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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51화 (551/1,021)

#551.

“그럼요. 걔들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신입 사원입니다. 특히 공장에서 워낙 교육을 잘 받아서인지 그 업무 성격까지는 잘 모르는 눈치입니다.”

“공 과장, 자네는 잘 알고?”

“하하하, 제가 KM 전자에 있으면서 당했던 일이 어디 한둘입니까. 부장님이 말씀 안 해주셔도 돌아가는 걸 보면 뻔합니다.”

“…그건 곤란한데.”

공채덕 과장은 싱긋이 웃었다.

“저도 과거의 제가 아닙니다. 제가 안다고 다른 사람들도 안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런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보는 것과 외부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시티폰 특허 수백 건이 막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그걸 보고 우리 내막을 아는 이가 있겠습니까?”

“신입 사원은 모르겠지. 하지만 괜히 말 나오면 곤란하니, 입을 조심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내 생각은 달라. 당장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만 해도 이미 당한 경험이 있잖아. 그 정도면 눈치를 챌 거야.”

“그렇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시티폰이 성공할지 누가 압니까. 권태성 실장이 신이 아닌 이상 미래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공채덕 과장은 푸념하면서도 정말 시티폰 사업이 망할까 고개를 갸웃했다. 이 부분만큼은 그도 확신하지 못했다.

실상 이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시티폰 사업이 바로 시작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CDMA 서비스에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다.

워낙에 저렴한 통신비 때문이다. 더욱이 아직은 삐삐를 쓰는 사람이 많다. 여기에 시티폰을 더한다면 그렇게 나쁜 서비스는 아니었다.

“더욱이 우리가 지금 작업한 시티폰 특허는 가짜가 아닙니다.”

“하긴 그건 사실이지. 그런데 무선랜 특허는 이야기가 좀 달라. 시티폰 특허에 묻어버려서 주목받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해!”

“그건 조심하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완전히 비밀로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무선랜 특허를 통해서 시티폰 특허가 진짜라는 것을 보여줘야 해. 그래야 다른 대기업들도 제대로 움직일 테니까.”

공채덕 과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까다로운 지시이기는 하지만 시티폰 특허를 신입 사원에게 넘겨서 관리만 받도록 한다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일을 진행해야 합니까?”

임기석 부장은 최민혁 실장이 몇 번에 걸쳐서 지시한 주의 사항을 떠올리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다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일을 하는 거잖아. 그러니 지시에 따르게.”

“…알겠습니다.”

임기석 부장 역시 새삼 최민혁 실장이 시티폰과 무선랜 특허를 어떻게 구상했는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곧 털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특허출원 이후의 문제가 핵심이다.

지금 진행하는 시티폰 특허는 특허청에서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이 특허는 기존의 다른 특허와는 다르게 처리했다.

그 어떤 주의도 따로 기울여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특허청 직원이 이 특허를 보고 알아서 뭔가를 해도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후속 조치가 필요해서 공채덕 과장에게 다시 당부했다.

“공 과장도 알겠지만, 이번 일은 신중하게 잘 처리해야 해.”

“걱정 마십시오. 특허청의 공무원 애들 생각하는 것은 뻔합니다.”

“…알았어.”

* * *

강승수 주무관은 갑작스러운 공채덕 과장의 연락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MP3 특허를 비롯한 다양한 특허를 처리하는 사이 안면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공채덕 과장이 직접 보자는 연락을 거절했다.

괜한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대신 왜 공채덕 과장이 갑자기 연락했을까를 알아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티폰 관련해서 무려 300건이 넘는 특허가 출원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추가로 곧 올라오는 특허량이 더 있었다.

강승수 주무관은 이 문제 때문에 꽤 고민했다. 공채덕 과장의 연락 때문이 아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다른 이들 때문이다.

그 역시 한때는 오성 전자에게 정보를 흘리는 동기를 비웃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이번 사무관 승진 대상에 그 동기 조명수가 올랐다는 점이다.

거기다 자신은 또 이번 승진 대상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솔직히 자신이 받는 박탈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동안 이 일 때문에 자살까지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앞에 기회가 왔다.

그는 어쩌면 이번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 공채덕 과장에게 연락할까, 수화기를 들었다가 놨다 하면서 몇 번이나 고민했다.

그런데 뜻밖에 상대가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그는 바로 오성 전자 기획 3팀 황광수 차장이었다.

그가 KM 전자의 갑작스러운 시티폰 특허 소식을 들어서인지 만나자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아마 이전이라면 이 만남조차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정보를 얻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그는 이를 악문 채 이번 KM 전자가 올린 시티폰 특허 자료를 정리했다.

그런데 도심 외곽 차량 안에서 만난 황광수 차장은 아직 이 정보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혹시 시티폰 특허 때문에 연락한 것 아닙니까?”

“아, 정확히는 KM 전자에서 새로운 특허 수백 건을 출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했습니다.”

“…네.”

그는 솔직히 망설였다. 그런데 그 자산이 알기로 KM 전자는 로비에 인색했다. 오히려 이 바닥에서는 오성 전자의 영향력이 더 컸다.

당장 동기 조명수 사무관의 승진 배후에도 오성 전자가 있었으니까.

결국 그는 자신이 가져온 자료의 일부를 보여주었다.

“흠, 시티폰 특허라…….”

황광수 차장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특허를 살폈지만, 뒤로 갈수록 침중한 표정이 되었다. 특히 무선랜을 이용해서 시티폰의 단점을 극복한 부분에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시티폰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답안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힐끗, 강승수 주무관을 쳐다보았다.

“…원하는 게 뭡니까?”

“전 주무관 승진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굳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악수만 한 뒤 그대로 조용히 떠나 버렸다.

“…….”

강승수 주무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게 정말 잘하는 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멀리서 자신을 감시하는 차량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 * *

“시티폰 특허라…….”

