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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67화 (567/1,021)

#567.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배종대 과장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기획안에는 실제로 동작하는 모바일 CPU, KMOS에 대한 상세한 사안이 들어가 있었다.

모바일 CPU 하나만으로도 봐야 할 자료는 차고도 넘쳤다.

KMOS는 아예 하나의 독립된 프로젝트였다. 아니, 실상 전문적인 프로그래머가 필요했다. 그런 마당에 그들이 있다고 이게 될까 의심스러웠다.

‘가만, 이런 결과를 대체 어떻게 이끌어낸 거야?’

배종대 과장은 그제야 다른 팀원을 쳐다보았다.

다들 입을 딱 벌린 채 기획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쓴 기획안과는 격이 달랐다.

배종대 과장이 가장 먼저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티, 팀장님, 이게 도대체 뭡니까? 아니, 이미 시스템 설계가 진행된 겁니까? 말이 안 됩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한 겁니까?”

조성돈 팀장은 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혀를 찼다.

그도 막상 설명하려니, 골치가 아팠다. 각각의 프로젝트는 미국 KM 전자 계열사에서 진행한 일이다. 각자 전담 부서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둘러댈 수는 있었다.

“ARN이란 회사는 알지? 그래, IP를 팔아먹는 회사이니까. 이 회사는 자신만의 CPU IP를 가지고 있어. 그게 ARN이잖아. 현재 팔리는 제품은 ARN6인데,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차세대 CPU야.”

하나하나 이어지는 설명에 다들 그제야 어느 정도 이해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이해했다고 해서 그걸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조금 어느 정도 수긍했다.

결국 나온 감탄은 한 가지.

“최 실장님이 미국 회사 지분을 인수한 것도 결국 다 이유가 있었군요.”

“설마 이런 일까지 예측했을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

“아니, 만약 그게 가능하면 지금 이 스마트폰을 그때 이미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최 실장님이라도 그게 가능할까요?”

침묵이 감돌았다.

막상 최민혁 실장의 행적을 파보니,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이 이제 인간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 기획안이 중요한 만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정영일 사원을 정리한 것.

기획 팀 직원 중에는 정영일 사원과 관련해서 안 좋은 소문을 알기 때문이다.

배종대 과장은 탄식하고 말았다.

“…정말 최 실장님이 이걸 다 추진한 것은 아닙니까?”

“최 실장님이 큰 그림을 만들고, 지시를 내린 것은 사실이지. 다만 그걸 입맛에 맞도록 한 것은 각 계열사 엔지니어야.”

“…그게 말이 쉬워도 가능한 일입니까? 한국에서 미국에 있는 엔지니어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려서 이게 된다고요?”

조성돈 팀장은 혀를 찼다.

“배 과장, 그걸 나에게 따지면 어쩌자는 건가?”

“그래도 조 팀장님은 실장님과 가까이 있으니, 질문했을 것 아닙니까?”

“답해주지 않으셔.”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정 궁금하면, 배 과장 자네가 직접 물어봐.”

“…….”

배종대 과장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결국 다시 보고서를 살피다가 툴툴거렸다.

“벨린 소프트도 그중 하나겠군요.”

“그렇지. KMOS는 정말 아무리 봐도 놀라운 결과물이니까.”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문 의문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가만, 그러고 보면, 과거 KMP-01 초기 OS를 굳이 바꾼 것도 이 일과 연결된 겁니까?”

“그렇지. 당시 Darwin으로 바꾼 것도 KMOS를 목표로 한 것 같아. 실제로 KMP-02A, 02B 개발 과정을 통해서 이 결과물이 나온 것이니까.”

“…그렇군요.”

배종대 과장은 자신이 대답하면서도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보는 것처럼 쳐다보았다. 그가 아는 상식이 송두리째 붕괴하였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은 그런 점을 굳이 이해시킬 생각은 없었다.

“자, 그러면 각자 역할 분담을 해야 해. 다들 잘 알겠지만, 이 기획안이 완성된 것은 아냐.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아. 특히 새로운 인력, 기술, 자본이 필요하니까. 그런 점도 고려해야 해. 심지어 일정 엄수는 필수야. 그러니 우리 기획 팀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겠지?”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팀원들이 어느 정도 자신 말을 이해한 것 같자 해야 할 일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곧 팀원들이 정영일 문제를 떠올린다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굳이 정영일 씨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겠어. 그런데 실장님 말처럼 괜찮을지 모르겠어. 결국, 최문경 부회장 손에 초기 기획안이 들어갈 텐데…….’

* * *

민상수 부장은 최민혁 실장의 IP 시티폰 포기 선언 이후에 최문경 부회장에게 큰 격려를 받았다. 심지어 상여금으로 무려 천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도 앞으로 처리해야 할 한 가지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바로 KM 전자의 IP 시티폰 사업권 인수 건이다.

KM 전자는 이미 몇 차례 사업부를 오성 전자에 매각하면서 큰 재미를 봤다.

오큘러스 프로젝트가 그 정점이었다.

그때 이 천억에 가까운 금액을 최민혁 실장이 챙겨갔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위성 사업의 경우일 때이다.

모바일 통신 사업이라면 얼마나 줘야 할까?

그것도 IP 시티폰의 인기가 절정에 오른 지금 말이다.

‘차라리 법인 설립 이후에 결정해야 할까?’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최문경 부회장이 한 가지를 염려했다.

“내가 보기에는 민혁이 그놈이 이렇게 쉽게 당하고 넘어갈 놈이 아니야. 보복을 위해서 뭔가 따로 준비하는 것이 있을 거야. 그걸 알아야 해!”

