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89화 (489/1,021)

#489.

“아닙니다. 저희가 더 도움을 요청드려야죠. 당장 KM 전자 연구 팀의 도움이 시급합니다.”

“그건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최우선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ETRI 측에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봐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죠. 제가 결과가 최대한 빨리 나오게 당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믿겠습니다!”

이건 어원 제이콥 사장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나온 퀄컴 이사회 임원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오큘러스 프로젝트의 진실을 안 이들은 최민혁 실장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감사합니다.”

어원 제이콥 사장은 진심으로 최민혁 실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처지에서는 이번 일로 당장 자기 앞에 놓인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K투스 하나만 해도 TDMA 진영과 비교하면 기술 우위를 보일 수가 있었다. 여기에 MP3 IP까지 내장하는 방법을 포함한 다양한 노력이 추가된다면 TDMA와의 경쟁에서 기술적 우위를 가질 수가 있었다.

* * *

최민혁이 퀄컴 지분 매입 자금으로 쓴 것은 바로 벨린 투자를 통해서 여분으로 확보한 에플 지분이다. 당시 0.5달러 부근에 샀던 주식을 3.2달러 정도에 다 팔아 치운 것이다.

여기에 벨린 투자가 가진 여유 자금을 탈탈 털었다.

이제 벨린 투자가 보유한 것은 에플 지분, 퀄컴 지분을 포함한 기업 주식이 대부분이다.

최민혁은 빡빡한 벨린 투자의 재정 상황에 혀를 내둘렀는데, 당분간은 다시 돈을 벌 수단을 취해야 했다. 우영민 부장에게는 이 부분을 지적했다.

[너무 답답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괜찮은 투자처는 다시 찾아보면 되니까. 급한 투자라면 이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우영민 부장도 약간은 아쉬웠다. 그 역시 벨린 투자의 자금이 이렇게 다 소진된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물론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스티븐에게 감사를 전했다.

“덕분에 좋은 물건을 쇼핑했습니다.”

뒤늦게 퀄컴 인수 소식을 들은 스티븐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아, 퀄컴 지분 말이군요. 하지만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망 사업자도 CDMA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CDMA가 미국 통신 표준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안도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한국 시장이 퀄컴 숨통을 트이게 해줄 겁니다. 어느 정도 CDMA 기반 기술이 쌓이면 그때서는 미국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넓힐 수 있을 테니까.”

“TDMA는 이미 상당한 경험을 축적했는데, 경쟁이 가능할까요?”

“가능하게 하여야죠. 당장 MP3 IP, K투스 IP가 있습니다. 즉 KMP-02에서 사용된 기술을 적용하면 그만큼 경쟁 우위에 놓일 겁니다.”

“…아.”

스티븐은 그제야 깜짝 놀랐다. 당장 아이컴, KMP-02 프로젝트에 정신이 없어서 그다음을 간과했다. 설마 거기에 이동 통신을 같이 섞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깊은 사색에 잠긴 스티븐.

그는 생각하다 보니 KMP-02에 사용된 기술을 이용하는 다양한 대안이 떠올랐다. KMP-02에 적용된 기술 중에 당장 떠오르는 것은 바로 터치다. 지금의 2.7인치 IPS LCD라면, 핸드폰 액정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거기에 응용프로그램을 잘만 활용한다면 괜찮은 그림이 만들어진다.

최민혁은 환희에 차 있는 스티븐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스티븐이 정신을 차린 후에 작별 인사를 전했다.

“앞으로 크게 기대합니다.”

“아, 제가 할 말입니다.”

그는 퀄컴 지분을 얻은 마당에 립 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마치 애국심 넘치는 미국인인 것처럼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미국의 이익이 최대한 지켜지도록 노력할 테니까.”

“글쎄요.”

스티븐은 기묘한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힐끗 살폈다. 그가 최근 최민혁 실장과 짧은 시간 동안 있으면서 느낀 점은 최민혁 실장이 생각보다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점이다.

