식은 그게 통신이냐 네트워크냐의 차이보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