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65화 (565/1,021)

#565.

개발 환경도 필요했다. 이 작업을 한 이는 다름 아닌 크레이그 행크스였다.

전체 OS 기획 작업을 한 이는 베트랑드 실브였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한 결과물을 하나씩 최민혁에게 설명했다.

최민혁은 물론 두 사람이 말하는 의미를 일부는 알아들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자신이 코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새삼 마음의 짐을 한 단계 덜었다. 축하를 위해서 준비해 둔 최고급 프랑스산 포도주를 한 잔씩 따라주었다.

“이게 45년산 뭐라고 하던데…….”

“감사합니다.”

스콧 포스탈은 최민혁 실장이 따라주는 술을 거절하지 않았다. 다른 두 사람 역시 최민혁 실장이 따라준 포도주를 음미했다.

그들은 최민혁의 뜨거운 시선을 접하자 머쓱했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최 실장님이 이미 잡아준 기획안을 수정하고, 추가했을 뿐입니다.”

최민혁 역시 모르지 않았다. KMOS 전체 개요는 그 자신이 만들었으니까.

“알아요.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의 실적이 희석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세계 최고의 천재 프로그래머입니다!”

“아, 아닙니다.”

스콧 포스탈을 비롯한 두 사람은 바로 앞에서 칭찬을 받자 얼굴을 들지 못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슴 한구석이 뿌듯했다.

그들이 나름 최선을 다해서 만든 성과물이 KMOS였기 때문이다.

에플 업무를 도와주면서도 업데이트를 계속했고, 결국에는 최민혁 실장이 제안한 결과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창호 차장이 ARN에서 공동 연구를 한 덕분에 포팅할 수 있는 플랫폼도 받을 수 있었다.

최민혁은 세 사람을 앞에 두고 KMOS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그가 굳이 세 사람만 따로 부른 것은 KMOS의 앞으로 개발과 관련해서 다른 사람이 이 내용을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보안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할 말도 있고 말이다.

“이걸 단순히 완성된 제품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당장 GPS 칩이나 카메라 칩도 들어갈 예정이니까요.”

간단히 요약해서 내놓은 설계안은 기획안보다 좀 더 구체적이었다.

심지어 스마트폰 내부 동작 흐름도까지 다 있었다.

“…….”

자신만만했던 스콧을 비롯한 두 사람은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설계안을 보면서 힐끗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결과를 내놓기가 무섭게 자신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혹시 실장님은 이미 저희가 하는 일을 알고 있었습니까? 강준석 대리가 따로 최 실장님에게…….”

“아뇨. 강준석 대리와는 무관해요. 제가 사전에 이미 구상하고 있던 결과물입니다. 다만 KMOS 관련해서는 철저한 보안이 필요해서 세 사람만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게 결국 다른 모바일 제품과 차별화된 요소이니까.”

“…네.”

최민혁은 진지한 얼굴로 일축했다.

“여러분이 한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둥 중의 하나입니다.”

“아, 아, 네. 그거야 그렇지만…….”

스콧 포스탈은 최민혁 실장의 뜨거운 시선에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설마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자신들을 높이 평가할 줄은 몰랐다.

“앞으로 잘 좀 부탁합니다. 필요한 것을 말하면 자본, 기술, 인력을 무한대로 공급하겠습니다. 이 속도를 유지해 주세요.”

“…네.”

세 사람은 최민혁 실장의 칭찬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 * *

최민혁 실장은 세 사람을 보낸 후에 뒤늦게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냥 회의에서 다룰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직 조창호 차장이 보여준 플랫폼에 제대로 된 테스트를 하지 않았기에 동작 중에 죽어버리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회의를 다음 날로 연장했다.

다른 이들에게도 좀 더 기회를 줬다.

덕분에 포팅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스콧 포스탈은 최민혁 실장에게 격려를 받아서인지 어제보다 더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모바일 OS, 바로 KMOS입니다!]

실상 이 말은 그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시작 자체가 스마트폰에 맞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KMP-01 개발 과정에서 갑자기 OS를 바꾸면서 삽질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 과정을 겪으면서 환골탈태한 바로 그 OS였다.

[…….]

다들 몰려와서 KMOS를 사용해 보며 감탄을 거듭했다.

최민혁 실장 역시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테스트 플랫폼을 쳐다보았다. 자신과 조성돈 팀장이 따로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나와 있는 결과가 여전히 잘 믿기지 않았다.

이런 최민혁 실장의 모습에 감명받은 베트랑드 실브가 나섰다.

[이제까지 최 실장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느낀 바도 많았습니다. 특히 KMP-02B 작업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제법 느꼈습니다. 다행히 ARN이나 퀄컴이 같은 계열사인 만큼 도움을 요청하기가 쉬웠습니다. 실제로 쉽게 수긍을 해줬고요.]

각 계열사마다 독특한 기술력이 있다. 그들 역시 나름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보면 그들끼리 힘을 합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최민혁 자신이 원하던 결과물이었다. 그는 그제야 스콧 포스탈, 베트랑드 실브를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어제와는 달리 이제는 조금 그들을 이해했다.

‘하긴, 이들이 아이폰을 개발한 자들이잖아. 그런 이들에게 이미 밥상을 다 차려놓았는데, 못 먹을 리가 없지.’

지금 이 결과물은 자신이 뿌린 씨앗이 제대로 성장한 결실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나서서 몇 마디 더 하려고 하다가 회의 참석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테스트 플랫폼을 살피는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더 회의할 필요가 없겠지. 이미 내가 굳이 지시하지 않아도 뭘 해야 할지 알 테니까. 다들 그 정도 머리는 있겠지.’

