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26화 (526/1,021)

#526.

조사 결과에는 사연이 좀 있었다.

“국세청 윗선에서는 이미 실장님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다만 명분이 없었을 뿐입니다. 이번에 최명진 회장의 요청을 받자 이동빈 국장을 내세워서 일을 진행한 것입니다.”

“책임자가 이동빈 국장이란 말입니까?”

“아무래도 이번 일에 문제의 소지도 있으니까요. 특히 정부통신부를 통해서 최민혁 실장님에 관한 정보가 정부 내에도 잘 알려졌습니다.”

“손을 대기가 부담스러운 상대다. 뭐 그런 건가요?”

“이제까지는 최용욱 회장님이 그들을 상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실장님의 자산 때문입니다. 문제는 최민혁 실장님을 막상 공격하려니, 뒤늦게야 아차 싶었습니다. 부담되니, 아무래도 만만한 희생양을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동빈 국장이 일해서 잘 진행되면 그것대로 좋고, 안 되면 이동빈 국장을 이번 일을 명분으로 제거할 생각이었던 겁니까?”

“네.”

이동빈 국장이 국세청 내에서 잘나가는 이였기는 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이가 꽤 있었다. 특히 원칙적인 성격 때문에 많은 이들과 불협화음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예측을 못 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동빈 국장은 아니다 싶어서 차선을 선택한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정부 공무원 조직이 그럼 그렇지라고 혼자 툴툴거렸다. 확실히 이동빈 국장 경력을 보면 문제가 제법 있었다.

고지식한 면도 그렇고, 원칙을 지키려는 자세가 문제였다.

‘딱 뇌물을 챙기는 위에서 싫어할 인물인데, 흠, 그래서 이번 일을 맡은 건가?’

그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이 문제는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이동빈 국장을 지금 정리한다고 해도 그 배후에 있는 고위 관료가 남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차라리 적의 적은 친구라고 이동빈 국장을 이용해서 배후 세력을 정리하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돈에 대한 탐욕이 문제인데, 딱 우리 첫째 큰아버지랑 엮일 만한 인물들이야.’

“차라리 이번 기회에 이동빈 국장과 안면을 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변 시선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자들은 실장님에게 문제가 터지기만을 기다립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주변 시선이 없는 곳이면 되겠죠.”

“네? 어디 말입니까?”

“바다죠.”

“네?”

* * *

이동빈 국장은 중부국세청 조사국장을 거쳤고, 대전 국세청에서 명성을 날린 바 있다. 밑에서 큰 역할을 한 덕분에 인망도 있다.

다만 고지식한 성정 탓에서 윗선에는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성정 때문에 최민혁 실장 내사의 적임자로 낙점된 것이다.

그는 윗선 지시라고 생각해서 별생각 없이 최민혁 실장을 조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뭔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만 확신하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 자산 관련해서는 말이 많았기에 불법을 저질렀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더욱이 최명진 회장에게서 과거 대학 다닐 때부터 장학금을 받아왔다. 그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 최명진 회장을 많이 도와주었다.

이번 일은 그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황당한 인물인지 자산 내역 조사를 통해서야 깨달았다. 뒤늦게 추가 조사를 통해서 최민혁 실장이 정부 기관, 특히 정보통신부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알았다.

‘함정이다.’

단순히 최명진 회장만이 아니다. 이번 일을 지시한 윗선도 문제였다. 그들이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모를 수는 없으니까.

‘설마 강상혁 조사국장 짓일까? 만약 일이 잘못되면 몽땅 내가 뒤집어써야 한다는 소리잖아?’

강상혁 조사국장과는 과거 악연이 있었다. 그 자신이 조사하던 뇌물 사건에 대한 압력을 받았는데, 무시했던 것이다.

결국 그 일 때문에 윗선에서 완전히 찍혀 버렸다.

위기감을 느낀 이동빈 국장은 자신이 쌓은 평판을 최대한 이용했다.