감정에 휩쓸려서 뭔가를 저지르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그따위 소리는 믿지도 않았다.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미국 시민권을 버릴 사람이니까.’

다만 미국 시민권을 왜 갑자기 얻은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최민혁은 미국 시민권 제안을 받고 나서 바로 퀄컴의 어원 사장을 만났다. 이게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설마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SEC와 거래라도 한 것일까?’

뭐가 되었든 최민혁 실장은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NexOS 지분을 매각한 후에 얻은 돈으로 에플 주식도 사들였는데, 이제는 퀄컴 지분도 한번 고민을 해야 할 일이다.

“이거 퀄컴 주식이라도 좀 사들여야 하겠습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아마 당장은 퀄컴 주가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겁니다. 설사 제가 퀄컴 지분 40%을 인수했다고 해도 말입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법입니다. 당장 에플 이사회에 아는 지인 이야기로는 에플 주식에 관한 관심이 심상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큰 변화가 없을 겁니다. 뭐 아이컴과 KMP-02 출시하고 난 다음에는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두고 보면 알겠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네.”

최민혁은 스티븐과 악수를 한 후에 최병연 소장 사단과도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미국 일을 잘 부탁합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니, 최선을 다해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최민혁은 스티븐을 통해서 앞으로 에플의 나아갈 바를 확인했다. 그는 물론 임기석 부장과 강준석 팀장에게 전화해서 이세현 박사를 맡겼다.

그는 미국에서 일을 끝낸 후에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니, 오르려고 했다.

뒤늦게 조사를 끝낸 최용욱 회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민혁아, 너 지금 미국 MIT에 있는 거냐?]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후유, 지금 그런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야.]

최민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 잠깐 MIT를 방문했습니다. 괜찮은 인재를 스카우트할 생각입니다. 지금은 공항이고요.]

[내가 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건 것은 네가 혹시 CDMA 사업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렇다. 그게 사실이냐?]

그는 최용욱 회장이 왜 갑자기 CDMA 사안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국 CDMA 사업 말입니까? 당연히 그쪽 사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도 최문경 부회장의 이야기를 토대로 충분히 조사했다.

[…하면 미국 퀄컴에 대한 직접 투자를 하겠다는 뜻이냐?]

최민혁은 생각보다 집요한 최용욱 회장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할아버지가 이렇게 집착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안 겁니까?]

최용욱 회장도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문경이가 직접 찾아와서 이야기하더라. 네 녀석이 MIT 내의 퀄컴 연구소를 찾았다고, 심지어 퀄컴 경영진과 만났다는 소리도 있어.]

최민혁은 샐로먼 브러더스만 생각하다가 뒤늦게 최문경 부회장 이야기를 듣고는 혀를 찼다.

[아아, 우리 첫째 큰아버지, 역시 좀스럽네요. 그런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고요. 그런데 이상하군요.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일까요?]

[…사실이냐?]

최민혁은 공항 안에서 잠깐 멈춘 후에 고민했다.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된 것이다. 하지만 딱히 숨길 일이 아니었다.

‘퀄컴 쪽에서 공시할 테니까. 물론 가능하면 관련 내용을 최대한 줄이라고 했지만 역시 문제가 될 거야. 미국 언론도 바보는 아니잖아. 아니, 한국 언론이 더 문제일까?’

그는 새삼 김명준 과장이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다급하게 손짓하는 것을 보면서 혀를 찼다. 막상 일을 벌여놓기는 했지만 정신이 없어서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장 큰 문제는 자신이 한국 내의 CDMA 사업에 끼어들 수 있다는 오해다. 특히 복마전과 같은 이동 통신 사업 말이다.

따라서 괜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최용욱 회장이 자신의 행보를 알 필요는 있었다.

[음, 사실 맞습니다.]

아직 진행 사안을 잘 모르는 최용욱 회장은 평소와는 달리 발끈했다.

[민혁아, 네 능력은 나도 이제 인정한다. 네 마음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미국 통신 사업은 에플과는 또 달라. 더욱이 퀄컴의 어원 제이콥 사장이 미국 기업도 아닌 한국 기업에 지분을 매각할 리가 없어!]

