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31화 (531/1,021)

#531.

최영란 본부장은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이 고급 호텔의 음식을 기대하면서도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녀는 새삼 최근 몇 달 동안의 기억을 떠올렸다. 마음고생도 많았다. 특히 AD 설계를 자칫하면 최문경 부회장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자신이 아는 최문경 부회장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 덕분에 KM 산업의 지분을 가진 본부장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특히 자신이 KM 산업을 떠날 때 인사했던 임직원들에게 다시 환대받을 때, 그 기쁨은 도저히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민혁아, 정말 고마워.”

“나에게 그럴 필요 없어. 할아버지가 누나의 가능성을 봤기에 허락한 것일 뿐이야.”

“그래도.”

실상 최민혁이 나서서 중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녀가 있을 수는 없다.

KM 산업 지분 9%라면 이제는 최문경 부회장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다.

이는 실제로 최용욱 회장이 원한 것이다.

최민혁은 곧이어서 나온 요리를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시계를 힐끗 보면서 자신이 정해둔 시간이 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

‘4.’

‘3.’

‘2.’

‘1.’

‘액션!’

최민혁의 ‘액션’이란 신호가 나오기가 무섭게 호텔이 어수선해졌다.

두 사람이 있는 자리에 갑자기 한 사람이 맹렬하게 뛰어들었다. 뒤를 따르는 호텔 직원은 난감한 얼굴로 차마 그를 막지 못했다. 실상 그 뒤를 따른 수행원이 막아서서 물러나기 바빴다.

-야, 최영란, 너 정말 이따위로 나올 거야?!!!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호텔 빌딩을 전체를 울린 쩌렁쩌렁한 소리.

식사하던 다른 손님들이 깜짝 놀라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최영란은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입에 넣다가 깜짝 놀랐다.

“아, 아빠?”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최영란 맞은편에 앉은 상대가 최해진 본부장이 아니라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알고는 움찔, 몸을 떨었다.

“너 최해진, 이 새끼가, 감히 네 딸을 이용해서, 어어, …너, 넌, 최, 최민혁?!!”

최민혁은 격앙된 최문경 부회장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긋하게 보면서 스테이크를 곱게 썰어서 입안에 넣었다.

포도주 한 잔은 덤이다.

그는 호텔 직원 두 사람에게 양팔이 잡힌 채 입을 딱 벌린 최문경 부회장을 보면서 우아하게 휴지로 입술을 닦았다.

“정말이지 우리 부회장님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이 개… 씨발.”

그는 뒤늦게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영란의 살기 가득한 시선을 느끼자 무안해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크게 당황했다.

이 자리가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최영란이 한부 그룹의 도움을 얻고자 마련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최민혁은 눈앞의 상황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최문경 부회장이 늘 지켜보는 채널 통해서 역정보를 흘리기는 했다.

다만 이렇게 쉽게 자기 술수에 놀아날지는 몰랐다.

‘역시 누나의 9% 지분과 계열사 매각 때문일까?’

2차 구조조정인 계열사 매각은 최문경 부회장에게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갈려 나가는 계열사 중에는 그의 측근이 많았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계열사 상태가 좋지 않았지. 구조조정은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것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썩은 뿌리가 문제지.’

“흠흠, 아무래도 내가 뭔가 잘못 안 것 같다.”

“정말입니까?”

딱 한마디 말이 어쩌면 저렇게 짜증이 나는지 최문경 부회장은 이를 갈았다.

“…너는 어쩐 일이야?”

“아니, 영란 누나가 본부장으로 승진해서 한턱 쏘기 위해서죠.”

승진 턱은 거꾸로 되어야 할 일이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그것까지 따지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지 몸을 돌렸다.

하지만 최민혁은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마침 저녁을 드시지 않았다면, 같이 저녁을 먹고 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최문경 부회장이 불편한 최영란 본부장은 계속 최민혁에게 눈총을 주었다.

제발 그냥 보내라고 말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 모습을 보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그가 이 자리를 그냥 떠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결국 자리에 앉았다. 그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최민혁이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알아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불청객이 생기자 최영란은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렸다.

최민혁은 불편한 부녀지간 모습을 보면서 힐끗, 시간을 확인했다.

그는 곧 호텔 종업원에게 신호를 보내 기가 막힌 타이밍에 TV가 켜지도록 했다.

벽에 걸려 있는 대형 TV가 켜지면서 나온 것은 역시나 중앙지검의 국세청 압수수색 뉴스였다.

기자들이 무려 100명이 넘게 몰려와 있었고, 주변 건물에서 구경 나온 시민들 때문에 상당히 어수선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을 막아서는 국세청 경비를 앞에 둔 박두영 부장검사였다. 그는 한 손으로 압수수색영장을 보여준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른 수사관은 국세청 내부 물건을 쓸어 담아서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압수수색에 투입된 인원은 모두 40명이 넘었다.

압도적인 숫자에 질린 국세청 직원들은 모두 황당한 표정으로 벽 쪽으로 물러났다.

이윽고 놀라운 장면이 뒤를 이었다.

강상혁 조사국장과 몇몇 국세청 직원이 수갑까지 찬 채로 끌려 나온 것이다.

[중앙지검은 강상혁 조사국장, 최종철 조사기획과장을 포함한 모두 10명을 공문서 위조, 협박, 직권남용, 뇌물죄로 체포했습니다. 특히 강상혁 조사국장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서안 유통을 압박해 지금까지 90억이 넘는 돈을 갈취해 왔습니다. 다음 내용은 그 대화의 녹취록입니다.]

강상혁 조사국장과 조중국 사장과의 추가 대화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에 보도된 녹취록과는 달리 인면수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사였다.

