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79화 (479/1,021)

#479.

조시 로버트 부국장은 시종일관 저자세를 취했고, 앞으로의 에플 경영에 대해서 이런저런 자잘한 질문을 던졌다.

그중에는 최민혁도 미처 예상치 못한 제안도 있었다.

“혹시 최민혁 실장님이 미국 시민권을 얻는 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최민혁으로선 굳이 왜 SEC가 저런 주장을 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당장 자신이 보유한 에플 주식만 해도 가치가 어마어마했는데, 에플 주가 변동에 따른 가치는 더 천문학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영주권도 얻기가 쉽지 않은데, 시민권은 더 힘듭니다.”

하지만 조시 로버트 부국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최민혁 실장님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원한다면 미국 시민권을 바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귀찮…….”

“아닙니다. 그냥 오케이만 하면 됩니다. 아, 물론 서명을 몇 곳에 해야 하는데, 그것만 하면 됩니다.”

평범한 사람이 미국 시민권을 얻기란 정말 어렵다. 그런데 그 일이 최민혁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물론 공짜는 아닐 것이다.

최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이 자리에서 미국 시민권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조시 로버트 부국장은 넌지시 이 문제를 계속 언급했다.

“미국 시민권이 있는 것이 미국에서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당장 부동산 투자가 좋은 경우입니다. 익히 경험하셨겠지만 변호사를 통해서도 가능은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이 제법 있습니다.”

외국인이 미국에 와서 자산을 취득하고, 투자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생각보다는 이런저런 불이익이 많았다.

최민혁이 그걸 모르지 않았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까?”

“아무래도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은데,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면 이런저런 말이 나올 겁니다. 지금 당장은 에플 인수가 조용하게 이루어졌으니 괜찮지만 만약 에플 가치가 폭등한다면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 제법 생길 겁니다.”

그는 내심 피식 웃었다.

‘유니버설 이사회 측이 로비에 나섰나 보군. 안 그래도 고민하던 SEC 처지에서는 냉큼 나설 수밖에 없었겠네. 하긴 에플 주식이 꽤 매력적이겠지.’

“그런 이들이 절 압박한다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 미국 정부는 어지간한 일로 최민혁 실장님의 행보에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최민혁은 이 제안이 꼭 에플 주식의 가치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도 금방 깨달았다.

“샐로먼 브러더스 말인가요? 재가 그쪽이랑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불만이었나 보군요.”

사실 한국 증시에서 일어나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일을 미국 정부가 모를 수가 없었다. 남의 나라 증시에 끼어들어서 그 난리를 쳤는데,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한국 증권 감독원에서 SEC 측에 문의한 것 같군요.”

정확히는 항의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미친 짓을 멈춰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SEC 입장에서는 실로 황당한 일이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들이 헤지펀드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미국 동맹국인 한국 증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민혁 실장을 압박하려고 발악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을 완전히 넘은 것이다.

“…….”

조시 로버트 부국장은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슬쩍 미소 지었다. 그는 딱히 최민혁을 압박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미국 공무원 처지에서 복잡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하긴 미국 여론에도 영향을 줄 만하지. 그걸 미국 정치권이 진지하게 받아들인 거야.’

다만 그도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이건 원래 미국 국무부에서 하는 일 아닙니까. 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서… 아, 설마 미국 국무부 쪽에서 요청한 겁니까?”

“…….”

조시 로버트 부국장은 어색하게 웃은 채 입을 다물었다. 말하기 곤란한 부분은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잘 보면 이 일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가 겉으로는 부드럽게 말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는 에플 이사회, 샐로먼 브러더스, 에플 대주주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엮어 있는 게 분명했다.

최민혁은 자신이 장난친 유니버설 이사회가 이렇게 문제를 키울 줄은 몰랐다.

“…유니버설 측에서 또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겁니까?”

“…….”

역시나 대답 없는 조시 로버트 부국장.

최민혁은 그제야 조시 로버트 부국장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이 자리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 시민권’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표 자체는 최문경 부회장과 이에 연루된 세력을 일소해서 복수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최문경 부회장 청소를 장기적으로 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샐로먼 브러더스가 아직 범인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미국 시민권은 이런 복수에 아주 유효한 수단이다.

복수가 끝난 후에 미국 시민권은 버리면 그만이었다.

더욱이 공짜로 주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대신 애국심을 슬쩍 내세워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점을 피력했다.

“전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이중국적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조건을 들어주세요.”

“…조건이 뭡니까?”

최민혁은 자신이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핵심인 이동 통신 기술 부분을 슬쩍 언급했다. 정확히는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심정으로 말을 툭 던졌다.

“퀄컴 지분에 관심이 많습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에 조시 로버트 부국장은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 놓인 퀄컴 상황을 떠올린 후에 고민을 더 하지 않았다.

“…퀄컴 지분이라면 역시 퀄컴 대주주가 될 생각인 것 같군요. 그건 아무래도 내부적인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원론적으로 말해서 미국인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다만 퀄컴 협상은 최민혁 실장님이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좋네요. 아, 전 퀄컴 측과 자리만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연락 기다리죠.”

최민혁도 굳이 이 자리에서 조시 로버트 부국장을 압박하지 않았다. 다른 사업과는 달리 미국 통신 기업은 외국인이 지분을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그 기업이 몰락한 기업이라고 해도 말이다.