[압니다.]

[아니, 이번 일은 정말 걱정스럽구나. 오성 전자도 퀄컴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다. 돈이 있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냐!]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 말이 길어지자 그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미 퀄컴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CDMA 사업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손을 쓸 겁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지간한 일에 반응이 없던 최용욱 회장도 이번에는 경악했다.

[네가 지금까지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을 나도 안다. 이제는 자신감이 생길… 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퀄컴 지분을 인수했다는 소리야?!!]

[뭐,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원 제이콥 사장이 생각보다는 이리저리 많이 재서 말이죠. 하지만 이미 퀄컴 지분 인수는 끝났습니다. 계약서 도장까지 찍었으니까. 아마 퀄컴의 공시가 곧 나올 겁니다.]

[이 짧은 시간에 말이냐? 그, 그건 말도 안 돼. 퀄컴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퀄컴 이사회가 그런 일을 승인할 리가 없어!!]

[그렇죠. 기간이 정말 짧았습니다. 그런데 퀄컴 이사회도 지금 자신의 위기 상황을 잘 인식한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당장 내년 상반기가 되어도 이 일은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 말, 말도 안 되는…….]

최용욱 회장이 말을 더듬으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퀄컴과 관련된 사업에 당장 들어간 돈만 해도 수억 달러가 넘었다. 추가로 들어가는 돈과 앞으로 관련된 기업까지 합치면 조 단위는 가볍게 넘어간다.

더욱이 시간이 갈수록 이권이 커질 테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복마전 중의 복마전이다.

그런데 그 복마전의 키를 쥔 퀄컴 지분을 인수하다니.

도대체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도 뒤늦게야 인생 1회 차 때의 기억이 아니라 CDMA와 관련된 이해 관계자를 떠올린 후에 혀를 찼다. 생각보다는 큰 문제였다.

[할아버지, 제가 지금 비행기에 탑승해야 합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그래. 하, 이거야 믿을 수가 없구나. 도대체 퀄컴을 어떻게 설득했기에 지분 인수를 한 것이냐.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혼자 넋두리에 빠진 최용욱 회장.

[…전화 끊습니다.]

최민혁은 굳이 더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강제로 전화를 끊고 나서는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했다.

최민혁의 뒤를 따르는 김명준 과장이 최민혁의 눈치를 보았다.

“괜찮겠습니까?”

“한국 상황 말인가요?”

“네, 당장 오성 전자만 해도 우리와 관련이 없다면 압박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HY 전자는 우리와 얽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일을 그냥 지켜만 보지 않을 겁니다.”

최민혁도 한국의 대기업이 이번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 다만 한국 내의 이동 통신 사업과 퀄컴 지분 인수는 좀 다르다고 봤다.

“퀄컴 지분은 그쪽하고 관계가 없잖아요?”

“하지만 그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막말로 자신들이 죽으라고 CDMA 기술에 투자하고, 망 서비스를 하는 일 자체가 퀄컴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그러니 결국 최민혁 실장님은 앉아서 돈을 버는 거죠. 과연 그자들이 이 일을 두고 보겠습니까?”

“아, 알았어요. 저도 바보 아닙니다. 오해가 없도록 해야겠죠.”

최민혁은 비행기 탑승 입구를 보면서 잠깐 멈추어 섰다. 그 역시 바보는 아니다. 에플 지분은 한국과는 상관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퀄컴 지분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이동 통신 사업자인 신세기 통신만 해도 자신이 최민혁 실장의 시다바리 노릇을 해야 한다면 분노할 것이 분명했다. 망 서비스를 통해서 이익을 보기는 하지만 그게 결국 최민혁 지갑을 두툼하게 해줄 뿐이니까.

‘딱 좋기는 한데 말이야. 시기심 많은 대기업이 그냥 있지 않겠지. 더욱이 우리 큰아버지는 질투심이 많아서 괜한 일을 벌일 수도 있어. 가만, 설마 그러지야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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