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50화 (550/1,021)

#550.

즉, 뭔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제적인 실험을 동반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따랐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쳐야 겨우 만들어낼 법한 기술이 그냥 심심풀이 땅콩처럼 나온 것이다.

“와, 씨발, 이거 이래도 되는 겁니까? 도대체 이 설계도 어디서 나온 겁니까?!”

“…최 실장님이 준 거야.”

“아니, 어디서 이런 기술을 가져온 겁니까?”

“나도 몰라!”

이주옥 과장은 버럭 화를 냈다. 그도 설계도 안에 들어가 있는 기술이 여태껏 전혀 접해보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MP3나 K투스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CDMA 기술도 퀄컴이 가진 원천기술을 활용했으니,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 무선랜 기술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아직 상업적으로 제대로 활용되는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믿을 수 없게도 기존의 기술을 넘어선 독창적인 기술로 설계안을 만들었다. 이게 있다면 아주 새로운 시장 개척도 가능했다.

바로 요즘 뜨겁게 떠오르는 네크워크 사업 말이다.

석문원 대리는 그제야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거, 시티폰과 관련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넷전화기 용도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술 자체가 시티폰보다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아니,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는데요!”

“닥치고, 일이나 해!”

“넵!”

석문원 대리는 투덜이 스머프처럼 투덜거렸다. 그 역시 KM 전자와 최민혁 실장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제법 들었다. 그때 당시엔 전부 다 허황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다 진짜였어?’

* * *

임기석 부장은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고 난 후에 이주옥 과장의 연구실을 자주 찾았다. 특허를 내기 전에 이 기술의 가치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자신도 특허 팀을 동원해서 기술을 알아보기는 했다.

그래서 이주옥 과장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워낙에 독창적인 기술로 되어 있어서, 그게 문제입니다.”

“하면 이 무선랜 설계와 관련된 기술은 모두 특원 출원 해야 합니까?”

“네, 제가 알기로 시즈벨에서도 이 무선랜 관련 원천기술을 일부 확보했습니다. 아마 그쪽하고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겁니다. 뭐, 그렇다고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그쪽에서 확보한 무선랜 원천기술은 걸음마 단계 수준이니까.”

실제로 시즈벨은 MP3를 포함해서 무선랜 관련 기술에 나름 공을 들였다.

다만 그 외에는 아직까지 무선랜 표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서 여기에 제대로 투자하는 회사가 많지 않았다.

있다고 한다면 미국이나 영국의 다국적기업인데, 그들조차 아직은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다만 최근에 와서는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인터넷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면서 무선랜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은 역시 무선랜 표준화와 관련된 밥그릇 싸움이다.

업체 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 표준화 과정 자체가 연기되었다.

이주옥 과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님이 내놓은 설계안은 그 표준화의 문제점을 과감히 극복한 안입니다. 설사 이 안을 반대하는 회사가 있다고 해도 그냥 밀어붙이면 마냥 일방적으로 거절하기는 힘들 겁니다.”

“…놀랍군요.”

이주옥 과장을 따라온 석문원 대리가 눈치를 보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이 설계도를 도대체 누가 설계한 겁니까?”

“모릅니다.”

“네? 아니, 그러면 이걸 어떻게 구한 겁니까?”

“그냥 모르는 것으로 해주세요. 어차피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겁니다.”

그는 차마 최민혁 실장이 이 무선랜 관련 설계안을 내놓았다는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비밀 연구소를 따로 운영한다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 * *

최민혁의 무선랜 시스템 설계안에 대한 평가는 ‘믿을 수 없다’ 였다.

바로 불만을 내놓은 곳은 역시 특허 팀이었다.

임기석 부장은 불만이 쌓인 임직원들을 보자 한마디 더 해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골격만 잡으면 되니까. 나머지 세세한 부분은 신입 사원에게 맡길 거야.”

“대환영입니다!”

“좋아, 그러니 알아서 움직여.”

그리고 이런 반응은 칩 설계 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최민혁은 여기에 대한 답을 특허 팀에서 찾았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공장에 있는 신입 사원 중에 재능이 있는 친구를 뽑아서 맡겨 보세요. 제가 알기로 경력이 있는 친구도 제법 있으니까.”

실제로 그랬다.

KM 그룹 연구소 쪽에 지원한 이들 중에는 경력이 있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에게 테스트형 플랫폼 일을 맡기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이주옥 과장 역시 그 점은 공감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다시 한번 한 가지를 언급했다.

“당장 내일 상용화할 것처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적당한 수준으로 동작만 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특허 팀에서 처리할 겁니다. 무선랜 관련 원천특허를 시티폰 특허와 같이 마구잡이로 찍어낼 테니까. 그 부분에서 도움이 되도록 특허 팀을 도와주세요.”

“…네.”

이주옥 과장은 딱히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타박하지는 않았다. 사실 엔지니어로서 불만이 나올 만한 지시였지만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그런 불만을 토로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일을 열었다.

“혹시 이 자료를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겠습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제가 만들었다고 하면 믿지 않겠죠?”

“네?”

눈이 동그랗게 변한 이주옥 과장.

최민혁은 소탈하게 웃었다.

“이 자료의 출처가 왜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우리 KM 전자 거라는 겁니다. 그것이면 되지 않습니까?”

“…네.”

이주옥 과장은 과거 최구만 과장이나 조창호 차장이 술자리에서 툴툴대던 황당한 이야기가 진실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서, 설마 이 설계안도 진짜 최 실장님이 직접 만든 거라는 말이야?’

그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 * *

권우영은 최민혁 실장의 방문 이후에 묵묵히 생산 일에만 집중했다. 그는 덕분에 공장 내에서도 꽤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인사 팀에서 온 이가 갑자기 특허 팀 이야기를 꺼냈다.

