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78화 (478/1,021)

#478.

스티븐도 새삼 최민혁의 날카로운 지적에 혀를 내둘렀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분명히 미국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식이 될 줄은 몰랐다.

다만 그는 최근 에플 주가가 무려 2.7달러에서 행보하는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 확보한 지분 가격 대비 무려 8배 가까이 오른 주가였다.

더욱이 자신이 나서서 그들이 나서게끔 판까지 만들었다.

‘에플 주식을 팔 수는 없지만 달러 가치만으로 평가하면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지. 어쩌면 IMF 때문일 수도 있겠어.’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에플 주식 매각 대금을 가지고 장난치면 환율이 요동칠 것이 분명했다. 그건 IMF를 주도하는 세력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최민혁은 물론 자신을 희생할 생각 따위는 없지만, 문제는 다른 이들이다. 과연 한국 정치권에서 내버려 둘지는 알 수가 없다.

‘…확실히 확인이 필요하겠어.’

* * *

사교 모임이 열리는 장소는 캘리포니아 도심에서 멀지 않은 초고가 주택이었다.

호숫가에 지어진 이 저택은 전체 부지가 무려 3에이커를 넘었다.

내부 역시 호화 주택답게 고풍스러운 면이 있었다.

흑색 화강암 조약돌을 사용해서 설계한 덕분에 몇 세대가 지나든 오히려 가치가 더 높아지는 주택이었다.

맑은 물로 가득한 수영장에는 이미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최민혁 실장은 비록 국내에 있을 때 다양한 파티를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런 초호화 파티는 처음이었다. 그는 그래도 인생 2회 차답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쫄 이유가 없잖아?’

자신이 가진 자산은 이미 조 단위는 가볍게 넘어갔다.

이 정도 저택 정도는 가볍게 사들이고도 남는다.

다만 그는 굳이 그러지 않을 뿐이다.

‘내가 너무 정신없이 살았나?’

문득 최민혁은 자신을 돌아보고서야 혀를 찼다. 이제까지 그가 정신없이 바빴던 이유는 다름 아닌 최문경 부회장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을 견제하면서 인생 1회 차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죽으라고 일만 했다. 여자도 만나지 않았다. 뭐, 이건 인생 1회 차에서 여자에게 크게 당한 경험 때문이라고는 해도 좀 심했다.

그는 파티장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위 말하는 유명 인사 몇몇과 인사를 나눴다.

그들 중에는 할리우드 배우도 있었다.

글래머 스타일에 늘씬한 몸매는 한껏 남자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유난히 반짝이는 금발과 두툼한 입술은 관능적이기까지 했다.

제시카 졸리였다.

‘연기력이 별로였지. 뜻밖이군. 이런 모임에 참석하다니.’

연기력 논란 때문에 제대로 뜨지 못한 제시카 졸리.

최민혁은 흥미로운 눈길로 인사를 나누었다.

“팬입니다.”

“어머, 고마워요. 실례지만 누구…….”

제시카 졸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아는 동양인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데, 익숙한 얼굴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머리가 제법 좋았다.

“…설마 에플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님?”

“아, 맞습니다.”

제시카 졸리는 뜻밖에도 최민혁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단순히 영화배우로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하는 비즈니스 자체에 흥미를 보인 것이다.

최민혁은 인생 1회 차의 경험으로 제시카 졸리가 결국 사업가로 성공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그래서 그녀가 싫지 않았다.

“말씀 고마워요.”

가벼운 키스는 선물.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미국 사교 모임은 처음이지만 그렇다고 특이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이곳에 참석한 여자는 마치 할리우드 주연 배우만을 뽑아놓은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여배우가 제시카 졸리 외에도 8~9명이 더 있었다.

그들이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은 역시 영화 투자와도 관련이 있었다.

일테면 비즈니스가 목적인 셈이다.

심지어 에플 이사회 위원도 제법 있었다.

최민혁도 처음에는 그들을 무시했다.

그중에는 로스 페리가 대표적이다. 굳이 미국 정치 쪽과는 연관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로스 페리는 자신의 막내아들보다 더 어린 최민혁 실장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최민혁 실장님을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시카가 실장님이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그럴 리가요.”

“하지만 제시카가 저렇게 관심을 보인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아, 자기 사업에 관심이 많은 눈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문한 것에 불과합니다.”

“정말 그뿐입니까?”

“네.”

로스 페리는 집요하게 여자 문제를 주제 삼아서 최민혁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대화도 나쁘지는 않았다.

남자 사이에 주제가 미인이 되니, 이야기가 한결 편해졌다.

최민혁은 스티븐의 후원자 중의 한 사람인 로스 페리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와 인맥을 터둔다면 미국 정치인 쪽에 선을 대기가 한결 쉽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그럴 일은 없겠지. 어차피 스티븐 통해서 다 처리하면 되니까.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그런데 최민혁 실장도 무시하기 힘든 이도 있었다. 바로 스티븐이 최근 에플 이사회에 합류시킨 몇 사람이었다.

“저 역시 최민혁 실장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다름 아닌 에릭 슈미터였다. 원래는 Sun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노벨로 옮겨 갈 사람인데, 뜬금없이 에플 이사회에 참여한 것이다.

최민혁의 기억으로는 무려 10년을 앞당긴 놀라운 일이었다.

‘스티븐이 손을 쓴 건가?’

그런 면도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전 최민혁 실장님의 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주목한 건 바로 최민혁 자신이었다.

에릭은 뜻밖에도 최민혁 자신이 대주주인 에플이기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결국 스티븐의 스카우트에 항복했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사람을 괴롭히더군요.”

