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64화 (564/1,021)

#564.

“…설마 제조 기반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입니까?”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생산 기반을 다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일부는 남겨둘 겁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에플에서 판매할 예정인 아이컴, KMP-02B, 심지어 다른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하는 MP3 플레이어 로열티 수익만으로도 4~5천억은 족히 넘을 겁니다. 그거 다 현금입니다. 그런데 돈이 더 부족합니까?”

“그거야…….”

조성돈 팀장은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 같아서 최민혁 실장의 말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로열티 수익만으로 5천억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아직 체감하지 못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그제야 방긋 미소 지었다.

“거기에 필요하다면 꼭 제조가 아니더라도 돈을 벌 방법이 있어요. IT 사업 쪽이죠.”

조성돈 팀장이 IMF 이후에 한국 경제가 어떻게 바뀌는지까지 알 수는 없었다. 인건비는 매년 계속 늘어나고, 중국 기업이 성장하면서 한국 제조업은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말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IT 기업이 성장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아직은 제조 기반 틀에서 사고가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IT 사업 말입니까?”

최민혁은 굳이 조성돈 팀장의 사고에 지금 당장 영향을 줄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 그러니 그때 가서 말할 생각이었다.

“필요하다면 해야죠. 그건 차후 강준석 대리에게 한번 자문을 구해보세요. 그 친구가 그쪽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으니까.”

실제로 미국에 있는 강준석 대리는 미국 내의 KM 그룹 계열사 조정을 하면서도 다양한 사업을 살폈다. 그중에는 IT 기반 사업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강준석 대리가 보낸 다양한 보고서 내용 중에 그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 부분을 살피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들 때문에 최민혁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

그런데 그는 최민혁 실장이 내일 회의가 문제없도록 하란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알겠습니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네.”

조성돈 팀장은 자기 아들뻘 나이의 최민혁의 말에 그저 탄식하고 말았다. 그 자신도 나름의 안목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민혁의 두뇌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도대체 저렇게 광범위한 지식과 안목을 어떻게 얻은 것일까?’

* * *

차세대 프로젝트 회의가 예정과는 달리 길어지면서 이런저런 말이 나왔다.

그런데 보안 때문에 회의 참석자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호기심은 더 늘어났다.

이는 기획 팀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회의 분위기가 어떤가 싶어서 조성돈 팀장에게 계속 질문했다.

조성돈 팀장은 물론 기획 팀에게 자신이 정리한 최종 기획안을 한 사람에게 주었다. 3안이 폐기된 보고서다. 물론 그 이유를 적당히 추가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의도한 것이구나.’

그는 힐끗, 정영일 사원을 살피다가 곧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배종대 과장은 기획안을 보고선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3안은 아예 접는 겁니까?”

“기술적으로 문제가 너무 많아서 현실적으로 무리수가 따른다는 것이 대부분 의견이야.”

실제로 그 이유로 적혀 있는 ARN CPU IP 안정성은 큰 문제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OS 개발에 걸리는 시간이다.

ARN CPU 이거 하나만으로도 개발 기간만 몇 년이 족히 필요하다.

이게 상식이다.

배종대 과장은 이미 추가 조사 과정에서 파악한 내용이라서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조성돈 팀장에게 그 점을 묻고 싶었으니까.

“아, 하긴 모바일 OS 성능으로 이걸 감당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성근 대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지난 회의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거야 필요한 부분은 따로 칩으로 구현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쉽지 않아. 단적인 예로 모바일 CPU가 아니라 무선랜 칩만 해도 시간과 인력이 많이 필요해. 그나마 IP 시티폰에 엮여 있어서 이게 가능이라도 했지. 이 전체 프로젝트의 일부에 넣어서는 힘들어.”

기술 개발이 가지는 한계라는 주장은 꽤 통했다.

막상 쉬울 것 같아도 진행해 보면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기획 팀은 자신들이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 실패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그리고 기존 기획안은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당시 그 자리에서 지적하지 않은 것은 다들 기획안 자체에 정신이 팔려서 그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막상 시간이 지나서야 아차 싶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각자 아, 이건 무리다는 점을 다들 수긍하고 말았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자신들이 기획안을 무리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순순히 인정했다.

조성돈 팀장은 묵묵히 수긍하면서 새삼 최민혁 실장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보면 최 실장님은 정말 인간 같지가 않아.’

회의에서 나온 결과물은 다 제대로 실현하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도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쓴 덕분에 그럭저럭 결과물이 나왔다.

‘하긴 생각해 보면, 너무 이상한 것이 많아.’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만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서 골치가 아팠다.

그는 정영일 사원의 처리만으로도 골치여서 박상기 차장에게 손짓으로 부탁했다.

박상기 차장은 묵묵히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힐끗 정영일 사원을 쳐다보았다.

마치 포식자에게 쫓기는 다람쥐처럼 눈을 굴리는 정영일 사원의 모습은 평소에도 늘 보이던 모습이었다.

결국 그는 화장실을 핑계로 사라졌다.

박상기 차장은 조성돈 팀장과 시선을 마주한 후에 정영일 사원의 뒤를 따랐다.

불과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나타난 박상기 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성돈 팀장은 굳이 박상기 차장에게 정영일 사원이 뭘 했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가짜 기획안을 넘겨서 팀원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영일 사원 일을 해결한 후에 사실을 말하면 되겠지.’

* * *

다시 시작된 회의는 이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그들은 이번 차세대 프로젝트와 자신들이 하던 일이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마치 장기 자랑 대회처럼 각자 한 가지씩 발표거리를 따로 준비했다.