‘지금은 퀄컴이 망해가는 상황이잖아. 그렇다고 해도 통신 사업 쪽은 미국 정부가 쉽게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래도 잘하면 일을 쉽게 풀어갈 수가 있겠어.’

* * *

조시 로버트 부국장이 최민혁 실장을 찾은 것은 결코 그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 때문이 아니었다. 거기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었다.

특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에플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차세대 무기였다.

이 정보는 바로 유니버설 이사회를 통해서 나온 것이었다.

사실 유니버설 이사회는 에플의 차기 제품을 보고는 발칵 뒤집혔다.

단순히 유니버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에플 주식을 알게 모르게 다 들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심지어 에플 주식을 정리한 이도 있었다.

그런데 스티븐이 갑자기 들고 온 제품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기존의 에플 신화를 다시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에플과 샐로먼 브러더스와의 갈등이다.

이 싸움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무시할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은 특히 미국 국외에서 진행한 헤지펀드와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 이번 차세대 제품으로 에플이 부활한다면 문제가 아주 복잡해진다.

최민혁 실장이 어쭙잖은 애국심을 내세워서 에플 주식을 정리한 후에 생긴 달러를 가지고 한국 내로 들고 간다면 말이다.

그런데 다행이라면 최민혁 실장은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조시 로버트 입장에서는 안도했다.

“다행이야.”

파르빈 라미네즈 팀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가 봐서는 최민혁 실장은 이미 한국의 사정을 잘 아는 눈치였습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해?”

“지금 한국 경제는 10년이 넘는 고도성장을 거듭했고, 이제는 이런 성장을 이어가기 힘듭니다. 경제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할 타이밍입니다. 그런데 과도한 성장이라는 독에 취해서 흥청망청 자금을 탕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어떤 설득도 안 먹힙니다. 그런데 최 실장은 냉정하게 이런 상황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야 KM 전자나 KM 그룹의 행보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난 정말 놀랐어. 최민혁 실장은 사전에 그걸 어느 정도 짐작한 눈치이니까.”

“그러게요. 그 부분은 좀 이상하더군요. 최민혁 실장이 경제학자도 아닌데, 그런 점까지 어떻게 예측하는 것일까요?”

이야기를 거듭하던 조시 로버트 부국장도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KM 전자와 최민혁 실장 관련 보고서를 읽으면서 오히려 더 많은 의혹을 느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하지. 생각해 보면, KM 전자의 성장도 어느 정도 위기를 대처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거기에 에플 인수까지 말이야.”

“…설마 최민혁 실장이 한국의 경제 위기를 사전에 예측이라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앞뒤가 맞지 않으니까.”

“설마 그럴까요?”

“그런 점도 위에 잘 지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테니까. 다만 국무부가 괜히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울까 걱정이야.”

“국무부 애들도 바보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지금 에플 주가를 보고도 미친 짓을 하지는 않겠지.”

* * *

조시 로버트 부국장은 꽤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파르빈 라미네즈 팀장 역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기업금융국 내에서 인정을 받은 이다.

때문에 두 사람이 올린 보고서는 그만큼 신뢰를 받았다.

아데나 록스 기업금융국장은 이런 두 사람 전적으로 믿었다.

결국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은 이 일을 무난하게 가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최민혁 실장이 미국 시민이 된다면 최악의 상황에 일어나는 일도 결국에는 미국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최민혁 실장이 한 요구다. 하지만 퀄컴 지분 인수도 최민혁 실장이 시민권자가 된다면 굳이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최민혁 실장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미국 정부에 원한이 있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최민혁 실장에 관한 추가 조사가 진행되면서 최민혁 실장의 경영 능력에 경악했다.

다들 쉬쉬하는데, 지금 에플 주가는 무려 2.7 달러였다. 즉, 현재 에플 주식 40% 가치를 환산한다면 수십억 달러를 넘는단 소리였다.

심지어 에플이 다시 부활한다면 최민혁 실장의 에플 주식 평가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최민혁 실장에 관한 조사 때문에 미국 정부 이곳저곳에서 무수히 많은 말이 나왔다.

때문에 조시 로버트 부국장의 지시를 받은 파르빈 라미네즈 팀장이 퀄컴(Qualcom) 사장인 어원 제이콥을 만났다.

어원 제이콥 사장은 갑작스러운 SEC 인사의 방문에 크게 당황했다. 그는 안 그래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유는 CDMA가 미국 통신 기술 표준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TDMA 진영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 이동 통신 시장 80% 이상을 장악한 TDMA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들은 미국 내에 있는 통신 회사를 압박해서 기존에 깔아놓은 TDMA 인프라를 핑계로 CDMA 망에 대해서 난색을 보였다.

이런 압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어떤 회사도 CDMA 단말기나 기지국을 만들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CDMA 원천기술을 가진 퀄컴(Qualcom)은 서서히 말라죽어 가는 중이었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회사 사정이 절박합니다.”

“그렇다고 불법이 용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원 사장은 설마 탈세 문제인가 싶어서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그래서 문제를 삼고자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을 만한 것을 떠올렸다.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과 비슷하다.

만약 지금 이 시점에서 SEC가 미국 IRS를 압박해서 덮친다면 퀄컴은 끝장이었다.

세무조사가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퀄컴이 견디지 못하고 도산할 것이 분명했다.

어원 사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파르빈 라미네즈를 절박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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