그로서는 이곳 공장이 아니면 어떤 팀이라도 좋았다.

“알겠습니다.”

다행히 인사 팀은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도 함께 선별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 숫자는 모두 10명이었다.

그는 이미 신입 사원 교육 과정에서 아는 지인을 다 골랐고, 이번 공장 생활에서는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이를 선별했다.

이들 외에 20명 정도를 연구실에서 데려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생산직이 아닌 거에 다들 만족했다.

“아, 다행이다. 드디어 이 생산 지옥은 끝이다!”

다들 장밋빛 희망에 휩싸였다.

실제로 다른 동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그들은 가장 먼저 이 생산 지옥에서 빠져나간 이들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보직 이동이 생각보다는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인사 팀 면담 이후에 본사 특허 팀으로 옮겨 가는 데 고작 3일이 걸렸을 뿐이다.

권우영은 KM 전자의 본사 건물에 다른 동기들과 같이 도착해서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렇게나 공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너무 쉽게 성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마중 나온 이는 공채덕 과장이었다. 성격이 부드럽고, 꼰대 기질이 없어서인지 자신들을 타박하지는 않았다.

별다른 텃새도 없었다.

권우영은 공채덕 과장 지시에 따라서 바로 특허 팀으로 이동했다.

특허 팀 한쪽 구석에는 이미 자신들을 위한 사무실이 세팅되어 있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사무실이었다.

권우영은 딱히 감성적인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자기 자리에 앉자 눈물이 핑 돌았다.

공장에서 그렇게 굴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른 이들은 더 했다.

그들은 이게 꿈인가 싶어서 넋을 잃고 있었다.

공채덕 과장은 어이가 없었다.

“권우영 씨, 왜 그래?”

“아, 아닙니다.”

“아니 왜 그렇게 감동하는 거야?”

“아, 그게 공장에서 물건만 죽어라 생산하다가 사무실에 와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 맞다. 생산 공장에서 지금까지 조립만 했다고 그랬지?”

“네, 덕분에 배운 것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왜 회사에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 몰랐는데, 그 일을 하면서 우리 회사 물건에 대해서 피부로 체감했습니다.”

단순 조립 일도 일은 일이다. 그것만 죽어라고 했다면 역시 얻는 것이 있다. KMP-01, 콜린스, 오디오 음향기기만을 전담해서인지 전문성도 높았다.

문건으로 이 제품을 봐도 일반인이 보는 것과는 안목이 달랐다.

공채덕 과장이 직장 경력이 몇 년인데, 그걸 모르겠는가.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혜안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교육 하나는 끝내주게 했구나.’

그리고 그가 내놓은 것은 우선 이들이 특허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한 교육 자료였다.

공채덕 과장은 기존에 자신이 작업한 MP3, K투스, 콜린스를 비롯한 모든 특허를 하나씩 내놓았다.

자신한테야 지긋지긋한 특허다.

그런데 이를 받은 권우영은 좀 달랐다. 그는 마치 신성한 물건을 받는 신도처럼 자료를 받아서 귀중하게 다뤘다.

그건 권우영의 동기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차원에 온 사람처럼 특허를 신주 받들 듯이 받았다.

그리고 이들의 업무 습득 능력은 놀라웠다.

불과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서 특허에 대한 기본 지식을 배운 것이다.

공장에서 죽어라 생산만 하면서 얻은 업무 능력 덕분이다.

공채덕 과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임기석 부장에게 자세한 내막을 듣지 않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이 회사에서 있으면서 최민혁 실장이 한 짓을 잘 알았다.

시티폰은 버리는 사업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제법 하잖아?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시티폰 쪽은 애들에게 완전히 맡겨도 되겠어.’

물론 중요한 무선랜 관련 특허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핵심은 역시 무선랜이니까. 이건 제대로 하라고 했지? 시티폰 관련 특허는 매각할 수 있어도 무선랜은 아니라고 했으니.’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무선랜 특허 일만 해도 결코 작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 *

권우영 같은 신입 사원이 능력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게 실상 이들을 잘 모르면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공장에서 지금까지 죽어라 구른 권우영의 능력은 보통 신입 사원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제법 안목도 있었다.

정확히는 강준석 팀장을 통해서 이것저것 들으면서 실력을 키웠다.

덕분에 최민혁 실장이 뭘 원하는지 금방 안 것이다.

물론 시티폰 사업 자체가 버리는 사업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그러니 권우영은 시티폰 특허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 일을 직접 하기 싫은 공채덕 과장, 김홍준 과장이 필사적으로 이들을 키웠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권우영의 업무 능력은 무시무시하게 성장했다.

공채덕 과장도 순간 크게 당황할 정도였다. 그는 신입 사원을 이렇게 키워 줘도 되나 싶었다. 그런데 그가 그런 걱정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

권우영은 이미 신입 사원 수준을 뛰어넘은 지가 오래였다.

임기석 부장조차 이 열정적인 신입 사원의 모습에 크게 당황했다.

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는 했지만 말이다.

“애들은 어때?”

공채덕 과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마십시오. 아주 물을 만난 고기처럼 난리입니다.”

“하긴 지금까지 고생 많이 했지. 나라도 공장에서 그렇게 노예처럼 당하면 견디지 못할 거야.”

“그러게요. 321명 중에서 단 한 명의 누락자가 없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뭐, 우리 회사가 잘나가서 그렇잖아. 지금도 인사 팀은 채용 문의 때문에 학을 떼니까.”

“하긴 우리 회사가 많이 달라졌죠.”

공채덕 과장은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임기석 부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불과 몇 달 전에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새삼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인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런데 시티폰 사업에 대해서 딱히 별다른 말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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