부드러운 얼굴을 한 스콧 포스탈 역시 마치 장기 자랑을 하는 것처럼 유연하게 단상에 올랐다. 그가 슬쩍 나서서 KMP-02B 개발 과정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 새로운 OS를 소개했다.

[이 OS는 KMP-02B 개발 과정에서 깨달은 바를 적용한 새로운 OS입니다. 내부적으로 KMOS 2.0이라고 정했습니다.]

[…….]

최민혁은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KMOS 2.0이 바로 인생 1회 차의 iOS와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가 이미 사전에 이와 유사한 형태의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시간이 필요해서 아직은 여전히 작업 중이었다.

그런데 벌써 그 결과물이 나온 것이었다.

KMOS 2.0은 근본적으로 심비안과 같은 모바일 OS와는 격이 달랐다. 애초에 스마트폰에 쉽게 이식할 수 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전혀 예상도 못 한 일이라서 일단 회의를 중단시켰다.

[회의는 잠깐 쉬었다가 합시다. 스콧은 저랑 잠깐 이야기하시죠.]

[아, 알겠습니다.]

* * *

회의가 갑자기 중단된 후에 최민혁 실장이 사라지자 남은 이들은 회의실을 떠나기보다는 오히려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KMOS 2.0이 뭔가 다른가 싶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조 팀장은 이걸 사전에 알았습니까? 기획안만 봐서는 확정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미 3안에 따라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도 KMOS 2.0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솔직히 저도 지금 이 자리에서 안 것입니다.”

솔직히 그도 KMOS의 바탕이 Darwin이라는 것을 몰랐다.

Darwin 자체는 오픈 소스로 OpenDarwin처럼 여러 가지가 존재해서 공개되었지만 KMOS는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있다고 한다면 KMP-01에서 적용된 건데, 이것과는 달랐다.

결국 KMOS는 스콧 포스탈, 크레이그 행크스, 베트랑드 실브가 중심이 되어서 자체 개발했다는 의미다.

그것도 KMP-02를 토대로 말이다.

그들은 전원이 켜진 후의 KMOS의 동작을 쳐다보았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처음에 보인 도스 타입 창이 아니었다.

화면 위에 아이콘이 늘어서 있는 새로운 형태의 GUI 모습이었다.

이건 KMP-02에서 봤던 형태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달랐다.

해상도가 달라서 그래픽 화면은 더 세밀했다.

또 아이콘이 생각보다는 더 많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KMOS는 KMP-02 OS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퀄컴에서 고안한 모바일 폰 기능까지 다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조성돈 팀장이 다른 이들을 대신해서 최민혁 실장이 한 것처럼 집게손가락으로 슬쩍 화면을 밀어 보았다.

다소 끊기는 모습이 있기는 했지만 화면 전환은 자연스러웠다.

MP3 아이콘을 비롯해서 아기자기한 게임도 있었다.

그 게임은 당연히 KM 전자에서 외주를 줘서 만든 것들이다.

물론 KMP-01이나 KMP-02에 적용된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미 KMOS에 포팅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벌써 이렇게 결과가 나왔는지는 몰랐다.

모바일 OS와는 전혀 다른 OS에 다들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이것도 최 실장님이 이미 사전에 지시를 내린 것입니까?]

[KMP-01, 02와 유사하기는 합니다. 이런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KMP-01 초기 OS를 엎고, 이 새로운 OS를 적용했으니까요.]

다들 그제야 혀를 내둘렀다. 최민혁 실장이 아니다 싶을 때 과감하게 프로젝트를 접은 행동에 감탄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습니다.]

[덕분에 그때 만든 OS 기획안이 뼈대가 되었습니다. 이 KMOS도 그 기반을 토대로 업그레이드된 것일 겁니다.]

다들 기가 막혀서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의 단호함과 인내에 다들 감탄했다.

KMOS는 현존하는 다른 어떤 OS보다 화려하면서도 깔끔했다.

“…이 정도면 MS하고 한번 싸워볼 만하지 않을까요?”

역시나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동작을 하던 테스트 플랫폼이 다운되어 버렸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도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최근 IP 시티폰 때문에 최민혁을 불신했던 이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러면 이렇게 대단한 프로젝트를 사전에 준비해 놓고, IP 시티폰 사업은 도대체 왜 한 걸까요?”

“다른 기업 견제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 다른 기업 압박 때문에 IT 시티폰 사업도 하고, 스마트폰 사업도 따로 준비한다는 말입니까? 이거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지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

역시나 침묵.

그들은 설마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전혀 몰랐다.

더욱이 각자의 능력.

자신들은 뒤늦게야 이곳에 모인 이들이 다들 만만치 않은 이들이라는 깨닫고 말았다.

* * *

사실 제품 경쟁력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수가 있다.

하드웨어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외부로 보이는 얼굴을 빼놓기 힘들다.

최민혁 자신이 늘 원한 것은 GUI 방식의 OS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굳이 구체적으로 이 방식을 제안하지는 않았다.

시기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스마트폰 개발에 앞서서 남아 있는 장벽 중의 하나가 배터리다.

이것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 내의 첩자 문제도 있었고 말이다.

최민혁이 이런 문제 중에서 가장 걱정한 것은 역시 KMOS였다.

혁신적인 개발도 개발이지만 꾸준한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쪽 전문가는 아니니까.’

스콧 포스탈이 내놓은 결과물은 그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단순히 KMOS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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