민상수 부장도 최문경 부회장의 지시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IP 시티폰 때문에 너무 자주 정영일 사원에게 연락하게 됐단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자제하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바로 그 정영일 사원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민상수 부장은 자신이 질문해야 할 리스트를 만들어서 곧바로 정영일 사원을 시내 외곽의 한 카페에서 조용히 만났다.

그런데 정영일 사원은 야심에 불타던 모습과는 달리 마치 좀비처럼 축 처져 있었다.

그는 마치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멍하니 창문만 보고 있었다.

“정영일 씨?”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던 정영일은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야 반응했다.

“아, 민 부장님, 안녕하세요.”

정영일은 이전과는 달리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의 모습이 민상수 부장과 거리를 두던 때와는 조금 달랐다.

마치 자신의 팀장을 대하듯이 진지하게 민상수 부장에게 행동했다.

“흠.”

민상수 부장은 서류 가방을 의자 옆에 둔 채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그게 사실…….”

그는 그제야 정영일의 사직이 다른 직원들이 사직할 때의 모습과는 뭔가 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설마 걸린 건가?”

“…네.”

“쯧.”

민상수 부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왜 정영일이 평소와는 달리 자기 눈치를 보는지 알았다. 그런데 너무 아쉬웠다. 사실 정영일의 도움이 이제부터 더 많이 필요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KD 통신 설립 전에 처리해야 할 이런저런 많은 일이 있다.

특히 IP 시티폰 사업부 인수와 관련해서도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의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인수 대금을 대폭 절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정영일이 없다면 앞으로 KM 전자의 내부 정보를 알기는 어려워진다.

‘최소한 최민혁 실장의 행보만 알아도 큰 도움이 될 텐데…….’

민상수는 또한 정영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았다. 정영일이 요구하는 것은 KM 그룹 입사이니까. 어쩌면 자신의 팀 소속이 될지도 몰랐다.

그는 혹시나 싶어서 질문했다.

“…하면 새로운 정보는?”

“…한 가지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한 가지 확답을 받고 싶습니다. 네, KM 그룹 본사 입사 합격 통보입니다.”

“설마 날 못 믿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제 입장이 그래서요. 솔직히 갑자기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크게 당황한 정영일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날 탓하는 건가?”

“솔직히 부장님 잘못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계속 전화를 하는데,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민상수 부장도 정영일 사원의 심정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골치가 아파서 담배를 꺼내서 그 자리에서 피웠다.

짙은 담배 연기에도 정영일 사원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정영일 씨를 토사구팽이라도 할까 봐?”

“…그건 아닙니다.”

“…기다려 봐.”

민상수 부장은 잠깐 고민하다가 우선 카페 밖에 나간 후에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네가 늘 말한 정영일 그 친구 말이군.]

[아무래도 이번 IP 시티폰 때문에 자주 연락하다가 들통이 난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 말았어야지!]

[죄송합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권재홍 비서실장은 처음에는 망설였다. 정영일을 입사시키는 것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이유는 당연하다.

자신의 회사에서 첩자질 한 친구가 KM 그룹에서 잘 적용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정영일이 가져왔다는 정보다.

안 그래도 지금은 꼭 KM 전자의 사정을 알아야 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다소 망설이다가 민상수 부장의 제안에 수긍하고 말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 내가 부회장님 허락을 얻어서 인사 팀에게 말해두겠네.]

민상수 부장은 잠깐 기다렸다. 어차피 최문경 부회장이 손을 쓰는 일이다. 입사 합격 문제는 그 자리에서 간단히 처리할 수가 있었다.

‘뭐, 이것도 따지고 보면 문제이지만 그걸 아는 놈이 없는 이상은 상관이 없지.’

그는 인사 팀에 확인 전화까지 한 후에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정영일 사원이 KM 그룹 인사 팀의 전화를 받고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아, 감사합니다. 네, 물론입니다. 입사 원서는 바로 작성해서 보내겠습니다.]

민상수 부장은 그제야 정영일 사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약속대로 대리 직급을 줄 거야.”

“가, 감사합니다.”

정영일은 꽤 흥분했다. 그가 그렇게 걱정하던 문제가 해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난 그런 입바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결과만 보면 되니까.”

정영일 사원은 그제야 차세대 프로젝트 기획안을 내밀었다.

“이건 KM 전자에서 앞으로 진행할 차세대 프로젝트 기획안으로…….”

하지만 민상수 부장은 정영일 사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는 기획안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바쁘지?”

“아, 네.”

“그럼 같이 가지.”

“…알겠습니다.”

* * *

민상수 부장은 KM 그룹에 도착하자마자 정영일 사원은 바로 인사 팀에 보낸 후에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달려가서 기획안을 내밀었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기획안을 보고 나서는 최문경 부회장을 찾아갔다.

최문경 부회장은 역시나 기획안의 1안과 2안은 그냥 대충 넘긴 후에 3안을 살폈다. 하지만 그는 3안 내용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다른 통로를 통해서 이 기획안을 얻었다면 무시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기획안은 최민혁 실장의 손을 거쳤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까지 최문경 부회장은 조카 최민혁을 무시하면서도 그 능력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니 이 기획안을 심각하게 본 것이다.

“이 기획안과 관련된 담당자를 호출해!”

“알겠습니다.”

* * *

결국 비서실에서 모바일 경력이 있는 구명진 3팀장과 만약을 대비해서 혹시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이들을 죄다 호출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 앞에 놓인 기획안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구명진 부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랐다. 하지만 기획안을 보고서야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이거 KM 전자 기획안이잖아? 황당하네. 아니, 남의 회사 기획안을 어디서 구한 것일까?’

굳이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른 임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한 출처는 없애고 불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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