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
조성돈 팀장은 결국 미국 에플 본사에 가 있는 최병연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병연 소장은 조성돈 팀장의 전화를 받자 곧 사실을 말했다.
[아, 퀄컴 지분 인수 말입니까. 아마 맞을 것입니다. 최 실장님이 떠나기 전에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맙소사 그게 정말입니까?]
[참, 기획 팀에 알리지 못한 것은 갑작스럽게 진행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장님도 에플 이사회 임원을 만나면서 중간에 갑자기 진행된 일이라서 기획 팀에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 그게 무슨 뜻입니까?]
[최 실장님도 당장은 퀄컴 인수를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있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 퀄컴의 어원 제이콥 사장을 만났습니다. 전부 요 며칠 사이로 일어난 일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말이군요.]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어원 제이콥 사장이나 퀄컴 이사회에서 마음을 바꿀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님도 불확실한 일이라 따로 알리지 않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섭섭한 마음이 있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샐로먼 브러더스에 의한 KM 전자 급등락은 확실히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상식으로 이 일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면 샐로먼 브러더스 측도 퀄컴 인수에는 실패했다는 이야기인데, 도대체 최민혁 실장님은 어떻게 퀄컴 지분을 인수했다는 말입니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떠나기 전에 최종 퀄컴 인수 사인을 했으니까요. 더욱이 지금 저도 깨달은 사실인데, 벨린 투자를 통해서 진행한 일이라서 기획 팀에도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면 외관상 봤을 때는 KM 전자와 무관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죠.]
[아,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전화를 끊고 나서는 따가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기획 팀과 홍보 팀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통화를 들었기에 이미 대충 상황을 짐작한 것 같았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최 실장님이 퀄컴을 인수한 것 같습니다. 이미 인수 계약서에 서명까지 했는데, 벨린 투자를 통해서 진행한 일이라서 KM 전자 쪽과는 엄밀히 말해서 관련이 없습니다. 더욱이 갑자기 진행된 일이라서 미처 알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와!”
기획 팀이고, 홍보 팀이고 관계없이 다들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퀄컴 지분 인수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설사 돈이 있다고 해도 그 지분을 인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용식 홍보팀장의 안색도 달라졌다.
“조 팀장님, 이야기 좀 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는 흥분에 싸여 있는 기획 팀에게 관련 조사를 맡긴 후에 이용식 홍보팀장과 같이 소회의실로 향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눌수록 머릿속이 복잡했다.
조성돈 팀장조차 이제 안 이야기다. 그러니 이야기를 해봐야 내막을 알기 어려웠다. 지금 당장은 최민혁 실장이 와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 *
이용식 홍보팀장은 조성돈 팀장과 소회의실에서 간단히 이야기한 후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아니, 알려고 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지금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상황이다.
이용식 홍보팀장 처지에서는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는 일단 홍보 팀 임시 회의를 열었는데, 그러다 나온 의견이 바로 벨린 투자에 직접 문의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이 전화를 받았다.
물론 장소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아, 정신이 없네요. 갑자기 최 실장님 요청을 받아서 미국에 도착했는데, 퀄컴 쪽의 법무 팀이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말입니다.]
[가만, 그러면 이번 퀄컴 투자는 진짜 벨린 투자 자금으로만 진행합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금이 한두 푼 들어가는 일이 아닐 텐데요?]
[에플 지분 40% 외에 투자 목적으로 산 에플 지분이 좀 있습니다. 0.4달러 부근에 사들인 주식인데, 이번에 다 팔았습니다. 그 자금과 벨린 투자 내에 보유한 현금을 다 합쳐서 이번 퀄컴 인수에 퍼부었습니다.]
그는 의아했다.
[에플 인수 때도 그랬는데, 벨린 투자 비중이 크던데 왜 그렇게 처리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KM 전자 내에 자금이 넉넉하게 있는데, 굳이 그걸 이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민감한 이슈이니까요. 최 실장님은 배임행위를 꽤 신경 쓰시는 것 같더군요.]
[아니, 에플이나 퀄컴 지분 인수가 무슨 배임행위와 관계가 있습니까?]
[단기에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플이나 퀄컴 주가가 더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최민혁 실장이 독단적으로 에플이나 퀄컴 주식을 인수했다고 가정할 때, 만약 두 회사 지분이 급락해서 지분 가치가 하락한다면 그 책임이 최민혁 실장에게 돌아간다.
이 경우는 최민혁이 설사 대주주라고 해도 주주총회에서 문제로 삼을 소지가 많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회사 자금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리스크가 큰 셈이다.
[글쎄요. 현재 KM 전자 주주 중에서 누가 최민혁 실장을 압박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최문경 부회장님이 좋은 예입니다. 만약 2~3명분의 차명 지분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주주총회에서 최민혁 실장님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KM 전자가 잘나가서 그런 사태가 없었던 것뿐입니다.]
[아…….]
이용식 팀장은 KM 전자에 딴죽을 걸 주인공이 최문경 부회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최문경 부회장이라면 최민혁 실장이 실수하는 척만 해도 공격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면 CDMA 사업과 관련해서는 우리 KM 전자도 직접 연관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까?]
[…현재로는 그렇게 작업했습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님이 그렇게 지시한 것입니까?]
우영민 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부분은 최민혁 실장님과 상의해서 처리했습니다. 괜히 이동통신 사업과 관련해서 입방아에 오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정확히는 최민혁 처지에서 KM 전자 돈이든, 벨린 투자 자금이든 별로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둘 다 실소유주는 자신이니까.