이쪽저쪽을 뛰어다니면서 가까스로 사건을 무마했다.

다행한 것은 강상혁 조사국장도 최민혁 실장이 부담스러워서인지 무리하게 자신을 압박하지 않았다.

자신이 혹시라도 모든 사실을 다 폭로할까 염려한 것이었다.

겨우 한숨을 돌린 셈이다.

그는 모든 일을 다 정리하자 이원한 실장에게 연락했다.

이원한 실장은 이미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휴가를 제안했다.

두 사람은 휴가 여행 핑계를 대고는 이쪽저쪽을 돌아다녔다. 혹시라도 기자가 쫓아올 것을 염려했다.

다행히 두 사람을 쫓는 이들은 없었다.

다만 운전석을 잡은 이원한은 황당할 정도로 차량을 계속 빙빙 돌렸다.

“원한아,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이원한은 툴툴거렸다.

“가만히 있어. 이게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너 때문에 고생하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라.”

“…난 잘 몰랐다.”

“자랑이다.”

“내가 지금 네 변명을 듣자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아?”

“아니. 고맙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국세청 본청의 강상혁 조사국장하고는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 거야?”

“…DL 그룹 쪽에서 제안을 받은 뇌물 사건이 있어. 그걸 덮어달라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다.”

“DL 그룹? 하긴 강 국장이 국세청 내에서도 말이 많았지.”

“미안하다. 괜한 일에 끼어들게 해서.”

“다 좋아. 그런데 너 정말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몰랐냐? 뉴스를 봐도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 썩해.”

“…난 TV는 거의 안 봐.”

이원한 실장은 너무 놀라서 차량을 결국 도로변에 붙여서 세웠다. 그는 황당한 눈으로 이동빈 국장을 쳐다보았다.

“IT 뉴스 쪽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야. 그런데 그런 양반을 모른다고?”

“그래. 그리고 핑계 같지만 난 이제까지 그저 내가 맡은 일만 했어. 최민혁 실장 내사와 관련해서 검찰에서도 지켜본다는 이야기에 불법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겠지.”

이원한 실장은 딱히 이동빈 국장을 탓하지 않았다. 국세청 내에서는 나름 청렴하다고 소문이 난 친구였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쪽은 잘 모르니까.’

그가 아는 바로도 최민혁 실장은 도저히 일반적인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이동빈 국장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평생 국세청에서 나름 위세를 떨치다가 무서운 상대를 만났으니, 불안할 것이다.

이원한 실장은 다시 차량을 출발했고, 다행히 목적지에는 곧 도착했다.

인천항이었다.

‘왜 여기서 보자고 한 것일까?’

* * *

국제무역항인 인천항은 오늘도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이원한 실장은 인천항 주변을 구경하면서 곧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그냥 관광객 같았지만, 자세를 유심히 보면 전형적인 경호원이었다.

“이원한 실장님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이분은 이동빈 국장님이겠군요.”

“네.”

“절 따라오시죠.”

먼저 앞서가는 이는 두 사람의 불안한 표정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안내원은 인천 항구 깊숙이 들어가면서 조심스럽게 길을 안내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괜한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분과 실장님이 만나는 모습을 만약 기자들이 본다면, 말이 많이 나올 겁니다.”

“…그렇겠죠.”

정보통신부 실무 책임자, 국세청 실무 담당자, 거기에 대기업 기획실장이 한자리에 있는 그림이라면 어떤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원한 실장은 힐끗, 초췌한 이동빈 국장을 쳐다보았다.

이동빈 국장은 자신의 잘못을 아는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자신이 쌓은 것을 모든 것을 잃어버릴 테니까.

덕분에 두 사람은 말없이 안내하는 이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그런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곳곳이 찢겨 있는 천막을 덮은 작은 낚싯배였다.

“…이, 이게 뭡니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입니다. 요즘 파파라치가 무섭습니다. 괜히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여기가 목적지는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두 사람 다 어이가 없었다. 이 무슨 첩보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설마 자신들을 묶어서 바다에 수장시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아니겠지?’

