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25화 (525/1,021)

#525.

만약 무궁화 위성이 발사 후에 폭발했다면 말이다.

실상 정보통신부는 바보가 아니었다. 후일 무궁화 위성 퓨즈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진행했고,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높은 확률로 사고가 난다고 나왔다.

이원한 실장은 그 결과를 보고 나서 얼마나 가슴을 떨었는지 몰랐다.

최악의 경우 그 자신이 이 일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일 이후에 무궁화 위성 관련된 부분을 샅샅이 조사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특이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다른 일은 그렇다고 하자고. 그런데 위성 퓨즈 사건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야.”

이동빈 국장은 황당했다.

“…설마 무궁화 위성 발사가 실패할 수도 있었다는 소리야? 그걸 해결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고?”

“겉으로는 ETRI의 오현종 박사가 처리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상은 최민혁 실장이 배후에 있었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네.”

“네 심정이 어떤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어. 하지만 이 일은 고작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냐.”

그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최근 CDMA 연구와 관련해서 ETRI 쪽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둘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CDMA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국세청 임직원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원한 실장은 레이저포인터로 최민혁 실장의 재산 근황을 꼼꼼하게 찍었다.

“이 돈을 어떻게 벌었냐구? CDMA에서 나오는 로열티가 얼마나 될 것 같아? 이 자리에서 확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7~8억 달러는 넘어. 그런 원천기술을 쓸어 담은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야. 참 돈 벌기 쉽지? 그런데 그렇게 쉬울 것 같으면, 우리 정보통신부는 고작 무궁화 위성만 가지고 왜 그렇게 피똥을 싼 것 같아?!”

“…….”

고지식한 이동빈 국장조차 너무 놀라서 눈만 끔뻑였다.

이원한 실장은 분명하게 한마디만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CDMA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보통신부 내부에서도 기존에 했던 기획안을 다 폐기하고, 새로 짜야 할 판이야. 다음 주에 나올 이야기지만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안도 내년 상반기로 연기될 거야. 이게 모두 최민혁 실장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그는 굳어 있는 회의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쳐다보면서 경고했다.

“최민혁 실장은 우리 잣대로 계산할 수 있는 인물이 아냐. 그러니 증여세를 25억만 낸 거지. 으음, 좀 적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불법은 아니잖아. 헐값에 주식을 사들여서 기업가치를 키워 대박 친 것이니까. 내가 들은 바로 최민혁 실장 성정이 장난 아냐. 자기 앞길을 막은 이들을 확실하게 매장해 버리니까. 조심 좀 하게.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가.”

“…….”

이원한 실장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나자 회의실 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은 뒤늦게야 자료를 다시 살피고는 탄식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천문학적인 돈을 번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주식 가치가 떨어진 회사의 가치를 최대한 키운 것뿐이었다.

이동빈 국장은 잠깐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는 뒤늦게야 자신이 호랑이 입에 머리를 들이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일을 신중하게 진행해야겠어.’

굳이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특별조사실 직원들 얼굴이 다들 새파랗게 얼어 있었다. 지금 회의하는 내용이 최민혁 실장 귀에 들어가면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는 한마디 할까 하다가 그냥 회의실을 나가서 이원한 실장 뒤를 쫓았다.

“이 국장,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이원한 실장은 피식 웃으면서 그를 기다려 줬다.

* * *

[올 하반기로 되어 있는 7개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에 따른 허가 계획을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출연금 심사 방법, PCS 무선 접속 방식, CT-2의 사업에 대한 다양한 의견 수렴과 검토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보통신부가 통신 시장 전면 개방에 대한 국내 경쟁 확대를 위해서 진행한 일정을 일방적으로 연기해 버린 것이었다.

이것은 CDMA 개발 속도 변화로 말미암은 변화 때문이었다.

이 뉴스를 접한 이동빈 국장은 뒤늦게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정말 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한 내용에 긴장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우선 한부 그룹의 최명진 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모든 일은 재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최명진 회장 처지에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그가 공을 들인 이동빈 국장이 먼저 손을 뺄지는 몰랐다. 황당한 것은 이동빈 국장이 이전에 받은 뇌물을 다 토해 냈다는 점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다시 만난 최명진 회장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는 웃지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큰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그 역시 최근 최민혁이 ETRI 연구원을 불러놓고 뭔가 획책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일이 정보통신부의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영향을 줄지는 몰랐다.

‘정말 끝내주는구나.’

“…괜찮습니다.”

최명진 회장은 평소 고압적인 태도를 내려놓았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어. 자네가 처음으로 부탁한 일인데, 제대로 해결해 주지도 못했으니.”

“아닙니다. 국세청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보다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어떻게 된다는 말입니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몰라. 다만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아. 당장 PCS 무선 접속 방식인 CDMA, TDMA를 둘러싸고 팽팽하게 양분이 되니까.”

“오성 전자와 HY 전자가 이번에 손을 잡고 CDMA 쪽을 밀어주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건 아닐세. 그쪽도 CDMA와 동시에 TDMA 관련 시스템 개발을 진행 중이야.”

사실 국내 이동통신 기술 기준으로 본다면 딱 하나의 방식만 선택해서 개발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통신부가 기술 표준을 아직 확정하지도 못했다.

결국 오성 전자는 두 가지 방식을 동시에 연구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이 비용 문제 때문에 HY 전자와 손을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LC정보통신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이들은 한국통신의 TDMA 시스템 개발에도 자본과 인력을 퍼부었다.