권태성 기획실장은 기획 3팀이 정리한 시티폰 특허 분석 보고서를 살피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지금 오성 전자 기획실은 최민혁표 CDMA 서비스 때문에 난리였다.

그들은 정보 통신부를 비롯한 여러 정부 기관에 미친 듯이 로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건 오성 전자에 국한된 얘기도 아니었다.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서 따로 TFT 팀을 만들어서 움직이는 중이다.

오성 그룹은 이번 일에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 파이를 키우려고 했다.

그것 자체가 어떤 형태로든지 미래의 캐시 카우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뒷구멍으로 시티폰 서비스 관련 원천특허를 열심히 출원 중이었다.

이것도 실상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분 단위로 감시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정보였다.

그는 회의실 한편에서 멍하니 보고서만 보고 있는 임권수 부장을 불렀다.

“임 부장, 자네 생각은 어때?”

“아, 저, 저 말입니까?”

“아니, 자네가 만든 보고서를 가지고 지금 이야기 중이잖아. 다른 팀 보고서처럼 무관심하게 지켜보면 어떻게 하나?”

“아, 그렇죠. 우리 팀이 찾은 것이니까.”

임권수 부장은 그제야 따가운 다른 팀장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는 아직도 오성 전자 기획 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늘 하는 일마다 실패했으니까.

그가 그나마 이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최민혁 실장 덕분이다.

KM 그룹 출신이라는 것이 히든카드가 된 셈이다.

“최근 KM 전자는 특허 팀 인원을 대폭 늘렸습니다. 이번 시티폰 사업에 앞서서 사전 조율을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옆에서 보고만 있던 기획 2팀 강석영 부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브리티시 텔레콤 측의 아는 지인 이야기로는 어제 KM 전자 측에서 시티폰 사업 관련한 미팅 요청을 해왔다고 합니다.”

“브리티시 텔레콤에 말인가?”

“네, 브리티시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한 제안이지만 일단은 검토 중입니다. 다만 워낙에 뜬금없는 이야기라서 저에게 KM 전자에 대해 문의해 왔습니다.”

“그건 이상하군. 브리티시 입장에서는 돈이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간단히 끝내도 될 일이잖아. 왜 굳이 강 부장 자네에게 자문해?”

“…아무래도 우리 오성 전자가 시티폰 사업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 알아보려는 눈치였습니다.”

“흠.”

권태성 기획실장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최민혁표 CDMA 때문에 지금 한국 대기업들은 난리였다.

서로 물고 빨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 하나의 지분이라도 더 챙기려고 미쳐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CDMA 파급 사업에 대한 검토 역시 따로 진행 중이다.

이건 오성 전자뿐만 아니라 오성 그룹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그러니 그 자신조차 툭하면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 시달렸다.

그나마 그라서 최민혁 실장이 요즘 조용한 것 같아 동태를 살피다가 이 상황을 안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특허청에 있는 오성 장학생에게 연락을 받고서야 부랴부랴 이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도 돌아가는 판세가 너무 이상하다는 것은 알았다.

다만 그들은 정말 피곤했다. 지금도 최민혁표 CDMA 서비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최민혁이 CDMA 사업에 끼어들어서 일정을 뒤집어 놓은 것만으로도 오성 전자 기획 팀은 날벼락을 맞은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임권수 부장이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혹시나 해서 통신 사업부 쪽에 자문을 구해봤는데, 이 시티폰 관련 특허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무선랜 관련 특허를 보고는 깜짝 놀랐을 정도입니다.”

그도 VOIP가 관련된 특허를 살피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렇겠지.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쓴 건데, 적당히 했을 리가 없잖아.”

“도대체 최민혁 실장은 언제 이런 시티폰 관련 서비스를 몰래 진행한 것일까요?”

“우리 뒤통수를 치려고 따로 준비했겠지.”

“하긴.”

임권수 부장 역시 지금까지 최민혁에게 된통 당한 경험을 떠올렸다. 정말 바보 같았다. 그런데 지금도 또 당하고 있는 셈이다.

“…하면 시티폰 사업을 들여다봐야 합니까?”

“…….”

권태성 기획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행히 시티폰 관련 서비스를 들여다보는 팀은 따로 있었다. 문제는 그 팀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만약 그가 나서서 시티폰 사업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시티폰 사업 팀은 난리가 나겠어.’

안 그래도 최민혁표 CDMA 서비스 때문에 난리인데, 시티폰 사업 팀마저 판에 끼어들면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해진다.

일테면 사업부 간의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만약 사태가 그렇게 커지면 권태성 기획실장 자신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잘못하면 잘못한 대로 자신에게 책임이 떨어질 테니까.

문제는 과연 최민혁 실장이 진심으로 시티폰 사업을 들여다보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다행히 임권수 부장은 KM 그룹 본사 소식통을 통해서 안 정보를 털어놓았다.

“KM 그룹 최문경 부회장이 시티폰 TFT 팀을 만들어서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건 이상하군. 그러면 이 특허는 뭐야?”

“최민혁 실장이 이 특허를 이용해서 최문경 부회장의 뒤통수를 치려는 것이 아닐까요?”

“최문경 부회장이 순순히 당할까?”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하긴 한부 그룹의 최명진 회장의 도움을 얻는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실제로 최민혁 실장 본인이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공언했지 않습니까?”

“그러면 더 이상하잖아. 왜 굳이 그런 말을 해놓고 시티폰에 관심을 두는 거지?”

“아마 시티폰 서비스에 대한 주변의 기대가 크지 않으니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러니 다른 시티폰의 이해당사자가 심각하게 반응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장 저희만 해도 시티폰 쪽은 관심이 덜하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 앞에 놓인 특허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툴툴거렸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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