* * *

이원한 실장은 흔들리는 낚싯배에서 겨우 균형을 유지했다.

낚싯배는 바다에 가라앉지 않은 채 뜻밖에도 잘 나아갔다.

도대체 어디를 가나 싶었다.

낚싯배가 가는 방향이 바다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채 20분도 가지 않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큰 배였다.

정확히는 요트였다.

소위 말하는 초호화 요트는 아니고, 그보다 몇 단계 낮은 고급스러운 요트였다.

육중한 실루엣만 봐도 그 크기가 범상치 않았다.

“…저건 뭡니까?”

안내하는 경호원은 잠깐 멈칫하다가 굳이 숨길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트죠.”

달빛 사이로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는 요트는 마치 바다에 떠 있는 흰색 성 같았다.

10인승이나 24인승과 같은 규모와는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50인승은 되어 보였다.

하지만 이원한 실장은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이 가진 자산을 떠올렸다. 그 정도 자산가라면 저 정도 요트는 취미 생활로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동빈 국장 안색은 더 좋지가 않았다. 그는 뒤늦게야 자신의 상대가 누구인지 조금은 깨달은 눈치였다.

‘이 친구가 단단히 충격을 받았군.’

* * *

최민혁 실장이 가진 에플 주식의 평가액은 무려 4조 원을 넘겼다.

물론 단순한 주식 가치로 따진 자산이기는 하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그런데 KM 전자의 지분 가치 역시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지금 이 단계에서 지분 가치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경영권 문제 때문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KM 전자는 현금이 너무 많이 쌓여서 주체를 못 하는 회사다.

KM 전자가 가진 현금으로 요트 하나를 구매하지 못할 리는 없다.

하지만 정확히는 대여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은 이미 이 요트를 사들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목적은 역시 자신이 즐길 용도가 아니라 임직원들에게 제공하기 위함이다.

섬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휴양객 복장을 한 최민혁은 굳어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최민혁입니다.”

“정보통신정책실 실장 이원한입니다. ETRI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이야기해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 기억납니다. 그러면 이분은…….”

“국세청 자산과세국장 이동빈입니다.”

최민혁은 마치 관람객을 환대하는 사람처럼 두 사람을 안내했다.

“어때요? 좋지 않습니까?”

이원한 실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좋은 배입니다.”

이들 사이에 나온 것은 요리사가 정성을 다한 요리였다.

거기에 술은 빠지지 않았다.

달이 환하게 떠 있는 덕분에 요트 주변은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뭐, 요트의 조명 역시 한몫했다.

고즈넉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그것은 세상의 세파를 깔끔하게 씻어주었다. 달빛이 비친 바다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두 사람도 술을 한 잔씩 마시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최민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저에 대해 내사를 했다고요?”

다시 너무 긴장해서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이동빈 국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듣는 귀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증여세 문제 때문에 국세청에서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론 문제가 있으니, 국세청도 계속 지켜만 볼 수는 없었겠죠.”

“그게 좀…….”

“하지만 저도 억울해요. 당시 지분을 증여받았을 때 기준으로 세금 처리가 끝난 것으로 압니다. 그것도 할아버지가 알아서 다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제가 번 수익에 대한 증여세를 내라고 하면 황당하지 않겠습니까?”

“아, 알고 있습니다.”

이동빈 국장은 단단히 굳은 안색을 한 채 힐끗 최민혁 눈치를 봤다.

최민혁은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아, 이 요트 때문에 부담스럽나 보군요. 이런 말 해서 그렇지만 제가 돈이 좀 많습니다. 이제까지는 일한다고 바빠서 돈을 쓴 적이 없어요. 이 요트가 처음이죠. 사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임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입에 단내가 나도록 일만 합니다. 그들에게 휴가용으로 서비스할 생각으로 이 배를 장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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