그런 차에 최민혁 실장이 CDMA 쪽을 밀어주면서 상황이 한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정보통신부도 크게 당황했다. 그들도 갈팡질팡했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좀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미안하네. 내가 혹시 다른 일이라면 도와주겠네.”

“감사합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바로 KM 그룹 본사로 향했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릿속이 정말 너무 복잡했다.

‘젠장맞을.’

* * *

이동빈 자산과세국장은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최민혁 내사에 대한 기록을 다 지웠다. 그는 이번 일에 참여한 이들을 불러놓고 경고도 마다치 않았다.

사실 조사만 하다가 흐지부지된 경우라서 밝혀져도 큰 문제는 없었지만 만약을 대비한 것이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윗선에도 따로 보고했는데, 그들 반응은 더 황당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최민혁 실장 내사라니? 자네 미친 거야?]

이들은 이미 정보통신부 내부에서 일어난 혼란을 사전에 알았다.

최민혁 실장이 이동통신 사업에는 분명히 손을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기술 자문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단순 자문만으로 정보통신부 내의 이동통신 관련 조직을 뒤집어놓은 셈이다.

특히 최민혁 실장이 제안한 방식은 단순한 CDMA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 방식을 통해서 인터넷망에도 접속할 수 있는 기술 표준도 확립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 역시 확실히 테스트 항목에 있었다.

이동통신 서비스와 유선망 서비스를 하나로 이을 수 있는 발전된 방식이었다. 물론 10년이 지나서야 언급될 기술이었다.

이동빈 자산과세국장은 내심 고위층 욕을 하면서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번 일 때문에 정보통신국 장관이 유임될 수가 있다니.’

정부 개각과 관련해서 놀랍게도 정보통신국 장관만큼은 예외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최민혁식 이동통신 서비스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이원한 실장을 다시 찾아가서 넌지시 눈치를 봤다.

“이봐, 이 실장. 혹시 최민혁 실장님이 이번 일을 안 거야?”

“글쎄.”

“아, 사람 답답하게 하지 좀 마!”

이원한 실장은 쓰게 웃었다. 그는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이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다. 다만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최 실장님이 그렇게 빡빡한 분은 아니니까. 너무 서두르지 좀 마. 내가 한번 자리를 마련해 볼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게.”

“후유, 고맙네.”

“자네는 그 고지식한 자세가 문제야. 사람도 봐가면서 털어야지. 최민혁 실장님 같은 분과 척을 져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난 정말 몰랐어.”

“쯧, 이번 일은 기회라고 생각해.”

이원한 실장은 이동빈 국장을 구박하면서도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한때는 최민혁 실장을 낮게 본 적이 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최민혁 실장은 이제 국세청에서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되었어. 이번 기회에 인사라도 한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 * *

이동빈 국장에게는 아주 안 된 일이지만 최민혁 실장 내사에 대한 정보는 조성돈 팀장을 거쳐서 최민혁의 귀에 들어갔다.

최민혁은 물론 화내지 않았다.

“…이원한 실장이 특별히 부탁했다고요?”

조성돈 팀장은 조심스럽게 최민혁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숨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요.”

“하긴 거기도 입 싼 국세청 직원이 있겠죠.”

그는 국세청 내의 쥐새끼를 떠올리면서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내사라니.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

“하긴 증여세가 좀 적었죠?”

“25억 정도인 것으로 압니다. 그것도 최용욱 회장님이 최대한 손을 써서 맞춘 금액입니다. 아마 더 낮출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긴 우리 할아버지가 깐깐한 분이니.”

최민혁은 문득 에플 주가가 궁금했다.

“오늘 에플 주가는 얼마예요?”

“4.2달러입니다.”

“오, 많이 올랐네요. 세상에 돈이 얼마야.”

장난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최민혁의 행동은 작위적이었다.

조성돈 팀장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증여세가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정 안 되면 여론을 동원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한국 언론사에 돈 좀 뿌릴까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CDMA 사태 이후로 다들 최민혁 실장님 입만 쳐다봅니다. 괜히 긁어서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CDMA 서비스를 둘러싼 정보통신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가볍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내년 상반기로 통신사업자 선정이 연기되면서 이 일에 최민혁 실장이 영향력을 미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ETRI의 CDMA 연구 자문은 물론 퀄컴 지분 40%를 소유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기 때문이다.

최민혁이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에 끼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제 이 말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최민혁도 순순히 인정했다. 스스로 자백까지 한 이들을 상대로 보복하는 것도 좋지는 않았다. 더욱이 굳이 국세청 실무진을 상대로 갑질 하면 후환이 될 뿐이다.

‘아니면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데. 아니지, 차라리 잘된 셈이야.’

그는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했다.

그런데 이 고민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생각해 보면 서울중앙지검에 아군을 한 명만 만들어뒀어. 숫자가 너무 적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국세청에도 아군이 있을 필요가 있다.

아니,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기회를 이용해서 아군을 만드는 것이 더 유효해 보였다.

최민혁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혹시 이번 내사에 합류한 실무진 명단을 알 수 있습니까?”

이미 실무진 명단을 확보한 조성돈 부장은 조심스럽게 최민혁에게 자료를 내밀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그들에게 손을 쓰실 생각입니까?”

그는 이번 일을 주도한 실무진 리스트를 쭉 확인했다. 그런데 이동빈 국장만 해도 경력이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곧 위로 갈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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