삼고초려는 아니었다.

칠고초려였다.

스티븐은 무려 일곱 번이나 에릭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에릭이 Sun에서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는 프로그램 기술인 자바 개발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최민혁 실장이 만들어놓은 플랫폼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이 분야 전문가인 에릭을 에플 이사회에 끌어들인 것이다.

다른 에플 이사와는 달리 에릭에게 플랫폼 관련 사업을 맡기기 위함이다.

그런데 에릭 입장에서는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KMP-02에 더 관심이 깊게 갔다. 특히 아이컴과 연동하면 자신이 그린 플랫폼 기술을 이곳에 접목할 수 있다고 봤다.

“전 정말 최민혁 실장님이 고안한 많은 원천기술에 놀랐습니다.”

특히 K투스 3.0에서 경탄했다.

최민혁은 새삼 에릭이란 월척을 낚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 1회 차 기억으로는 10년 후에나 에플에 합류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바뀐 것인가. 아니면 스티븐 때문일까.’

둘 다였다.

하지만 그는 굳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에릭에 당장 집착할 이유는 없지.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차라리 이번 일로 그와 이렇게 안면을 텄다는 것이 중요했다.

“저 역시 에릭 이사님 소문은 들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천만에요. 제가 부탁할 일입니다.”

에릭 슈미터 역시 스티븐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 세기적인 천재와 이야기를 나눈 것에 흥분했다.

다만 그 역시 안 그래도 어려 보이는 최민혁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어려 보이는구나.’

사실 스티븐에게 이사회 참여를 부탁받고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아직도 최민혁 실장에 대한 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최민혁 실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임에 참석해서 이런저런 사람을 소개받던 최민혁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예상을 벗어난 높은 관심에 내심 혀를 찼다. 그는 그들이 승냥이 같은 본성 때문에 접근하는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러니 그저 비즈니스 미소만 지을 뿐이다.

“천만에요. 제가 더 영광입니다.”

다행히 스티븐의 최측근인 마크 실러는 이런 최민혁의 마음을 잘 알았다.

“실장님,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갑시다.”

* * *

최민혁은 이곳 사교 모임 회원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값비싼 포도주도 자제했다.

그는 때문에 마크 실러 뒤를 따라가면서 건물 이곳저곳을 냉정하게 살필 수 있었다.

그림을 잘 모르는 최민혁이 봐도 억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림이 걸린 벽을 뒤로한 채 들어선 곳 역시 벽 곳곳에 다양한 예술품들이 걸려 있었다.

‘나도 은퇴(?)한 후에 예술품이나 모을까?’

하지만 그가 이보다 더 집중한 것은 검은 정장을 걸친 두 사람이었다.

마크 실러는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멕시코 태생인 파르빈 라미네즈가 조심스럽게 자신과 동석한 한 사람을 소개했다.

“이분은 증권거래위원회 기업금융국 부국장 조시 로버트입니다.”

부국장 조시 로버트는 190이 넘는 장신이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성적이었다. 다소 유약해 보이는 모습이 미국 고위 관료 같지가 않았다.

말투 역시 정중했다.

“최민혁 실장님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최민혁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다가 오히려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역시 미국 고위 관료에 대한 선입견을 무시하기 힘들다고 툴툴거렸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서 혹시 이번 에플 인수를 조사하는 겁니까?”

파르빈 라미네즈가 슬쩍 나섰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원칙적으로 시장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에플 인수는 자금 출처부터 시작해서 문제가 될 소지는 없습니다. 따라서 최민혁 실장님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사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원칙적으로 연방법의 규제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기업 인수합병에 별다른 간섭은 하지 않는다.

일테면 시장독점과 같은 문제가 생길 때 끼어든다.

지금 두 사람의 방문은 결국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예외에 해당했다.

KM 전자가 바로 한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사실 에플 인수와 관련해서 다른 문제가 엮이지 않았다면 굳이 이렇게 최 실장님을 따로 만날 일은 없었습니다.”

최민혁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부국장 조시 로버트가 바로 이점을 언급했다.

“혹시 헤지펀드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인생 1회 차를 사는 최민혁이 헤지펀드의 악행을 모를 리가 없었다.

“…레버리지 기법을 최대한 이용해서 최소 손실로 최대 이익을 얻는 투자 방식을 취하는 펀드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최민혁은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금방 깨달았다.

‘샐로먼이군. 말 참 어렵게 하네.’

하지만 최민혁이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아무리 SEC라고 해도 미국 시장에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다. 자칫 이게 문제가 되면 난리가 날 일이다.

“그렇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미국에서 헤지펀드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특징이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특성 때문에 주주의 행동주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기업 경영에 간섭을 하거나 지배 구조에도 영향을 줍니다.”

최민혁은 샐로먼 브러더스가 노리는 것이 뭔지 깨닫고는 오히려 반문했다.

“…혹시 절 헤지펀드 매니저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하하하,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님의 행보가 너무 뜻밖이어서 조사를 하다 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왔을 뿐입니다.”

최민혁은 좋은 말로 빙빙 돌리는데, 잘 들여다보면 결국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또한 그게 꼭 자신 때문이 아니라, 에플 인수 건으로 그들이 샐로먼 브러더스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인 것 역시 파악했다.

‘그렇겠지. 에플을 인수했는데, 오히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차라리 좀 늦은 감이 있었다.

에플 인수전에 이들이 나섰을 수도 있으니까.

이미 에플 인수가 끝난 다음에 나선 것은 자신을 그만큼 배려해 준 것이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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