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93화 (493/1,021)

#493.

한영일보는 이정훈 대리의 공식적인 답변을 듣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식적인 답변 외에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말에 그냥 웃고 말았다.

최경진 편집장은 한참 동안 웃고 말았다.

“이게 말이냐, 방구냐. KM 전자가 퀄컴을 인수한 것이 아니라 벨린 투자가 퀄컴을 인수했다. 따라서 KM 전자는 이동통신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이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야?”

하지만 최광수 기자는 진지했다.

“아마 미묘한 문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벨린 투자는 최민혁 실장 개인 회사이지만 KM 전자는 엄연히 주식회사입니다.”

“하면 KM 전자가 퀄컴을 인수했다는 소리는 허위사실이란 말이야?”

“…법적으로 그렇습니다.”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최광수 기자는 흥분한 최경진 편집장의 모습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범용구 기자뿐만 아니라 이번 일에 합류한 이들은 다들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기자 생활 10년이 넘는 동안 이런 어처구니없는 변명은 처음이었다.

다만 최광수 기자는 여전히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민감한 이동통신 사업 분위기를 참작하면 딱히 무리한 요구는 아닙니다. 최근 PCS 사업권 획득과 관련된 사태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최경진 편집장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떡하니 회의실 자기 의자에 앉은 채 양팔로 머리를 받치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차세대 무선통신서비스의 핵심인 개인 휴대 통신 사업을 둘러싼 대기업의 갈등은 실로 살인적이었다.

저궤도위성 산업에 만족하는가 싶었던 HY 전자조차 갑자기 PCS 사업권 획득에 관심을 기울였다.

HY 전자는 이미 TRS 사업권을 다 먹은 후에도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LC 전자도 이에 질세라 PCS 사업계획에 뛰어들었다.

대운 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이 PCS 사업은 HY, 오성, LC, 대운의 첨예한 격돌이 예상되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도 결국에는 CDMA 방식의 디지털 무선 접속 방식을 사용한다.

즉 이 CDMA 원천기술을 가진 퀄컴은 무시할 대상이 아니었다.

만약 퀄컴이 미국 정부가 국가 보안 문제 때문에 간섭하는 기업이 아니라면 한국 대기업이 손을 썼어도 옛날에 썼을 것이다.

최광수 기자는 이 점을 지적했다.

“설사 미국 정부가 묵인한다고 해도 퀄컴이 한국 대기업과 손을 잡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미국 자본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러면 지금 일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최민혁 실장이 무슨 재주로 벨린 투자를 이용해서 퀄컴을 인수한 거냐? 아니, 진짜 인수한 것이 맞긴 맞아?”

범용구 기자가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 부분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최민혁 실장이 퀄컴 인수에 관심을 보인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 것이 어떨까요?”

“계속해 봐.”

“어차피 그 일은 조사를 해봐야 압니다. 아마 퀄컴 쪽에 문의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적당히 인수한 것처럼 기사를 내보낸 후에 최민혁 실장의 인터뷰 내용을 후속으로 보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최민혁 실장이 대답을 잘할까?”

“어차피 다른 언론사도 이미 이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아마 최민혁 실장이 공항에 도착하는 그 장소에 벌 떼처럼 몰려 있을 겁니다.”

최경진 편집장도 얼마 전에 당한 최민혁 실장의 압력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괜한 일을 만들어서 고소·고발을 당하는 것보다 더 문제인 것은 자칫하면 광고 매출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긴 그게 나을 수도 있겠어. 괜히 최민혁 실장을 자극해 봐야 좋을 것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 * *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 미국 퀄컴을 인수하나!]

[대기업의 PCS 사업 쟁탈을 위한 혼전은 점점 과열되는 상황이다. 차세대 무선통신 사업인 PCS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정보 통신부는 한국통신, 대기업, 중소기업 컨소시엄으로 나누어서 PCS 신규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특히 1.8GHz 주파수를 놓고 이어지는 경쟁은 치열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런 시기에 최민혁 실장은 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을 인수하려고 미국에 가 있다.

과연 KM 전자 신화의 주인공인 최민혁 실장은 에플에 이어서 퀄컴까지 얻을 수 있을까.]

한영일보의 일면을 장식한 이 기사는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다른 언론사도 질세라 한영일보의 기사를 베껴서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를 접한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퀄컴이 뭐 하는 회사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PCS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에 더 익숙했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은 좀 달랐다.

PCS와 관련이 있는 대기업이라면 모두 한영일보에 전화를 걸어서 따졌다.

과연 이게 사실인지 말이다.

한영일보는 자신이 내보낸 기사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한 정보는 노코멘트를 외쳤다.

[우리가 아는 것은 기사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외부 전화에 시달린 범용구 기자는 공항에 도착해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곧 도착할 예정인 비행기 시간을 확인했다.

“두 시간 남았네.”

넉넉하게 생각해서 일찍 공항에 나왔다.

이윽고 최광수 기자를 비롯한 세 명의 기자가 더 합류했다.

모두 다섯 명.

결국 작지 않은 수다.

한영일보가 이번 일에 사활을 건 셈이다.

다만 이번 일은 역시 한영일보만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한선일보 기자가 다음에 나타났고, 곧 이어서 한국 메이저 언론사 기자도 다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범용구 기자를 보면서 푸념을 털어놓았다.

“아, 정말 너무한 것 아냐? KM 전자 홍보 팀에 문의한 바로는 그쪽 기사에서 언급한 내용이 없었어.”

실제로 과장 허위 기사가 제법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요는 최민혁 실장의 아킬레스건만 건드리지 않으면 되니까.

바로 KM 전자가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지 않는 점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항에 나온 기자들 대부분이 의문을 토로했다.