때문에 그는 우영민 부장이 올린 보고서를 보고 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퀄컴 관련해서는 KM 전자도 관계가 없다고 발표하겠습니다.]
[아마 그게 좋을 겁니다. 최 실장님이 내일 중으로 한국에 도착할 테니,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이용식 팀장은 내심 우영민 부장의 처신에 탄식하고 말았다. 설마 우영민 부장이 최민혁 실장을 이렇게 챙겨줄지는 몰랐다.
그는 옆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는 전희주 과장과 이정훈 대리를 쳐다보았다.
“통화 내용을 들었다면 알겠지만 괜한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서 퀄컴 지분 인수는 벨린 투자 자금을 이용해서 처리한 것 같아.”
하지만 곰곰이 생각에 빠진 전희주 과장이 반박했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까요?”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KM 전자는 퀄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
전희주 과장은 뻥 친 얼굴로 툴툴거렸다.
“…의도는 잘 알겠지만, 과연 언론사가 그걸 믿을지는 의문입니다. 설마 기술제휴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이용식 부장은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이 과거 회의에서 가끔 언급한 모바일 산업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지금까지 쭉 이어진 최민혁 실장의 행보.
현재 퀄컴 지분 인수까지 다 합치면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이 모든 기획이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퀄컴 지분 인수도 사실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있었다는 의미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용식 부장은 차마 그 내용을 말할 수가 없었다.
“…기술 문제는 각 계열사를 통해서 진행되지 않을까. 지금 봐서는 에플이나 ARN이 그 후보일 수도 있잖아.”
“아니, 부장님 말씀은 잘 알겠어요. 그런데 그런 핑계가 통할까요? 벨린 투자 실소유주는 최민혁 실장 아닙니까. KM 전자 주인도 최민혁 실장님입니다. 결국 최민혁 실장님은 벨린 투자를 통해서 퀄컴을 소유한 것 아닙니까? 아니, 제 의견이 아니라 언론에서 이렇게 떠들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이게 무슨 말장난도 아니고,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이용식 부장은 쓰게 웃었다. 자신도 억지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데 차라리 부정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KM 전자가 퀄컴을 인수한 것과 벨린 투자가 퀄컴을 인수한 것은 뉘앙스가 전혀 달랐다.
“…나도 전 과장 마음 잘 알아. 그런데 최민혁 실장님이 굳이 벨린 투자 자금을 쥐어짜서 따로 퀄컴 지분을 인수한 것은 괜한 불협화음을 줄이기 위함이잖아. 그러니 지금은 KM 전자는 퀄컴 인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피력하는 것이 맞아.”
“언론사가 안 믿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아. 사실이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말한 내용 외에 다른 내용을 기사에 실으면,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 업무방해죄로 고소한다고 그래!”
“…알겠습니다.”
* * *
전희주 과장은 자기 자리에 가서 이정훈 대리에게 우선 회사 처지를 말했다.
“이 대리도 들었지?”
융통성이 별로 없는 이정훈 대리는 크게 반박했다.
“아니, 전 과장님, 설마 이 부장님 말대로 하실 겁니까? KM 전자는 퀄컴 지분 인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벨린 투자가 퀄컴을 인수한 것이라고 발표하란 말입니까?”
전희주 과장도 홍보 팀에 있으면서 별별 일을 다 경험했지만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서 황당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대리, 자네 뜻은 나도 알아. 하지만 KM 전자는 퀄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아니, 퀄컴 지분을 인수한 이상 싫든 좋든 그쪽하고 기술협조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그거야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가 있지. 기업끼리 얼마든지 서로 돕고 할 수 있잖아. 요지는 지금 당장은 아니란 거야.”
이정훈 대리는 크게 당황했다. 아무리 윗선의 지시라고 해도 이대로 따라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한영일보에 그렇게 말하라고요?”
“어, 나도 자네 마음 알아. 그런데 당장은 최 실장님도 이동통신 사업 구설수에 엮이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아. 벨린 투자 쪽에서 그 부분은 명확히 했어.”
냉정한 이정훈 대리는 이번 일이 꽤 괜찮은 홍보 이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잘만 활용하면 우리 회사 홍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퀄컴 인수를 이렇게 서두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칫하면 괜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어. 최 실장님은 그걸 피하고 싶은 거야. 그러니 그 부분은 우리 KM 전자 공식적인 답변은 아니야. 내 말뜻을 잘 알겠지?”
“하지만 이번 일은 그냥 우리 홍보 팀이 무시하기에는 너무 파이가…….”
“내가 언제 우리 홍보 팀이 이 일을 무시하라고 했어. 그 부분은 문제가 없도록만 하면 되는 거야. 요컨대 우리 KM 전자는 퀄컴 인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방침이야!”
“…알겠습니다.”
이정훈 대리도 허탈하게 웃었다. LC 전자에 있을 때와는 상황이 너무 달라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다만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와야 이번 일이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당장 내일 기사였다.
‘…나도 모르겠다.’
* * *
[KM 전자는 퀄컴 인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해서 최민혁 실장이 퀄컴을 인수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뉴스가 가짜 뉴스란 말입니까?]
[KM 전자는 퀄컴 인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니, 여보세요, 이 대리. 이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될 문제입니까?!]
[…KM 전자는 퀄컴 인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벨린 투자에서 퀄컴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부분은 벨린 투자를 통해서 확인 바랍니다.]
[아니, 벨린 투자의 실소유주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KM 전자는 퀄컴 인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