특히 조성돈 팀장은 마치 뒤통수에 해머를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테스트 플랫폼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

물론 대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획안을 만든 조성돈 팀장조차 멍한 얼굴로 화면을 터치해서 간단한 게임을 해보았다.

테트리스가 그 하나였고, 오목도 있었다. 놀랍게도 체스도 포함되었다. 아기자기한 게임이 컬러 LCD 위에서 동작하는 장면은 실로 놀라웠다.

심지어 이게 전화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최민혁은 이 스마트폰 화면이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앱과 관련된 상념을 떨쳐 버린 채, 모인 이들에게 소리쳤다.

[좋네요. 다들 눈치를 챈 것 같은데, 바로 이것이 다음 우리 회사 차세대 프로젝트인 스마트폰입니다. 다만, 오늘 회의 결과에 대한 보안을 유지해 주세요. 오늘 회의에 참석한 이들 외에 그 누구에게도 이 정보가 알려져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들 순순히 수긍했다. 그들은 이 혁신적인 스마트폰에 빠져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실상 이 일을 진행한 이들 중에 한 사람인 조창호 차장조차 화려한 LCD 화면에 혀를 내둘렀다.

각자 생각한 것은 자신들이 맡고 있던 영역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 결과물이 합쳐지면 이런 결과가 나올지는 상상도 못 한 것이다.

최민혁은 물론 회의를 끝낸 후에 조성돈 팀장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정영일이란 친구는 바로 정리하기 바랍니다. 기획 팀도 스마트폰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건 단순한 기능 구현이고, 몇 가지 추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 * *

박상기 차장은 스마트폰 회의가 끝난 후에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조성돈 팀장과 나란히 걸으면서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설마 조 팀장님은 이미 스마트폰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까?”

“아니, 저도 이번 회의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조창호 차장님이 꺼내신 것에도 깜짝 놀랐지 않습니까. 다들 각자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을 보면서 노력한 것일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박상기 차장은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문득 KMP-02B를 떠올렸다. KMP-02A과 겉으로 보면 비슷하지만, 꽤 차이점이 많았다.

그렇게 보면 KMP-02B에서 이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것이 그다지 이질적이지는 않았다.

화면을 키우고, 폰을 내장하면 되니까.

물론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쉽게 될 리가 없겠지.’

하지만 K투스, 무선랜과 관련된 기술은 이미 확보된 상황이다.

무선랜이 좀 불안하긴 하지만, 기능적으로 동작할 정도로는 준비가 된 상태다.

그 IP를 ARN 차세대 IP와 결합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KM 전자로서는 시간만 있으면 된다.

머리가 복잡한 박상기 차장은 뒤늦게야 조성돈 팀장에게 들은 ‘정영일 사원’을 떠올렸다. 굳이 조성돈 팀장에게 질문하진 않았다.

정영일 사원 본인은 나름 사내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 IP 시티폰 일이 터지면서 무리수를 계속 둬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마침 박상기 차장이 정영일 사원이 KM 그룹 비서실 민상수 부장과 몰래 통화하는 장면을 엿들었던 것이다.

“…정영일 사원은 어떻게 된 겁니까?”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던 조성돈 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친구가 그룹 비서실에 정보를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처음에는 조심하나 싶었는데, 최근 와서 무리수를 둔 것 같아요.”

“후유.”

박상기 차장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지금 봐서는 최민혁 실장도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지금까지 내버려 두다가 스마트폰 이야기가 나오자 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어쩌실 겁니까?”

“불러서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하긴.”

박상기 차장도 어지간한 일이면 실드를 쳐주려고 했다. 정영일 사원도 뭔가 사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KM 그룹에서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고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가족 같은 직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어려울 것 같았다.

‘답답하네.’

* * *

정영일 사원은 갑자기 조성돈 팀장에게 호출받아서 소회의실에 들어갔다. 그 안에는 박상기 차장도 같이 자리해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안색이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바위처럼 굳어 있는 얼굴.

정영일 사원은 마른침을 삼킨 채 조성돈 팀장의 손짓을 보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전혀 예상도 못 한 일에 크게 당황했다.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차세대 프로젝트 기획안 때문인가 짐작해 보았다.

하지만 이미 기획 팀에서 만든 3안은 폐기 처분이 된 상황이었다.

결국 1안, 2안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쉽지가 않았다.

1안이 매출이 크지만 LCD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다.

2안은 매출이 1안과 비교해서 너무 작았다.

정영일도 3안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3안이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포함된 기술이 너무 많았다.

그 기술을 모두 적용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스마트폰 OS 개발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벨린 소프트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아니, 그 안에 있는 천재 프로그래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거나 마찬가지다.

실상 국내 기획 팀은 각 계열사에 있는 엔지니어들의 능력을 잘 몰랐다.

애초에 최민혁이 그런 부분을 밝히지 않은 채 씨만 뿌려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다 최민혁 실장이 최문경 부회장을 염두에 두고 만든 판이지만 말이다.

“저기 조 팀장님, 갑자기 무슨 일 때문에…….”

조성돈 팀장은 평소와는 달리 담배를 꺼내서 베어 물었다.

“…….”

기획실에 있으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성돈 팀장의 모습에 정영일 사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언제부터야?”

“네?”

박상기 차장이 한 숨을 내쉬고 말았다.

“KM 그룹 측의 정보원 노릇을 하려면 조심해야지. 아니, 전화를 실내 휴게실에서 하면 어떻게 해?”

“네?!”

정영일 사원은 경악했다. 그는 뒤늦게야 아차 싶었다. KM 그룹 비서실과 계속 정보를 흘리면서 처음에는 조심했다.

하지만 최근 IP 시티폰 사태가 터지면서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