화면이 바뀌면서 집에서 끌려 나온 강은택 이사는 맹렬하게 저항하다가 몰려온 수사관의 숫자와 기자들을 보자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그 역시 뒤늦게야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었다.

“……!!”

한부 그룹 최명진 회장을 통해서 이미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던 강상혁 조사국장이 수갑을 찬 채 끌려 나오는 것을 본 최문경 부회장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최영란 본부장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우리 부회장님이 강상혁 조사국장과 안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

최문경 부회장은 할 수만 있다면 최민혁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입을 쿡 다문 채 멍하니 뉴스를 계속 쳐다보았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번 최민혁 실장을 공략하는 일을 지휘하는 핵심 인물이 바로 강상혁 조사국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설마 해서 최민혁 실장을 향해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서, 설마 네놈 짓이냐?”

최민혁은 디저트로 나온 사과를 와삭와삭 소리를 내면서 씹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네놈 짓이구나.”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시네요. 지금 전 누나 승진 턱 자리에 있습니다만?”

최문경 부회장은 버럭 화냈다.

“이미 작업을 해 놓고, 날 이리로 끌어들인 거지. 그렇잖아?!”

최민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최영란 본부장의 모습을 일별하고는 씩 웃었다.

“그게 중요합니까?”

“도대체 왜 저런 짓을… 설마 보복한 거냐?”

“뜻 모를 말만 하시는군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국세청 실세를 저 모양으로 만듭니까. 딱 봐서는 자기 직위를 남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다 걸린 거잖습니까!”

“닥쳐!!”

최문경 부회장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뒤늦게 가슴 한구석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이번 일을 할 때만 해도 몇 다리 건너서 진행했기 때문에 어디에도 자신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런데 녀석은 벌써 내막을 알고 자신을 이 자리로 오게 했다. 새삼 조카 최민혁 실장이 무서운 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저히 더 이 자리에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네놈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악당 같은 대사만 남긴 최문경 부회장은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최영란 본부장도 그제야 눈치를 채고는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뭐야? 설마 저 일도 민혁이 네가 꾸민 거야?”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도 처음에는 말할까 망설였지만, 최영란 본부장도 이제는 내막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국세청에서 날 상대로 내사를 시작했어. 그 일을 진행한 중간 보스 중의 하나가 강상혁 조사국장이란 자야. 다음 서울국세청 청장이 내정된 인물이니, 파워가 만만치 않지.”

최영란 본부장은 입을 딱 벌렸다.

“맙소사, 그러면 너 보복으로 저 사람을 결딴낸 거야?”

“보복이라니. 강상혁 조사국장은 생각보다 악랄한 인물이야. 서안 유통에 사람을 박아놓고, 골수까지 뽑아 먹었으니까. 그러니 체포가 된 거야. 인과응보라고 해야지.”

“하.”

최영란 본부장은 말을 빙빙 돌리기만 하는 최민혁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설마 자신을 공격했다고 국세청 조사국장을 날려 버리다니.’

* * *

국세청 압수수색 장면은 국세청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 국세청 조직에도 곧 알려졌다. 워낙에 충격적인 뉴스 속보였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 내사 문제에 대한 마무리 작업까지 한 이동빈 자산과세 국장도 이 뉴스 속보를 봤다.

정확히는 임종건 감사관, 윤종신 소비세과장까지 같이 봤다.

특별조사실 직원도 내사 종결에 따라서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뉴스 속보를 본 것이었다.

그들이 패닉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이동빈 자산과세 국장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멍하니 압수수색 장면을 계속 봤다.

그는 저 일의 배후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경고구나.’

그리고 임종건 감사관도 눈치가 전혀 없지 않았다.

“혹시 최민혁 실장이 보복한 것일까요?”

이동빈 국장은 바로 대답했다.

“아니야.”

“네? 하지만 지시를 내린 사람은 강상혁 조사국장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야 저런 일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저 일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역시 이번 최민혁 실장 내사에 관여하지 않았습니까?”

특별조사실 직원들은 공포에 질려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사국장이 저 모양이 되었는데, 자신들은 아주 박살이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랴부랴 자신이 했던 일을 떠올렸다.

이 중에 뇌물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들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처참하게 변해갔다.

하지만 이미 최민혁 실장을 만난 이동빈 국장은 그들을 모두 회의실로 불러놓고 긴장을 풀도록 다독거려 주었다.

“최민혁 실장은 보복할 그런 분이 아니야.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으음, 어떻게 보면 경고가 될 수는 있어. 그래도 저 정도에서 끝날 거야.”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우리야 윗선의 지시를 받아서 일한 것뿐이잖아. 실제로 이번 일을 기획한 건 강상혁 조사국장이야.”

최민혁 실장에게 반감을 품었던 윤종신 소비세과장은 굳은 얼굴로 반박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제가 알기로 당한 일은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내사에 관한 정보도 최민혁 실장 귀에 들어간 것 같은데, 정말 우리를 내버려 둘까요?”

이동빈 국장은 공포에 질려 있는 이들의 모습에 혀를 찼다.

“내가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미 이원한 실장을 통해서 알아봤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 더 이상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겠다고 했어.”

“저, 정말입니까?”

“그래.”

이동빈 국장의 태도에 그제야 다른 이들이 안도했다. 그들도 설마 최민혁 실장이 강상혁 조사국장을 날려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가까스로 무거운 가슴을 내려놓았다.

요트에서 만난 최민혁 실장의 첫인상은 부드럽기만 했다.

마치 험한 일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귀공자 같았으니까.

하지만 보복 행위는 실로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설마하니 강상혁 조사국장을 저런 식으로 매장해 버리다니, 정말 무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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