“엄마가 퀄컴 지분을 인수하는데, 아빠는 그 사실을 모른다니. 이게 말이냐, 방구냐. 여, 범 기자, 뭐 들은 거 없어?”

“…….”

범용구 기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그도 자세한 것은 몰랐다. 최민혁 실장에게 직접 물어봐야 알 일이었다.

그 때문일까.

사람 마음은 다들 비슷했다.

최민혁 실장이 탄 비행기가 도착할 한 시간을 남겨둔 시점에 공항에 나타난 기자 수는 물경 백여 명을 넘어갔다.

물론 푸념을 한 이도 있었다.

“KM 전자 홍보 팀 그 새끼들은 왜 그래? KM 전자는 절대로 이동통신 사업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고, 만약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법적인 책임을 묻는다고? 최민혁 실장이 독단으로 결정한 일이라 모른다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

범용구 기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계속 늘어나는 기자들의 숫자가 마음에 걸렸다. 최민혁 실장이 탑승한 비행기 도착 30분을 남겨둔 시점에서는 무려 이백 명에 가까웠다.

실로 엄청난 숫자의 기자들 때문에 공항에서도 난리가 났다.

뒤늦게 공항 담당자가 나서서 기자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고는 공항 한쪽 구석에 임시로 기자회견장을 다급하게 설치하였다.

기자들 사이의 취재 경쟁 때문에 끈으로 마이크 삼십 개를 둘둘 말아서 단상 앞쪽에 배치했다.

공항을 오가는 이들조차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딱 시간에 맞추어서 최민혁 실장이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나타났다. 그 역시 몰려와 있는 이백 명이 넘는 기자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움찔, 몸을 떨었다. 와도 너무 많이 왔다.

공항 경비원이 기자들을 대신해서 최민혁에게 다가가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도 물론 자세한 내막까지는 몰랐다.

심지어 기자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났다.

결국 이백 명을 넘겨서 이백오십 명에 도달했다.

최민혁은 기자들의 분위기를 무시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냥 빠져 버리면, 떼를 지어서 와르르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아아, 마이크 시험 중, 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설마 절 취재하러 온 겁니까?]

[네!!!]

[하하하, 이거야 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역시 퀄컴 인수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다행히 사전에 기자들끼리 약속이 되어서인지 아우성치는 사람은 없었다.

최민혁은 이게 모두 최문경 부회장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CDMA와 이동통신 사업을 엮어서 대립하게 수작을 부릴 사람은 그가 딱 유일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한 전화가 그 이유 때문이겠지. 그렇다고 설마 일이 이렇게 되다니.’

그는 몰려와 있는 300여 명의 기자들 모습을 보면서 잠깐 고민했다. 숨기려면 숨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큰 의미가 없었다.

이미 스마트폰 사업을 위한 8부 능선을 넘어간 상황이다.

퀄컴 인수까지 끝난 마당에 굳이 몸을 사릴 이유는 없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 아니, 차라리 더 잘된 셈이야. 다만 굳이 이동통신 서비스 쪽과는 갈등할 필요가 없어. 그 부분은 신경 써야 하니까.’

최민혁은 잠깐 그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에 조성돈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획 팀에서 지금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했는지 확인했다.

‘다행이네.’

[질문받겠습니다!]

딱 이 한마디에 삼백 명까지 늘어난 기자들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최민혁도 광적인 기자들 열기에 몸을 움찔 떨고 말았다.

‘하하하, 이거야 원.’

* * *

장승일 기획 조정실 실장은 최문경 부회장이 한 일을 듣고 나서는 본사로 돌아와서는 기획실 인원을 죄다 호출해서 KM 전자의 최근 행보를 조사시켰다.

특히 최민혁 실장의 동선과 행보를 중심으로 뒀다.

퀄컴 인수.

이건 정말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KM 그룹이 몰라서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지 못한 것이 아니다.

한국 20대 대기업은 죄다 이 살벌한 경쟁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KM 그룹은 다른 10대 대기업이 좁은 시장 때문에 포기한 영역을 노려왔기에 이동통신 사업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 대안이 TRS 사업이다.

물론 이건 정리를 해버렸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느닷없이 한국 이동통신 서비스가 아니라 이 이동통신 사업의 원천기술을 가진 퀄컴을 인수하려고 한 것이다.

그의 상식으로는 미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미국 정부 내의 통신 인허가와 관련이 있는 부서도 같이 살펴야 했다.

그런데 겉으로 나온 정보는 없었다.

장승일 실장도 이 일은 난감했다. 그는 최용욱 회장에게 따로 지시를 받았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실장님 비행기가 몇 시지?”

“지금 도착했을 겁니다.”

“그래?”

그는 고민하다가 최민혁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런데 신호는 가는데, 통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결국 전화 통화를 포기했다.

그런데 박재광 과장이 전화를 받더니 허겁지겁 뛰어와서 구길모 차장에게 보고했다.

구길모 차장은 굳은 안색을 한 채 다급하게 장승일 실장에게 보고했다.

장승일 실장은 황당한 얼굴을 하고 TV가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KM 그룹 기획 조정실 임직원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한 채 그 뒤를 따랐다.

회의실 한쪽을 차지한 대형 TV에서는 때마침 생방송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그 아래엔 붉은 글자로 큼직하게 메인 이슈가 적혀 있었다.

[긴급 뉴스, 벨린 투자가 퀄컴을 인수하다!]

물론 질문하는 기자는 다소 흥분된 어조로 소리쳤다.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됩니다. KM 전자가 아니라 벨린 투자가 퀄컴을 인수했다는 말입니까? KM 전자는 퀄컴 인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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